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변화)/배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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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2일 (금) 21:0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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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대는 "만약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시즌제 대체역사물입니다.

모든 설정은 공식이자 허구임을 밝히며, 자세한 정보는 각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본 문서는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의 과정을 나타낸 하위 문서입니다.
6·29 선언을 통한 군사정권 종식

1981년 2월 25일 출범한 제5공화국은 정의사회구현과 선진조국창조 등을 내세워 제4공화국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정치적으로는 6년 연임제에서 7년 단임제로 고쳤고, 야간통행금지 폐지와 교복 자율화, 스포츠 산업 활성화 등 일명 '3S 정책'이라 불리는 유화 정책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1986년에는 최초의 아시안 게임이 열리게 되고 프로야구 또한 활성화되었다. 또 이 시기에는 '3저 호황'이라고 하는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현상이 나타나 경제적인 성장과 물가 안정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삼청교육대, 형제복지원과 같은 인권 유린과 더불어 정부의 강압적인 검열 조치가 이루어졌고, 양김으로 대표되는 재야 민주화 세력에 대한 탄압은 물론 박정희의 색채를 지우겠다는 명목으로 김종필을 부정축재 혐의로 체포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또 11대 총선에서는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등 말이 다당제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만든 관제야당들이 쏟아져 나와 의석을 나눠먹으며 12대 총선 전까지 북한과 유사한 일당 + 우당 체제로 가게 되는 상황으로 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고문 치사로 사망하면서 전 국민의 충격을 받았고, 이어 4월 13일 단행된 호헌 조치와 항쟁 전날 벌어진 이한열 학생의 죽음으로 끝내 6월 항쟁이 터지게 된다. 계속되는 전국적인 시위에 노태우는 6월 29일 특별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헌법 개정이 착수되기 시작하여 동년 10월 27일 국민투표를 통해 새 헌법이 공포되어 제5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야권 개편

재야 민주화 세력의 축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은 1987년 신한민주당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정당인 '통일민주당'을 창당한다. 당시 신한민주당은 12대 총선에서 역전승을 거두고도 이민우의 의원내각제 추진 등을 담은 구상으로 인해 양김 세력과 이철승이 이끄는 계파 간의 갈등이 있었는데 그 중 반대파인 양김 세력이 이탈하여 신당을 창당하게 된 것이다. 허나 통일민주당은 창당 과정부터 용팔이 사건이라 불리는 창당 방해 사건으로 난항에 빠지지만 6월 항쟁을 주도하여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통일민주당은 다가올 대통령 선거를 눈 앞에 둔 채 단일화 논의에 실패했고, 김영삼과 대립하던 김대중은 결국 10월 29일 자신을 따르는 계파와 함께 탈당하여 '평화민주당'이라는 신당을 창당하게 된다. 이렇게 김영삼과 김대중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재야 민주화 세력을 등에 업은 야권이 분열된 채로 대선 정국으로 향하게 된다. 한편 김종필은 정계 복귀 이후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을 계승하는 목적으로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해 충청권에서의 지지를 받게 된다.


이렇듯 3김의 정치적 행보로 인해 4개 정당이 맞붙게 될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는 그야말로 각 연고지를 통한 지역 구도의 강화가 나타나던 시기였다. 지역적으로는 노태우가 대경권, 김영삼이 PK, 김대중이 호남권, 김종필이 충청권에서 우세한 상황이었는데 김대중은 호남을 시작으로 수도권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 일명 4자 필승론을 내세운다. 이와는 별개로 김종필을 제외한 세 후보가 여의도에서 세력을 과시했으며, 수 많은 부정선거와 폭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선거 유세에 나섰다.

그러나 1987년 11월 29일, 북한의 소행으로 인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으로 판도가 뒤바뀌게 되었고, 이에 반공 여론이 다시 힘을 얻으며 노태우 후보 측에 힘이 실리게 된다. 선거 막판 북풍 효과의 영향으로 치러진 13대 대선은 노태우 후보가 36.64%로 당선되어 민주정의당은 다시금 정권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야권에서는 4자 필승론 붕괴와 충청권 보수 표 분산으로 인해 김대중, 김종필이 부진했지만, 김영삼은 PK는 물론 30%에 근접한 득표율을 얻으며 선방에 성공했다.

여러분은 지금 변화의 시대 시즌 1을 보고 계십니다. 본 세계관은 '변화의 시대'의 공식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