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단세오(영어:Nadanseo)는 발바라 남부, 자줏빛 사막 너머 울창한 열대우림의 문명이다. 환경의 분위기는 린크 대륙세로숲이나, 가라시온 극남부와 유사한 분위기이지만, 나단세오의 삼림은 육지에서 해안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궤를 달리한다. 또한 산맥과 강이 나지 않은 땅에는 그 부분을 따라 열대우림숲이 이어지는데 각기 다른 환경에 적응했으므로 그 잎의 색상도 달리보인다. 이 독특한 환경의 주인공이 바로 나단세오 나무이며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이 지은 이름이다. 독특한 목조문명과 기형적인 자연환경 때문에 비현실적인 자연경관을 가졌지만, 일부 지역을 넘기면 다시 험준한 산맥지대가 이어져 나단세오의 범위는 발바라 가라시온의 절반에 불과한 셈이다.


역사

가라시온의 자줏빛 사막이란 이름은 모래의 색상도 그렇지만, 이 사막이 살아 건널 수 없는 땅이란 점에서 자줏빛이 더 강조[1]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발바라의 1시대 이전부터 많은 원시부족들이 자줏빛 사막을 건너갔고, 그곳에 다시 정착한 이들이 광대한 숲을 개척하면서 나단세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나단세오발바라의 왕국들과 공식적으로 교류한 시점이 5시대 초이므로, 무려 천백여년 간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특히 자줏빛 사막 서부의 화산폭발로 가라시온 지방의 사람들이 그 지역 자체를 기피했던 탓도 있었다. 결국 나단세오에 대한 윤곽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베실라의 함대가 발바라의 연안을 모험하고 나서부터다.

나단세오의 문명 발전은 텡단도르마로부터 기원한다. 소부족을 통일한 텡단도르마 대부족장은 우거진 나단세오 숲을 개척해 부족간의 교류가 가능하도록 길을 만들고 정돈했으며, 문명에 기반이 되는 다양한 기술들이 이때 정립되었다. 하지만 인신공양 등의 관례도 함께 생겼고 타부족에 대한 학살도 자주 이루어졌다.

타카리돔의 전설

나단세오에서는 여러 종교의 근간인 모리돔이라는 토속신앙이 존재하는데, 이 모리돔에서는 타카리돔이란 독특한 세계관과 전설이 존재한다. 타카리돔이란 인간의 모든 생명의 기원은 땅 아래 지하에 있고, 그보다 더 위(인간 발아랫땅)에는 온 세상과 연결되는 거대한 동굴이 존재한다는 전설이다. 다른 이야기로, 환경과 자연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동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리돔의 지하에 대한 전설은 여러 왕국에서 공통적으로 구전되고, 나아가 타카리돔의 세계가 연결된 동굴은 단지 공간적인 영역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연결되었다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있다.

근대의 일부 학자들은 타카리돔의 전설이 사실이며, 타카리돔과 보타뉴 심연굴이 연결되어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고, 당연히 학계에서 묻혔다.

마법과 문화, 미타

미타(영어:mit'a)나단세오에 존재했던 무술 형태의 마법이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을 제거하고나면 얻는 마석을, 나단세오인들은 토기단지 안에 짐승의 피와 재워놓았는데, 이것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꺼내 성인식과 같이 의례와 행사 때 장신구를 만들어 선물했다. 일반적으로는 아기 때부터 보석을 선물해주며 탄생을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이것으로 귀를 뚫기도 했다.

식문화

나단세오는 우거진 숲이 밑도끝도 없이 이어져있지만, 대부분은 숲을 화전하는데 무리는 없었다. 정착 초기에는 인구도 많지 않았으므로 자주 화전이 이루어졌고, 고구마처럼 뿌리쪽을 먹는 기초적인 농사를 지었다. 이후 문명이 발전하고 나서는 나단세오의 주요 유역에서 벼과 농사가 지어졌고 이후 안정적인 식량 수급과 마을, 도시의 확장으로 인구가 대대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유역을 중심으로 평지와 주거지역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식문화도 발달했다.

그들은 식물성 기름으로 뿌리쪽 작물을 으깨 튀겨먹었다. 거기에 쌀을 고추, 달걀 등과 볶았으며 큰 가마솥 하나로 여러 식구가 함께 식사를 했다. 나단세오는 왕국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계급제이므로, 신분이 높을수록 더 비싼 재료를 써 작은 접시에 올렸는데 이것이 신분의 상승이었다. 즉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식기로 식사하는 것이 미천하다는 기준이 되었으며, 귀족일수록 서로 다른 식기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것을 강조하였다.

  1. 중세 가라시온에서는 죄를 받아 쫓겨났다라는 표현을 자줏빛 사막을 건넜다라고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