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루공화국 미주지역 임시정부
海樓共和國美洲地域臨時政府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Saera
국기 국장
光復滅共
광복멸공
▲ 임시정부청사 위치
1956년 11월 21일 ~
국가
해루공민의 노래
정치 체제
민주공화정
국가원수
대통령 → 국가총리 → 국가의장 → 대통령
정부청사
위치
적경특별도 (명목상)
미합중국 캘리포니아주
공용연호
서력기원
통화
미국 달러, 해루 환(舊)

개요

1956년에 해루 내전의 패배로 멸망한 옛 해루 군주국의 후신을 자처하고 있는 망명 정부. 현 해루 사회주의 정권의 전복과 자유민주주의 정권의 재건을 주장하고 있다.

명목 상의 수도는 적경특별도지만 임정 측에서는 공산화 이전 지명인 황경도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정부청사는 새란타운있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하고 있다. 정부수반은 대통령으로, 현재 대통령은 2019년 임시국회에서 68.23%의 득표율로 취임한 서용만이며 여당은 자유회복당이다.

해루사회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냥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해루의 여타 민주계열 정당들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역사

해루 혁명 전쟁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승리로 공산화가 이루어진 직후 전직 정부관료, 군인들이 주축이 되어 미국, 영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여러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는데 그중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해루공산당 종식 국제연대의 주도하에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여러 임시정부 기관들을 통합시켜 1956년 11월 21일 '해루공화국 미주지역 임시정부'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초대 임시대통령에는 해루공산당 종식 국제연대의 당시 의장 박본철(朴本徹) 전 해루 군주국 국가방위군 중장으로 선출되었다.

지하조직을 운영하며 1980년대까지는 해루 국내에서 경찰서, 군사시설,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빈번한 테러를 저지르기 하는 등 해루 사회주의 정권 입장에서는 상당히 귀찮고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1987년 해루 사회주의 정권과 미국이 수교를 맺으면서 미국 정부 차원에서도 이러한 임정 활동에 제약을 걸면서 해루 국내에서의 활동도 위축되었고 1991년 2월 23일 청성자치시경찰청 테러 미수 사건을 마지막으로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2000년 해루 정치위기 시기에는 공작원 투입을 시도했으나 해루 해군해안경비대에 적발되어 모두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이 사건은 해루의 민주화를 막았다고 평가되기도 하는 사건인데 이때문에 여론에 밀려 사실상의 항복을 검토하고 있던 사회주의 정권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민주화세력을 테러범 내지는 폭도로 이미지 전환에 성공하면서 무력진압의 계기를 주었고 그 결과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몰락

2010년대에 이르러 사회주의 정권의 반감에 임시정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던 교민사회에서도 해루공화국기를 내리고 인민공화국기를 계양하는 등 임시정부에서도 항복의 목소리가 나오는 등 균열이 발생해 임정의 위세는 더 줄어든 상황이다.

2022년 1월 17일 임시대통령을 역임한 정청문(程淸文)과 박범준(朴凡濬), 내무부장관과 부대통령을 역임한 한건섭(鄭建涉)이 비밀리에 박단아 국가주석을 만나 해루사회주의인민공화국으로 전향하기로 하면서 균열이 더 심해지고 있다.

2023년 9월 1일에는 임시국회의 의원 6명과 해루공화국 통합군유현식(참모차장)·강석희(방첩국장) 장군, 심지어는 자유회복당 소속의 곽철영 국무원 총리, 김홍기 경제장관까지 거의 동시간대에 잠적하여 9월 4일 박단아를 만나 전향을 선언하면서 균열이 더 심화되었다. 이들은 모두 호국전쟁 당시 활약했던 항일영웅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8월 25일 박단아 대통령이 "조국을 위한 애국적인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념이 다르다고 멸시받아서는 안된다. 애국에 이념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현 사회주의 체제와 반대되어 공산당에 의해 탄압 당하거나 주목받지 못한 애국지사, 항일영웅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훈장 추서를 지시한 것이 이들의 전향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12월 20일 해루공화국 임시정부의 김대우 자유회복당 부대표, 국방장관 유남도, 해루공화국 통합군의 방첩국 제2과장(예산운용과) 이병국 중령이 전향을 선언하며 잠적했다. 결국 이들도 12월 25일 박단아를 만나 전향을 승인받았다.

정치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