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ARSAW FICTIONAL PROJECT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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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상태
연합동맹-국제동맹 전쟁
聯合同盟-國際同盟 戰争
United Alliance-International Alliance War
날짜
2061년 6월 16일 ~ 2071년 1월 20일
장소
전 세계
배경과 원인
연합제국의 탄생
연합동맹·국제동맹 간 세력 갈등
종류
전쟁, 대리전, 내전, 총력전
결과
국제동맹의 승리
연합동맹의 결정적 패배
영향
2071-2100년 세계 경제 위기
초분열시대
세계의 인구 감소
산업 파괴와 인구 감소 등으로 인한 지구 생태계 변화
영토 변화
연합제국:
뉴욕 조약에 따라 영토 대부분이 독립됨
자유 아메리카 제국 수립
대로마제국:
유럽 지역 대부분을 잃음
이탈리아 분열
유련:
시베리아 일대 및 일본 열도 일부 흭득
만주국 괴뢰국화
오세아니아 및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공화국 수립
교전국
연합동맹
국제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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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동맹 가입국
연합제국
대로마제국
연합동맹 지지 단체
연합제국인통일노동조합
연합제국 충성조직
국가사회주의운동
쿠 클럭스 클랜(부인 중)
유련에 반대하는 자유운동
국민전시총동원위원회
대동아공영권을 위한 모임
이 외 40여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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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동맹 가입국
유련
아프리카 연합국
중앙아메리카 연방국
파일:남아메리카 연합 국기.svg 남아메리카 연합국
신생국
파일:신인도국 국기.svg 신인도국(~2067)
국제동맹 지지 단체
흑표통일전선
세계산업노동자연맹
연합제국 반대 백성행동
이 외 60여개 단체
제3세력 (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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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자주해방전선
알아바시드
지휘관
연합동맹
국제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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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바탈레온
제프리 도너스
조지 T. 클린턴
엘리자베스 C. 워딩
조나단 댈러웨어
조지 2세
엘비스 브래들리
존 스캇
데이비드 노바나
오노 고로스케
야마모토 신기루
야마토 1세
무함마드 알자와디
크리스티아노 아우구스토
세르조 크라토스
로마나 팔라딘
카이사르 3세
프리드리히 폰 하우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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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유고로프
블라디미르 야바롭스키
세르게이 바실렌스키
우고 제스크
보리스 체벤나베
알렉세이 키르한
조너선 리벤
아발 압둘라 아미르
제이콥 노벨
알그레토 파담
파일:신인도국 국기.svg 마하트마 레히산
제3세력 (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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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연합동맹
국제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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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제국 5,300만명
대로마제국 1,700만명
연합제국 지지 단체 16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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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련 6,800만명
아프리카 연합국 1,000만명
중앙아메리카 700만명
파일:남아메리카 연합국 국기.svg 남아메리카 600만명
파일:신인도국 국기.svg 신인도국 7만명
국제동맹 지지 단체 10만명
제3세력 (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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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연합동맹
국제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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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제국 9,750만명
대로마제국 3,400만명
연합제국 지지 단체 17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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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련 1억 2,000만명
아프리카 연합국 1,800만명
중앙아메리카 500만명
파일:남아메리카 연합국 국기.svg 남아메리카 600만명
파일:신인도국 국기.svg 신인도국 11만명
국제동맹 지지 단체 5만명
제3세력 (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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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연합동맹-국제동맹 전쟁(United Alliance-International Alliance War)는 2061년 6월 16일부터 2071년 1월 20일까지 치러진 연합동맹국제동맹 간의 전쟁을 말한다. 2061년 6월 16일 새벽 1시 연합제국이 이끄는 연합동맹이 기습적으로 유련을 침공하여 전쟁이 발발했고, 이후 여러 나라들이 전쟁에 참여함에 따라 국제전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2063년 연합동맹의 고압 프로젝트을 계획함에 따라 냉전 이후 처음으로 핵전쟁 직전까지 갈 뻔했으며, 실제로 2064년 모스크바B-47 폭격기를 투입했으나 격추당해 사실상 실패했다. 만약 고압을 투하했다면 유련은 물론 전 세계의 인구 수도 크게 감소했을지도 모른다.

전쟁 기간 동안 연합제국에 반발하여 민족 내전을 일으켰고 그 결과 신인도국, 아랍 자유국 등이 세워졌다. 연합제국은 이 나라들을 다시 자국 영토로 반환하기 위해 무력 침공을 감행했지만 국제동맹의 지원을 받은 독립국들은 연합동맹에 대항했다. 2070년이 되면서 연합제국은 그레이트브리튼, 아프리카, 그레이트재팬 지역을 모두 잃고 아메리카 지역만 남아 큰 위기를 맞고, 2071년 워싱턴 DC 전투를 끝으로 연합제국이 항복했다.

이후 뉴욕 조약을 맺음으로서 연합동맹의 영토 대부분이 독립했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내야 했다. 전쟁 이후 연합제국과 대로마제국은 몰락했고, 연합제국은 자유 아메리카 제국으로, 일본과 영국은 국제동맹 치하 군정으로, 유련은 초강대국으로 부상, 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오세아니아 공화국을 건국하면서 새로운 강대국이 탄생하였다.

이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 1억 6,000만 명이 사망했고, 병사 6,000만 명 이상이 사망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훨씬 많은 사상자를 낳았으며, 유련은 이 전쟁 중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거기다 전 세계의 인공지능업, 공업 등의 산업 90%가 파괴되는 등 전 세계가 거의 최빈지(崔貧地)로 전락했다. 또 지구에서는 공업이 파괴된 이후 도시에서 식물이 자라나는 반면, 아프리카에서는 사막화가 점점 느려지고 식물화가 계속되고 있다. 이 때부터 벌어진 아메리카의 초분열시대경제 위기, 인구 감소 등도 이 전쟁의 영향이기도 하다.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초강대국이 된 미국소련의 이념 경쟁 즉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은 영국, 일본과 반공 동맹을 맺어 이미 큰 피해를 입었던 소련을 고립시키고 자유 진영을 아시아 전역까지 확대하려 하였다. 중국은 1946년 장제스의 죽음으로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고, 일본은 이 나라들에게 자기 나라로 들어오라고 강요한 끝에 여러 나라들이 일본에 가입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이 몰락하고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독일연합국의 군정에 놓이게 되고, 1948년에 이르러서는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된다. 또 다른 승전국이었던 일본은 강력한 일본인 동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해 모든 민족을 전부 일본 민족으로 동화시키기 시작했다. 소련은 전쟁 승전국임에도 일본에 의해 극동 일부를 빼앗기고,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유럽 국토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이미 걷잡을 수 없는 경제 위기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자 스탈린은 소련을 재건하기 위해 새로운 경제 정책을 발표하지만 레프 트로츠키와 갈등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트로츠키는 1955년 폴란드로 망명을 갔고, 소련 내에서는 배신자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영국 통합당의 숀 루터가 집권하면서 강경한 반공 노선과 친자본주의를 목적으로 68혁명 이전까지는 공산주의 운동과 노조 파업은 거의 없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68혁명이 일어나면서 영국에서도 자유주의 운동이 커지게 되었는데 당시 총리였던 데이비드 에버레인은 강경 진압을 통해 자유주의 운동을 아예 분쇄하려 했으나 국제 여론의 비판으로 인해 아프리카에서도 자치권을 요구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결국 1975년 아프리카 지역에 자치권을 보장하고, 1978년에는 자유법이 통과되어 국민들의 자유를 보장토록 했으나 1년 뒤 마거릿 대처의 집권으로 자유권을 폐지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하게 펼치며 대처 총리의 비판이 높아진다. 결국 보수당이 참패하고 영국 통합당에 1당을 넘겨주며 다시 원래대로 환원되었다.

일본에서는 1960년 6·6 운동과 안보투쟁으로 혼란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6·6 운동은 다카키 마사오 조선총독대신이 집권함에 따라 조선인들은 다카키 총독의 집권을 용납할 수 없다며 전국 각지에서 시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시작된 68혁명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제국의 위기를 가져왔다. 게다가 1958년에 중단되었던 일본인 동화 정책을 1967년 재개함에 따라 민족 탄압이라는 여론이 높아지자 1974년 식민지 독립 운동이 벌어지기에 이른다. 결국 1975년 1차 정치 위기가 발생하고 이를 막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여 독립 운동을 탄압했고, 1979년에는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와 다카키 마사오 총독의 암살로 2차 정치 위기를 겪으며 한동안 일본사회당 등의 야당이 약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취임으로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 정책의 시행으로 냉전의 종식을 이끌었고, 1989년에는 민주화 운동이 동구권에 확산되면서 공산국가의 몰락을 가져왔다. 1990년 마침내 독일의 재통일과 함께 유럽에서는 21세기를 앞두고 화합과 번영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가 닥치며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 의해 탈소비에트가 진행되었고,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의 독립, 경제 위기와 물가 상승 등으로 악재가 커지면서 옐친 대통령이 물러났다. 그리고 그 자리엔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가 집권하는데, 이것이 유련의 시작이었다. 지리놉스키는 기존에 독립했던 나라들을 하나씩 점령해가며 과거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았고, 심지어는 중국이 분열되며 형성된 튀르키스탄, 티베트를 점령하며 중국에까지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21세기가 되면서 유고슬라비아 전쟁, 이라크 전쟁, 분리주의 운동의 확산, 역사 왜곡 등의 문제가 발생하며 화합과 번영이 아닌 분열과 갈등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사스, 신종플루, 그리고 2019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터지며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 상황 속에서 미국은 2022년에 발생한 혁명으로 인해 몰락하자 로버트 앨리무어의 집권으로 캐나다멕시코를 침공시켰고, 일본에서는 1990년대 이후 개방 개혁을 추진했으나 아베 신조의 집권 이후 개혁 개방이 아닌 군비 증강과 자위대의 국군화, 그리고 일본인 동화 정책을 재개 검토를 펼치면서 민족 탄압 의혹이 일었다. 2020년 이탈리아에서는 로마 재건 운동이라는 단체가 코로나 방역의 실패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혁명을 일으켰고, 결국 이탈리아는 대로마제국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2023년 코로나의 종식으로 모두가 환호하는 사이, 6월 9일에는 미국과 영국이 약 240년 만에 합방되고, 2024년부터 대유럽 원정을 시작해 유럽의 대부분을 통일하기에 이른다. 2025년에는 일본 제국미영연방에 합방함에 따라 연합제국이 형성되었다.

이후 수십 년이 지나며 연합제국과 대로마제국은 2040년 새로운 군사동맹인 연합동맹을 창설했고, 유련과 각 나라들은 연합동맹에 대항하고자 국제동맹을 창설했다. 두 동맹은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21년 간 분쟁이 지속되었으며 거기에는 군사 도발과 핵무기 경쟁, 국경 폐쇄, 인종 차별 등의 분쟁이 그 것이었다.

그런데 2061년 6월 16일, 연합동맹의 군대가 모스크바에 진출하려는 조지 계획을 실행하여 유련을 기습 침공했고, 결국 유련을 포함한 국제동맹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개

전쟁 초기

연합동맹의 기습 침공

2061년 6월 16일 새벽 3시, 조지 계획에 따라 연합동맹의 군대가 유련을 기습 침공하여 대진격을 개시한다. 유련은 연설문에서 연합동맹에 선전 포고를 가했고, 국제동맹의 일원이던 아프리카 연합국, 중앙아메리카 연방국, 남아메리카 연합이 선전포고를 가했지만 이미 군사를 유련과 국경을 접하는 대로마제국의 중앙유럽 지역, 핀란드 접경 지역, 연합제국의 그레이트재팬 지역에 대거 파병되었다. 그러나 연합제국의 군대가 중앙유럽에만 파병되었고 연합제국과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졌던 대로마제국의 군대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연합제국군은 폴란드 지역을 먼저 공격하여 6월 26일 크라쿠프를 포위했고, 7월 8일에는 키엘체, 7월 26일에는 바르샤바까지 진격하면서 폴란드 지역을 차지하였다.

아메리카 전역에서는 세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카리브해, 멕시코 접경 지역에 군대를 파견했다. 조지 계획의 예상대로라면 유련을 빠르게 정복하고 북아메리카가 국제동맹에 밀리고 있을 때 파나마 지역을 기습 상륙하여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빠르게 점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련은 기반이 강한 중앙유럽 대신 군사적 기반이 약하고, 그레이트재팬의 약충지였던 시베리아극동을 침공한다. 한편 이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연합제국군은 강력한 유련군의 침공으로 남쪽으로는 하바롭스크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 북쪽으로는 캄차카베링 해협까지 후퇴하였고, 결국 9월 19일까지 알래스카사할린, 그리고 조선 북부로 후퇴해 전투를 치룰 수 밖에 없었다.

7월 13일 유련은 중앙유럽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군사 요충지인 베를린차르-3 미사일을 발사하기로 최종 명령을 내렸고, 명령 다음 날인 7월 14일 차르-3 미사일을 발사한다. 최종적으로 7월 14일 오후 7시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떨어졌다. 때문에 베를린의 79%가 충격과 함께 파괴되었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대일군의 후퇴와 유련군의 아시아 남하

유련군은 군사적 기반이 약한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을 침공하는 사이 그레이트재팬의 군대인 대일군은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6월 18일 대일군은 유련군이 7월 말 야쿠츠크를 점령하면 전선을 두 개로 나누어 싸워야 되기 때문에 북부에서 제일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려 대일군을 제1군과 제2군으로 분리시켜 후퇴 작전을 시작했다. 한편 유련군은 7월 19일 야쿠츠크를 점령했고 제1군(북군)을 포위시키는데, 대일군 제1군은 오호츠크에서 후퇴를 시작하여 8월 8일 캄차카까지 후퇴했다. 제2군도 큰 타격을 당할 수 있어 7월 11일 후퇴 작전을 개시했다. 7월 19일 콤소몰스크를 시작으로 8월 3일 하바롭스크까지 후퇴했으며, 8월 14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후퇴했다. 그러나 8월 20일 블라디보스토크 마저 유련군이 상륙하자 8월 31일 두만강으로 남하하여 후퇴 작전을 완수한다.

이 작전으로 대일군은 조선으로 남하했지만 그 과정에서 큰 손실을 입은 반면 유련군은 최첨단 기술로 제작된 무기다 보니 손실이 적었다.

한편 유련군은 9월 3일 시베리아와 극동 지방을 전부 수복하고, 폭풍 작전에 따라 만주를 침공하였다. 폭풍 작전은 일본이 만주 횡단철도를 조선까지 확장시킨 조선-만주 횡단철도를 통해 대일군이 후퇴할 경우 조선 북부에서 서울(당시 명칭 경성)까지 남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주를 점령하고 횡단철도를 통한 조선에서의 횡단을 차단하려는 계획이었다. 그 후 폭풍 작전은 약한 방어선인 연변을 공격하기로 결정해 계획이 완전 변경되었다.

당시 만주 지역은 그레이트재팬이 만주현을 위성국으로 격상하여 만주국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만주국 재건을 취소하고 후퇴 작전 이후 만주 지역에만 무장하여 하바롭스크를 점령한 후 유련군을 포위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유련군은 이 계획을 알고 있는지 가장 약한 방어선을 찾아낸 끝에 9월 5일 가장 약한 지역인 연변을 공격하면서 대일군은 비상이 걸렸다.

9월 9일에는 연변, 9월 15일에는 지린, 9월 23일에는 창춘을 함락시키고 9월 26일에는 대일군 제43군과 선양에서 전투를 벌였다. 10월 3일에는 선양을 완전히 함락시켜 마지막 근거지인 하얼빈을 남겨두고 대일군과 전투를 벌였다. 10월 10일에는 유련군이 하얼빈 근처에 입성했고 여기서 대량의 대일군과 마주치며 대규모 전투로 번지게 된다. 11월 8일까지 계속된 이 전투는 대일군이 후퇴함에 따라 하얼빈을 함락시킴으로써 완전히 만주를 손에 넣게 된다.

폭풍 작전 이후 11월 13일에는 유련군이 몽골을 해방하는 사이 대한민주군대한독립군, 대한인민군 등 약 70여 개의 독립운동 조직들이 모인 대한연합군이 전쟁에 참전했다. 대한연합군은 4개 군(북부군, 남부군, 동부군, 서부군)으로 나뉘어 전투를 개시했는데, 유련의 지원을 받고 있는 북부군은 혜산강계, 삼지연, 청진, 김책에서,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하는 남부군은 전라도에서는 신안, 완도에서, 유학생, 지식인 외에도 수많은 항일열사들이 참여한 동부군은 영덕, 경주에서, 김구 등이 참여했던 대한독립군을 계승하는 서부군은 인천 실미도, 신도, 강화도에서 상륙 혹은 봉기하여 대규모 항일 전쟁을 개시했다. 이 전쟁을 대한 해방 전쟁이라 부르는데 2065년 11월 29일 한반도가 완전 해방될 때까지 약 4년 동안 치러졌다.

유련군은 몽골을 해방한 다음 조선을 손에 넣으려 했지만 이미 대한연합군의 해방 전쟁이 일어난 터라 할 수 없이 베이징을 향해 진격을 시작하게 된다.

남아메리카-중앙아메리카의 합동 공격

연합동맹은 조지 계획에서 유련을 빠르게 점령하면서 연합제국군이 아메리카 연합군에 밀리면 그 때 파나마 지역을 공격해서 중앙아메리카를 포위시키고, 멕시코 중앙에 미리 강력한 방어선을 두었기 때문에 충분히 싸우다 중앙아메리카군을 뒤에서 격파시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파나마를 공격하면 남아메리카 연합군에 포위되어 연합제국군이 밀릴 것이라고 예상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도 거의 없었다.

결국 유련군과 전투를 벌이는 사이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군의 연합군이던 아메리카 연합군은 가이아나를 공격하였고, 가이아나는 제대로 된 군사 행동 없이 8월 14일 함락당한다. 또 아메리카 연합군은 6월 29일 멕시코 남부인 치아파스를 집중 공격했다. 7월 9일에는 캄페체, 7월 14일에는 킨타나로오를 공격해 연합제국군의 탈출구인 유카탄을 함락시키기 위함으로 포위 작전을 시작한다.

7월 26일에는 치아파스가 함락되고, 8월 13일 킨타나로오, 8월 25일에는 캄페체가 함락당하면서 연합제국에 불리한 상황이 오게 되었고, 9월 6일 연합군이 유카탄을 공격함으로써 유카탄 전투가 벌어진다. 연합제국군은 아메리카 연합군에 맞서 싸워 끝까지 유카탄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유련제 무기로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9월 15일 메리다에서 탈출하기로 결정하여 멕시코시티로 행군하기로 결정했다.

10월 4일에는 타바스코, 오악사카, 베라크루즈를 습격하기 시작했고, 10월 19일 게레로, 10월 29일에는 멕시코시티에서 미초아칸-게레로 접경지, 할라파, 베라크루즈까지를 잇는 대형 방어선 근처까지 진격했다.

대로마제국-유련 전쟁

독립 전쟁

2062년이 되면서 연합제국에 대항하는 독립 전쟁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