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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질서의 황혼 주요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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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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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주 몽강 중국
광동 아무르[1] 티베트 동투르키스탄
러시아
  1. 중앙아시아로 분류되기도 함.



아시아태평양공영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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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국
広東国 | Republic of Gwangdong
국기 국장
先進社会建設
선진사회건설
상징
국가 승리의 노래
국화
매화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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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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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시대 1945년 10월 19일 ~ 1990년 3월 13일
  • 신쿄 조약 및 독립 1990년 3월 13일
  • 광동국 건국 1990년 5월 9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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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광저우(広州)
최대 도시
광저우(広州)
면적
218,982km2
내수면 비율
1.3%
접경국
중화민국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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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78,239,305명 / 세계 21위
밀도
174명/km2
민족 구성
광동인 98%, 기타 2%
출산율
1.13명
평균 수명
80.21세
기대 수명
80.21세
공용어
광동어, 일본어, 중국어
지역어
베트남어
공용 문자
한자[1], 가나 문자[2]
종교
국교
없음
분포
불교 42%, 도교 13%, 기타 7%, 무교 38%
군대
광동 국방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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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
21도 1특별시 6직할시 [3]
시, 군, 구
228개 시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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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대통령제, 공화제, 다당제
민주주의 지수
171개국 중 22위 (완전한 민주주의, 아시아 1위)
국가 원수 (대통령)
레이가치우
정부
요인
부통령
렁춘잉
국무총리
마오창
국회의장
리 마사요시[4]
여당
광동국민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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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GDP
(PPP)
전체 GDP
$3조 5,294억 / 세계 8위
1인당 GDP
$43,294 / 세계 30위
GDP
(명목)
전체 GDP
$2조 6,567억 / 세계 8위
1인당 GDP
$34,156 / 세계 32위
무역
수입
$8,763억
수출
$6,013억
외환 보유고
$7394억
신용 등급
무디스 B+
S&P B+
Fitch B+
화폐
공식 화폐
광동 엔
ISO 4217
¥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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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9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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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가입
1991년
ccTLD
.kon, 広東
국가 코드
ROG
전화 코드
+94

개요

광동국은 광동 지역에 위치한 민주공화국이다. GDP 8위로서 G20에 속해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広東(かんとん)이라고 불린다. 접경국은 중국.

상세

광동은 지나사변 이전까지는 한나라 왕조 이래로 쭉 중국의 일부로 있었던 곳이었다. 근대엔 광동성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당 정권에 속했다. 하지만 1938년 일본에 점령되었고, 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이 최종 승리한 뒤인 1945년 난징 정권이 광동을 일본에 양도하는 도쿄 조약에 서명하면서 일본령으로 편입되었다. 일본시대라고 불리는 일본령 광동이 바로 이때이다.

일본시대를 거치며 광동엔 경제성장이 빠르게 찾아왔고 얼마 가지 않아 공영권 내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가장 부유한 지역에 들었다. 만족스러운 일본의 통치와 동화정책으로 광동은 중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으며, 그런 채로 1990년 독립을 맞게 돠어 광동국이 출범했다.

광동은 출범하자마자 장쩌민이 이끄는 호국군의 침공 위협에 맞닥뜨렸으나 중국 내전으로 호국군의 어그로가 분산되자 이를 피해갔고, 곧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와 단원제 등을 골자로 한 광동국 헌법을 제정했다. 초대 광동 대통령 선거에서는 광동국민당 소속의 퉁치화가 당선되었다.

광동은 1992년에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공영기구에 합류하여 안전을 보장받았다. 일본인이 빠져나간 자리는 광동인 재벌들, 주진들이 대체했으며, 오늘날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으로 광동은 나름 동아시아에선 일본 다음가는 소득을 자랑하는 선진국으로 분류된다.[5]

2000년 장더장 대통령이 퇴임하는 제3대 광동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개헌을 하여 4년 중임제로 개정했다. 3대 대통령으로는 광동민주당쨩얌퀸이 당선되었다. 이어서 2016년엔 광동국민당렁춘잉이 당선되는 등 상호간 정권 교체로 민주주의는 나름 정착되었다. 그런데 2024년 대선에서는 주기론을 깨고 다시 국민당 레이가치우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민당의 우세가 강해졌다.

오늘날 광동은 남방에서 사실상 유일한 친일 국가로 만주국과 함께 일본의 양대 최중요 동맹 중 하나이며, 세계 8위의 GDP로 영국보다 높은 대표적인 중견국이다. 또한 민주주의 순위 22위로 일본과 함께 아시아에서 유이하게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는 나라이다.[6]

상징

국호

국기

국가

지리

지방

자연

인구

행정구역

도(道)

특별시(特別市)

직할시(直轄市)

시(市)

군(郡)

구(区)

정치

대통령

부통령

국무총리

국회

정당

광동은 헌법으로 다당제를 보장하고 있다. 광동의 정치는 유서깊은 양당이 양분하고 있는데, 바로 광동국민당(広東国民党)광동민주당(広東民主党)이다. 이들의 역사는 일본령 광동 시기 광동 의회에서부터 시작된다.

1972년 제국 자유화 조치 이후, 외지에서 참정권 보장 차원에서 지역 의회 개설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1973년부터 광동에서 의회 선거가 열렸다. 다만 외지 선거에서 정당 창설은 허용되지 않아 회파별로 의석이 나뉘었는데, 이때 본국에 충성하고 철저한 일본 국민으로 살아가자고 주장하는 측이 국민파, 그리고 본국에 권리와 자치를 요구하자는 측이 민주파였다. 이들은 1990년 독립 시까지 대일본제국 치하 광동 의회 선거에서 대립을 펼쳤다.

그러다 1990년 대일본제국 붕괴로 인해 광동이 독립을 맞이하자 국민파는 광동국민당이 됐고, 민주파는 광동민주당이 됐던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도 대체로 국민당은 친일 / 아태기구 중시 / 일본 의존적인 외교를 주장하며 민주당은 자강 / 아태기구 회의적 / 중국 중심의 외교를 주장하는 측으로 나뉘어 양당제를 이루어 오고 있다.

당연히 일본은 국민당의 승리를, 중국과 미국은 민주당의 승리를 바라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신냉전이 격화하고 일본과 중국의 갈등이 점차 첨예해지자 광동의 민심이 친일로 기울어가는 상황에 있으며 2024년 대선에서 18% 차이로 국민당 레이가치우 후보가 승리하며 이러한 친일주의 확산에 따른 양당제 붕괴의 조짐이 명확해지고 있다.

군사

광동의 군대는 광동 국방군(広東国防軍)이다. 거대한 적성국인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특성상 육군에 편중된 측면이 있으며,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해군과 공군도 존재하나, 그 전력이 육군에 비해 약해 상당 부분을 일본의 안전 보장에 의존하고 있고, 광동 공군과 해군이 운용하는 무기도 일본제의 비중이 크다.

상비군 병력은 약 72만 명을 보유 중에 있다. 육군력으로만 따지면 아시아에서 일본군, 남중국군, 북중국군 다음가는 전력을 가졌다고 평가될 만큼 화력이 만만치 않다.

경제

명목 기준 경제력 순위
순위 국가 GDP
1 미국 28,781,083
2 일본 12,513,799
3 중국 10,733,978
4 독일 7,874,246
5 인도 3,937,011
6 이탈리아 3,718,954
7 영국 2,834,516
8 광동국 2,681,193
9 에스파냐 2,351,391
10 캐나다 2,242,182
11 브라질 2,031,391
12 멕시코 2,017,025
13 호주 1,790,348
14 만주국 1,760,947
15 베너룩스 1,642,513
16 인도네시아 1,475,690
17 터키 1,113,561
18 사우디아라비아 1,106,015
19 스위스 938,458
20 러시아 875,863
21 프랑스 832,219

광동의 경제력은 세계 8위에 달하여 G7 소속국인 에스파냐보다 높지만, 아태공영기구 내 일본의 영향력이 강한 무역 의존 경제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구급으로 평가받는다.

사회

민족

광동의 민족은 당연히 광동인(広東人)으로 부른다. 이들은 혈통상으로 중국계에 가깝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 지배의 영향으로 중국으로부터는 정체성이 분리된지 오래이며, 광동인이라는 민족이 탄생했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일본령 광동 문서에도 나와 있으나 스스로를 일본인으로 여기는 노인들도 상당수 있기는 하다.

그 외에는 광동과 동남아시아 간 거리가 가까운 만큼 돈벌이를 위해 이주해온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92년 정령 제747호로 한번 대규모 추방이 이루어진 적이 있고, 이후로도 입국이 까다롭지만 광동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베트남인이 많아 베트남어가 지역어로 지정되기까지 했을 정도이다.

언어

문자

문화

광동의 황금기로 불린 일본시대부터 꽃피기 시작한 광동의 문화는 아시아에서 상당히 인지도 높고 세계적으로 손꼽힌다. 광동의 영화산업과 드라마 시장은 일본과 비등하거나 특정 분야에서는 일본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할 정도이다.

대표적으로 고수위 로맨스 영화의 경우, 겉으로는 성문화에 합법인 부분이 많으나 규제가 많고 보수적인 일본에 비해 검열 등이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상 더욱 발달되었으며 오히려 일본에서 광동 영화를 수입해가는 현상이 일어난다. 심지어 서양인들도 일본 영화 이외에 보는 동양 영화로는 광동 영화를 꼽을 정도.

이 때문에 광동 영화는 아시아 내에서 일본 영화에 이어 독자적인 영화 시장을 구축하고 있으며, 국제 영화제에도 진출한 경험이 있는 등 영화산업에 대한 광동인들의 자부심은 나름대로 있는 편이다.

다만 애니메이션의 경우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광동이 일본령이던 1972년 제국 자유화 이래 일본 애니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여 당시 식민지 광동에도 적극 보급되었고, 이는 독립 후에도 잠깐 중단되었다가 1992년 아시아태평양공영기구 창설 이래 계속 이어졌다.

만주도 마찬가지긴 하나, 만주보다 훨씬 부유한 광동은 일본 애니메이션 수익금이 최고를 기록하는 국가로서 애니메이션 업계의 최대 시장이다. 이 외에도 아이돌 분야에서도 일본 문화에 대한 팬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음악의 경우도 일본과 서방의 영향은 받았으나 독창적으로 각색되어 광동에서 가수들만의 독자적인 음악시장이 존재한다. 특히 수도 광저우와 대도시인 홍콩, 마카오 등에는 일본의 도쿄돔을 모방한 대형 공연장이 존재한다. 참고로 광저우의 공연장은 도쿄돔을 뛰어넘는 크기로 지으려 하다가 예산문제로 실패했다.

외교

광동-일본 관계

광동-중국 관계

광동-만주 관계

광동-미국 관계

  1. 일치시대의 영향으로 일본식 신자체를 사용한다. 광동어 표기도 신자체로 하며, 신자체에 없는 한자는 정체자로 그대로 쓰는 방식으로 보충한다. 교본에 대해선 광동 한자 문서 참조.
  2. 일본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기에 가나 문자도 공식 문자의 하나이다.
  3. 수도시는 광저우, 직할시는 홍콩, 마카오, 선전, 한커우, 산터우, 둥관.
  4.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시대이던 1977년에 오히라 마사요시(御開正義)로 창씨개명했으나 광동 독립 후에도 이름은 유지한듯 하다.
  5. 일본의 54000달러가 넘사벽이라 광동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아보이지만, 실제로는 세계 상위 30위권에 들고 아시아 2위이다.
  6. 만주국의 경우 제대로 굴러간다기에는 허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