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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페당




페당의 주요 전경[1]

페당(중국어: 毘燈 피덩, 광둥어: Pei3 Dang1 페이당)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이다. 국토 면적은 총 35,831 km2페당 섬콰이푸이 섬을 중심으로 하여 영토가 구성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페당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과 가까이 위치해 있다. 인구는 대략 1,140만 명이며,[2] 수도는 카이콕(啓覺), 최대 도시는 포트엘리엇(艾略特港)이다.

고대에는 서족, 백월이 정착하였고 남월에 지배를 받던 중 한무제에 의해 군현으로 편입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손권섭우를 시켜 정벌을 시도, 원주민들을 병력으로 차출했다. 그 뒤 하이난 섬처럼 유배지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송나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한족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중국 대륙의 지배 체제에서 벗어나 여러 독립적인 군벌이 난립하였는데 이를 조기 페당 시대라 하였다. 13세기 말에 남송 망명 세력이 주축이 된 후송이 전국을 통일하였으나 정화가 이끌던 명군에게 항복, 광둥성으로 편입되었다.

명나라의 멸망 이후엔 소무제와 함께 광둥성에서 반청복명을 이끌던 유세적(游世迪)이 세력을 규합해 페당 일대를 점유, 명 부흥 운동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에 청나라는 천계령을 반포하는 등 페당을 압박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수차례에 걸친 교섭 끝에 1684년 유청화의를 체결하여 반청복명 포기 및 청과의 페당 해협 공동 관리를 조건으로 조공국 지위 승낙 및 유세적을 '창해왕'(漲海王)으로 봉하였다. 그 후 페당은 남중국해 내 무역 거점이자 서양 세력을 견제하는 전초기지가 되었고, 18세기 말부터는 영국 상인의 적극적 지원 아래 아편 산업의 배후지로 지목되어 청나라 전역에 이를 유통시켰다.

19세기 중반에는 남중국해 해상에서 활동하던 해적서구 열강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1855년 영국룽아문 조약을 체결하여 사실상 보호국이 되었다. 청나라는 이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나 형식적인 조공·책봉 관계의 유지를 꾀했고 베이징 조약에 이르러서야 영국에게 종주권을 넘겼다. 영국은 페당 총독부를 설치하고 근대화를 추진해 오늘날의 포트엘리엇, 글래드스턴과 같은 유럽식 도시들을 조성하였다. 또한 중국 국내 세력의 손길이 미치기 힘들다는 점을 이용해 많은 군벌 인사와 혁명당원들이 망명해오기도 했다. 1941년 12월에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제국의 침략으로 1945년까지 군정 체제에 돌입, 성 바르톨로메오 병원 대학살를 비롯한 전쟁범죄가 자행되었다. 이에 왕실의 지원 아래 민중들은 게릴라를 조직하고 항일 투쟁에 나섰으며, 1945년 9월에 이르러 영국군과 함께 일본군을 소탕했다.

이후 영국은 탈환한 페당에 대해 기존 왕실을 폐지한 뒤 왕령식민지로 통치 체제를 개편코자 했으나 민족주의자들의 격렬히 저항에 부딪혔고, 결국 1949년 자치권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커크 청(柯克·張)과 그가 창당한 페당 민족해방연맹은 독립을 통한 국권 회복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였다. 결국 대대적인 독립 열기에 굴복한 영국은 1958년 페당의 독립을 승인했으며 이듬해 3월에 총선을 실시, 페당 민족해방연맹이 승리를 거두었다.

독립 페당의 총리가 된 커크 청은 영국과 유사한 형태의 정치 제도를 도입하려했다. 허나 이를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능종은 군사를 동원해 우국 사태를 일으켜 커크 청을 추방한 뒤[3] 페당 민족해방연맹을 해산시켰다. 이후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를 극복하고자 강력한 경제우선개발 정책을 실시했으며 영국에 도움을 받아 페당 해협에 위치한 해저 유전 개발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플랜테이션 농업 위주의 경제에서 경공업·중공업을 위시한 다각적 산업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전제 통치에 대한 불만은 지속되었고, 1976년에 레이메이 폭동이 일어났으나 이를 진압하면서 독재 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오늘날의 페당은 동남아시아, 중국, 필리핀을 잇는 항로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토대로 무역업이 성행하고 있으며, 정부의 대대적인 투자 아래 첨단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2019년부터 정치적 위기와 경제 제재 아래 놓인 홍콩을 대신해 아시아의 금융허브 자리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2021년을 기점으로 야당 탄압과 정경유착으로 분노한 국민들이 페당 민주화 운동을 일으킴에따라 향후 미래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각주

  1. 위에서부터 수도 카이콕의 야경, 성 아우구스티노 웡 성당, 태조 창해왕의 석상이다.
  2.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몽골(약 330만 명) 다음으로 적은 인구 수다.
  3. 추방된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왕실 폐지와 민주화를 주장하는 비판적 논설을 쓰면서 활동했으며 여러 반페당 단체를 이끌었다. 2015년 지병 악화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