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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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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미국 황제
리처드 2세 | Richard II
출생 1796년 1월 15일
버지니아주 포토맥 궁
대관식 1821년 1월 1일
버지니아주 포토맥 궁
사망 1867년 12월 25일 (향년 71세)
버지니아주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재위 얼링턴 대공
1811년 7월 19일 ~ 1820년 5월 12일
(8년 9월 3주 2일, 3,220일)
미국 황제
1820년 5월 12일 ~ 1867년 12월 25일
(47년 7월 1주 6일, 17,393일)
작위 얼링턴 대공 (1811~1820)
미국인의 왕 (1820~1865)
미국 황제 (1865~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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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하워드 케서이어 레서리언
(Richard Howard Cesare Letherian)[1]
가문 워싱턴(Washington)
부모 리처드 드루이언
색스코버그고타의 매리
황후 합스부르크의 알렉산드리나
자녀 슬하 4녀
신체 178cm, 70.3kg
종교 개신교

개요

미국의 제3대 황제. 그의 치세는 미국의 무한한 팽창과 강대국화로 요약할 수 있다. 잃어버린 시대(아메리카 원주민 추방), 미국-멕시코 전쟁, 제2차 미영전쟁이 모두 그의 치세 도중에 발발하였으며, 특히 제2차 미영전쟁 당시에는 멸망할 수도 있었던 미국을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이끌어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이 때문에 리처드 2세는 종종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황제로 뽑히기도 한다.

생전에는 왕작에서 그쳤으나 사후 황제로 모셔진 들과는 달리 황제 작위를 생전에 부여받은 미국 최초의 군주이다. 따라서 그는 아메리카 제국의 초대 황제이기도 하다.

생애

젊은 국왕

미국-멕시코 전쟁

제2차 미영전쟁: 국가를 구하다

평가

그의 재위 기간은 무려 47년에 달해, 역대 미국 황제중 가장 길었으며 이 때문에 그는 종종 19세기 중반을 의미하는 대명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보수적이고 팽창적이며 엄격했던 당대의 미국 분위기가 리처드 2세에 의해 대표된다는 것이다.

리처드 2세의 사후,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던 조지 2세가 집권하고 동시에 1866년 미국 총선을 통해 원내에 대거 입성한 자유당 급진파의 여러 혁명적인 정책 입안들을 바탕으로 미국은 급격하게 귀족적이고 보수적인 국가에서 현재와 같은 근대적이고 진보적인 국가로 거듭났다.

비판

최근의 사회주의자들은 그의 명령으로 인해 일어난 잃어버린 시대, 즉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대거 추방을 이유로 그를 제국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같은 이유로 그의 재위 초기 집권했던 총리인 앤드루 잭슨도 비판받는다.

또한 미국-멕시코 전쟁 역시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팽창 과정에서 일어난 전쟁이며 이로 인해 멕시코에 원래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 뿐만 아니라 스페인계 주민들과 메스티소들 역시 수없이 학살을 당했다. 이들은 본래 사용하던 스페인어의 사용을 금지당했으며 가톨릭교도 크게 탄압받게 된다. 이러한 멕시코 탄압 정책을 빌미로 하여 19세기 후반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아무튼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단지 정복 군주라고만 알려진 리처드 2세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멕시코계,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에게서 많이 미움을 받는다. 2010년대 이후의 Black Lives Matter 운동과 더불어 리처드 2세의 평가 역시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다.

가족 관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귀공녀를 신대륙까지 모셔와 어찌 어찌 결혼하기는 하였으나 정작 기대하는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고 대신 딸만 4명이 태어났다. 이 때문에 리처드 2세의 사후에는 그의 자녀가 아닌, 리처드 2세의 친척 동생인 조지 헨리 필립 윌리엄가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서 부인과의 관계도 소홀해졌는데 이 때문에 40세를 넘어가면서 그의 여자 관계는 문란함의 극치를 달렸다. 당대 귀족 계층에서 리처드 2세의 여성 관계는 모두가 아는 비밀이었으며 20세기 중후반 이후 황실의 비밀 문서 공개로 언론에 알려진 것보다도 리처드 2세의 사생활이 난잡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리처드 2세의 여성 관계는 현재까지도 호사가들의 관심사중 하나이다.

정실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통하여 사생아를 얻었다는 소문이 20세기 초반까지 여러 사람들의 입방아 사이에서 오르내렸으나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여담


  1. 한국에서는 리처드 레드리안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지만 레서리언이라는 발음이 더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