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누아르 알리에알랭 드루아오노레 팡틴기 몰리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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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Lyon Blues
리옹 블루스
멤버 장 누아르 알리에, 알랭 드루아, 오노레 팡틴, 기 몰리에르
입성 연도 2007년
후보자격 연도 2000년
후보선정 연도 2005년, 2007년
프랑스 제국 내 음반 판매량 순위
List of best-selling albums in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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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2위 3위 4위 5위
핑크 플로이드 리옹 블루스 마이클 잭슨 레드 제플린 AC/DC
The Dark Side of the Moon I Look the West Thriller Led Zeppelin IV Back in Black
13,000,000장 10,000,000장 9,500,000장 9,450,000장 9,100,1000장
6위 7위 8위 9위 10위
비 지스 & Varisous Artists 플리트우드 맥 비틀즈 이글스 에릭 클랩튼
Saturday Night Fever Rumours Abbey Road Hotel California Unplugged
8,700,000장 8,100,000장 7,200,000장 6,500,000장 6,300,000장
리옹 블루스
Lyon Blues
1987년 런던 로열 앨버트 홀 라이브 공연
국적 프랑스
결성 1973년 1월 13일
프랑스 일드 프랑스 파리
데뷔 1975년 5월 7일
정규 1집 "Rising Force"
해체 1987년 12월 10일
멤버 장 누아르 알리에 (보컬, 리듬 기타)
알랭 드루아 (보컬, 리드 기타)
오노레 팡틴 (베이스)
기 몰리에르 (드럼)
장르 초기 블루스 록, 하드 록
중기 프로그레시브 록, 프로그레시브 메탈
말기 헤비 메탈, 프로그레시브 메탈, 글램 메탈
레이블 EMI, 소니 프랑스
EMI, 팔로폰
콜럼비아, 워너브라더스, 소니
링크

개요

프랑스 출신의 4인조 록밴드이다.

상세

보통 록 아티스트들은 영국이나 미국 쪽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는데, 리옹 블루스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데에서 그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프랑스적인 음악 취향을 반영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음악 성향은 미국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평론가들이나 메탈 리스너들 사이에서 찬사를 받는 밴드이고, 반 헤일런이나 에어로스미스 등과 함께 글램 메탈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음악가중 한명이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해서 약 1억 2천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는데, 이는 역대 음악가 음반 판매 순위 48위에 해당한다. 이 수치는 에어로스미스에 이은 글램 메탈 역사상 2위이기도 하다.

블루스 록에 기반을 둔 메탈을 추구한다. 하지만 초기, 중기, 말기로 나뉘어져 거의 카멜레온과 같은 정체성 변화를 거친 밴드이기 때문에 딱히 밴드의 정체성을 말하기는 어렵다. 전반적으로는 말기에 주로 시도했던 팝 메탈이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팝 메탈, 글램 메탈 밴드로 분류되지만 사실 음악적으로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분야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물론 블루스 록을 추구했던 초기, 프로그레시브 록을 추구했던 중기, 팝 메탈을 추구했던 말기를 모두 좋아하는 팬들도 많다.

이런 정신 사나운 변화를 겪으면서 밴드는 전반적으로 클래식 작곡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를 밴드 내 음악에 차용하였는데 이 때문에 짧은 기간동안 비틀즈나 플리트우드 맥 뺨치는 음악 성향의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전반적으로 사운드는 모든 시기가 통일되어 나타나는 점도 특징이다. 실제로 밴드 멤버 4명중 2명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음대 출신이다.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에서 49위에 들었고, 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올타임 아티스트 53위, VH1 선정 100대 하드 록 아티스트 16위라는 높은 인기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나 프랑스 제국 내에서의 인기는 형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멤버

리옹 블루스의 구성 멤버
장 누아르 알리에 Jean Noir Allié
알랭 드루아 Allain Droit
생몰 1953년 11월 3일 - (67세) 생몰 1952년 12월 11일 - (68세)
출신지 프랑스 오베르뉴론알프 리옹 출신지 프랑스 오베르뉴론알프 리옹
활동 1973년 - 1987년 활동 1974년 - 1987년
포지션 리듬 기타, 보컬 포지션 리드 기타, 보컬
오노레 팡틴 Onorés Pantinne
기 몰리에르 Guy Morlière
생몰 1951년 5월 12일 - 1987년 9월 30일 (36세) 생몰 1953년 3월 2일 - (67세)
출신지 프랑스 일드 프랑스 파리 출신지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
활동 1974년 - 1987년 활동 1973년 - 1987년
포지션 베이스 포지션 드럼

[1] 밴드의 음악적 성향은 정말 정신 없을정도로 자주 바뀐 편인데, 정작 밴드 멤버들은 언더그라운드 밴드였을때나 해체 직전이었을때나 변함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초기에는 5인조 밴드였다. 크리스티안 퓌르츠라고 독일 멤버가 리듬 기타를 맡았는데 이후 학업 문제로 탈퇴하고 해체할때까지 쭉 4인조였다.

파리 제3대학교의 음악사학 및 클래식 작곡과를 다니던 학생 장 누아르 알리에기 몰리에르가 1973년에 만든 2인조 밴드가 시초다. 알리에는 당시 기타를 맡았고 몰리에르는 드럼을 맡았으며, 베이스와 보컬은 그때 그때 고용하는 식이었다가 1974년경 제대로 된 밴드를 만들자면서 오디션을 봐 베이시스트 오노레 팡틴을 뽑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리 제1대학교의 회계학과를 다니던 학생 알랭 드루아가 리드 기타리스트로 합류하고, 장 누아르 알리에가 리듬 기타 겸 보컬로 포지션을 옮기면서 해체될때까지의 포지션이 구성된다.

사실 리옹 블루스의 음악 성향이 정신 없이 변한건 멤버들의 음악 취향이 전부 다 달라서였기 때문인데, 각자가 파워 게임에서 우세를 점할때마다 밴드의 사운드가 달라졌다. 초반에는 장 누아르 알리에가 주도권을 잡았는데, 알리에는 블루스, 재즈, 클래식 등을 좋아해서 밴드 내 음악이 전반적으로 블루스에 가까웠다. 중반에는 클래식 덕후인 알랭 드루아가 주도권을 잡아서 프로그레시브한 요소들이 많이 차용되었으며 점차 네오 클래시컬 메탈로 나아가는 분위기였는데 중반에 음반을 대차게 말아먹고 오노레 팡틴이 주도권을 잡은 이후에는 팝 사운드가 밴드 음악의 주류를 차지한다.

멤버 전원이 레드 제플린과 비틀즈의 팬이었던데다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헤비 메탈, 록, 팝, 클래식, 재즈, 블루스 등이 골고루 수용된 다양한 사운드를 보여줬다. 전반적으로 밴드는 시대별로 주도적으로 제작한 음악은 있었지만 그 속에서 세부적으로 보면 상당히 다양한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멤버 전원의 음악적 공통점이었던 로큰롤/클래식 사운드를 기반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음악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지만 구조는 거의 비슷한 특징이 있다.

역사

결성

1971년, 장 누아르 알리에기 몰리에르는 갓 진학한 대학교였던 파리 제3대학교의 클래식 작곡학과 동문이었다. 두명은 입학한 이후 같은 음악 취향과 영화, 성격 등을 공유하며 친구가 되었다. 두명은 드뷔시와 비제의 노래를 즐겨 들었고 슈톡하우젠이나 쇤베르크, 존 케이지와 같은 음악가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다. 장 누아르 알리에는 클래식 기타를 다뤘었는데, 클래식 작곡학을 공부하면서도 존 콜트레인 같은 재즈나, 블루스, 또는 비틀즈의 음악을 즐겨들었다고 한다. 기 몰리에르는 알리에보다 더욱 과격한 음악들을 좋아해서 당시 인기있던 밴드인 더 후의 Who's Next와 레드 제플린의 Led Zeppelin IV, 롤링 스톤즈의 Sticky Fingers를 자주 들었다. 1972년 1월의 어느날 장 누아르 알리에는 기 몰리에르의 집에 놀러갔다가 레드 제플린을 소개받았고, 레드 제플린의 거의 모든 음악 특히 포크 송과 헤비 메탈, 클래식, 블루스적인 요소를 대거 투입해 만든 8분짜리 대곡 "Stairway to Heaven"에 심취해 기존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블루스 음악과 록 음악, 그리고 클래식 음악을 접목시켜 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이 곡은 난해하고 실험적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야유를, 교수에게는 D학점을 받았다. 교수는 원래 하던 클래식 음악을 하는 대신 괴상한 음악은 밴드를 차리던가 해서 취미로 하라고 조언했다. 이를 계기로 알리에와 몰리에르는 1973년 1월 2인조 록밴드를 만들었다.

이 2인조 록밴드에서 알리에는 기타를, 몰리에르는 드럼을 맡았다. 보컬은 알리에가 주로 불렀다. 베이스를 칠 줄 아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1973년 9월까지는 세션맨들을 불러서 공연을 하곤 했다. 또한 몰리에르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했기 때문에 블루스나 록 뿐만 아니라 클래식 공연에서 일원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고정된 멤버가 없이 계약직 세션 멤버들만이 밴드를 오고 가던중, 1973년 9월 베이시스트 크리스티안 퓌르츠가 참여했다. 퓌르츠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신이었는데 대학교 때문에 프랑스에서 살고 있었다. 이 3인조 체제가 1974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던 1974년 보컬과 기타를 동시에 하는게 힘들다면서 비틀즈처럼 리듬 기타리스트와 리드 기타리스트를 따로 두면 안되냐는 알리에의 말에 몰리에르는 평소 알고 지내던 파리 제1대학교의 회계학과 학생 알랭 드루아를 2번째 기타리스트로 불러들였다. 알리에는 원래는 자기가 리드 기타를 맡고 드루아를 리듬 기타리스트로 두려고 했는데, 드루아가 생각보다 기타를 너무 잘쳐서 그를 리드 기타리스트로 두고 자신은 리듬 기타리스트로 물러났다. 당시 드루아의 기타 연주를 본 알리에의 소감은 "키스 리처즈나 지미 페이지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보다 앞서 크리스티안 퓌르츠가 1974년 12월에는 가정 문제 때문에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돌아가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밴드는 어쩔 수 없이 새 베이시스트를 뽑았다. 12명정도를 오디션을 봤는데 그중 가장 괜찮았던 오노레 팡틴이 베이시스트로 뽑히게 된다. 오노레 팡틴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은 아니고 원래 블루스 음악을 좋아했던 학생이었는데, 밴드의 공연에 감명을 받아서 매번 공연마다 따라다녔고 심지어 퓌르츠가 원인을 알수 없는 이유로 실신하자 그를 대신해 2~3곡 정도의 베이스를 쳤을 정도로 밴드 멤버들과는 원래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디션을 통해 더 좋은 베이시스트가 있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멤버들은 만장 일치로 그가 밴드에 가장 잘 맞는 베이시스트라고 판단해 그를 밴드 멤버로 받아들였다. 이후 1974년 10월 퓌르츠가 밴드를 떠나면서, 밴드는 4인조 체제로 굳어지게 되었다.

초기

당시까지만 해도 밴드의 이름은 정말 다양했다. 원래 결성되었을때는 그냥 "밴드"라고 불렸다. 이후 드뷔시의 곡 이름에서 따온 "아라베스크" 리스트의 곡 이름에서 따온 "리베스트로임메" 등 너무 다양한 이름이 사용되어서 정신 없다고 판단한 오노레 팡틴이 밴드 이름을 좀 확실히 정하자고 밝혔다. 당시 알랭 드루아는 "디스트럭션"이라던가 "데스" 같은 과격한 이름을 하자고 주장했고 알랭 드루아는 블루스 밴드 플리트우드 맥의 이름을 따서 "클린 맥" 같은 이름을 하면 안되냐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오노레 팡틴의 제안이었던 "리옹 블루스"로 굳어졌는데, 멤버 4명이 모두 블루스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고, 모두 다 한번씩 리옹에 산적이 있기도 했고, 아예 2명은 리옹 출신이기까지 했으니 리옹 블루스라는 이름이 좋다는 것이었다. 이 이름은 만장일치로 밴드 이름으로 결정되었다.

음악적 특징

평가와 영향력

디스코그래피

빌보드 1위

빌보드 2위

여담

각주

  1. 밴드 멤버들 사진 출처
    • 장 누아르 알리에: Pink Floyd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 David Gilmour (Rolling Stone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14위)
    • 알랭 드루아: 스웨덴 출신의 기타리스트 Yngwie Malmsteen
    • 오노레 팡틴: Cream의 베이시스트 Jack Bruce (Rolling Stone 선정 50대 베이시스트 6위)
    • 기 몰리에르 : Cream의 드러머 Ginger Baker (Rolling Stone 선정 100대 드러머 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