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랑크 제3제국 역대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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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크 랑넴 황조 제9대 황제 크라인 2세 Crân 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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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켈리프 크라인 오스 랑넴 Kelifé Crân Ós Rànèm | |||||||||||||||||||||||||||||||||||||||||||
출생 | 1969년 5월 21일 | |||||||||||||||||||||||||||||||||||||||||||
랑크 비자프 사이릉 궁전 | ||||||||||||||||||||||||||||||||||||||||||||
재위기간 | 랑크 제국 황제 및 상의원 최고위원회 위원장 및 랑크 식민 왕국 국왕 | |||||||||||||||||||||||||||||||||||||||||||
2012년 3월 29일 ~ 현직 | ||||||||||||||||||||||||||||||||||||||||||||
연호 | 세이콘 (Sêck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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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크라인 2세(Crân II)은 랑크 제3제국 제7대 황제이자, 랑넴(Rànèm) 황조의 제9대 황제이다. 현재 랑크의 황제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2012년 삼촌 쉬베르테 5세(Süberétte V)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제5대 황제 파인츠 3세의 아들로 비교적 늦은 나이에 즉위했다.
작위 및 칭호
현재 칭호로 사용되는 작위는 다음과 같다.
- 히스릭 하애바 공작 저하 Has Mejasiti Kitena ibc Hisrik Haæva (1980년 ~ 1982년)
- 칼레스케토의 위대한 국왕 전하 Deosiá Has Eriokné Sirion ibc Kalresketō (1982년 ~ 1991년)
- 위대한 황태자이자 페리온의 국왕이자 해외 황토령 라에르번 공작, 미래의 빛이자 수호자이신 전하 Frīhtipī ibc liotón Has Eriokné Sirion, Dotiüse Sitoqêpâ, Sirion ibc Perion, kitena ibc Hæsidûpe Laerévèn (1991년 ~ 2012년)
- 랑크 랑넴 아시스 레오폴링 테스릭과 페레, 데모, 우드뤽, 세러프의 위대한 랑크 황제이시자 파피코로스 해외 황토령 통합국의 왕이시자 민주주의 상징인 의회 상의회 퓌스터러 이신 랑크의 수호자이신 폐하 (2012년~ )
생애
부황 파인츠 3세와 뤼스 케릭 공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레보리스(Revoris)로, 파인츠 3세의 첫 아들로 태어나 11살에 하애바 공작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파인츠 3세의 사망
파인츠 3세가 51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급사하자, 당시 13살이었던 하애바 공작 크라인을 바로 황제로 앉히기엔 무리가 있었다. 따라서 당시 공의회에선 황태제였던 쉬베르테 5세를 먼저 황제로 세우고, 크라인을 칼리스케토 왕으로 삼으며 제위를 침착하게 넘겼다. 당시 쉬베르테 5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되었을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
크라인은 칼레스케토 왕위에 오르며 정말로 칼레스케토 지방으로 가버렸다(!). 칼레스케토 궁전에서 머무르며 칼레스케토 자치 의회와 협력을 이어가며 칼레스케토를 자치령으로서 다스렸다. 크라인 2세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실전 경험이 되어 이후 왕위에 오르는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칼레스케토 자치 의회는 강경 진보 성향인 칼레스케토 민주당이 1당, 제정당 칼레스케토당이 2당을 차지했는데 크라인 2세는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하여 민주당과 대화와 협치를 통해 민주당의 지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했고, 친 칼레스케토적인 정책을 내세우며 민심을 얻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칼레스케토 식민자치주지사와 갈등이 있었고, 국민의 선거로 뽑은 선출직 공무원을 강제로 좌천시키도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칼레스케토 주지사였던 후냑은 이후 국민민주당에 입당하여 2023년 제42대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91년, 후사가 없는 쉬베르테 5세의 황태자로 임명되어 페리온 왕위에 올랐다. 페리온 왕이 되고는 페리온 지방으로 가지는 않았고, 사이릉 궁전에 머무르며 대외적인 활동을 했고, 가끔 쉬베르테 5세의 대리인 역할을 했다.
즉위
쉬베르테 5세가 2012년 병으로 사망하자, 황태자였던 크라인 2세가 의회 상원의 동의로 제위에 올랐다. 그의 나이 만 43세였다. 랑크 제위에 오르며 동시에 해외 자치령 연방의 왕위에 오르고, 상의회 최고위원회 위원장을 당연직으로 겸직하게 된다. 즉위 직후 국영 TV로 방영된 첫 공개연설에서 "나는 아버지와 삼촌의 뜻과 업적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동년 12월 즉위식이 펼쳐졌는데, 지금껏 했던 것과 다르게 소박하고 규모를 줄인 즉위식이었다. 그러나 그때 내린 눈과 그 사진들은 정말 최고의 사진으로 남아있어 다른 화려한 즉위식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는 크라인 2세의 본인의 뜻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2013년, 신년 인사로 "랑크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더욱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2014년, 제정당의 퍼츠탐 총리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2017년, 장남 바크를 페리온 국왕의 작위를 내리며 황태자로 임명하였다. 차남 레이츠에게는 이례적으로 세러프 국왕에 임명하여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직접 세러프 지방으로 내려가 다스리게 하였다. 다만 세러프 자치 의회는 이에 크게 반발하며, 세러프 독립당을 중심으로 항의 시위를 이어나갔다. 장녀 헤인에게는 뵐프 공작의 작위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