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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립군 해군 원수
신순성
愼順晟
출생 1850년(철종 2) 1월 27일
조선 한성부 돈의문방 반송동
(現 대한조선국 서울특별시 돈의문구 홍제동)
사망 1944년(태화 18) 2월 7일 (향년 93세)
대한조선국 서울직할시 돈의문구 홍제동
본관 거창 신씨
복무 대한제국 황립해군
대한조선국 왕립해군(명예전역)
복무 기간 1887년 ~ 1929년
최종 계급 원수
근무 HKMS 광제(1890 ~ 1895)
HKMS 양무(1895 ~ 1902)
HKMS 충무(1914 ~ 1916)
HKMS 세종(1916)
주요 참전 한청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서훈 내역 대훈위 이화대수장
태극장 (훈1등급)
무공십자장 (독일)
작위 거창부원군 정1품 백작


개요

대한제국 황립해군의 해군 제독. 1902년(광무 38)부터 1916년(광무 52)까지 고종의 해군 대신도 겸했으며, 고종의 정책과 함께 대한제국 해군이 대양 해군이 될 수 있었던 기틀을 제공한 인물이다. 한청전쟁장산도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동중국해 해전에서 일본 제국 해군을 상대로 참패했다.

생애

1850년(철종 2) 1월 27일 한성부 돈의문방(現 서울특별시 돈의문구)에서 가난한 선비였던 신제원(愼濟遠, 1819. 6. 3 ~ 1889. 5. 15)과 어머니 함안 조씨 사이의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아버지의 영향으로 꾸준히 유학을 공부했으나, 당시 포함외교를 통해 급변하는 세계 정세를 목도하고 1886년(광무 22), 나이 서른다섯에 해군무학과[1]를 수료하며 군인이 되었다.


동중국해 해전 패전의 책임으로 고종 태황제에게 한직으로 좌천당했으나 조선국 해군이 창설되고 명예 전역했다. 이후 고향인 홍제동에서 작은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며 여생을 보내다, 한일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태화 18) 자택에서 편히 숨을 거둔다.

여담

신순성의 차남 신태범 씨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1936년(태화 10) 왕립해군 부사관에 입대, 한일전쟁에 참전했다. 종전 후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건 매우 아쉽다. 하지만 아버지도 나도 군인으로써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후회는 없다. 아버지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다.
2021년(소흥 16), 신순성 제독의 증손인 신가현 씨가 HKMS 광효대왕의 진수식에 참여했다. 관련 기사

  1. 당시 조선의 근대적 해군사관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