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제국 국회
원내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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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프로펜차노 내각
(2021 - )
여당

기독교민주당
124석 · 219석

이탈리아 사회당
54석 · 88석
신임과 보완

이탈리아 녹색당
17석 · 25석

자유연대
8석 · 7석
야당

이탈리아 공산당
0석 · 170석

이탈리아 공화당
0석 · 41석

기독교사회당
0석 · 33석

사회운동
8석 · 15석

민주사회당
0석 · 15석

볼트 이탈리아
2석 · 9석

독립전선
0석 · 7석
무소속 102석 · 1석
재적 315석 · 630석
좌측은 원로원 의석 수, 우측은 대의원 의석 수
기독교민주당
Democrazia Cristiana
로고 당기
약칭 기민당, DC
표어 Patria, Imperatore, Democrazia cristiana
조국, 황제, 기독교 민주주의
창당 1943년 11월 21일
계승 정당 이탈리아 인민당
이탈리아 기독교보수동맹
당수 겸 총리 로베르토 프로펜차노
부당수 마리아노 로렌치
서기국장 줄로 아르미나
이념 기독교민주주의
사회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근황주의
친유럽주의
스펙트럼 중도우파
원로원 의원 124석 / 315석 (39.4%)
대의원 의원 219석 / 630석 (34.8%)
주지사 11석 / 24석 (45.8%)
유럽의회 의원 31석 / 88석 (35.2%)
당색 하늘색 (#87CEFA)
하얀색 (#000000)
당가 O bianco fiore (오 하얀 꽃이여)
종교 기독교 (로마 가톨릭)
유럽 정당 유럽 인민당
국제 조직 중도민주 인터내셔널
선거 연합 중도 왕당파 연정
여성 조직 기독교민주주의 여성 운동
청년 조직 기독교민주주의 청년 운동
당보 인민 (Il Popolo)

개요

이탈리아의 중도보수 정당. 이탈리아 사회당, 이탈리아 공산당과 함께 오랜 기간동안 삼당제 체제를 구축해왔으며 1945년~1969년, 1977년~1980년, 1991년~2000년, 2010년~현재까지 총리를 배출하였다. 이탈리아 제국의 건국인 1945년부터 현재까지 대략 2/3이 약간 안되는 48년간 총리를 배출한 집권 여당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역사

창당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이탈리아의 4대 정당은 중도 이탈리아 인민당, 우익 이탈리아 기독교보수동맹, 좌익 이탈리아 사회당 및 공화파 이탈리아 공화당이었다. 이중 인민당과 기독교보수동맹은 1940년대 나치 독일의 이탈리아 침공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의 구심점을 이루기 위하여 1943년 리비아에서 양당간의 합당에 동의하여 기독교민주당이 창당되었다.

그러나 1945년까지 각 지역 조직들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활동하였고 각 지역에서 인민당과 기독교보수동맹이 완전히 하나의 정당으로 합당된 것은 1945년에서 1949년 사이이다.

1940~60년대의 장기 집권

1946년 엔리코 베를루치, 1953년 마르코 페르니체, 1962년 로베르토 체레미사, 1966년 기도 피체 등 4명의 총리를 연달아 배출하면서 선거에서 연전 연승을 거둔 기독교민주당은 전후 46년부터 69년까지 23년간 장기 집권을 이어나갔다.

이는 로마 가톨릭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신도들에게 기독교민주당 투표를 종용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1960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이탈리아 가톨릭 진영이 세속주의를 표방함에 따라, 기독교민주당의 의석 수는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던중 로베르토 체레미사 총리는 베트남 전쟁 참전을 결정하고, 베트남 파병을 통해 베트남 문제에 개입하려고 하였다. 또한 이보다 앞선 1950년대 후반에는 독립하려는 리비아를 막아 리비아 독립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두번의 전쟁 모두 이탈리아가 패배하면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기독교민주당 정부를 규탄하는 반전 집회가 열린다.

이로 인하여 1969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기독교민주당은 전후 최초로 단독 과반 의석을 상실하고 정권을 이탈리아 사회당아놀도 파르미리에게 넘겨준다.

다시 여당으로

1977년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주UN 이탈리아 대사를 지내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피올라 조반니가 기민당의 당수로 올라서 아놀도 파르미리 정권을 공격하였다. 선거 결과 공산당의 약진과 사회당의 부진, 기민당의 승리가 이뤄져 피올라 조반니는 더이상 공산당과의 공투를 하지 않기로 주장한 이탈리아 사회당과 연정하여 총리직에 올랐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피올라 조반니 총리의 측근들이 부정부패 혐의로 구속되어 개인적인 도덕성의 문제가 발생한데다가 기대되었던 경제 문제 해결도 미적지근하였다. 그 결과 1980년 조기 총선이 치뤄지고, 기민당이 부진함에 따라 다시 정권 주도권은 아놀도 파르미리의 사회당에 넘어갔다.

그러나 정권 주도권만 사회당에 넘어갔을 뿐 의석 수는 여전히 기민당이 많았고, 공산당과 사이가 나빴던 사회당은 기민당과 계속 연합하였기 때문에 1980년대 내내 기독교민주당은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오직 안토니오 루마치 총리와 아놀도 파르미리 총리의 개인기만으로 사회당이 총리직을 유지했기 때문에 이 시대에는 사회당이 아놀도 파르미리의 1,2기 집권때만큼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하지 못하였다는 평이다.

역대 당수

역대 선거 결과

이탈리아 대의원

유럽 의회 의원

정책

강력한 친왕주의 정책을 표방한다. 움베르토 2세의 부정부패로 인한 로마 대공위 폐위 의결 당시에도 원내 정당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또한 이름이 기독교민주당인만큼 엄격한 사회보수주의를 추구하며 당론으로 동성혼과 낙태 반대를 내걸고 있다. 여성 문제에 있어서도 프랑스, 독일, 영국 등 다른 국가의 보수 정당에 비해 비교적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68 혁명 이후 극우에 가까웠던 사회 정책은 희석되었으며 현재는 프랑스 공화당이나 영국 보수당 정도의 온건한 사회보수주의를 추구한다.

반대로 경제적으로는 다른 유럽의 우파 정당에 비해 진보적이라는 평이다. 하지만 복지 정책을 일부 수용하였던 1980~90년대의 기민당과는 달리 2010년대 이후로는 긴축 정책 등 신자유주의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며 상대적으로 우클릭했다.

지지 기반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