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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우휠 11편
방향성

워렛은 누나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어디부터 설명할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여전히 이 누나의 곁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놈은 누나에게 엄청난 신뢰를 받고 있는 듯 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보여도, 결국 그는 총통의 사람이고 자신들의 적인데.

대체 왜? 누나는 가끔 그런 면이 있었다. 강한 척 하면서도 인간에게 그렇게 당하면서도, 인간을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선 놈들 떨어트려야 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워렛 상등관님?"

워렛이 반델을 처음 만난 건, 자신이 근위대의 신분으로 처음 호소니에 도착했을 때, 누나가 자신과 약속을 잡길 원한다며 이야기를 전달했을 때였다.

반델은 도저히 의심하기 어려운 부류의 사람이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적대감이 전혀 없었고, 묵묵하면서도 친한 사람에게는 곧잘 인사했다. 사실 근위대의 저런 행동은 특이한 편임이 분명했다.

그들은 대부분 거만했고, 공격적이었으며, 자아도취에 빠져서는 일반 병사와 부사관들을 개무시했기에. 그러나 반델은 너무나도 올곧아보였기에 워렛은 더더욱 경계했다.

"아렌 중장님께서 동생분을.."

"예, 알겠습니다."

"...그럼 작전실 1층에서 만나서 대화 나누시면 되겠습니다."

자리를 뜨려는 반델을 잡은 건 워렛이었다.

"소령님."

"필요하신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 아닙니다."

"언제든 필요하시면 부르셔도 됩니다. 그게 제 몫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그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워렛에게 반델은, 누나를 잠궈놓은 자물쇠와 같은 존재였기에.


"왜.. 왜 이런 짓을.. 왜..."

떨리는 목소리가 좁은 방 안에 울린다. 워렛은 꽁꽁 팔다리가 묶이고, 두 눈은 안대로 감겨 오로지 귀만 열려있다. 워렛은 살고 싶었다.

어쩌면 자신이 괜히 왕정 복고니, 반란이니, 자신의 동료들과 지인들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이런 최후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몇 남았지?"

굵직한 총통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좁은 공간이어서 그런지 목소리가 울렸다.

"다섯 남았습니다."

"그렇군"

총통은 붉은 머리를 쓸어넘기고는 목을 꺾어 천장을 본 채 한숨을 쉰다. 총알을 장전했고, 다시 한 번 격발했다. 짧은 단말마와 함께 누군가 철푸덕 쓰러진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워렛의 온 몸을 찢어갈기는데도, 주체하지 못한 분노가 워렛의 목소리를 터트렸다.

"왜!!!!!"

그리고 터진 풍성처럼 바람이 빠진 목소리로 워렛은 속삭였다.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우리가 아니어도.. 할 수 있잖아.. 마법사라면 배우면 할 수 있잖아..."

콧물과 침이 뒤섞여 웅얼거리는 워렛은 그렇게 고통 속에서 총통에게 들리지 않을 하소연을 내뱉는다.

".....제발 도련님 그만 하세요."

아직까지 살아있던 시안이 그런 상황 속에서도 워렛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도련님! 좋군. 나도 한 번 그런 말을 듣고싶었지. 나이를 먹어서 그렇게 불러줄 사람이 없는게 흠이야."

총통은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워렛의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건 벌일세. 자네가 바로 호소니로 가지 않은 벌이야. 머리를 굴린 죄값이고, 빠져나가려 한 죄에 대한 응징이지."

그리고 총구로 워렛의 이마를 톡톡 친다.

"너희 가문이 아니면 쉽게 성공시킬 수 없어. 나도 그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지."

"차라리.. 흑.. 끄윽.. 나를 나를 죽여줘..."

워렛은 차마 견딜 수 없어 그렇게 말했다. 사실은 전혀 죽고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족과 다름없는 사람들이 죽는 걸 다 지켜보고, 마지막에 죽고 싶지도 않았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군. 이렇게 진부한 대답이 맞나? 더 진보적으로 대답해"

총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구를 돌려 일자로 서있는 사람들 중 아무나 쏘아댔다. 그들 역시 비명을 질렀다.

"그만해... 그만해!!!!"

"솔직한 심정으로, 내가 이렇게까지 선택권을 주는데, 자네가 동료들을 죽이는 게 아닌가? 논리적으로는 그런 셈인데"

총통은 질질짜는 워렛을 보고 한숨을 쉬다가, 다시 뒤를 본다.

"아니면.. 이들이 가족치고는 그렇게 소중하지 않다던가.."

"각하."

그때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상황 상 총통의 부하처럼 보였다.

"보고해"

"호소니에 있는 상갈리아 제국군이 격퇴당했다고 합니다."

"누구한테? 우리 군대는 출발도 안했는데"

"그게.. 우리 국방군도 아니고, 데모부르크 군도 아니랍니다. 자칭 호소니 혁명전선이라고,,"

"혹시 모르니 전달하지는 말도록, 중요한 건 데모부르크다."

워렛은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소니 전선.. 그들의 리더가 마법사라는 이야기. 분명 며칠 전 누나와 함께 얘기했다. 그래. 보통 규모가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워렛은 울먹이면서도 속으로 그렇게 머리를 굴렸다.

게다가 어차피 선택하지 않으면 죽음이다.

"말이 없군."

그러나 총통 역시, 생각에 잠긴 워렛을 보고 다시 그의 동료 하나를 총으로 쏘아죽였다.

"워렛 경! 머리를 굴리는 게 다 보이네. 동료들이 다 죽고 나서야 결정을 할 겐가?"

"가겠.. 가겠습니다.. 동료들은 살려주십시오...."

워렛은 호흡을 고르고 그렇게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하면 워렛은, 당연히 총통이 멈추리라 믿었다.

"왜?"

근거는 없었다. 그것은 직감이다. 직감에 불과하다.

총통은 남아있는 세 사람 중, 시안을 제외한 좌측의 두 사람을 쏘아죽였다. 그리고 거칠게 떨어진 탄피 위로 총 자체도 내던지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워렛 경이 이런 생각을 할 거라고 보고있네. 우선은.. 그곳에 가서, 누나와 접선하고, 내가 시키는대로 따르는 척 하면서, 말미에는 배신을 하는거지. 나는 마법에 무지할 테니. 그게 정말로 불사의 마법인지, 혹은 저주인지 구분할 수 없지 않겠나?"

"...."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길 바라네. 어차피 아렌 경은 새 부관이 열심히 지키고 있을 테니"

새 부관.. 총통은 섬세한 손짓으로 워렛의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벗기고,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살아있는 시안쪽으로 시선을 틀었다.

시안은 오른쪽 이마가 찢어져서 피가 주륵 흐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워렛. 이 친구는 인질일세. 그리고 자네가 알다시피 마지막 인질이 아니야. 이 인질 다음은, 자네 가족인 아렌 경이지."

"배신.. 안하겠습니다... 반드시 준비하겠습니다..."

워렛은 떨리는 호흡으로 빌듯이 말했다. 자신이 보아도 너무나도 구차하고, 서러울 만큼.

총통은 그런 워렛의 모습이 마음에 들은 듯, 제법 누그러진 표정을 하며 어깨를 토닥였다. 그는 외투를 입으며 이렇게 말한다.

"나를 또 실망시키지 말게. 호소니로 가게. 근위대의 일원으로 보내주지."

총통은 문을 열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야."


"답답하게 행동하지마. 일이 있으면.. 직접 이야기 해. 너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믿지마."

아렌은 그렇게 말한 후 워렛을 제쳐두고 반델과 함께 떠났다.

"뭘 아신다고 그러십니까?"

울분에 찬 워렛의 목소리였다.

...

반델은, 알 수 없는 측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왜?

워렛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그리고 누나도 그 정도는 간파하고 있을 텐데. 자신이 차라리 모든 진실을 밝힌다면, 모든 게 편안해지겠지만 결코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불과 같은 누나가 그 모든 진실을 안다면,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서 행동할 테니까. 그러나 그것은 죽음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행도앟는 건, 전부 모두를 위한 행동이다. 워렛은 그렇게 몇 번이고 되뇌였다.

게다가, 누나도 결국 총통의 하수인에게 속고 있으면서.

"..."

워렛은 그런 생각과 함께, 반델과 사라지는 누나를 한참이고 처다본다.

근위대장의 피살은 여러모로 부대에서 괴담과 같은 이야기로 퍼져나갔다.

야간작전에서 거의 완벽한 팀워크를 보여준 근위대가, 그것도 대낮 아군 사이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적에게 저격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소재였다. 전선에서는 그 이야기가 각색되었고, 이는 데모부르크에 천재적인 저격수가 있다느니, 국방군의 오사라느니, 상명하복에 따르지 않았다고 사령관이 쏘아 죽였다는 등 이런저런 얘기가 많았다.

이 일은 워렛에게도 치명적인 골칫거리다. 자신이 의도한 일이 아니지만, 덜컥 근위대장이 전사해버렸으니. 어쩌면 총통이 자의적으로 워렛 자신이 총통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죽지야 않겠지만..

"시안이.."

누나와 자신 이전에, 시안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참모장님. 총통께는 뭐라고 보고합니까?"

통신병이 워렛에게 대책을 물었지만, 워렛에게는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다. 비록 그 선택이 좋은 일일지, 어떨지는 당장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해야했다.

타닥타닥 타자기를 누르는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근위대장은 신원 미상의 적에게 피살당했음〉

근그럼에도 참모장 본인이 1차 계획을 직접 수행할 것〉


같은 시각, 눈을 감고, 구석의 전차에 등을 기댄 아렌은 독한 담배를 입에 문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두터운 생각으로 귀를 막는다. 근위대장이 전사했다. 그것도 자신과 언쟁을 벌이다, 자신의 과실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반나절. 길어야 반나절이면 총통에게 이 소식이 전해진다. 그렇다면 자신도 이전에 사령관이었던 헤반 중장처럼,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다.

"실수네.."

아렌은 나지막이 혼자 중얼거린다. 마침 아렌을 찾고 있던 반델은 아렌의 혼잣말을 듣고서 전차 뒤를 살펴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아렌은 담배를 군화로 지지고는 반델에게 물었다.

"분위기는 어때?"

"어떤 분위기 말씀하십니까?"

"내 얘기지."

"별거 없습니다. 그냥, 다들 사령관이 근위대장을 즉결처분했다 뭐 이정도 같습니다."

"그거 사고네.."

머리가 아파왔다.

"우스갯소리입니다. 적을 특정지어보려고 했지만, 주변에서 큰 이동이 확인을 못했습니다. 아무리 추론해봐도 고작 패잔병 정도로 보입니다."

"과연 그게 패잔병의 솜씨일지"

탄창 하나를 딱 비우고 도망쳤다. 그것도 말도 안되는 거리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된 행동처럼 보였다.

"그럼.. 중장님은 괜찮으십니까? 동생분이랑.. 뭔가 다툼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

동생...

"서로 대화로 푸시는 게.."

"남이사, 소령이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날카로운 말투에 반델이 흠칫 놀랐다. 내심 아렌과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예민한 부분처럼 보였다.

"죄송합니다."

"..."

아렌은 묵묵부답이다.

"... 작전 진척상황 수기 보고서도 가져왔습니다. 놓고 갈테니 읽어보십시오. 주변에 있겠습니다."

반델은 전차 장갑 위에 그 종이뭉텅이를 놓고 사라졌다. 아렌은 일부로 반델의 표정을 보지는 않았더라도, 분명 좋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했다. 그건 분명히 짜증이었다. 필요하지 않은 행동이었는데, 이런 일로 부관에게 짜증을 냈다는 사실에 아렌은 내심 부끄러웠다. 아렌은 반델이 넘겨준 자료를 어물쩍 보다가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은데.."

사실 아렌의 예민함이 곤두선 이유는 단지 그거 하나뿐만은 아니다. 자신의 목숨이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은 물론, 지난 며칠동안 계속된 의문스러운 일들로부터 공통점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연이은 생각 속에서 아무런 답도 찾지 못한 건 아니다.

우선 실마리를 찾을 장소로 가야했다. 곧 아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며 반델을 찾는다.

"반델!"

"앗, 무슨 일이십니까?"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

"어디입니까?"

그곳은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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