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 시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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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제71대 내각총리대신
카토 메구미
加藤 恵 | Kato Megumi
출생
1995년 09월 23일(1995-09-23) (28세)
일본 도쿄도
재임기간
제71대 내각총리대신
2016년 10월 08일 ~ 2017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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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고조부 카토 에이사쿠
조부 카토 케이요시
부 카토 모토히로
모 카토 나나에
학력
일본과학대학 생명공학 박사
지역구
도쿄도 제1구 제46 ~ 49회
의원 선수
4 (중의원)
의원 대수
46, 47, 48, 49
소속 정당
약력

카토 메구미(加藤 恵, 1995년 9월 23일 ~ )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제71대 내각총리대신이다. 과학당 소속으로 도쿄에서 의원직을 수행 중이다. 지역구 관리를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국민적으로 인기는 없는 편이다. 원인은 당연히 독단적인 스텔스 해산때문이다.

약력

  • 2012. 과학당 도쿄도 신주쿠구 지방당 위원장
  • 2014. 도쿄도 의회 의원 (과학당)
  • 2016. 제46대 중의원 의원 (과학당 / 도쿄도 제1구)
  • 2016. 제71대 내각총리대신
  • 2017. 제47대 중의원 의원 (과학당 / 도쿄도 제1구)
  • 2019. 제48대 중의원 의원 (과학당 / 도쿄도 제1구)
  • 2023. 제49대 중의원 의원 (과학당 / 도쿄도 제1구)

생애

1995년 9월 23일, 당시 마이니치 신문의 정치국 편집장였던 카토 모토히로(加藤 元浩)와 그 아내 나나에(奈々絵)의 장녀로 도쿄에서 태어났다. 카토 모토히로가 입학하도록 주장한 토요가사키 계열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거쳐 일본 과학대학 공과대학 정보통신공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아버지인 카토 모토히로를 비롯해 어머니인 카토 나나에, 고조부인 카토 에이사쿠(加藤 栄作), 전 일본 외무대신이자 조부 카토 케이요시(加藤 圭佳), 가정교사였던 오오가미 레이(大神 零), 친척들까지 도쿄 대학 출신이 많았지만 카토 메구미는 무난하게 에스컬레이터식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으며, 친인척들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과학대학에 차석 입학하였다.

정계 입문

졸업 이후 2014년 마이니치 신문사에서 정치부 기자를 보냈다. 그러나 그 해 실시된 통일지방선거에서 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퇴사했다. 2016년 총선거에서 오리하라 이자야 간사장에 의해 도쿄도 제1구를 제안받은 후 당선, 이후 치러진 총재선에서도 연승하며 초선 총리의 반석에 올랐다.

총리 재임

카토 메구미 내각은 시작부터 국민적인 지지가 부실한 내각이었다. 전임 마가츠가미 총리 역시 초선이었지만, 정상적인 경선을 통해 국민 및 전당원 투표로 당선된 반면 카토 총리는 보궐경선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국민투표의 반영 비율이 굉장히 낮았다.[1] 오리하라 간사장은 자신이 출범시킨 내각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정치적 이벤트를 기획했다.

8월에 들어서면서 지지율의 반향을 노리기 위해 근 16년간 큰 적자를 낸 일본항공의 재건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에 국토교통대신을 갈아치우면서 당시 2선 의원이던 유이가하마 유이를 임명하였고, 곧바로 일본항공의 재건안을 세간에 공표하나, 이 것이 센트럴 항공의 채권 7500억 엔 중 70%를 삭감 하는 계획이어서 크게 논란이 되었다.

심지어 70%를 국세로 막는 것이 아니라 각자 은행이 70%를 포기하도록 하는 재건안이었기에 더더욱 금융권에서 반발이 거셌다. 국민적으로는 재건안 찬성이 53%로 반대 14%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융자를 실행한 제도권 은행인 개발투자은행, 도쿄제일은행, 산업중앙은행, 도쿄수도은행, 칸사이 시티은행이 계획을 따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공개 기자회견에서 주거래은행이었던 개발투자은행과 준주거래은행인 도쿄제일은행이 정부 개선안을 거절해버렸다.

특히 개발투자은행은 바로 1개월 전까지 국영은행으로 민영화가 추진된지 단 26일 만에 정부안에 반기를 든 것이라 더욱 세간의 관심이 몰리게 되었다.

이에 카토 수상의 지지율에 빨간불이 켜지자, 금융청에서 개발투자은행과 도쿄제일은행에 금융청검사 조치를 내렸고 개발투자은행이 다시 꼬리를 내리게 된다. 도쿄제일은행은 검사 도중 부실융자가 발각되어 시정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조치에 반발한 도쿄제일은행은 당시 간사장이던 오리하라 이자야와의 부정한 커넥션을 자폭으로 터트려버렸고 결국 유이가하마 국토교통상이 채권포기안을 철회하고 사임함으로써 1개월에 달하는 은행과의 대립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 40%를 상회하던 내각 지지율은 20%초반으로 내려앉게 되었다. 또한 오리하라 간사장은 카토 수상에 의해 일선 후퇴를 강요받았으며, 결국 한달 후 간사장직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내각 상당수가 이미 카토 내각에서 마음이 떠난 상태였으며, 내각총사직을 압박하는 상태였다.[2]

그러나 카토 수상은 의회 해산에 반대할 것 같은 대신들을 해임 후 대리 서명함으로써 의회 해산을 결정, 스텔스 해산으로 불리는 국난돌파총선이 시작된다.

스텔스 해산

퇴임 후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4 제18회 일본 통일지방선거 도쿄도 신주쿠구 40,397 (32.3%) 당선 (1위) 초선[3]
2016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도쿄도 제1구 166,553 (50.1%) 초선[4]
2017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61,373 (39.8%) 재선
2019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67,894 (44.7%) 3선
2023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46,258 (49.6%) 4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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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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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일반경선의 경우 의원표(중참의원)+의원표와 동수의 국민투표+의원표와 동수의 전당원투표가 반영되어 일반국민의 의견이 3분의 2나 반영된다. 그러나 보궐의 경우 도도부현 47표 + 의원표로 구성되기 때문에 과학당의 선거가 폭망해 중참의원을 합쳐 47명 이하로 내려가야 국민의견이 50%이상 반영된다. 현 체제에서 그럴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국민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경선이 된 것.
  2. 이와는 별개로 의회해산까지 요구하지는 않았는데, 사태가 너무 빠르게 전개되어 연립여당이 과연 해산 이후 의석을 늘릴 수 있을지 득실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 2016년 의원직 사퇴 (중의원 출마)
  4. 내각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