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쓰마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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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요시
(1879~1897)
타다시게
(1897~1968)
타다히데
(1968~1996)
노부히사
(1996~2018)
타다히로
(2018~)
시마즈 당주 · 미군정 · 국무총리 · 류큐 공작가

사쓰마국 제3대 국왕
타다히데 | 忠秀
출생 1912년 3월 27일
사쓰마국 슈리특별시 슈리성
사망 1996년 7월 9일 (84세)
사쓰마국 슈리특별시 왕립학습원부속병원
국적 사쓰마국 (뉴 오더) 사쓰마국
재위 사쓰마국 국왕
1968년 4월 9일 ~ 1996년 7월 9일
즉위식 1969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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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시마즈 (島津)
타다히데 (忠秀)
연호 덴쇼 (天章)
부모 부친 타다시게 국왕 (忠重), 모친 이소코 왕후 (伊楚子)
남매 남동생 아키히사 (晃久), 카네히사 (矩久), 나리노리 (斉徳)
여동생 게이코 공주 (経子)
배우자 아키코 왕후 (昭子)
자녀 2남 1녀
장남 타다타카 (忠敬) (요절)
차남·왕태자 노부히사 (修久)
신체 182cm, AB형
종교 사쓰마 신토
학력 왕립학습원 (졸업)
사쓰마 육군사관학교 (기병과 / 졸업)
류큐대학 (수산학 / 석사·박사)
병역 사쓰마군 육군 대령 (1936년 ~ 1945년)
묘소 츠네안봉 시마즈 추도공원 (常安峰島津追悼公園)

개요

타다히데 (忠秀)는 사쓰마국의 제3대 국왕이자 시마즈 왕조의 제31대 수장이다.

일생

타다시게의 장남으로 슈리 선암원에서 태어났다. 1919년 왕립학습원에 입학하였으며 대학은 1931년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하여 병과는 기병으로 졸업하였다. 1927년 부왕 타다시게에게 왕태자로 책봉받았다. 타다히데는 근위육군연대에서 견습사관으로 복무하였고 육군기병소위로 임관하였다. ​ 1936년 11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고 교관을 거치며 1938년 5월에 신설된 전투 연구소에서 청강하였고 동년 12월 육군대령으로 진급하였다. 1940년 일본 제국의 사쓰마 침공 당시에도 지휘관으로 침공 방어를 지휘하였으나 점령을 막을 수 없었고, 대신 부왕 및 내각의 신하, 임시정부와 함께 필리핀으로 몽진하여 대일본 항쟁을 지속하였다. 이 시기 타다히데는 직접 미국과 접촉하여 미국-사쓰마 동맹을 이끌어 냈으며 일본 제국의 필리핀 침공 이후에는 미국 본토로 몽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귀국하였다.

부왕 타다시게는 입원과 투병으로 인하여 1965년 아들 타다히데에게 섭정직을 넘겼고 1968년까지 타다히데가 섭정직을 수행하였다. 1968년 4월 9일 부왕의 서거와 동시에 즉위하였고 정식 즉위식은 이듬해 11월에 가졌다. 타다히데는 왕태자 시절부터 군사정권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였으며, 민주화 시위를 한 후 피신하는 학생들에게 슈리성을 개방해 간접적으로 지원하기도 하였다. 1980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8.15 이토만 봉기가 일어난 뒤 타다히데는 직접 개입하여 군사정권에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다"라는 교지를 내렸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민정이양을 촉구한 것이였으며 그 결과 1980년 이후 사쓰마국은 민주화되었다.

이후 1980년대의 사쓰마는 민주화와 경제 안정을 동시에 누리는데, 사쓰마 국민들은 이 시기를 "타다히데 낭만"이라고도 칭한다. 타다히데는 민주화 이후 입헌군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였고 군부독재 시기 왕실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친숙하고 열린 왕실"을 주도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타다히데 낭만"과 연관되어 사쓰마 국민들에게 왕실이 친숙하고 호감적인 이미지로 닿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96년 7월 9일 노환으로 서거하였다. 장남 타다타카는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기 때문에 차남 노부히사가 왕위를 물려받아 제4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여담

  • 종전 후 즉위까지의 왕태자 시절(1945~1968)에는 수산학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주로 하천의 생태계나 은어의 생태, 양식법을 연구했다. 류큐대학 대학원에도 진학하여 수산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우표를 수집하던 수집가이기도 하였으며, 우표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존재였다고 한다. 국왕 즉위 이후에도 수집 활동을 계속 했다. 사실 본인은 수집계에서는 "아키오"(安樹朗)라는 가명을 썼는데, 세계 각지의 우표 수집가들과 펜팔 친구를 하며 사용한 이름이기도 하다. 펜팔 친구들에게 자기 자신을 "수산학을 공부한 늙은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특히나 친해진 펜팔 친구에게는 귀한 우표를 갑자기 보내주며 자신의 신원을 밝혔는데, 귀한 우표가 잔뜩 붙은 타다히데의 펜팔 편지를 받고 기절초풍했다는 에피소드를 우표 수집가들 사이에서 간혹 들을 수 있었다. 현재 타다히데가 수집해 온 우표는 유언에 따라 우정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