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쓰마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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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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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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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1996)
노부히사
(1996~2018)
타다히로
(2018~)
시마즈 당주 · 미군정 · 국무총리 · 류큐 공작가

사쓰마국 제2대 국왕
타다시게 | 忠重
출생 1886년 10월 20일
사쓰마국 슈리특별시 슈리성
사망 1968년 4월 9일 (81세)
사쓰마국 슈리특별시 왕립학습원부속병원
국적 사쓰마국 (뉴 오더) 사쓰마국
재위 사쓰마국 국왕
1897년 12월 26일 ~ 1968년 4월 9일
즉위식 1906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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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시마즈 (島津)
타다시게 (忠重)
연호 세이메이 (成明)
부모 부친 타다요시 국왕 (忠義), 모친 스마코 왕후 (寿満子)
남매 3명(요절)
누나 키요코 공주 (清子), 히사코 공주 (常子), 지카코 공주 (俔子), 나오코 공주 (正子) 등
기타 남동생들
배우자 이소코 왕후 (伊楚子)
자녀 4남 1녀
왕태자 타다히데 (忠秀)
신체 186cm, B형
종교 사쓰마 신토
학력 왕립학습원 (졸업)
병역 사쓰마군 해군 원수 (1907년 ~ 1935년)
묘소 츠네안봉 시마즈 추도공원 (常安峰島津追悼公園)

개요

타다시게 (忠重)는 사쓰마국의 제2대 국왕이자 시마즈 왕조의 제30대 수장이다.

일생

슈리 선암원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왕립학습원에 다니며 영국인 여성 가정교사 에셀 하워드에게 교육을 받았다. 위에 3명의 형이 있었으나, 모두 요절하여 4남이였으나 사실상의 장남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1897년 부왕 타다요시의 서거로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으나 성년이 되지 못하였기에 성년이 될 때까지 큰아버지인 타타나리가 섭정을 하여 1897년부터 1906년까지 섭정을 지냈다. 1906년 성년이 된 후 정식으로 즉위식을 치루었으며 섭정을 끝내고 본인이 직접 국정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타다시게의 재위기간 동안은 사쓰마국에 큰 변화와 개혁이 일었고 이를 "세이메이 변혁"이라고 칭한다. 또한 원로들이 은퇴하고 새로운 신진 인물들로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져 이것 또한 "세이메이 세대교체"라고 지칭한다. 타다시게는 명목상으로나마 일단은 일본 제국 산하 자치국으로서의 왕이였으나, 1933년 사쓰마국이 관계 단절 및 독립(일마결별)을 택하며 완전한 독자 왕가의 왕이 된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본 제국의 침공으로 인하여 내각 및 임시정부와 함께 필리핀과 미국으로 몽진하여 대일본 항쟁을 주도하였고 1945년 이후 다시 귀국하였다. 오랜 망명과 항쟁 주도로 인해 귀국 이후 건강이 서서히 악화되기 시작하였으며, 개헌으로 인해 권한도 대폭 축소되어 한정된 국사 권한과 상징적인 권위만을 누리게 되었다. 전후 불안정한 사회와 정쟁을 중재하고 국가의 구심점으로서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타다시게는 계속하여 허용된 권한과 권위 내에서 사회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1959년 야가미 라이토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를 막지 못하고 쿠데타를 승인할 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 이후 군부에게 통제되어 한정된 범위 내에서의 활동만을 허용받았고, 사실상 슈리성에서 감시 받는 삶을 살게 되자 건강은 더 악화되어 갔다. 결국 잦은 입원과 투병으로 인하여 1965년 아들 타다히데에게 섭정직을 넘겼다. 이후 1968년 81세의 나이로 서거하였다.

여담

역대 사쓰마국 군주 중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1897~1968)이다. 재위기간은 자그마치 71년으로, 연호도 세이메이 원년부터 세이메이 71년까지 존재하여 사쓰마국에서의 세이메이 시대는 아주 길었으면서도 많은 변혁이 일어났던 시기로 인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