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급 전함 (푸른 오얏꽃2)


제1차 세계 대전의 대한제국 황립해군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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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MS 충무
1914년 모습
함명 유래 고대 중국과 조선에서 무인으로 큰 공을 세운 이들이 받은 시호 '충무(忠武)'
함종 전함(드레드노트급)
이전 함급 전주급 전함
다음 함급 세종급 전함
자매함 2번함 HKMS 문성
제작 대한제국 원수부 산하 병기기술제작부, 울산 해군 공창, 현대중공
운용 대한제국 황립해군
발주 1909년 4월 6일
기공 1911년 1월 12일
진수 1913년 8월 22일
취역 1914년 2월 14일
실전배치 1914년 6월 8일
침몰 1916년 5월 27일
가격 2천만 원(당시 가격)
함장 유항렬
제원
함급 충무급
배수량 25,486톤(기준)
28,000톤(만재)
전장 196.3m
선폭 24m
흘수 8.1m
터빈 3축 2식 터빈 3기
출력 26,000 마력
속력 23노트
항속거리 6,700해리
승조원 1,329명
무장 320mm 44식 40구경장 2연장 주포탑 5기 (총 10문)
150mm 42식 단장 부포곽 12기 (총 12문)
90mm 40식 단장 부포곽 8기 (총 8문)
장갑 측면장갑: 100mm ~ 300mm
주포탑: 120mm ~ 320mm
사령탑: 350mm
갑판장갑: 50mm ~ 70mm


개요

"충무와 문성은 대한의 자랑"

전주급 도급 전함[1]에 이어 두 번째로 건조된 대한제국의 도급 전함이다.

개발

한일 해군력 경쟁의 일환으로, 일본 제국카와치급 전함에 대응하기 위해 건조되었다.
기존 일본 제국 해군으로부터 우위를 점하기 위해 30cm 이상의 주포와 300mm 이상의 장갑을 두르는 것이 개발 조건이었다.

특징

선체 후방에 주함포를 계단식으로 3기 적층했다.
조선 화포 기술의 정수가 담긴 대한제국 자체제작의 44식 32cm 주포가 탑재되었다. 이후부터 조선 함선에는 자체제작 함포가 탑재된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의 활동​

영국의 후드처럼 대한제국 해군의 플래그쉽을 맡으며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진해항에서 일본 해군을 견제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최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충무는 HKMS 전주와 함께 여순으로 가, 권중현 장군이 지휘하는 여순 상륙에서 포격 지원을 담당했다. 1916년 한일 함대결전이라고도 불리는 동중국해 해전에서 초도급 전함 세종, 순양전함 안동과 함께 연합함대 선발대를 격파한 충무는, 연합함대가 별동대를 출격시켰다는 타전을 받는다. 이에 문성과 순양함 5척, 어뢰정 2척과 함께 본대에서 떨어져나가지만 돌출되었고, 일본의 신형 전함 이세와 후소에게 격침당했다.

여담

대한제국 해군의 짬밥에서 유래한 조선의 국민 음식 충무김밥의 '충무'가 충무급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매체에서의 등장

월드 오브 워쉽 한국 4티어 전함으로 등장한다. 2번함 문성은 동티어 프리미엄 군함으로 등장한다. 네이비필드에서 한국 트리의 1차 전함으로 등장한다.

  1. 드레드노트급을 음차한 표현이다. 아시아에서 드레드노트를 운영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 일본은 '노급 전함'으로 음차했고, 한국은 '도급 전함'으로 음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