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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덴위붕 작전
제3차 세계 대전유럽 전구의 일부의 일부

독일 산악군으로 활약한 이탈리아 알피니-군
날짜1989년 1월 14일
장소스위스 전역
결과

독일군의 승리

교전국
우폴벤 독일 우폴벤 독일
이탈리아 이탈리아
스위스 스위스
지휘관
우폴벤 독일 파트리크 코흐
우폴벤 독일 울리히 슈뢰더
우폴벤 독일 프레다 쾨제
우폴벤 독일 위르겐 룀
우폴벤 독일 에르빈 베른하르트
우폴벤 독일 헬무트 폰 피팅호프
우폴벤 독일 클라우스 슈미트
이탈리아 로베르토 루크
스위스 프리드리히 데어만
스위스 루돌프 카우피스츠
스위스 장 미셸 클레르
군대

우폴벤 독일 독일군

이탈리아 이탈리아군

스위스 스위스군

병력

독일:
70개 사단
16,573개의 대포
11,875대의 전차
897기의 항공기
1,035,796명의 병사
이탈리아:
19개 사단
2,826대의 전차
425기의 항공기
287,122명의 병사


전체:
89개 사단
17,573개의 대포
14,701대의 전차
1,322기의 항공기
1,322,918명의 병사
스위스:
138개 사단
8,447개의 대포
2,781대의 전차
596기의 항공기
13척의 함정
1,983,749명의 병사
피해 규모
우폴벤 독일
64,500명 전사
125,648명 부상
964명 실종
이탈리아
52,321명 전사
82,728명 부상
1,253명 실종
전체 사상자:
327,414명 (24.749%)

스위스
290,533명 전사
495,105명 부상
331명 실종
597,780명 포로
전체 사상자:
785,969명 (39.620%)


민간인:
스위스
12,128명 사망
38,924명 부상
130명 행방불명
전체 사상자: 51,182명

보덴위붕 작전(독일어: Unternehmen Bodenübung) 또는 보덴 작전, 보덴 호 작전, 보데뉘붕 작전우폴벤 독일제3차 세계 대전 중, 중앙 유럽영세중립국 스위스를 침공한 작전이다. 암호명 "보덴위붕"은 독일어로 "보덴 호 훈련"을 뜻한다. 1989년 1월 14일 새벽, 독일은 스위스를 침략하였다. 우폴벤은 스위스의 철도와 도로의 사용을 요구하며 압박을 가해왔고, 스위스는 그럴 때마다 항상 단호히 거절해왔다. 스위스는 1월 1일부터 국경 지대에 지뢰를 매설했으며, 알프스 산맥쥐라 산맥을 통과하는 모든 터널과 선로, 아스팔트 도로 심지어 공항까지도 유사시 폭파할 수 있도록 폭약을 설치하고 독일이 침략한다면 스위스의 교통을 이용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1월 2일 스위스의 남성의 89%이상이 전선에 배치되고 1월 3일에는 전시동원령을 선언하고 여성의 60%이상이 공공기관과 공장에 동원되었다. 또한 거의 매일 방공훈련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일은 스위스가 독일과의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고 선동하였고 미리 그러한 야욕을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발발시켰다.

우폴벤 독일은 훈련(übung)이라는 명칭을 채택하였으며, 실제로 도이치 국방군 사령부(MKD)는 대거의 공수사단산악사단을 투입하여 앞으로의 공수 작전과 산악 작전에 대비할 수 있게 되길 원했다. 이들은 주로 험지에 투입되었으며, 평지에는 최근에 편성된 야전군들을 투입시켰다. 대신 충분한 장비가 지급되었고 독일 본토와 맞닿아 있고, 독일 산업의 중심지인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와 인접하여 보급의 이점을 타지역보다 잘 느낄 수 있게 했다.

각국의 군사력

우폴벤 독일

독일군(Deutschwehr)은 1988년 동안의 2개의 군집단 규모, 약 64만 명의 병사가 전사하였다. 그들의 대부분은 8할 이상은 네덜란드인, 벨기에인, 오스트리아인, 체코슬로바키아인, 덴마크인, 노르웨이인, 스웨덴인과 같은 타민족이었다. 그러는 동안, 독일에서는 정예군(일명 교도사단)의 교육 아래 수 십만의 유럽인이 교육을 받으며 계속해서 전선에 배치되었다. 아직 완전히 교육을 이수하지 못한 병사들은 후방군으로 남아서 배정된 지역에서 교육을 계속 받아야했다. 이러한 후방군은 크게 재편성 및 인원 보충을 위한 재편후방군과 아직 훈련을 이수하지 못한 재학후방군으로 나뉘며 재편후방군으로는 제10집단군, 제14군, 제16군제17군 2개의 군집단이 있다. 재학후방군에는 제38군, 제39군, 제46군, 제58군, 제59군, 제60군, 제61군, 제62군 총 8개의 야전군이 있다. 이외에도 독일군은 특수병종에 대한 전문 교육을 실시했다. 대표적으로 공수병종과 산악병종, 스키병종, 해안방어병종이 있다. 특히나 공수병종과 산악병종에서 1개 야전군 이상의 규모를 확보했으며, 해안방어병종은 일반병종과 함께 수 십개의 야전군으로 나뉘어 해안에 배치되었다.

1988년동안 독일의 산업 중추인 독일 공업 기술 연구기관(DITRI)는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덴마크, 스웨덴에 대규모 군수공장단지를 구축하고, 연말에 이르러서는 프랑스에서 농업력을 증강시키고 영국의 북부와 아일랜드 등지에서도 공업력 증진을 위한 계획이 실행에 옮겨졌다. 이와 함께 대규모 해안 방벽 계획 또한 이루어졌다. 가장 먼저 프랑스 서부 해안에서 진행되었고 사실, 요새는 해안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독일 본토와 점령지, 영도자령 지역의 경계에서도 구축되었다. 이외에도 해협과 주요한 해로에 기뢰가 부설되는 등 해안으로의 침입에 대항한 많은 계획이 진행되었다.

독일군의 지휘계통에서도 큰 개편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것은 육군으로 독일 육군 사령부(HQH)아래에 서방 원정군 사령부, 동방 원정군 사령부, 남방 원정군 사령부, 북유럽 원정군 사령부 등의 지역 사령부가 분화되어 새로이 생겨났다. 북유럽 원정군 사령부(KNE)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덴마크, 아이슬란드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고, 남방 원정군 사령부(KSE)은 발칸 반도동지중해 일대를 지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병력은 서방 원정군 사령부(KWE)와 동방 원정군(KOE) 사령부에 배치되는데 각각 서독부터의 서유럽, 영국과 동독부터의 동유럽의 군대를 휘하에 두고 있었다. 해군은 국내사령부으로 유럽의 10개의 항구도시에 지역사령부를 설치하였고 크게 각각 대서양, 남방, 북방, 흑해, 발트해, 북해로 나누었다.

독일군은 지휘계통뿐만 아니라 당연히 그 규모와 장비의 질의 면에서 크게 향상되었다. 1988년의 마지막 달 유럽 전역에 배치된 독일 육군은 135개의 야전군 즉, 1,485개의 사단 규모, 명 수로 따지자면 약 2200만의 명이었다. 해군은 총 9개의 함대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고속정 이상의 군함 170여 척이 활동하고 있었다. 공군1989년이 되기 전까지 1만 여대의 군용기를 배치했다. 장비 면에서도 푼크트리히터 전차라인메탈 88형 전차가 양산체제에 돌입했고, 구데리안 구축전차도 생산을 시작하였다. 소총에서도 기존 총기가 HK88로 교체되는 등 육군은 장비 면에서 매우 많은 진보를 1년 동안 진행했다. 반면 공군과 해군은 연구 활동에서 확고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스위스

스위스냉전 체제의 혼란 속에서 군사 개혁을 하여 일명 61 군사 체제를 구성하여 제1군단, 제2군단, 제4군단, 제3산악군단을 국경에 배치했는데 우폴벤 독일프랑스에 대한 침공을 개시하는 시점에서 88 군사 체제로 재편성하였다. 유사시 징병 대상을 크게 확장하였으며 그리하여 제1군, 제2군, 제4군, 제5군, 제3산악군으로 편성되었다. 총 77개의 사단으로 지역 전투시 만 15세 이상이 징병 대상이 되었고, 전면전 발생시에는 만 12세 이상의 남성은 무조건 전선에 나가야했다. 하지만, 급격한 군사 상황의 격변으로 인적 물자와는 반대로 장비와 같은 물적 자원이 크게 부족한 위기가 찾아왔다. 그들은 SIG SG550 돌격소총의 생산량을 두 배 어쩌면 세 배로 만들어야 했다. 또한, 스위스군에서 운영 중인 주력전차는 독일에서 1호 주력전차 2형으로 불리는 레오파르트 2호 전차가 가장 최신예였는데, 이들은 독일군의 최신예인 3호 주력전차보다 방호력과 화력이 약간 부족하였으며, 그 수 또한 적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레오파르트 2호 전차를 개량하여 한 달에 80대 정도를 생산했다. 그렇게 하여 1989년 1월 1일까지 총 450 여대를 생산하는데 그쳤다. 대신, 판저 68 전차를 양산에 쉽게 개조하여 같은 시일까지 천 여대를 생산하였고 미국에서 M1 에이브람스 전차 4백 여대를 구입하였다. 공군은 군사 개혁으로 구식이 된 F-5 대신, F/A-18를 50대 더 생산하는 등 장비 교체를 주로 장비를 확보하였다.

1988년 9월 이후로 프랑스가 완전히 점령당하면서 외부의 보급이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어버린 스위스의 군수 물자 생산량이 절반 이하으로 급락하였다. 특히나 석유를 해외에 어느정도 의존했던 스위스는 석유를 아끼기 위하여 여러 사회 캠페인과 당시 현존하는 국내의 석유의 국유화를 추진했고. 전쟁에 대비하여 효율적으로 분배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스위스의 군 규모는 어느 군대보다 (독일군보다는 아닐 수 있지만) 빠른 성장과 탈바꿈을 보여주었다. 총 군인 수는 140만 명에서 200만 명에 육박했고 2,700 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게 되었고, 590 여대의 공격기를 운영했다. 산악 지역은 부비트랩지뢰들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후방 진지선을 보호했다. 제네바보덴 호 연안의 평야에 주요 군대가 배치되었다.

개전 전 단계

스위스독일독일민주공화국침공할 때부터 큰 위기 의식을 느꼈다. 스위스의 대통령이었던 오토 스티치(Otto Stich)는 '준 분쟁 상황'을 선포하고 독일 또는, -길을 내어 달라는- 독일의 적대국와의 분쟁 및 전면전에 대한 대안을 생각했다. 우선 1988년 2월부터 성향은 급진적이었지만 냉철하고 침착한 판단력으로 유명했던 파비안 뷔어키전시수상(戰時首相)에 취임시켰다. 이 시기부터 스위스는 파비안 뷔어키와 새롭게 연방군참모총장에 오른 로만 크라이슬러에 의해 개혁이 진행되었다. 그들은 과격파 및 군부, 민간 군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전시 평의회(Concilia dum bellum, Concilia Bürki)를 구성하였고 징병 연령 및 예비역 연령 범위 조정을 시작하여 군수물자 생산량의 증진을 위한 대책을 세웠다. 이러한 계획은 조금의 검토를 거쳐서 조금은 급한 감이 있지만 9월, 프랑스가 점령당한 시기부터 시행되었다. 2월부터 8월까지 군사 개혁의 주체였던 스위스 정부와 평의회는 그 권한을 전시 평의회로 완전히 이전하였다.

이전의 스위스 군사계통인 88 군사 체제에서 뷔어키 체제로 전환하며 4개의 평야군과 2개의 산악군으로 나누고 23개의 사단이 하나의 야전군을 이루게하였다. 이렇게 총 138개의 사단을 운영하였고 이 가운데에서 12개의 기갑사단예비대로 구성하여 위기 대처 능력을 향상시켰다. 30여 개의 기계화 사단은 평야 지역과 중부 지역에 배치함으로써 교전국의 기갑 또는 기계화 부대의 기동력을 상대하게 하였다. 혼느강 일대와 알프스 산맥에는 지뢰와 트랩이 매설되었고 고지와 주요 길목에 크라이슬러 선이라고 명명된 진지선을 구축하였다. 또한 11월 11일에는 프랑스 쪽으로 돌출된 제네바와 독일 쪽으로 뛰어나온 샤프하우젠의 주민과 군수 시설을 스위스 중부로 이동시켰다. 11월 말에 이르러서는 제네바와 샤프하우젠은 최전선에 위치한 거대한 요새이자, 군사 도시로 변모해 있었다. 1988년 12월 2일부터는 포렌트루이바젤 또한 군사 구역으로 전환하고 요새화를 시작했으며, 라인 강 일대에 진지선이 구축되었다.

독일의 압박이 점차 사라지던 1988년 12월 20일부터 파비안 뷔어키 전시수상은 리마트 강아레 강최후의 방어선(Limbus Regio, 림부스 레지오)으로 지정하였으며 전면전이 시작될 시에 이 곳의 방공망으로 민간인을 모두 대피시키고 만약 이 방어선이 무너진다면 국민 투표를 통해 항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전쟁 전략으로 내세웠다. 또한, 이 상황을 폭풍전야 또는 -전쟁의- 마지막 단계(Styx gradus, 스틱스 그라두스)라고 표현하며 독일의 침공이 임박했음을 눈치챘다. 12월 30일에는 이를 뒷받침하듯이 스위스 연방 정보국(NDB)은 도이치 정보군(NGH)의 활동 빈도 증가를 확인했고 슈투트가르트리옹, 밀란 사이의 이동하는 정보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독일은 파트리크 코흐 상급대장의 주도로 스위스 침공 계획을 진행하였다. 보덴위붕이라는 이름으로 1988년 9월 16일, 울리히 슈뢰더독일 지역 전략 전술 부서(RST)의 검토를 거쳐 작전안이 확정되었다. 이를 토대로 영국 본토전이 완료된 후 12월에 접어들어서 서서히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가장 먼저 제3항공군을 스위스 인근 지역으로 이전하였는데 슈투트가르트리옹의 시가지가 여전히 복구 중이었기에 원래 슈투트가르트와 리옹에 배치될 항공기의 대다수가 뮌헨룩셈부르크에 주기하게 되었고 제3항공군의 4할에 달하는 군용기는 이탈리아 공군과 함께 밀라노, 토리노에 배치되었다. 육군은 스위스를 완전히 포위하듯 배치되었는데 벨포르에 제58군, 롱르소니에에 제59군, 샹베리에 제62군, 빌링엔-슈베닝엔에 제60군, 도른비른에 제61군, 밀라노에 제103산악군, 아오스타에 이탈리아 제3군, 베르가모에 이탈리아 제14산악군단의 사령부가 각각 위치하였다. 공군은 클라우스 슈미트의 지휘 아래에서 육군은 울리히 슈뢰더의 지휘 아래에서 그리고 이러한 모든 군은 파트리크 코흐의 명령 아래에 존재했다. 특히나, 헬무트 폰 피팅호프에른스트 폰 하이덴베르크을 설득하여 자신이 훈련시킨 공수군을 지휘했다.

보덴위붕 작전의 군대들 (표시한 위치는 각 군의 지휘부이다)

전투서열

진행 과정

우폴벤 독일의 계획

독일은 침공 계획을 준비하며, 스위스의 교통 기반 시설의 보존을 우선 목표로 공수 부대의 역할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것이었다. 공수 부대와 산악 부대, 특수 부대는 스위스의 주요한 교통 요충지에 잡입하거나 투입되어 거점에서 본군과 합류할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그러기 전에 스위스 전역을 상대로 전자전을 수행하여 스위스 군대의 전자 장비를 무력화하여 눈과 귀를 막아야했다. 또한 공수와 잡입 이후에는 지속적인 보급을 위해 제공권 장악 또한 필수였다. 일단 그들이 전자전과 항공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공수부대와 침투부대가 주요 거점의 대부분을 정확히 장악하면 -그렇지 않아도 할 예정인- 주력인 육군을 투입할 계획이었고 이것은 전방향에서 이루어질 것이었다. 제59군제네바를 타개하고 서쪽에서 공세를 지속하고 제62군은 제네바 점령을 보조하며 몽트뢰로잔을 타개하여 제네바의 후위를 공격할 예정이었다. 제58군포렌트루이를 스위스 본토와 단절시키고 뇌샤텔비엔을 타개하여 사실상 수도베른을 압박할 것이었다. 제60군바젤을 타개하고 라인강 인근 지역을 점령하여 교두보를 마련하고 아라우바덴을 제압하고 깊숙이 진격하여 대도시취리히를 압박한다. 동시에 샤프하우젠을 점령하여 보급선을 단축시킨다. 제61군리히텐슈타인를 짓밟고 서쪽으로 진격하면서 이탈리아로 향하는 도로를 차례로 지나 루가노에 도착할 것이다. 독일군이 북쪽, 동쪽과 서쪽을 압박 진군하는 사이 이탈리아 군은 산악 전문 부대를 앞세워 시옹과 루가노를 점령하고 론 강의 스위스 방어선을 돌파하며 제3군은 특히 추크, 루체른을 점령하여 베른과 취리히의 연결을 단절하고 스위스 전역의 주요 길목을 장악한다. 규모가 큰 도시나 교통의 요충지를 포위 또는 점령함으로써 스위스의 도로망을 최대한 보존하며 스위스 군을 도시에 고립시킴으로써 스위스 군의 합류를 억제한다. 이후 장악한 제공권을 이용하여 시가전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출혈 속에서 스위스의 항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독일의 공중 및 산악 침투

독일의 평야 진격

북부 고원 전투

스위스의 결사항전

전쟁의 종지부

그 후

여담

더 보기

참조

출처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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