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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7월 8일 로즈웰 데일리 레코드 발행, "비행 접시"의 "포획" 발표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소련의 무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론에 밝히는 것을 꺼렸습니만, 잔해를 확인해보니 은박지와 종이, 테이프, 막대로 만들어진 미군의 관측용 기구였습니다. 잔해는 로즈웰 주둔 육군 항공대가 수거했으며 UFO나 외계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건 당시 미 육군 항공대 제스 마셀 소장의 인터뷰에서 발췌

개요

로즈웰 사건(Roswell Incident) 또는 로즈웰 UFO 추락 사건(Roswell UFO Crash)은 1947년 6월 14일,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Roswell)에 UFO와 외계인이 추락한 사건이다. 인류가 최초로 외계인의 존재를 확인한 역사적인 사건이자, 미국 정부가 우주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발생 직후 언론에 해당 내용이 보도되며 한때 세계를 뜨겁게 달궜으나, 정부의 대대적인 은폐 작업으로 얼마안가 묻혔다.

발생 당시

UFO가 추락한 장소는 로즈웰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농가였다. 최초 목격자인 농부 윌리엄 브레즐은 링컨 카운티 보안관인 조지 윌콕스에게 연락해 잔해의 수습을 요청했고, 평범한 비행체의 잔해가 아님을 알아챈 윌콕스는 이를 지역 언론사 로즈웰 데일리 레코드에 제보했다. 로즈웰 데일리 레코드가 사건 현장에 방문해 특종 기사를 발간하자, 로즈웰에 주둔한 미 육군 항공대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현장으로 출동했다.

마침내 7월 7일, 현장으로 출동한 제스 마셀 소장은 수거된 잔해와 함께 현장의 내용을 보고받는다. 그러나, 보고받은 잔해의 내용물은 다름 아닌 알 수 없는 금속으로 이뤄진 UFO의 선체와 외계인의 시체였다.

사건의 진실

 자세한 내용은 CIA 기밀 문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사건의 은폐

이후, 미국 정부는 사건을 종결시키기 위해 당시 사건 현장에 파견된 미 육군 항공대에 국한하여 입장을 표명하도록 했으며 제스 마셀의 인터뷰로 달아오른 분위기를 잠재우고자 했다. 최종적으로, 미군의 기상 관측 기구가 추락한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의혹

그러나, 사건 이후 미국 전역에 UFO와 외계인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정부의 총체적인 개입으로 축소, 은폐되면서 사건은 빠르게 잊혀졌지만 UFO와 외계인에 관한 목격담[1]은 날마다 증가했고, 음모론자들에 의해 로즈웰 사건 관련 다큐멘터리[2]가 제작될 정도로 당시 사회적으로 여파가 큰 이슈로 남았다.

미국 내부의 음모론 단체나 종교 협회에서도 사건이 다뤄졌는데, 이 사건에 대해 가장 큰 의문점을 품은 곳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미국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외계인과 연루되어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사건이 종결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첩보원을 파견해 사건을 조사했다. 그러나, 첩보원들은 그 어떤 증거도 찾지 못하고 귀국할 수 밖에 없었다.

  1. 관련자들의 증언이 거의 일치하지 않았다. 목격담 또한 환각 증세를 겪었거나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이후, 이러한 사회적 여파가 'UFO 신드롬'이라 불리며 여러 매체에 소개되었다.
  2. 《 UFO와 외계인의 비밀 》 밀러 잭슨(Miller Jackson),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