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이세이 시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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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나우시카 充奈 ナウシカ| Atena Nausica | ||||
1968년 03월 11일 | (5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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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대 내각총리대신 | ||||
1992년 12월 13일 ~ 1994년 11월 2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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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나우시카(充奈 ナウシカ, 1968년 3월 11일 ~ )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본격적인 신세대 정치의 개막을 알린 총리이자, 당시 기준으로 최연소 일본 총리[1],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초이자 마지막 무학력 총리이며 이름이 가타카나로만 이루어진 총리이다. 일본 최초의 전후 출신 총리이며[2], 총리 취임 2년 만에 연정붕괴로 물러났다.
신세기 연합의 이카리 겐도와 함께 신1세대를 대표한다. 국민들에게 "미래에 나를 위해 뭘 해줄지 묻지 말고, 지금 여러분의 자식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는 등, 환경 문제와 정치 문제에 있어서 네오 시스템을 주장해 일본 국민들에게 영감을 줬다. 지금 열풍당의 인기와는 관련 없이 진영을 초월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총리이다.
약력
- 1984. 제36대 중의원 의원 (열풍당 / 도쿄도 제2구)
- 1988. 제37대 중의원 의원 (열풍당 / 도쿄도 제2구)
- 1992. 제38대 중의원 의원 (열풍당 / 도쿄도 제2구)
- 1992. 제60대 내각총리대신
- 1996. 제39대 중의원 의원 (열풍당 / 도쿄도 제2구)
- 2000. 제40대 중의원 의원 (열풍당 / 도쿄도 제2구)
- 2004. 제41대 중의원 의원 (열풍당 / 도쿄도 제2구)
- 2007. 제42대 중의원 의원 (열풍당 / 도쿄도 제2구)
생애
도쿄도 분쿄구에서 중산층 가정에서 외동으로 태어났다. 아테나 가문 자체는 토호쿠 지방에서 농사를 짓던 일반적인 농민 가문이었지만, 아버지 아테나 지르가 딸에게 교육과 경제적 성공의 기회를 주기 위해 도쿄도 분쿄구로 이사했다. 그러나 분쿄구로 이사 후 사정은 좋아지지 못해 나우시카는 대학에 진학하진 못했다.
1984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도움을 받아 분쿄구에서 원내에 입성했다.
중의원 의원 시절
본인의 정치적 성향은 생태주의와 진보주의가 결합된 형태에 가까워 보인다. 열풍당을 대표하는 인물이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NHK에서 국민들의 92%가 호감을 느낀다고 답하는 등 굉장히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1984년 당선 이후 사회당에 이은 소수당 총재로 취임한 이래로 자유민주당 내각에 반대하는 야권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1989년 종합건설사가 일본의 각 지방을 갈아엎는 형식의 경제지탱을 비난하며 강력하게 당론으로 반대해 사업규모를 대폭 축소시키기도 했다.
1991년 재선 의원 시절 중국에 특사로 파견되었으나, 낸시 펠로시 당시 초선 미국 하원의원과 함께 천안문 항쟁에서 있었던 중국의 시민학살을 강력히 규탄했다.
총리 집권기
1992년
1993년
1994년
퇴임 이후
정계 은퇴
평가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
1984 | 제3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도쿄도 제2구 | 103,291 (46.7%) | 당선 (1위) | 초선 | |
1988 | 제3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42,695 (66.8%) | 재선 | |||
1992 | 제3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64,744 (71.9%) | 3선[3] | |||
1996 |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91,926 (88.0%) | 4선 | |||
2000 |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7,889 (90.2%) | 5선 | |||
2004 |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86,172 (71.6%) | 6선 | |||
2007 |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68,663 (67.1%) | 7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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