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승천

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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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만왕
폐왕 | 廢王
본명 아이신가쿠라 스즈메 (愛新覺羅 (あいしんかくら) (すずめ))
출생 1957년 12월 5일
대동아제국 만슈 기쓰린현 나가하루
사망 2020년 1월 6일 (향년 62세)
대동아제국 마쓰시마구 우키자카 형무소
국적 대동아제국
재위 만왕
1995년 1월 14일 ~ 2019년 10월 29일
작위 만왕(滿王) → 작영백(雀榮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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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가쿠라(愛新覺羅)
스즈메(雀)
부모 아이신가쿠라 고토쿠
장성효왕후
왕후 상비
자녀 장남 아이신가쿠라 오기시치
외 1남 2녀
신체 167cm, 60kg
종교 티베트 불교
군인 정보
복무 대동아제국군
1974년 1월 6일 ~ 2019년 11월 20일
계급 육군 대장
소속 파벌 보수파

개요

제3대 만왕.

1996년 지순 헌정 위기 당시 적극적으로 쿠데타군에 참여하여 원풍제의 불법적 황위 찬탈을 도운 반역 범죄자로, 2019년 선치 반정이 일어나자 국외로 망명하려고 하였으나 쿠데타 군에 붙잡혔다. 이후 만왕에서 폐위되어 새로이 황제에 즉위한 선치제에 의하여 작영백(雀榮伯)으로 격하되었고, 이후 2달에 걸친 재판 끝에 최종적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대동아제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인 마쓰시마 특수행정구의 강제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2020년 1월 6일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생애

유년기

즉위

지순 헌정 위기 당시의 행보

1996년 지순 헌정 위기 때, 즉위한지 1년이 안되었던 신임 만왕 아이신가쿠라 스즈메에게는 원풍제의 반란군을 진압할만한 여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 하에 원풍제에 협력하면서 지순제와 정부군을 무너트린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원풍제에게 부귀공명을 약속받았다는 점이 2019년의 재판을 통해 밝혀졌고, 아예 현찰을 건네받았다는 소문까지 있다. 아무튼 아이신가쿠라 스즈메의 이런 적극적인 쿠데타 협조로 인하여 원풍제의 불법적 황위 찬탈이 이뤄졌고, 아이신가쿠라 스즈메는 실권이 없는 일개 왕작 화족에서 정권의 2인자로 뛰어 올랐다.

하지만 아이신가쿠라 스즈메는 이렇게 얻는 권력과 부를 민중을 위해 배푸는데 쓰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축적하는데 사용하여 민중들로부터 원성을 들었다. 이 때문에 원풍제에 대해서 어느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은 있어도, 아이신가쿠라 스즈메를 고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소한 원풍제는 무너져가던 부정부패의 민주정을 개혁하고 카리스마있는 행정으로 국가를 이끈 반면, 아이신가쿠라 스즈메는 단지 권력을 자신의 재산을 위해 사적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선치 반정과 재판

2019년 선치 반정이 일어나자, 아이신가쿠라 스즈메는 군사를 이끌고 거병하여 선치제의 반란군을 진압하려고 하였으나 만슈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히라오케 고지로 육군 중장에게 제압되었다. 게다가 자신이 이끄는 군사 역시 선치제의 반란에 동조하면서 아이신가쿠라 스즈메는 극동 지역의 국경 지대로 달아나, 소련으로의 망명을 꾀하였다. 하지만 정작 만슈 지역은 커녕 모고 지역에도 이르지 못한채 지역 주민들에게 붙잡혔고, 온몸이 묶인채로 히라오케 고지로 중장 앞에 끌려나왔다.

이후 아이신가쿠라 스즈메는 62세의 노구로 도쿄로 압송되어 지순 헌정 위기 재판의 재판장에 서게 되는 굴욕을 겪었다. 아이신가쿠라 스즈메는 자신의 반역 행동이 민중을 위한 것이라고 항변하였으나 오히려 이는 조롱을 받았고, 선치제의 잔악한 대숙청을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아이신가쿠라 스즈메의 사형에는 별다른 반대를 표하지 않았다. 결국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속에서 사형이 결정되었고, 그는 마쓰시마구우키자카 형무소로 압송되었다.

최후

아이신가쿠라 스즈메는 보수파 군부의 잔존 세력과 연락을 꾀하였으나, 이는 대동아제국 내에서도 외딴 벽지인데다가 선치제에 의해 사실상 거의 모든 보수파 군 장교들이 사형 판결을 받은 시점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항소를 통하여 시간을 벌고자 하였으나 이는 대동아제국 법원에 의하여 거부되었고, 예정보다 빠른 1월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의 사형 집행은 군인에 대한 사형이었으므로 총살형으로 집행되어야했으나, 선치제 개인의 의견에 따라 교수형으로 집행되었다. 이때 교수형 줄 조절에서 사형 집행자가 실수를 저질렀고 그 결과 아이신가쿠라 스즈메를 묶는 줄이 너무 높이 띄워져서, 아이신가쿠라 스즈메는 교수형이 되는 즉시 목이 부러져 즉사하였다. 사형 집행자는 사실 만슈 지역 출신이고, 지순 헌정 위기 당시 목숨을 잃은 군인의 아들이었으며, 따라서 사실상 의도였다고 하는 소문도 있다.

월왕 겐 고시마, 월왕 겐 신이치로, 섬라왕 다이 히로가쓰도 아이신가쿠라 스즈메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처형되었다.

평가

그나마 국내에서 평이 어느정도 엇갈리고 선치제와 비슷한 인물이라는 평도 많은 원풍제에 비해 아이신가쿠라 스즈메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악평의 연속이다. 오죽하면 아이신가쿠라 스즈메가 국경 지역으로 달아났을때 체포한 것은 경찰도 군인도 아닌 지역 주민이었을 정도이다. 혹자는 이런 그를 두고 명나라 주상순에 비유하기도 한다.

개인사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