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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석대 (嚴錫戴, 1958년 6월 29일 ~ )는 대한제국의 정치인이다. 황해남도 해주시 선거구 국회의원 (14·15·16·17·18·19·20)으로, 이명박 내각 당시 이북5도재건부 장관 (2008년 ~ 2011년)이었다. 소속 정당은 늘푸른한국당이다.

개요

이명박의 돌격대장, 해주시의 일그러진 영웅.

정계 데뷔 당시부터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등장인물 엄석대와 동명이인으로 화제가 되었다. 소설 속 엄석대가 여간 악역이 아니어서인지 본인은 비교당하는 것을 싫어했으나 17대 총선에서 소설 속 엄석대를 이용해 기사회생한 후에는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문단 첫째에 강조된 두 별명은 그를 따라다녀온 수식어다. 전자는 불같은 성격으로 이명박 총리 후보의 선거캠프 당시 친박계와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앞장서서 이명박의 경선 승리와 선거 승리에 공여했고, 이후 이북5도개발부 장관으로 활약하면서 각종 개발정책을 밀어붙였던 데서 유래했다. 후자는 주로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계열 지지자들이 붙이는 멸칭으로, 16대 당시 노무현 총리 해임안 결의와 대한제국 황실 폐지안 결의에 앞장선 사실을 두고 경멸하는 의미에서 쓰이는 수식어. 물론 엄석대는 친이 비박 진영이어서 그런지 박근혜 총리 해임에도 앞장섰고, 그때문인지 더민주 지지자들의 비호감도 누그러들어서 후자 수식어는 잘 안 쓰인다.

생애

경기도 고양군 출신으로 동성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할아버지 엄일화가 연안군 부군수, 아버지 엄철이 중공군 남침 당시 내려와 이북 5도청 명예 해주시장으로 지내면서 해주와 황해도 출신 실향민 사이에서 인망이 두터운 집안이었으나, 엄철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대학 진학이 어려웠다. 이 시기에 소백그룹의 소백장학금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 등록금 4년을 전부 면제받았다.

육군 제9보병사단 수색대대로 차출되어 병역 이행 후 4학년이던 1983년부터 민주화 운동에 참가하여 1년 간 감옥살이를 하면서 졸업이 늦어진다. 이때 극심한 고문을 당하여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있고, 자신의 성격이 난폭해진 것도 옥중에서 흉악범들과 부대끼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술회한다. 옥중에서 김영삼 전 총리와 알게 되어 그의 밑으로 합류한다. 1989년 통일민주당에 입당하고, 남북연합 체제에서 통일민주당 해주시당 창당 당시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불과 30세의 나이에 치러진 인사여서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있었으나, 조선로동당 외에는 타 정당들이 이북에 별다른 기반이 없었던 시절이므로 실향민 2세로서 같은 실향민들에게 명망이 높았던 엄석대가 해주시 당협위원장으로 간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삼당 합당 당시에도 민주자유당에 함께했으며 민주계로 분류되었다.

1992년 제14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해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임기 중 민주자유당 분당 사태에서 신한국당에 합류했으며, 민주자유당-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했다. JP 키즈로 불리던 노박덕 통일국민당-자유민주연합 대변인과의 키배 열띤 설전으로 주목을 받았다.

1996년 제15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동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개성평양고속도로와 연결되는 77번 국도 확장, 해주선 복선전철화 예산 유치 등으로 지역 유권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1997년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으로 바뀐 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총리 선거 캠프에서 황해도 (2002년 이후 황해남도) 선거지원단장으로 위촉되었다.

2000년 제16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동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한나라당 열풍과 개인 인지도에 힘입어 78.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노무현 총리 해임안 결의대한제국 황실 폐지안 결의 당시 본회의장 입구를 막고 의장석을 지키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들어서(!) 잡아메치고 몸통박치기(?)로 기어이 밀어내 길을 트던 모습으로 예의 "해주시의 일그러진 영웅" 타이틀을 획득.

2004년 제17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동 선거구에 출마했다. 총리 해임안-황실 폐지안 기각 역풍과, "엄석대는 죽어도 떨어뜨리자!"는 사회노동당-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새천년민주당 후보(?)[1] 그리고 무소속 후보들까지 합세한 9자 단일화 후보인 박효상 열린우리당 후보를 상대해야 한다는 최악의 악재에서 49.9%의 지지율, 표차로는 110표차로 기사회생의 당선에 성공했다. 이후 친이계로 분류되었다.

2008년 제18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동 선거구에 출마해 경의고속철도 해주지선 유치 공약을 내걸고 81.5%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이명박 내각에서는 이북5도재건부 장관을 겸직했다.

2012년 제19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동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받지 못했다. 친이계 공천학살 과정에서 친박계 후보가 공천되었기 때문. 그러나 무소속으로 출마를 강행하여 친박 후보와 민주통합당 후보, 사회노동당 후보를 모두 더블 스코어로 압살하고 생존에 성공하였다. 2013년 새누리당 지도부와 화해 후 복당했다.

2016년 제20대 의정위원 선거에서도 똑같이 새누리당 내에서 친이계 공천학살이 이어졌으나 지난 총선의 기억(?) 때문인지 컷오프되지 않고 새누리당 후보로 동 지역구에 무난히 공천되었다. 더불어민주당 고재철 후보와의 출구조사에서 접전이 예상되었으나 53.2%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비박계에 분류되었으나 진박-비박 분쟁에서는 앞장서지 않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발발 이후인 2016년 12월 18일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2017년 5월 26일에 이재오가 창당한 늘푸른한국당에 입당했다. 현재는 늘푸른당의 원내대표이지만 동시에 유일한 원내 의정위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

백 회장! 전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디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웃음을 터뜨립니까? 돈 많으면 그렇게 웃어도 됩니까? 본인도 박근혜를 생각하면 속으로는 피식하지 않았나 싶다

 
— 2016년 12월 7일 대기업 총수 2차 청문회에서.

노박덕, 염승길, 느이들은 조용히 해! 총리 이지경 되도록 뭐했어!

 
— 2016년 12월 7일, 자신의 사자후에 대해 노박덕 의원이 비난하자

새누리의 일그러진 영웅.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터진 후 새누리당 비상시국위원회에 합류했다. 19대 의정원 이후로는 주목받을 언동을 하지 않아왔으나, 지역구 관리에 충실하면서 막후에서 비박 의원들을 독려해왔다고 한다. 12월 16일 당내 원내대표에서 친박계 정우택이 선출되자 이에 반발해 12월 18일 친이계 정소성, 모용철 의원과 함께 선도 탈당했다. 2017년 들어 정병국 등 친이 중진들과 함께 개혁보수신당으로 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줄곧 무소속으로 지내다가 제19대 총리대신 선거 이후 늘푸른한국당으로 입당했는데[2], 이는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전 의원의 '부르심'에 응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고, 차후 수도권과 영남권에 주로 영향을 둔 바른정당 (개혁보수신당)과, 구 친이계 인사들이 많이 가 있는 호남기반의 국민의당을 늘푸른한국당과 통합시켜 친이-중도우파 빅텐트로 만드려는 개인적 큰 그림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바른정당 측 친이 인사들은 이러한 엄석대의 선택에 어리둥절해하는 모양새.[3]

최순실 청문회에서 새누리당측 청문위원으로 선정되었다. 네티즌들은 한나라당 시절에 보여준 불같은 성격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지 주목하는 중. 이용주, 김경진, 장제원 등과 함께 하드캐리를 하고 있다는 평이며, 과연 12월 5일부터 청문회 증인들을 차례차례 고압적으로 갈구며(?) 박근혜의 황실 폐지 계획을 숨기려던 여러 결정적 위증들을 밝혀냈다.

12월 7일 대기업 총수 2차 청문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 (오산시), 김한정 의원 (남양주시 을)과 함께 백연희 소백그룹 회장, 임용남 하하그룹 회장 등을 집중 추궁했다. "박근혜 총리는 창조경제 주제로 30분 이상 대화할 만큼의 지식이 없다. 박근혜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느냐" 하는 안민석 의원의 추궁에 백연희 회장이 웃음을 터뜨리자, "돈 많으면 그렇게 (청문회장에서) 웃어도 됩니까?"라며 분노의 사자후를 터뜨렸다. 이에 친박 측 청문위원으로 출석한 노박덕 의원 (새누리당, 개성시 갑 선거구)이 "아니, 장관[4]! 일국의 경제를 일궈내는 대기업 총수들한테 너무 무례한 언사가 아닙니까?"라며 따지자, "노박덕, 염승길 느이들은(너희들은) 조용히 해!"라며 인용문의 일갈로 잠재워버렸다. 옆에 있던 염승길 의원은 덩달아 욕먹었다...[5]

이야깃거리

  • 탄탄한 인망을 바탕으로 젊은 시절부터 국회의원 생활을 시작했고, 탁월한 지역구 관리로 1992년부터 25년 가까이 7선 의원을 지내고 있다. 자유한국당에 머물렀으면 8선, 나아가 JP와 YS의 9선과 순수 지역구로 타이를 노려볼 수 있었으나 늘푸른한국당 입당으로 가능성이 흐려졌다. 다만 21대 총선 시기에도 아직 60대 초반이고, 본인의 개인기와 인망이 뛰어나므로 차후 늘푸른한국당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 노박덕 의원과는 1년 터울 사이로, 정치 초년생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에 있다. 엄석대가 YS 키즈라면 노박덕은 JP 키즈이고, 또 엄석대가 민자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할 당시 노박덕은 자민련 부대변인이었는데, 이 때문에 토론회에서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자민련이 한나라당으로 합당한 이후에도 엄석대는 친이계, 노박덕은 친박계로 들어가 서로 정치적으로 대립했다. 상술했듯 최순실 청문회에서도 언성을 높이며 싸웠는데, 사석에서는 잘 지내는 편이라고 한다.

선거 이력

연도명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1년 황해도의회 선거 (해주시 1 선거구[6]) 민주자유당 50.2% 당선 (1위) [7]
1992년 제14대 총선 (해주시 선거구) 민주자유당 58.3% 당선 (1위)
1996년 제15대 총선 (해주시 선거구) 신한국당 56.1% 당선 (1위)
2000년 제16대 총선 (해주시 선거구) 한나라당 78.6% 당선 (1위)
2004년 제17대 총선 (해주시 선거구) 한나라당 49.9% 당선 (1위)
2008년 제18대 총선 (해주시 선거구) 한나라당 81.5% 당선 (1위) [8]
2012년 제19대 총선 (해주시 선거구) 무소속 67.3% 당선 (1위)
2016년 제20대 총선 (해주시 선거구) 새누리당 53.2% 당선 (1위) [9]

각주

  1. 황실 폐지안에 찬성했던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왜 열린우리당 후보와 손을 잡는지 의아할 사람이 있겠지만, 엄석대는 16대 국회 초반에 동교동계 의원들과 자주 싸웠던 사람이라 새천년민주당에서도 단단히 미운털이 박혀있었다.
  2. 전술한 정소성, 모용철 의원은 2017년 1월 2일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했다.
  3. 그러나 <정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인간적인 교류는 계속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김무성-문재인의 사례와 같이, 국회에서 의원들이 정파색이 달라 대립해도 사적으로는 친하게 지내는 것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일이다.
  4. 차관급 대우를 받는 의정위원보다 상위에 있는 장관직을 지냈기 때문에 의정원 관행 상 장관으로 불리운다. 박지원 (1942년)도 마찬가지고 전 총리 출신 이해찬 의원은 "총리님"이라고 불리는게 관행.
  5. 사실 노박덕 의원이나 염승길 의원보다 엄석대 의원이 연상이긴 하다.
  6. 태봉동, 청풍동, 용당동, 서애용당동, 석미동, 구정읍파동
  7. 1992년 1월 23일, 의정위원 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
  8. 2012년 2월 13일 당명 새누리당으로 변경, 2012년 3월 10일 새누리당 탈당.
  9. 2016년 11월 29일 탈당, 2017년 1월 20일 늘푸른한국당 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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