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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우휠 10편
양동작전

"이해해주십시오."

뭘?

도대체 뭘 이해해?

분명히 무슨 일이 있다. 곤란한 일인 것도 알아차렸고, 심한 경우 총통과 계획에 대한 이야기다. 총통에게 계획을 들켰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그런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몰래 쪽지를 넘겨주든, 비밀암호를 전달하든,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대체 왜 계속 답답하게 행동하는건데? 왜?

워렛은 늘 답답하게 행동했다. 뭐 협박이라도 받고 있다고, 그 말이라도 하라고. 잠시만, 협박?

아렌은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하나의 일을 생각했다.

"협박을 받고 있다?"

자신도 은연 중에 입밖으로 내뱉는다. 협박을 받고 있는건가?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아니."

반델이 운전 중에 물었지만, 아렌은 아무런 말이나 둘러댔다.

"이제 곧 작전 수행입니다. 그래도 역시 전장으로 가실겁니까?"

"무를 생각없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현지에 도착한 아렌은 반델과 함께 작전지휘용으로 개조된 전차에 탑승했다. 비좁은 전차 안에서 두 사람을 포함한 각각의 두 사람의 통신병, 운전수, 및 포수까지 여섯 사람. 그나마도 작전지휘라는 이름으로 개조되어서 넓어진 전차였다.

"아늑하네"

"아늑하다는 게 이런 의미에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곧 통신병이 말한다.

-무전 교신이 들려온다.

"사령관님. 현 시간부로 작전 수행하겠습니다. 구두로 승인 명령 내려주십시오."

"통신보안, 현 시간부로 작전 수행 승인한다. 양동 작전 진행하라."


올빼미가 지저귀는 소리가 가득 찬 숲에서 잎과 가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연신 이어진다. 그들은 단 한 마디도 없이 어두컴컴한 땅에서 서로의 소리로 길을 만들었고, 빛이 보이는 곳을 향해 낭비없는 걸음으로 움직였다. 일제히 대상을 확인한 그들은, 보초를 서며 농담을 하고있던 데모부르크 군인의 울대를 칼로 찢어버렸다.

어둠에서 나온 그들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그들은 한참이나 많은 보초를 죽이고서야 소총을 빼어든다.

가장 앞에 선 이가 손을 치켜들고 사격이라고 외치자, 야간작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신호탄 확인했습니다. 야간 작전 진행 중, 데모부르크 인원 일부가 차량을 탑승하고 이동합니다."

예상대로, 후방이 습격당하자 비밀리에 대기하고 있을 방어선의 인력들이 후방으로 빠졌다. 게다가 야간인지라 빠른 이동을 위해서 차량을 탑승할 수 없었고, 모든 이동이 노출된다. 계획대로였다.

"기갑사단 중심으로 돌파." 아렌이 말하자 통신병이 그대로 전달한다.

"통신보안, 44 기갑사단 전방으로 진격 명령 하달"

"우리도 뒤따라붙는다."

"지휘전차도 이동합니다. 2번 진격 대형으로 이동"

"통신보안, 44 기갑사단 전 부대 작전지역으로 이동"

방어선에 눈이 선하도록 병력이 이동한 후, 평원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차들이 일제히 기동한다. 본래는 전조등을 키고 야밤에 이동하는 전차는 매우 위험하다. 적이 어디서 공격할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이 작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차에게는 오직 진격할 장소가 하나였기에. 엄청난 숫자의 전차가 엄청난 빛을 쏟아내며 평원에 진격하는 광경은 공포스러운 위압감을 조성했다.

"이렇게 한 번에 많은 장비를 운용하면.."

반델이 중얼거리자 아렌이 바로 받아준다.

"병참장교인 맥거만 중사께서 울상을 지으시겠지"

"1차 방어선 돌파했습니다."

"후방으로 침투한 근위대는?"

"연결하겠습니다."

통신병이 장치를 조작하여 통신 대상을 변경한다.

"통신보안, 당소 지휘차량이다. 귀소 현황 보고하라."

답장이 없었다.

"답장이 없을 만한 사유는?"

반델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통신전파의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워낙 장거리를 이동했으니"

아렌은 부대가 전멸했다거나 그런 상상이 들지는 않았다. 그들은 적어도 이 나라에서 최고의 수준을 갖춘 군대였으므로. 중요한 것은 모든 방어선을 돌파하느냐에 달렸다. 통신병은 다시 통신을 바꾸어서 계속 무전을 이어갔고, 짙은 어둠이 내리깔렸던 밤은 시간이 지나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2차 방어선 돌파했습니다."

슬슬 지휘차량 주변에도 압도적인 폭음과 진동이 울린다. 적진의 한가운데라는 증거다. 수없이 많은 무전이 쏟아지고 있다.

"3차 방어선 돌파했습니다."


그리고 빛이 들어 마침내 전장이 눈에 드러나자, 기갑사단은 방어선을 뚫다 못해 적진 너무나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다. 위험할 정도로. 다행히 후속으로 진입한 보병사단들은 기갑사단들이 밀고 들어간 장소만큼 다시 전진해 다른 방어선의 적들과 전투를 치뤘다. 이제 대낮이었으므로 모두가 서로를 볼 수 있었고, 오히려 밤보다 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는 무려 반나절 간 이어졌고, 데모부르크 측 방어군이 우회하여 도망치면서 전투가 어느정도 소강되었다. 작전이 성공했다.

"이 일대는 확인되었습니다. 야간에 방어선이 무력화되면서 조직력이 와해된 부대들은 전부 패퇴했고.."

"근위대는?"

"아.."

아렌은 자신에게 설명을 늘어놓는 장교에게 대뜸 근위대부터 물었다. 분명 야간 작전으로부터 12시간이 넘게 지났으므로 소재는 충분히 파악이 됐을 텐데. 여전히 자신에게 보고가 없다는 점이 의아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장교는 무언가 숨기는 눈치였다. 그러자 반델이 그 앞에 섰다.

"중장님. 이건.. 직접 가보셔야 알 수 있습니다." 라며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무슨 이야기야 그게?"

"직접 가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

전차들의 뒤없는 진격으로 방어선은 노골적으로 무너져있었지만, 그렇다고 아군 측의 피해가 없는 건 결코 아니다. 당연히 대놓고 돌격전을 벌였으므로 적지 않은 수의 전차들이 겹겹이 준비되었던 방어선 뒤로 파괴되어 있었다. 아렌은 차량을 타고 가며 그러한 아군의 피해를 고스란히 느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돌파하지 않았다면, 더 오랜 시간과 더 많은 인력, 물자를 사용했어도 돌파하지 못했을 테니까. 늘 기회의 순간은 짧다. 결단은 빨라야 한다. 아렌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이야?"

"그렇습니다."

반델이 아렌을 안내한 곳은 근위대가 야간작전을 벌인 방어선의 후방이다. 그곳에는 일부 민가와 데모부르크의 막사가 함께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 아렌이 도착하고 땅을 밟았을 때 그곳에는 군 시설과 민간인들의 집이 구분되지 않았다. 전부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시체.

그리고 시체들.

아렌의 먼발치에는 까맣게 타거나 혹은 적혈로 물든 시체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렌은 살면서 보지못한 그 광경에 말을 잇지 못하고, 정말로 멍하니 그저 바라만 본다. 근위대원들은 아무런 감정없이 시체를 다루고, 살아남은 사람들 마저도 총을 쏘아서 죽였다. 비명소리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마치 일주일 전 총통의 집무실처럼, 죄책감 없는 살인. 그 자체다. 마치 도축업자가 돼지를 썰듯 딱 그정도의 감정처럼.

"천개의 창으로서, 사령관님. 보고가 늦었습니다."

사령관이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근위대원 몇 사람이 아렌 주변으로 모여든다.

"이게.. 왜? 민간인들을.."
당황한 아렌은 횡서수설 물었다.

"이게 저희의 방식입니다. 사령관님."

"이건 학살이야."

"학살?"

곧이어 아렌의 차량 뒤로 차를 타고 온 근위대장이 차를 내리며 아렌의 말을 잘라낸다.

"사령관님. 이건 학살이 아닙니다. 정당한 응징입니다."

"뭐가 학살이 아니라는 겁니까? 이렇게 대놓고.. 아무리 자국인이 아니라지만 이건.."

"사령관님!!"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근엄했다. 짙은 눈썹과 눈매로, 자신보다 키가 작은 아렌을 내려다보며 당당히 말한다.

"이곳에 근위대 투입을 명하신 건 사령관님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장 며칠 전만 하더라도 호소니인들에게 테러를 당해서 동료들을 잃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한낮 동정심에 적들을 인간으로 보시는 겁니까?"

자세를 굽힐 여지조차 주지 않고 있다. 아무리 자신이 사령관이라고 한들, 그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근위대라는 사실을 뼛속까지 마음에 새기고 있다. 총통의 친애를 받고, 이 나라의 최고라고 자부하는.. 그야말로 광신도 집단 그 자체.

"이런게 근위대의 유명한 실체였군."

이를 악물고 고개를 내린 아렌은, 허벅지에 달린 홀스터[1]에서 권총을 꺼내든다.

"그게 근위대의 방식이든 뭐든 나는 인정 못해. 이건 아니야!"

그리고 권총을 근위대장에게 겨냥하자 누군가가 나타나 그 총구를 손으로 거머쥐었다.

"워렛, 손 치워"

나타난 사람은 아렌의 동생, 워렛이었다. 반델도 아렌의 어깨 너머로 지켜보다 뒤늦게 아렌을 제지했다.

"아렌 중장님, 우선.. 우선 진정하십시오. 이건 아닙니다."

"워렛 너 왜 이래? 고작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어? 대답해."

아렌은 더 이상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동생이 왜 자신에게 이렇게 행동하는지, 그가 왜 근위대에 가 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왜 말하지 않는지, 자신이 답을 찾을 수 없었고, 알 방법도 알 수 없었다.

"사령관님. 외람되지만, 이곳에는 레이먼트 소장께서도, 다른 사단도 없습니다."

"그래서? 프래깅[2]이라도 하겠다?"

"굳이 제가 총통께 사형당할 일을 자처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만하시라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거만했다.

"사령관.. 아니, 중장께서 자기 주제를 잘 아실거라 생각했는데, 감정도 주체못하시는 푼수라 저는 몹시 놀랐습니다. 사령관이 뭐라도 되셔서 사령관이 되신 줄 알았습니까? 이곳은 별들의 무덤입니다. 이곳으로 들어온 사령관들은 대부분 힘을 못쓰고 제대합니다. 그러니 총통께서는 부담없는 참모장 급의 중장님을 모신겁니다. 설마 그 정도 계산은 하셨을거라고 보았습니다만."

워렛은 그 옆에서 잿빛이 깔린 얼굴로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 누나에 대한 옹호도 그렇다고 비난도 하지 않았다.

아렌 역시도 근위대장의 말에, 총통의 앞에서보다 더 분노한 표정이었다.

반델은 상황이 끝도없이 악화되자, 아렌의 손목을 살짝 잡아 끌었다.

"중장님 이제 그만하셔야 합니다 더는.."

──피슝

아렌의 머리 위로 총알의 궤적이 그어진다. 짧지만 강렬하게 귀를 아려오는 소리. 총성은 곧 총격, 이것은 저격이었다.

"대장님!!!"
"저격이다!! 주변을 경계해!"

반델은 빠른 반사신경으로 아렌을 잡고 넘어졌다. 곧 알 수 없는 총격이 계속되었고, 아렌은 얼굴을 한 번 찡그리고는 총성으로 아픈 귀를 진정시켜 주변을 살폈다. 적들은 숲에서 무차별적으로 쏘고 있었다. 데모부르크군은 완전히 패퇴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아렌의 시선은 곧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거구의 근위대장에게 옮겨졌다. 아무리 보아도 그건 즉사다.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총성은 불과 10초만에 3명이나 쓰러트렸다.

"하나 둘, 셋.. 탄창 하나입니다. 많아야 둘, 해봤자 하나가 쏜겁니다. 적은 하나인 것 같습니다!"

반델은 몸을 웅크리고 전차와 땅에 파인 피격 지점을 모두 세고서 그렇게 외쳤다.

"적은 전차 왼쪽 방면 숲이다! 거길 사격해!"

아렌의 고함소리와 함께 총을 들고 있던 근위대원들은 일제히 숲을 사격했다. 그리고 아까보다도 훨씬 거칠고 큰 총성이 끝나고, 더 이상 저격은 벌어지지 않았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보인다.

반델은 쓰러져있던 아렌을 일으키고, 아렌은 자연스레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계속 바라보는 워렛을 처다보았다.

아렌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워렛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답답하게 행동하지마. 일이 있으면.. 직접 이야기 해. 너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믿지마."



(10)
  1. 권총집이라고도 함
  2. fragging, 상관을 살해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