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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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부총리 겸 제62대 외무대신 타카츠카사 미코 鷹司美子 | Takatsukasa Mik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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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2년 5월 13일 (42세) | ||||||||||||||||||||||||||||||||||||||||||||||||||||||||||||||||||||
조선성 동래부 부산시 부전동 | |||||||||||||||||||||||||||||||||||||||||||||||||||||||||||||||||||||
현직 | 대한국 내각부총리대신 대한국 외무대신 사회민주당 주석 | ||||||||||||||||||||||||||||||||||||||||||||||||||||||||||||||||||||
재임기간 | 부총리 겸 제62대 외무대신 | ||||||||||||||||||||||||||||||||||||||||||||||||||||||||||||||||||||
2023년 8월 3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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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국의 내각부총리대신 겸 62대 외무대신.
소속정당인 사민당이 45대 국선 이후 대한공산당과 함께 연정을 꾸리게 되면서 총리 유호준으로부터 외무대신에 임명되어 대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외무대신이자 최초의 비조선계 외무대신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전국구적인 인지도와 인기를 얻고 있어 점점 몰락하는 사민당 내에서 거의 유일한 스타 정치인으로 젊은 나이에도 당내 위상은 대표급 그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생애
조상
그녀 일가가 한국에 거주하게 된 연원은 증조부 타카츠카사 노부타다가 다이쇼 데모크라시 당시 사회주의 운동을 한데서 시작된다. 고조부 히로미치가 연원이 깊은 오섭가중 하나였던 타카츠카사 가문의 25대 당주이자 공작이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세력이 쓸려나가는 중에도 노부타다는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이미 일본 귀족 사회에서 눈밖에 난 상태였다. 하지만 노부타다는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끝난 뒤에도 공공연히 군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로인해 목숨의 위협까지 받게 되자 1934년 그는 가족을 이끌고 한국으로 망명하며 세조 황제로부터 산성후(山城侯)에 봉해진다. 전쟁과 난이 끝나고 나서도 노부타다 일가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부산에 남아 삶을 꾸린다. 노부타다의 손에 이끌려 함께 망명한 장남 유스케는 차남 카즈히토를 낳았고 그가 바로 미코의 아버지이다.
초년기
1983년 5월 13일, 타카츠카사 미코는 부산도급시에서 중소무역상사를 운영하는 아버지 카즈히토와 어머니 호소카와 미치코 사이에서 세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원내총무
부총리 겸 외무대신
2024년 5월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타카츠카사 부총리를 지지하는 공산당 소속 사민당 출신 의원 모임이 존재하며 이들의 존재를 의식한 유호준 총리가 차차기 총선까지 총리직을 두고 경쟁하지 않기로 타카츠카사 부총리와 신사협정을 맺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현재 내각에서 부총리의 비중은 예상보다 훨씬 큰 것이 된다. 하지만 부총리 본인은 이 보도를 부인했다.
8월 17일, 일본에 방문하여 이시오카 켄이치로 총리를 접견한 후 코다 후미오 외무상과 회담했다. 이 회담에서 한일관계의 대등 및 수평화를 선언하였으며 그간 대일외교를 담당했던 화동총독부를 2025년 연말까지 폐지하고 주일한국대사관으로 개편하기로 합의했다. 반대로 일본측에서는 주청사관[1]을 주한일본대사관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사실 이러한 조치는 1980년대 국민당 정부에서부터 추진되었지만 참전군인회와 보수파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
2024년 10월 6일, 전국순회경선이 끝난 뒤 열린 대의원회의에서 제32대 사회민주당 주석으로 선출되었다. 실질적으로 당내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것.
여담
- 조선어, 일본어, 영어, 표준화어, 프랑스어, 에스파냐어, 로시아어, 도이치어 총 8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녀의 외무대신으로써의 행보를 비판하는 쪽에서도 언어구사력에 대해서는 칭찬할 정도.
- ↑ 奏請使館. 황제께 아뢰는 사절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