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슈뢰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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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개요 ==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독일 (신질서의 황혼)|독일]]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독일 (신질서의 황혼)|독일]]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 상세 ==
== 생애 ==
=== 대통령 ===
[[유럽 혁명]] 이후 [[대게르만국 (신질서의 황혼)|대게르만국]]의 지도력이 독일 전역에서 붕괴한 가운데 반나치 민중혁명의 수장을 자처하며 [[1990년 독일 민주혁명]]을 벌였다. 결국 8.9 혁명으로 불리는 그 사건을 통해 나치를 타도하였고, 독일은 민주화가 된다.
[[유럽 혁명]] 이후 [[대게르만국 (신질서의 황혼)|대게르만국]]의 지도력이 독일 전역에서 붕괴한 가운데 반나치 민중혁명의 수장을 자처하며 [[1990년 독일 민주혁명]]을 벌였다. 결국 8.9 혁명으로 불리는 그 사건을 통해 나치를 타도하였고, 독일은 민주화가 된다.


이후 이루어진 대통령 선거를 통하여 사민당 소속으로 독일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슈뢰더는 지나치게 나치 잔재의 청산 및 민주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오히려 사회를 혼란에 빠트렸고 경제적 면에서 그의 처참한 무능은 독일이 90년대 내내 불황에 허덕이게 했다. 정치갈등과 나치 숙청에만 열을 쏟은 슈뢰더는 경제와 민생을 내팽개쳤다.
이후 이루어진 대통령 선거를 통하여 우파 성향의<ref>슈뢰더 정권이 나치 청산을 국시로 삼은 탓에 독일 정치를 잘 모르는 경우에 그가 사민당 소속인줄 아는 경우가 많으나, 슈뢰더는 반나치 우파였다. AFD 등장 전까지 독일 정치는 반나치 우파 vs 나치 vs 반나치 좌파의 3자 구도였다. 그의 10년 집권 이후 쿠르트 베크로 정권교체를 한게 사민당이다.</ref> 독일 국가당 소속으로 독일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슈뢰더는 지나치게 나치 잔재의 청산 및 민주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오히려 사회를 혼란에 빠트렸고 경제적 면에서 그의 처참한 무능은 독일이 90년대 내내 불황에 허덕이게 했다. 정치갈등과 나치 숙청에만 열을 쏟은 슈뢰더는 경제와 민생을 내팽개쳤다.


무엇보다 나치가 부재한 독일에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큰 임무를 부여받은 그였지만, 정작 너무나 급진적인 민주화로 각종 의견이 사회 곳곳에서 분출한 바람에 독일은 정치갈등의 온상으로 될 뿐이었으며, 슈뢰더 통치하 수년 만에 일부 독일인들은 나치의 통치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치가 부재한 독일에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큰 임무를 부여받은 그였지만, 정작 너무나 급진적인 민주화로 각종 의견이 사회 곳곳에서 분출한 바람에 독일은 정치갈등의 온상으로 될 뿐이었으며, 슈뢰더 통치하 수년 만에 일부 독일인들은 나치의 통치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통치가 독일을 외려 나치 시절보다 망쳐버리면서, 독일인들은 차라리 삶을 안정시키는 독재가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2000년대 [[독일을 위한 대안]]과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권력 장악, 그리고 그 자신이 그렇게도 이루고자 했던 독일의 민주주의가 자신의 탓에 파괴된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그의 통치가 독일을 외려 나치 시절보다 망쳐버리면서, 독일인들은 차라리 삶을 안정시키는 독재가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2000년대 [[독일을 위한 대안]]과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권력 장악, 그리고 그 자신이 그렇게도 이루고자 했던 독일의 민주주의가 자신의 탓에 파괴된 결과를 가져왔다.
=== 퇴임 후 ===


메르츠 집권 후에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몰리고 각종 불이익과 박해를 받았으며 메르츠 및 AFD의 지지자들로부터 규탄당한 탓에 독일에서 살아가지 못했고, 버티다 못해 2012년 [[베너룩스]]에 땅과 집을 사고 거처를 옮겨 그곳에 살았다.
메르츠 집권 후에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몰리고 각종 불이익과 박해를 받았으며 메르츠 및 AFD의 지지자들로부터 규탄당한 탓에 독일에서 살아가지 못했고, 버티다 못해 2012년 [[베너룩스]]에 땅과 집을 사고 거처를 옮겨 그곳에 살았다.


2018년에는 무려 5번째로 배우자를 갈아치웠는데, 상대가 조선 출신 일본인 [[미카네 시로겐]]이라 화제가 되었다. 슈뢰더는 같은 해 [[일본 (신질서의 황혼)|일본]] 정부에 일본에 체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일본은 메르츠 정권과의 관계를 생각해 껄끄러워했으나 자국민과 결혼한 이상 받지 않을수 없어 받아주었다.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 살고 있다.
2018년에는 무려 5번째로 배우자를 갈아치웠는데, 상대가 조선 출신 일본인 [[미카네 시로겐]]이라 화제가 되었다. 슈뢰더는 같은 해 [[일본 (신질서의 황혼)|일본]] 정부에 일본에 체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일본은 메르츠 정권과의 관계를 생각해 껄끄러워했으나 자국민과 결혼한 이상 받지 않을수 없어 받아주었다.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 살고 있다. 집은 도쿄와 아내의 본가가 있는 게이조에 각각 한 채씩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너룩스와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메르츠 정권에 대해 독재정권이라는 비판을 연일 이어가고 있어, 사실상 원로를 대표하는 메르츠의 정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것이 흔한 일인 독일 국가정보부조차 우방인 일본에 거주하는 그의 신변을 위협하지는 못하고 있다.


== 생애 ==
== 평가 ==
== 평가 ==
=== 독일 ===
=== 독일 ===
독일에선 국가를 망치고, 비난 좀 받았다고 비열하게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이미지가 박힌데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정권에 의해 그러한 프로파간다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미지가 매우 나쁘다. 여당인 AFD에선 대놓고 "무엇이 두려워 독일에 돌아오지 못하나"고 날을 세우며 디스를 하고 있다.
거기다 베너룩스와 일본으로 옮겨서 조용히 지내는 것도 아니라 계속해서 메르츠 정권의 독재에 대하여 비판하고 국제사회와 접촉까지 하는 등 정권으로서도 매우 거슬리는 정적이 되었다. 내부적으로는 일본인과 결혼하지만 않았어도 벌써 손을 봤을 것이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실정.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역시 슈뢰더 정권 시절의 어려웠던 민생과 심각했던 정치갈등 등의 트라우마 때문에 슈뢰더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 일본 ===
=== 일본 ===
일본에서 슈뢰더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2018년 미카네 시로겐과 결혼하고 일본에 재류 요청을 했을 때부터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이미 메르츠의 독일과 관계 개선에 한창 나서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그 정적 슈뢰더가 일본에 들어오는 것을 껄끄러워 했으나, 일본 법률상 자국민과 결혼 시엔 일본에 재류가 가능하기에 도쿄 모 호텔에서 일본 내무성과 잠깐 이루어진 비밀 접촉 끝에 일본 체류가 허용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이 슈뢰더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메르츠가 일본이 슈뢰더를 받아준 것에 대해 실망감을 표했다는 전언도 있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슈뢰더의 대외 활동, 특히 정치적 발언 등을 자제시키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프랑스 침공 시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를 "침략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독재자의 정적인 슈뢰더의 입장에서 메르츠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국가인 일본은 자신의 신변을 보장할 중요한 방패막이 되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여러가지 제한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의 인식은 일본에 사는 독일 전 대통령 정도로, 큰 접점은 없다.
=== 미국 ===
=== 미국 ===
=== 이탈리아 ===
=== 이탈리아 ===
== 선거 이력 ==
== 선거 이력 ==


==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 ==
==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 ==
== 어록 ==
== 어록 ==

2024년 5월 12일 (일) 10:10 기준 최신판

Destiny634, 2024 - | CC-0



독일국 국가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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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국 제1대 국가대통령
게르하르트 프리츠 쿠르트 슈뢰더
Gerhard Fritz Kurt Schröder | ゲルハルト·シュレーダー
출생 1944년 4월 7일 (80세)
대게르만국 리페 자유주 모센베르크
국적 대게르만국(1944~1990)
독일국(1990~)[1]
재임 기간 독일국 국가대통령
1990년 10월 24일 ~ 2000년 10월 23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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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양친
배우자 에바 슈바흐 (1968 ~ 1972)
앤 타센마허 (1972 ~ 1984)
힐트루트 함펠 (1984 ~ 1997)
도리스 쾨프 (1997 ~ 2016)
미카네 시로겐(2018 ~)[2]
그외 가족 자녀 (미공개)
종교 개신교
병역 전쟁육군 병장 만기전역 (대게르만국)
학력 아우구스트 대학 (졸업)
소속 정당 무소속
약력 독일국 국가대통령

개요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독일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생애

대통령

유럽 혁명 이후 대게르만국의 지도력이 독일 전역에서 붕괴한 가운데 반나치 민중혁명의 수장을 자처하며 1990년 독일 민주혁명을 벌였다. 결국 8.9 혁명으로 불리는 그 사건을 통해 나치를 타도하였고, 독일은 민주화가 된다.

이후 이루어진 대통령 선거를 통하여 우파 성향의[3] 독일 국가당 소속으로 독일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슈뢰더는 지나치게 나치 잔재의 청산 및 민주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오히려 사회를 혼란에 빠트렸고 경제적 면에서 그의 처참한 무능은 독일이 90년대 내내 불황에 허덕이게 했다. 정치갈등과 나치 숙청에만 열을 쏟은 슈뢰더는 경제와 민생을 내팽개쳤다.

무엇보다 나치가 부재한 독일에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큰 임무를 부여받은 그였지만, 정작 너무나 급진적인 민주화로 각종 의견이 사회 곳곳에서 분출한 바람에 독일은 정치갈등의 온상으로 될 뿐이었으며, 슈뢰더 통치하 수년 만에 일부 독일인들은 나치의 통치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통치가 독일을 외려 나치 시절보다 망쳐버리면서, 독일인들은 차라리 삶을 안정시키는 독재가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2000년대 독일을 위한 대안프리드리히 메르츠의 권력 장악, 그리고 그 자신이 그렇게도 이루고자 했던 독일의 민주주의가 자신의 탓에 파괴된 결과를 가져왔다.

퇴임 후

메르츠 집권 후에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몰리고 각종 불이익과 박해를 받았으며 메르츠 및 AFD의 지지자들로부터 규탄당한 탓에 독일에서 살아가지 못했고, 버티다 못해 2012년 베너룩스에 땅과 집을 사고 거처를 옮겨 그곳에 살았다.

2018년에는 무려 5번째로 배우자를 갈아치웠는데, 상대가 조선 출신 일본인 미카네 시로겐이라 화제가 되었다. 슈뢰더는 같은 해 일본 정부에 일본에 체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일본은 메르츠 정권과의 관계를 생각해 껄끄러워했으나 자국민과 결혼한 이상 받지 않을수 없어 받아주었다.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 살고 있다. 집은 도쿄와 아내의 본가가 있는 게이조에 각각 한 채씩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너룩스와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메르츠 정권에 대해 독재정권이라는 비판을 연일 이어가고 있어, 사실상 원로를 대표하는 메르츠의 정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것이 흔한 일인 독일 국가정보부조차 우방인 일본에 거주하는 그의 신변을 위협하지는 못하고 있다.

평가

독일

독일에선 국가를 망치고, 비난 좀 받았다고 비열하게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이미지가 박힌데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정권에 의해 그러한 프로파간다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미지가 매우 나쁘다. 여당인 AFD에선 대놓고 "무엇이 두려워 독일에 돌아오지 못하나"고 날을 세우며 디스를 하고 있다.

거기다 베너룩스와 일본으로 옮겨서 조용히 지내는 것도 아니라 계속해서 메르츠 정권의 독재에 대하여 비판하고 국제사회와 접촉까지 하는 등 정권으로서도 매우 거슬리는 정적이 되었다. 내부적으로는 일본인과 결혼하지만 않았어도 벌써 손을 봤을 것이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실정.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역시 슈뢰더 정권 시절의 어려웠던 민생과 심각했던 정치갈등 등의 트라우마 때문에 슈뢰더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일본

일본에서 슈뢰더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2018년 미카네 시로겐과 결혼하고 일본에 재류 요청을 했을 때부터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이미 메르츠의 독일과 관계 개선에 한창 나서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그 정적 슈뢰더가 일본에 들어오는 것을 껄끄러워 했으나, 일본 법률상 자국민과 결혼 시엔 일본에 재류가 가능하기에 도쿄 모 호텔에서 일본 내무성과 잠깐 이루어진 비밀 접촉 끝에 일본 체류가 허용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이 슈뢰더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메르츠가 일본이 슈뢰더를 받아준 것에 대해 실망감을 표했다는 전언도 있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슈뢰더의 대외 활동, 특히 정치적 발언 등을 자제시키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프랑스 침공 시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를 "침략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독재자의 정적인 슈뢰더의 입장에서 메르츠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국가인 일본은 자신의 신변을 보장할 중요한 방패막이 되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여러가지 제한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의 인식은 일본에 사는 독일 전 대통령 정도로, 큰 접점은 없다.

미국

이탈리아

선거 이력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

어록

  1. 2012년 이후로는 독일로 아예 들어가지 않고 있으며 영주권은 베너룩스와 일본의 것이 있다.
  2. 일본인이다. 미카네(三金)라는 성에서 알수있듯 조선계 혈통이다.
  3. 슈뢰더 정권이 나치 청산을 국시로 삼은 탓에 독일 정치를 잘 모르는 경우에 그가 사민당 소속인줄 아는 경우가 많으나, 슈뢰더는 반나치 우파였다. AFD 등장 전까지 독일 정치는 반나치 우파 vs 나치 vs 반나치 좌파의 3자 구도였다. 그의 10년 집권 이후 쿠르트 베크로 정권교체를 한게 사민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