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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우휠 2편
철도 속에서

"어떤 분이길래 여태 한 마디도 안하십니까?"

글쎄. 굳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런 상황을 목전에서 마주했다면야. 복잡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기엔 아직 안정이 부족하다. 앞자리에선 부관이 그녀를 바라본다. 침묵을 지키는 와중 할 일이 뭐가 있겠나. 그저 운전이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차량은 황궁 시내를 벗어났다. 외지로 뻗어나가는 전철, 요르문이 있는 탑승장이 그 목적지다. 바퀴가 궤적을 그리고 울거진 숲길을 지나자 목적지에 도착한다. 부관은 주차를 마치고 뒷차문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진짜 한 마디도 안할겁니까?"

"담배부터"

"여긴 금연입니다."

"대장부는 사소한 것에 얽매이면 안돼"

"외람되지만 남자도 아니시지 말입니다."

그녀가 그 얘기에 침을 뱉고는 따가운 눈초리를 보낸다.

"그냥 알아서 알아먹어. 그리고 성차별하지마. 동생이면 다야? 워렛"

"뭐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부관은 바로 아렌의 동생, 워렛이었다.

탑승 정류장은 고요했다. 둘이 오가는 덕담 말고는 하나의 잡음도 없다. 그러니 영업도 하지 않는 카페의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테다. 본래 이 거리는 대낮이라면 유명할 만큼 번화가지만 두 남매에게 수도란 낯선 오지였을 뿐 그 이상이 아니었다.

아렌은 입질하듯 담배를 물고 연기를 뿜으며 말한다.

"나는 다른데 다녀와야 해. 너랑 나랑 행선지가 달라."

"갑자기 말입니까?"

뜸을 들이다가

"이제 내가 군단장이거든."

"?"

부관이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이 나라 행정이 그만큼.. 아니다. 누가 듣겠네. 머리아파."

"누나 그걸 이제 말하는 게 맞아? 뭐 젊은 나이에 성공한거지.."

워렛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딴소리 하지마라. 죽겠으니까. 이 라인 타는 게 아니었어. 넌 호소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제국의 명예를 위한 성전?"

"아하. 아첨하는 나랑 똑같은 표정인 걸. 우리 동생님. 나도 동감이야."

둘은 이런 대화를 할 때마다 어김없이 영혼없는 목소리다. 차렷 자세로 한참이나 서있던 부관은 옅은 조명의 가로등을 스윽 보다 그녀의 옆에 앉는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끔찍한 짐이지. 왜, 살육할 생각에 죄책감이 느껴져?"

그다지 깊은 감상은 없었다. 자신의 삶에 그런 여유를 느낄 틈은 없었으니까. 애초에 그곳은 머나먼 타국에 불과하다.

"갑자기 왜 반말이신지, 뭐. 도축업자도 돼지 죽이는 게 취미는 아니잖아. 사실 잘 모르겠지만.."

"비유가 좀 그런 걸."

동생은 철제 테이블에 자신의 군모를 내려놓곤 자신의 담배를 수통의 물로 적신다. 그러자 푸른빛을 내며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불에 지진 담배와 꼭 닮아있다.

"솔직히 신기하지? 데모부르크 산이야. 전선에서 불빛을 안내려고 이런걸 쓴다나봐."

"안 궁금해. 그리고 이런 나라에서 외제를 쓴다니 총살감이야. 그리고 이녀석아, 금연구역이라며?"

"남자는 사소한 것에 얽매이면 안된다는데?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그랬어."

워렛의 청산유수에 그녀는 픽 웃어넘긴다.

"참나. 내가 잘못했네."

멍하니 거리 저변의 어두운 골목을 보던 동생은 대뜸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항간에 그런 소문이 돌아."

"너무나 궁금하네요. 어떤 소문인지." 아렌은 관심도 없어보였다. 그리곤 다시 입으로 구름을 내뱉는다.

"호소니에 독립조직이 생긴 모양이야."

"호소니에 독립세력은 많이 있잖아. 새삼스레 뭘 이슈라고."

그녀는 별 것 아닌 이야기인 양 일약하곤 코웃음친다. 그럴수록 부관, 동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더 이야기했다.

"조직에 마법사가 있다는 얘기가 있거든"

"뭐? 야, 워렛. 너 설마 아직도... 이보세요 동생님."

꼭 동생을 나무랄 때면 '동생님'이 아닌 이름 두 자로 부르곤 했다. 마법사란 한 마디로 동생이 무얼 생각하는지 짐짓 이해한 아렌은 타들어간 한 개비를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잿떨이로 지져넣곤 말했다.

"우리 계획을 위해선 필요하잖아."

"너 아직도 그 계획에 미련 남았어? 너 그러다 우리 가족들 다 위험에 빠트리는거야. 알아?"

"이게 다 정당한 권력을 위한거라니까."

"이게.. 우리 뒷바라지 하는 시안 생각은 안한다는거지?"

아렌은 잔뜩 화가난 표정이다. 아렌이 보기에 워렛은 너무 철없어 보일 뿐이다.

워렛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피했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접촉이고 자시고 절대 하지마. 더군다나 너는 마,"

타이밍이 무섭게 들려온다. 새벽 철도가 달리는 굉음이었다. 그 큰 기계음이 그녀의 목소리를 덮는 순간 동생은 다시 부관이 되어 담배초를 버리곤 군모를 틀어썼다. 그녀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따라 일어났으나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다시 입을 연 건 마지막으로 배웅을 위해 플랫폼에 발을 딛은 때였다.

"부관. 분명히 말해두지만, 인수인계 외엔 절대 아무것도 하지마. 난 총통의 지시사항이 끝나자마자 요르문이 아니라 비공정을 타서라도 갈 테니까. 헛짓하지 말란거야. 하,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표정좀 해. 그런 태도로 일정 정리하는 척 하지 말고. 알았어?"

"예." 부관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경례한다.

"하나의 눈을 위하여[1], 아렌 중장님의 무사 귀환을 바랍니다."

"천개의 창으로서[1], 워렛 경의 무사 귀환을 바랍니다."

그리고 경고문과 함께 철도 요르문의 문이 닫힌다. 그녀는 자신이 서있던 자리에서 요르문의 마지막 차량을 볼 때 까지 마냥 바라보았다. 부디 아무일 없길 바라며. 그리고 아렌 자신도 다시 다른 열차를 타기 위해서 이동했다.

동생은 8번 차량으로 들어가 몇 자리를 빼곤 텅텅빈 열차를 살폈다. 사실 인수인계를 생각한다면 시간이 모자라도 너무 모자랐기에 그는 자리를 틀어앉고는 곧장 문서를 펴놓았다. 큰 눈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투브릿지를 쓰고 소매를 조금 걷어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집중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어느 전선 출신인가?"

"예?"

전철. 그 덜컹거림이 끝나자 말을 붙인 붉은 머리의 중년은 연륜이 무색하게나마 히죽 웃었다. 새벽의 적적함을 깬 한 마디는 그다지 유쾌하지는 못했다. 보수파들의 어투다. 군복 입은 젊은이들을 보면 꼭 첫 전선을 묻고는 꼰대 짓을 하곤 했다.

"아 예"

워렛은 떨떠름한 표정도 못 감춘 채 옷맵시를 고치곤 눈 빠지게 보던 서류들을 미뤄두며 대답한다.

"공화전선 출신입니다."

"아! 패배주의자들 가득한 그 동네라. 잘 알지. 그럼 지금은?"

"죄송합니다. 작전 지시사항은 대외비입니다."

"그렇군. 반가워서 그래. 나와 같은 육군이지 않은가? 난 여태껏 해군들 사이에서 있었는데 그 놈들 말이 전혀 안통해서 말이지. 저번에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던 게‥"

정말 해야 할 말만 형식상으로 내뱉었는데도, 중년은 마치 손자와 대화하듯 팔짱을 끼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하고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는다. 진절머리가 났다. 상관이기는 해도 세상에 널린 게 군인이고 육군인데 어쩌다 만난 남에게 다정하게 대할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진짜 어지간히 재미없고 짜증나는 이야기일 뿐이지.

워렛은 눈을 한번 꽉 감고는 커피를 마신 뒤.

"죄송하지만 중요한 업무를 처리중이어서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상관보다 더 중요한 게 업무인가?"

히죽 웃었던 첫인상처럼 인자했으리라 생각한 중년은 예상외로 날카롭게 남자를 비집었다. 당연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화가 끝날 거라 예상했던 그의 생각은 완전히 어긋났다. 정말 본대의 상관처럼 용서치 않을 표정이다.

"아…. 불찰입니다. 바로잡겠습니다."

"농담일세. 잔뜩 굳어있군 그래. 하하하."

자신이 떨떠름해진 처지에 어색하게나마 웃는 남자. 자세히 보니 중년의 가슴팍에는 아무런 표장이나 기장도 없다. 단지 군모에 주렁주렁 달린 작대들만 달려있을 뿐이다.

"중하관께서는 어느 전선 출신이십니까?"

"글쎄, 내 소속은 대외비일세 상사관."

역시나 장난스러운 말투다. 결국 이 능글맞은 중년이 하고 싶었던 건 잡담뿐이었을까.

"근데 말이지."

뻔한 농담이나 하겠지 싶어, 워렌은 고개를 들지 않는다.

"사실은 자네와 같은 전선을 향하고 있네."

그러나 이번엔 다른 의미로 고개를 들기 어려워진다.

"중앙전선을 가고있거든. 이레프 워렛 하사관, 이레프 아렌 중장의 동생이라지?"

워렛은 굳어버렸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지도, 애초에 '1계급 특진'과 '전선발령'은 급보가 아니기에, 아무리 빠르더라도 일개병사나 장교가 알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워렛은 마치 뱀과 마주친 생쥐처럼 입을 꼭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싸늘하고, 말라있는 목소리다.그를 휘감듯 마른 목소리가 귀를 긁고있다.

"그리고, 황실의 총애를 받던 왕정 마법사 가문이라며. 정말인가? 왕당 복고파라는 이야기가?"

경주를 시작한 말처럼 빠르게 빼어든 총은 두려운 공포를 겨냥한다.

지레짐작 따위가 아니다. 그러나 고작 총알 몇 방에 해결될 일은 결코 아니었다. 워렛은 그 초조한 표정 만큼이나 수십수배의 불안감에 사로잡힌 포로였다. 자신의 정체를 전부 알고, 단지 이것만 아는 게 아닐 테다. 어쩌면 자신, 누나와 연관된 수백명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말살된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워렛은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 따위는 안중에 없이 오직 그만을 바라본다.

"협조를 요청하네."

중년은 손을 올려 무언가를 추스리는 행동을 한다. 그제야 워렛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이 차량에는, 모두 적밖에 없었다. 이미 중년의 편처럼 보이는 군인 열댓 사람의 총구가 자신을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호소니에서 우릴 도와야겠네. 자네가 찾는 사람과 우리가 찾는 사람이 같은 모양이야. 만약 작전이 성공하면 반역죄를 용서해주지."

뻔한 거짓말을. 이 나라에서 가장 잔인하다는 총통이 안다면 용서 헐 리 없는 중죄다.

"대체.. 누구십니까?"

물었다.

그러자 대답한다.

"아, 난 이제부터 자네와 함께 작전을 지휘할, 라이프니츠의 총통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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