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후소 제국/지방과 행정구역

홋카이 지방

홋카이 지방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개척과 지배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19세기 중후반까지 에조치(蝦夷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후소 열도의 일부로 취급받지 못했다. 이러한 인식은 20세기 중후반까지 이어져, 현재도 홋카이 지방의 일부 노인층 사이에서는 홋카이 지방을 외지(外地)라고 부르는 언어 습관이 남아있기도 하다.

1875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을 통해 후소 제국은 사할린을 러시아 제국과의 공동 거주지로 인정받는 한편 치시마 열도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았고, 1905년의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서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획득했다. 이 시기에는 치시마 열도와 남부 사할린이 모두 카라후토청(樺太庁)에 속해 있었다.

후소 제국은 1949년에 시무슈 조약을 통해 사할린 남부에 대한 영유권을 완전히 포기했다. 왜냐하면 미국과의 제 1차 괌 조약에 따른 식민지 및 점령지 포기와 그에 동반된 경제난이 후소 제국을 덮쳤기 때문이다. 후소 제국은 남부 사할린을 포기하는 대가로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원유와 비철금속을 포함한 여러가지 자원을 제공받게 되었다. 시무슈 조약에 대한 후속 조치로, 카라후토청이 폐지되었다. 이후 카라후토청의 치시마 지청이 관할하던 영역이 키타치시마 군과 미나미치시마 군으로 재편되었으며, 남쪽으로는 하보마이 군도와 쿠나시리 섬부터 북쪽으로는 시무슈 섬에 이르기 까지 치시마 열도에 해당하는 지역이 치시마 현이 되었다.

한편 홋카이도 지역을 대상으로는 후소 정부에 의한 적극적인 개척과 이주 정책이 진행되었다. 1950년대 까지는 홋카이도 및 치시마 열도 거주민에 대한 병역이 면제되었으며, 개간지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인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낮은 생산성과 부족한 기반 시설로 인해 대다수 홋카이도 거주민의 생활은 윤택하지 못했으며, 인구 증가도 빠르지 않았다.

현재는 후소 8대 도시 중 하나인 삿포로 시가 2017년 기준으로 인구 약 200만 명을 가진 대도시로 성장하는 등 개발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적극적인 개발과 도시화는 일부 지역에 한정된 것이며, 대부분의 지역은 여전히 저개발 상태이며 사회 기반 시설이 부족하다.

1970년대 후반까지는 광업이 주된 사업이었으나, 채산성이 격감하면서 홋카이도 내륙의 주요 광산 도시들은 극심한 재정난과 인구 감소를 겪게 된다. 현재의 주요 산업은 관광업과 서비스업, 농업 등이며, 하코다테와 삿포로 등이 관광지로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1. 치시마 현
  • 2. 홋카이도

도호쿠 지방 

도호쿠 지방은 10세기에 이르러서야 야마토 민족에 의해 지배되기 시작했으며, 이전에는 에미시 혹은 에조로 불리는 아이누 민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고대에는 진수부(鎮守府)를 설치하여 이들과의 싸움에 대비했으며, 이곳을 지휘하는 직책으로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이 있었다.

10세기에 이르면 도호쿠 지역의 아이누 민족이 모두 야마토 민족에 소멸되거나 동화된다. 이후에도 700년 정도가 지날 때까지, 도호쿠 지방의 최북단인 츠가루 지역은 후소 열도의 북단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홋카이도 지방의 아이누 민족과의 거래를 위한 전초기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도호쿠 지방 북부와 서부는 산간 지형 등으로 인한 교통의 불편때문에 발전이 늦어졌는데, 아키타 신칸센과 야마가타 신칸센이 개통되며 이들 지역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관광업, 공업인데, 대체로 인구 밀도가 낮은데 반해 공장을 설립하기에 적합한 넓은 평지가 많아 대기업의 대규모 생산 공장이 다수 들어서 있다. 이외에도 후쿠시마의 복숭아를 비롯해 후소 전역에 높은 인지도를 가진 농산물이 생산되기도 한다. 또한 아키타 현이나 아오모리 현은 후소 내에서도 온천이나 산행 등을 위한 관광 수요가 높아 관광업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

2011년에는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으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간 나오토 태정대신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발생과 미흡한 초동 대처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질되기도 했다.

  • 3. 아오모리현 
  • 4. 이와테현 
  • 5. 미야기현 
  • 6. 아키타현
  • 7. 야마가타현 
  • 8. 후쿠시마현

간토 지방 

간토 지방은 도쿄도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일일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간토 지방의 인구는 4천 3백만 명에 달한다. 간토 지방의 개념의 형성된 것은 7세기의 임신의 난 이후로, 이 때 수도인 아스카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관문의 동쪽에 위치한 지방이라는 점에서 간토(関東)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현재는 간토 지방이라는 개념이 수도권과 거의 동일한 개념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동일하지 않다.

간토 평야는 일본 최대의 평야지대로, 비옥하며 농업 생산력 역시 높아 인구 부양 능력이 높다. 그러나 간토 지방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에도 시대의 일로, 이전에는 조정의 행정력이 미치기 힘든 거리에서 귀족 세력이 세를 얻는 땅에 그치고는 했다. 그러나 에도 시대 이후에 천도를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개척이 시작되었고, 19세기 말부터는 철도와 도로의 확장에 힘입어 도쿄 23구 뿐만 아니라 교외 지역에 대한 개발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때문에 간토 평야의 상당 부분이 대규모 택지 개발의 대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농업 생산력은 높은 편이다.

도쿄도는 에도 시대 이후로 후소 제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 중심지이며, 인구가 2천만에 달하는 세계적인 거대 도시이다. 특히 도쿄만에 접하는 도쿄 23구 지역은 인구 밀도가 극도로 높으며, 황거를 비롯한 국가의 중심 시설과 첨단 산업, 서비스업이 집약적으고 발달한 곳이다.

그러나 토치기, 군마, 이바라키 등의 북부는 도쿄도, 사이타마, 치바, 카나가와 등의 남부보다 비교적 덜 개발되었으며, 산업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특히 토치기와 군마는 높은 산지 비율로 인해 그 넓이에 비해 인구가 적다.

토치기 현의 현청 소재지인 우츠노미야 시 외곽에는 정치범 수용소인 우츠노미야 형무소가 있다. 이곳에는 2천여 명에 달하는 정치범이 수용되어 있으며, 후소 제국의 인권 탄압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에서 주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카나가와 현의 요코스카 시는 19세기 중후반 이후로 후소 제국 최대의 군항인 요코스카 항이 위치해 있기도 하다.

  • 9. 이바라키현 
  • 10. 토치기현 
  • 11. 군마현 
  • 12. 사이타마현 
  • 13. 치바현 
  • 14. 도쿄도 
  • 15. 카나가와현

주부 지방 

주부(中部) 지방은 후소 열도의 중부에 있다고 하여 이러한 명칭을 가지게 되었으며, 니가타, 나가노, 야마나시 지방은 간토 지방의 영향력이 강하여 고신에츠(甲信越) 지방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한 주부 지방 중 소태평양에 접한 지역은 호쿠리쿠(北陸) 지방이라고 하기도 하며, 아이치 현을 비롯해 태평양에 접한 지역은 도카이(東海) 지방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며, 유동적인 것이기도 하다. 한 조사에 의하면, 주부 지방을 구분하는 기준은 최대 25가지에 이른다.

소태평양에 접한 지역은 후소에서 손꼽히는 다설지 중 하나이지만, 태평양에 접한 지역은 조선 반도와 유사한 온난한 몬순 기후를 가졌다. 중앙의 고산 지대는 후소 알프스의 일부로, 연교차와 일교차가 심한 산간 기후를 가지고 있다. 후소에서 가장 높은 산인 후지산이 야마나시 현에 속한다.

주부 지방의 인구는 2300만 여명으로, 1, 2, 3차 산업이 고루 균형 잡힌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혼슈의 중앙에 위치한 탓에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한데, 도카이 지방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국도 중 하나인 도카이도(東海道)가 있으며, 현재는 도카이도를 따라 철도와 신칸센, 고속도로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아이치 현의 나고야 시는 후소 8대 도시 중 하나로, 나고야 제국 대학의 소재지이기도 하며 자동차 산업과 정보 기술 산업이 발달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 16. 니가타현 
  • 17. 토야마현 
  • 18. 이시카와현 
  • 19. 후쿠이현 
  • 20. 야마나시현 
  • 21. 나가노현 
  • 22. 기후현 
  • 23. 시즈오카현 
  • 24. 아이치현

긴키 지방 

긴키(近畿) 지방은 간토 지방에 견줄만한 후소의 핵심 지역 중 하나이며, 후소 열도에 고대적 중앙 정부가 성립되었다고 여겨지는 5세기 이래로 에도 시대 중반까지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긴키 이외에도 기나이(畿内), 간사이(関西)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긴키 지방은 폭이 좁은 평야가 산지 사이로 펼쳐진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평야가 으로 산재한 대도시들을 연결한다. 철도 교통으로는 도카이도 신칸센, 산요 신칸센 등이 있으며, 오사카의 간사이 국제공항은 후소 최대의 공항들 중 하나이다. 또한 고베 항은 후소의 주요한 무역항 중 하나이며, 교토부에 속한 소태평양 연안의 도시인 마이즈루에는 후소 해군의 거점 중 하나인 마이즈루 군항이 위치하고 있다.

오사카부, 효고현, 교토부에는 제조업이 발달했다. 뿐만 아니라, 긴키 지역에는 전통 문화의 흔적이 많고 문화적으로 융성한 덕분에 국내외로부터의 관광 수요가 많기도 하다. 특히 교토부의 교토 시에는 기요미즈데라와 킨카쿠지 등의 중근세 유적이 있다. 또한 차 문화가 발달하여 교토부의 우지 시는 질이 높은 차로 유명하다.

  • 25. 미에현 
  • 26. 시가현 
  • 27. 교토부 
  • 28. 오사카부 
  • 29. 효고현 
  • 30. 나라현 
  • 31. 와카야마현

주고쿠 지방 

주고쿠(中国) 지방은 혼슈 섬의 가장 남서쪽에 위치한 지방으로, 서쪽으로는 규슈 지방과 간몬 해협을, 남쪽으로는 시코쿠 지방과 세토내해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있다. 주고쿠라는 명칭은 고대 율령제에서 유래한 것으로, 교토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다시 말해 중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지방이라 하여 붙은 것이다. 최대의 도시는 히로시마 현의 현청 소재지인 히로시마 시이며, 최고봉은 돗토리현의 오오야마(大山)이다. 주고쿠 지방 전체의 인구는 약 770만 명이다.

주고쿠 지방을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소태평양에 인접한 산인(山陰) 지방과 세토내해에 인접한 산요(山陽) 지방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산인 지방의 경우 일반적으로 돗토리현과 시마네현, 그리고 야마구치현의 일부를 가리키며, 산요 지방의 경우 오카야마현과 히로시마현, 야마구치현, 그리고 때로는 효고현의 일부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산인 지방은 소태평양의 영향을 받아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기후인 반면, 산요 지방은 세토내해의 영향을 받아 연간 강수량이 적다.

산요 지방의 경우 히로시마나 오카야마와 같은 큰 도시가 많고 신칸센이 통과하는 반면, 산인 지방의 경우에는 인구 정체와 교통 불편이 심각하고 낙후된 편이다. 이러한 두 지방 간의 지역 격차가 문제가 되고 있다. 히로시마현의 구레시에는 후소 제국 해군의 주요 거점인 구레 군항이 위치해 있으며, 히로시마시 역시 군수 산업이 발달한 편이다. 그 외에도 농업이 발달했으며, 세토내해와 접한 지역에는 해안을 따라서 공업 지대가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 32. 돗토리현 
  • 33. 시마네현 
  • 34. 오카야마현 
  • 35. 히로시마현 
  • 36. 야마구치현

시코쿠

시코쿠(四国) 지방이란 곧 시코쿠 섬과 그에 속한 부속 도서를 가리키는 말이며, 고대 후소의 행정 체계에서 네 개의 국(国)이 있었다고 해서 이와 같은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시코쿠 지방에는 다른 지방과 다르게 유명한 큰 도시가 없고, 중앙에 시코쿠 산지와 사누키 산맥 등이 솟아있어 통합된 발전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속도로의 건설을 추진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관광 산업 발전과 투자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북부 지방의 기후는 세토내해의 영향을 받아 온난하고 태풍의 피해가 적고, 남부 지방의 기후는 태평양의 영향을 받아 강수량이 많고 홍수와 태풍의 피해 역시 잦다. 이렇게 전반적으로는 온난하고 습윤한 기후이지만, 산지가 많은 관계로 시코쿠 지방 내에서도 기후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체 인구는 약 380만 명 정도인데, 가장 큰 도시이자 에히메현의 현청 소재지인 마츠야마(松山)시의 인구가 약 52만 명이다. 또한 세토 대교, 아카시 해협 대교 등의 육상 연결로나 해상 연결로를 통해서 주변 지방들과의 경제 교류가 활발한 편이며, 이 때문에 혼슈의 지역들과 일일 생활권으로 묶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 37. 토쿠시마현 
  • 38. 카가와현 
  • 39. 에히메현 
  • 40. 고치현

규슈 

규슈(九州) 지방은 고대 후소의 행정구역 단위에서 9개의 국(国)이 있었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전체 인구는 2017년 기준으로 약 1340만 명에 달한다. 후소 열도에서 중국 대륙이나 조선 반도와 가장 가까운 지방인 덕분에 예로부터 문물의 전달과 교류가 가장 활발한 지역이었다. 특히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에서는 유럽이나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고, 나가사키현의 사세보시에는 후소 해군의 주요 거점 중 하나인 사세보 군항이 위치해 있다. 가장 큰 도시는 후쿠오카현의 현청 소재지인 후쿠오카시로, 인구는 2017년 기준으로 1,620,819 명이다.

규슈 섬의 중앙에는 규슈 산지가 자리잡고 있는데, 아소 산은 세계 최대 규모의 칼데라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도 화산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활화산이다. 또한 후소 열도에서도 남쪽에 속하기 때문에 기후가 온난한 편이지만, 규슈 산지의 고지대는 연간 평균 기온이 몹시 낮고 강설량도 많은 편이다. 오키나와현은 규슈 제도와 지리, 기후, 문화 면에서 모두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규슈 지방에 포함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지만, 많은 행정 기관 등에서는 편의상 오키나와현을 규슈 지방에 포함시키고 있다.

북부 규슈 지방에는 대규모 공업 지대가 자리잡고 있으며, 철강, 석탄, 화학, 반도체 공업 등이 모두 번성했다. 또한 센다이, 나고야와 더불어 주요한 자동차 공업 지대로도 꼽힌다. 후쿠오카시를 중심으로 하여 IT 산업과 금융 서비스업이 발달하기도 했다.

  • 41. 후쿠오카현
  • 42. 사가현 
  • 43. 나가사키현 
  • 44. 쿠마모토현 
  • 45. 오이타현 
  • 46. 미야자키현 
  • 47. 가고시마현 
  • 48. 오키나와현

타이완

타이완은 19세기 후반까지 청에 속해 있었으며, 1895년에 부청전쟁의 결과로 조인된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후소에 할양되었다. 이후 후소 제국은 타이완 지역에 타이완 총독부를 세워 식민지로 지배했다. 1949년의 제 1차 괌 조약에서는 포기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이후 1958년에 후소의 일부로 완전히 편입됨으로서 타이완 총독부가 폐지되고 1개의 부와 6개의 현이 들어섰다.

1950년대까지는 억압적인 융화 정책으로 인해 독립 운동을 주장하는 세력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타이완 독립 민주시민회'를 조직하고 반 후소 투쟁을 전개했다. 타이완 독립 민주시민회는 세력을 확대하여 1956년 8월에 타이호쿠 항쟁을 일으켰다. 타이호쿠 항쟁에는 30만여 명에 달하는 시민이 참가했다. 하지만 후소 제국은 군사를 동원하여 이를 유혈 진압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타이완의 독립 운동 세력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현재는 후소풍의 문화와 중국풍의 문화가 어우러져 발달한 독특한 문화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이 때문에 관광지로서 인기가 높다. 또한 타이호쿠 부는 후소 정부의 집중적인 투자 덕분에 금융업이 발달하고 고도의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타이완 섬은 중국에 대항하는 군사적 거점으로서의 가치도 높은 편으로, 후소 해군의 주요 군항 중 하나인 키류(基隆) 군항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타이완 지역은 오키나와 현을 포함한 후소 본토와 다르게 UTC+8의 시간대를 사용하며, 이를 후소 제국 내에서는 서부 표준시라고 부른다.

  • 49. 타이호쿠 부
  • 50. 묘리현
  • 51. 타이토현
  • 52. 헤토현
  • 53. 보코현
  • 54. 운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