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나 제국 관련 문서
역사
일반 루이나 제국/역사 · 고대 루이나 · 고전 루이나 · 디모크라시아
지리
일반 루이나 제국/지명 · 루이나
지리적 구분 루이나 반도 · 북부 루이나 (드르드노, 냐이스) · 중부 루이나 (위에나, 베르토) · 남부 루이나 (루이나) · 이자마자 고원
군사
일반 황실근위대 · 루이나 제국군 · 루이나 제국 육군 · 루이나 제국 해군 · 루이나 제국 공군 · 제국방위군 · 민간방위군
본부 루이나 제국 전쟁부 · 루이나 제국 전쟁의회
정치
상징 루이나 황조 · 루이나 제국 황제 (오스딘 황궁) · 루이나 제국/작위
정부 조직 루이나 제국 의회 (루이나 제국 수상, 루이나 의회의장, 멜리니 궁전) · 루이나 제국 대법원 (대심판관, 대법관)
정당 제국전위당 · 제국보수당 · 입헌농민당 · 급진행동당
문화
기타 작명 전통

개요

루이나 제국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서

선사시대

제국의 수도인 루이나는 큰 강과 호수를 끼고 있어 농사에 유리해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농경사회를 구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륙이 새로축으로 되어 있어 작물의 전파가 어려운 세르네아의 특성 때문에 농경 사회들은 대부분 루이나의 근처에서 탄생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런 다양성은 고대 루이나의 성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대

다섯 왕국 시대

루이나의 농경사회들은 일찍이 교류하며 문자, 화폐등의 개념을 발전시켰고 이게 더욱 발전해 중앙집권적 사회를 건설하니 이것이 세계 3대 문명 중 하나인 고대 루이나의 탄생이였다.

고대 루이나는 처음에는 여러 부족사회들이 연합한 연맹왕국의 형태로 존재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중앙집권적 왕국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전전기 8000년경에 지도자를 선출하는게 아닌 세습하는 왕국의 형태로 정치체제가 변화하게 된다.

왕국의 통일

전전기 4124년 레나이스 왕국벨리움 대제5개의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던 고대 루이나를 통일하고 임롭찬슬러의 자리에 오르면서 우리가 아는 루이나 제국이 건국되었다.

벨리움 대제는 군사를 정비하고 그동안 왕국들을 괴롭히던 남방 유목민족들을 몰아내고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제국의 안정을 가져왔다. 또한 신분에 상광없이 인재를 등용하는 '미노아피스'를 실시하여 사회 제도들을 정비하였다.

구제국 시대

루이나-로크니아 전쟁

루이나 제국이 확장을 이어갈동안 북방에서는 파로시아 지역에서 건너온 파로시아계 민족들이 오루파 지역에 자리를 잡고 여러 국가들을 건국하였다. 그 중 주변 여러 국가들을 흡수하고 새력을 넓힌 로크니아 왕국이 남진하며 루이나 제국을 위협하였고 당시 북진 정책을 추진하던 루이나 제국과 로크니아 왕국은 군사적으로 정면 출동하게 된다.

점점 충돌이 격화되는 중 로크니아가 북쪽에서 대규모 공격을 시작하며 전쟁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루이나 제국이 로크니아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방어하는 듯 했지만 통일 전쟁 시대를 거치며 군사적으로 단련된 로크니아군을 이기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여 북방 영토와 로크니아의 제국 칭호까지 인정하는 굴욕적인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대공위시대

여기서 설상가상으로 알릭사 2세가 직계 후손없이 양자만 남긴 체 젊은 나이에 요절하면서 황제가 없는 이른바 대공위시대가 시작되었다. 문제를 해결해야할 과거 다섯 왕국의 대표자들이 모인 귀족 회의에서는 서로 자기 왕국의 사람이 왕이 되야한다면서 싸우기 바빳다. 황제의 유언장에는 양자인 크라스를 황제로 즉위시키라고 되있었지만 귀족 회의에서는 크라스의 출신을 거론하며 반대했다. 결국 타협점을 찾지 못한 귀족 회의는 각 왕국의 대표자가 돌아가면서 섭정을 지속하기로 합의했다.

신제국 시대

루이나 황조의 등장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섭정은 100년 가까이 지속되었고 돌아가면서 맡기로 한 섭정들은 자신들의 왕국에 유리한 정책만 펼치며 제국은 쇄락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젊은 장군 미로스 뉴샤이트는 판트리아의 왕족 출신이던 자신의 신분을 살려 섭정에 등극한다. 그는 섭정이 되자마자 자신이 레네이스 황조를 이을 루이나 제국의 새로운 황제라며 성을 자신을 '루이나 가문의 미로스 1세'로 칭한 뒤 귀족 의회를 해산시켰다. 당연히 이는 다른 네 왕국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였고 네 왕국이 연합해 수도인 루이나를 공격, 미로스 1세의 계획을 저지하려하지만 미로스 1세 본인이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고 섭정의 부패에 질려버린 제국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민병대를 조직해 싸우면서 귀족 의회의 반란은 끝이 났다.

반란을 정리한 직후 미로스 1세는 옛 벨리움 대제의 미노아피스를 부활시켜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만을 보고 인제를 등용했고 세금을 낮춰 국민들의 생활을 안정시켰다. 또한 반란 당시 귀족 의회의 편에 선 봉신들의 땅을 압수해 국민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민심과 왕권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고전기


전전기 2800년경 고전 루이나의 최대 강역

루이나 황조의 철권통치로 제국의 황권을 날이갈수록 강해져 스티브 2세 시대가 되며 황권이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이때부터를 고전 루이나 라고 부른다.

대확장 시대

고전기 초기 로크니아 제국이 무너지고 제국의 영토가 북쪽으로 확장됟 시기를 대확장 시대(그라브 크리시아 샤이지)라고 부른다. 이때 확장된 국경은 제3차 대전쟁 이전까지 3000여년간 제국 영토 형태의 기본이 되었다.

로크니아 제국의 붕괴와 기회

전전기 2911년 루이나 제국의 북방 확장을 막고 있던 로크니아 제국아이로스 왕국, 캄브리아 왕국, 솜 왕국, 메우세 왕국, 이프리아 왕국, 알비온 왕국, 모리야 왕국 7왕국으로 분열되며 루이나 제국의 오루파 대륙으로의 확장의 길이 열리자 스티브 2세는 북방 확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빠르게 루이나 해협을 넘어 스티브란트(현 스테파냐 지방)을 정복하였다. 이로써 루이나 제국은 오루파 대륙에서도 영항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황무지를 거닐다

그렇게 북쪽으로 확장을 거듭하며 성장하던 루이나 제국을 곤란하게한 존재들이 있었으니 바로 카흐트 평원 지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카흐트족이였다. 그들은 말을 타고 루이나 제국과 카흐트족의 국경선인 카보로 지방을 자주 약탈했고 처음에는 소극적이게 대처하던 루이나 제국도 이런 약탈이 지속되자. 국가의 자존심의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 스티브 2세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카흐트족과 마흐트족등의 동부의 유목 민족들을 제국에 복속시켰다.

스티브갈리아

스티브갈리아루이나어로 ‘스티브의 시대’라는 뜻으로 스티브 2세의 개혁안으로 제국의 황권이 전성기를 맞았던 시기를 의미한다.

제국의 심장

계속된 정복으로 황실의 직할지를 넓혀가던 스티브 2세는 점점 기존에 제국을 유지하던 봉건제에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다. 스티브 2세의 여러 개혁 정책에 봉건귀족들은 늘 대책없는 반대만 내놓았다. 상당히 다혈질이였던 스티브 2세는 이런 상황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고 스티브 2세가 뭔가를 발표한다면 그날 궁전 안은 결투장이 되었다. 이런 스티브 2세의 행보는 귀족들이 그를 '천하게 싸움만 잘하는 멍청한 황제'로 보이게 만들었고 귀족들은 그를 은연중에 무시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황권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한 스티브 2세는 귀족들중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렉시스 가문의 주요 구성원들을 반란죄로 전부 처형해 일시적으로 반대 의견을 잠재운 뒤 여러 개혁 정책을 내놓게 된다. 제국 전역에 도로를 정비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봉건 귀족의 역할 일부를 수핼함과 동시에 귀족의 대한 감시도 병행하는 '비서'를 지방에 파견하며 지방의 대한 황제의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또한 중앙군을 제외한 귀족들의 사병을 강제 해산시켜 쿠데타의 가능성도 지워버렸다. 처음엔 귀족들도 반대했으나 군사적 재능이 뛰어났던 스티브 2세를 상대로 반란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기에 개혁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됬다. 스티브피스로 불리는 이 개혁은 제국의 실세였던 귀족들의 힘을 이전과 비교도 안되게 약화시켜 중앙 귀족은 '황제 따까리', 봉건 귀족은 '지방에 돈 많은 사람' 정도로 만들어버렸다. 황제는 말 그대로 제국의 심장이 된 것이다.

마코스 해적의 침공

전전기 2700년경 현재의 아크라의 뿔 지역에서 온 마코스 해적아크라의 끝자락바코디아해를 넘어 제국에 본격적으로 상륙하기 시작한다. 마코스 해적은 루이나 제국군이 상대하던 기존 적들과 다르게 야밤에 해안가를 약탈하고 해가 뜨기 전에 빠르게 도주하는 식의 치고 빠지기 전술을 구사하였는데 말만 야밤이지 해적들이 침공하는 시간도 불규칙했고 이들의 규모는 당시 제국군의 가장 큰 편제였던 천인대(1000명)에 맞먹는 대규모 해적들이였던지라 소탕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제국 궁정도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진 않았지만 이들의 정찰대 중 일부가 소느르 강을 타고 제국의 수도인 루이나 바로 앞까지 오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화가난 황제 고든 2세는 대대적인 해군 증강과 해안 방어 강화를 명령하며 대규모 해적 소탕 작전을 지시한다. 이후에는 아예 이들의 본거지 소탕을 명령해서 이들의 본부가 있던 카토블라크[1]를 공격하여 마코스 해적을 완전히 와해시켜버렸다.

전근기

대전기

무전기

신대전기

현대

  1. 코르마 북부에 있는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