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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of Order:Last Day of Empire 자유 기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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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독일제국
Großdeutsches Kaiserreich
Great German Empire
국기 국장
'A.E.I.O.U'
독일 연방 통일 이전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기타 독일 연방 국가
-
상징
국가 황제 찬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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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0년)
오불전쟁 (1870년)
대독일제국 선포 (1871년)

지리
수도
최대 도시
베를린
위치
유럽 대륙
구성국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바이에른 왕국, 보헤미아 왕국, 모라비아 변경백국,
인문환경
총 인구
13,793,910명
민족
독일인 67%, 체코인 16%, 이탈리아인 4%, 프랑스인 8%, 기타 5%
공용어
독일어 (사실상)
지역어
독일어, 체코어, 이탈리아어, 슬로베니아어, 폴란드어, 프랑스어 등
국교
가톨릭 (정교분리)
종교 분포
가톨릭교 80%, 개신교 11%, 무교 7%, 기타 2%
군대
대독일제국군
연호
서력기원
정치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다당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카이저
(국가 원수)
카를 폰 합스부르크
제국 수상
(행정 수반)
브루노 크라이스키
입법부
국가의회 (라이히스탁)
여당
사회민주당
경제
경제 체제
자유시장경제
통화
독일 마르크


Nachts steht hunger starr in unserm tr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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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오스트리아는 세상의 마지막이 되리라.

대독일제국, 또는 오스트리아라고도 불리는 이 거대한 제국은 두 차례의 대전쟁의 승리자로서 유럽 대륙을 장악했습니다. 영국과 함께 프랑스와 러시아라는 거대한 세력에 맞서 싸우면서, 그들은 브르타뉴부터 우크라이나까지 이르는 신질서를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 있는 동맹이었던 대한제국의 배신으로 굴욕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카를 1세의 1948년 대타협으로 많은 국가들을 민족적 단위로 독립시켜 영국에 비해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오스트리아인의 자유적이고 진보적인 귀족 정치는 거기서 멈췄습니다. 그들은 다시 유럽의 왕위 계승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기 바빴고, 군대는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축소 되었으며,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착취할 방법만을 찾았습니다. 프로이센의 융커들은 황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오스트리아 귀족들과 대립합니다.

독일의 외교 상황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고립적입니다. 오랜 우방이던 영국과는 식민지 문제와 영국 스스로의 문제가 너무 커졌을 때 멀어졌고, 미국과의 협력은 오스트리아 귀족들이 반대하고 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너무 '급진적'이라 대다수의 국민들이 꺼려합니다. 식민지를 강탈한 대한제국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개혁적인 군주 카를 1세는 이 상황에 대해 탄식할 뿐입니다. 늙은 황제는 이 종이로 된 집과 같은 제국을 자신의 후계자에게 어떻게 물려주어야 할 지 고심합니다.

법안

정치법
정당 종교의 권리 노동 조합 이민
다당제 자유 자유 노동조합 쿼터 이민제
노예제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투표권
금지됨 집회 통제 자유로운 언론 등재된 사람
군사 정책
군 복무 여성 감찰 훈련
2년 복무 비전투 병력 헌병 전투 교육
병역 면제 문민통제 군 전문성
신체적 면제 보통의 문민통제 귀족 장교단 보유
경제법
무역법 소득세법 최저 임금 법적 노동시간
식민지 무역 경제 보통 탈세 적당한 최저임금 8시간 노동
아동 노동 연금 실업 급여 대기업
금지됨 합당한 연금 합당한 실업 급여 불리한 대기업
사회법
산업 안전 의료 보험 공해 규제 교육
적당한 안정규정 기초 의료 지원 적당한 규제 의무적인 공교육
최고형 성소수자 젠더 권리 소수민족
사형제 불법화 성평등 박해 없음
치안 낙태 마약 인종
경찰 금지 담배만 허용 거의 없는 차별
사회 발전
학문적 기반 연구 시설 농사 방식 행정 효율
중등교육 수료 귀족적 연구소 대규모 기계화 귀족적 관료제
산업 기반 공업 장비 우주 탐사 원자력 발전
선진국 산업 기반 공업 단지 회의적 1세대 발전소

역사

현실로서의 분기점은 카를 6세가 딸 마리아 테레지아를 계승자로 선언하고 사망하자 각 가문의 여러 인물들이 계승권을 가지고 싸우기 시작하고,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슐레지엔 지방을 빼앗기 위해 선포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0년)으로부터 시작된다. 프리드리히 2세가 전쟁 도중 말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자, 프로이센의 지도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프로이센은 영국과 러시아,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강국들을 상당하기 버거웠고, 결국 몰비츠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이 오스트리아군에 의해 격파당하고, 이어 바이에른군마저 오스트리아군에 의해 뮌헨 전투에서 격파 당하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평화 협정을 맺었다. 프로이센은 독일에 대한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에 합스부르크 가의 공작을 보내고 프로이센을 공국으로 격하시켰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대한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후로 오스트리아는 중부 유럽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듯 하였으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가 오스트리아를 공격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대육군을 막을 군대는 유럽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강력했던 오스트리아 또한 패해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당하고 친나폴레옹 괴뢰국 라인 동맹을 결성하게 하는 굴욕을 겪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참패하고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대패하자 오스트리아는 라인 동맹을 해체 시키고 빈 조약에서 이 국가들을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합병 시키거나 독일 연방으로 편입시킨다. 이때, 하노버 공국 또한 영국과 동군연합에서 분리하여 독일 연방으로 합류했다.

독일 연방은 가톨릭 지역인 오스트리아, 바이에른, 바덴 등에서 거의 완전한 통합을 이루고, 개신교 지역에서도 합스부르크 제국에 동화될 수 있었다. 그러던 날,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가 합스부르크 가의 가문원으로 기울자, 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 나폴레옹 3세가 합스부르크의 스페인 계승자에게 압력을 넣어 이를 포기하게 했고, 이를 확실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전보를 보냈다. 그러나 당시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이 내용을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대사에게 호통을 치고, 쫒아낸 내용으로 고쳐 프랑스 언론으로 슬쩍 넘길 것을 지시했다. 프랑스 언론은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인들은 분노했다. 전보는 마침 프랑스 혁명 기념일에 언론에 보도되었기에 국민 여론은 급격히 전쟁으로 기울였다. 나폴레옹 3세 또한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원했기에 1871년 5월 10일,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하지만 급격히 전쟁 여론으로 기울였던 프랑스였던지라 전쟁 준비는 미흡했고, 사전에 이를 준비하던 오스트리아군은 독일 연방의 군대들과 훈련된 군대가 있었기에 거의 모든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할 수 있었고, 파리까지 진격해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대독일제국을 선포했고,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의 괴뢰 정부인 제3공화정이 수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