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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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출생했으며,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적지는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미나미구 히지야마초이다. 후미오의 가문은 히로시마를 기반으로 3대째 정치가를 배출해온 명문이다. 할아버지 마사키(正記)는 만주에서 백화점 경영, 부동산 사업 등으로 큰 부를 쌓아 이를 기반으로 중의원 의원을 지냈고 아버지인 [[기시다 후미타케]]는 상공성 관료, 정치인이었다.
1957년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출생했으며,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적지는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미나미구 히지야마초이다. 후미오의 가문은 히로시마를 기반으로 3대째 정치가를 배출해온 명문이다. 할아버지 마사키(正記)는 만주에서 백화점 경영, 부동산 사업 등으로 큰 부를 쌓아 이를 기반으로 중의원 의원을 지냈고 아버지인 [[기시다 후미타케]]는 상공성 관료, 정치인이었다.


== 생애 ==
== 성향 ==
전전임 [[아베 신조 (신질서의 황혼)|아베 신조]]의 국수주의, 민족주의 기조를 사실상 계승하고, 신냉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보를 보였다. 특히 후방 관리의 차원에서 인도차이나의 공영기구 대거 합류를 추진하는 남방정책은 아베를 이은 기시다 시대에 들어와서 성과를 거두어 대중국 포위망을 더욱 탄탄히 했다.
 
다만 아베 내각 말엽에 거의 징병제 부활까지 간다고 할 정도로 군국주의 분위기가 심화되었던 시기보다는 여러모로 온건하게 누그러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의 2049년까지의 건조계획을 세우도록 승인하고<ref>미국의 건함계획도 2049년을 종착점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에 맞불을 놓았다.</ref>, 공군의 6세대 전투기 도입에 박차를 가하며 미국과의 해상패권 싸움에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드러냈다.
 
이전부터 강화되고 있었으나 서방을 의식해 신중하게 조정하던 [[독일 (신질서의 황혼)|독일]]이나 [[이탈리아 (신질서의 황혼)|이탈리아]]와의 관계를 동맹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2022년 프랑스 침공에서 이를 암묵적 지지했으며 2024년 5월의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방일에서는 2025년 일독이 3국을 비롯한 제2세계 국가들의 반서방 통합기구 창설을 논의하면서 박차를 가했다.
 
경제적으로는 실패했다는 평을 받는다. [[2019년 일미 무역전쟁]]은 기시다가 턴을 넘겨받았을때 이미 일본의 타격이 더욱 컸기 때문에 사실상 패배를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으로 내수시장 활성화와 그를 통한 대미 도전을 위하여 엔저정책을 단행했지만 국민의 후생이 아베 시절보다 전반적으로 나빠지늠 결과를 낳게 되면서 결정적으로 지지율이 폭락했다.


== 소속 정당 ==
== 소속 정당 ==

2024년 6월 17일 (월) 23:21 판

틀:신질서의 황혼

틀:역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신질서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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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제75-76대 내각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岸田文雄 | Kishida Fumio
출생 1957년 7월 29일 (66세)
대일본제국 도쿄도 시부야구
국적 일본
현직 대일본제국 내각총리대신
자유민주당 총재
재임 기간 제75대 내각총리대신
2021년 10월 4일 ~ 2021년 11월 10일
제76대 내각총리대신
2021년 11월 10일 ~ 현직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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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기시다 후미타케, 어머니 기시다 스미코
배우자 기시다 유코
자녀 장남 기시다 쇼타로

차남 기시다 고시로

신체 173cm, 65kg, AB형
종교 무종교
학력 지요다구립 나가타초 초등학교 (졸업)

지요다구립 고지마치 중학교 (졸업)

카이세이 고등학교 (졸업)

와세다대학 법학부 (법학 / 학사)

병역 제2국민역
지역구 히로시마현 제1구
의원 선수 11 (중)
의원 대수 40, 41,42, 43, 44, 45 46, 47, 48, 49, 50
소속 정당
파벌 무파벌
약력

개요

일본의 정치인이며 현직 내각총리대신. 2021년 10월부터 재임 중에 있다.

생애

1957년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출생했으며,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적지는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미나미구 히지야마초이다. 후미오의 가문은 히로시마를 기반으로 3대째 정치가를 배출해온 명문이다. 할아버지 마사키(正記)는 만주에서 백화점 경영, 부동산 사업 등으로 큰 부를 쌓아 이를 기반으로 중의원 의원을 지냈고 아버지인 기시다 후미타케는 상공성 관료, 정치인이었다.

성향

전전임 아베 신조의 국수주의, 민족주의 기조를 사실상 계승하고, 신냉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보를 보였다. 특히 후방 관리의 차원에서 인도차이나의 공영기구 대거 합류를 추진하는 남방정책은 아베를 이은 기시다 시대에 들어와서 성과를 거두어 대중국 포위망을 더욱 탄탄히 했다.

다만 아베 내각 말엽에 거의 징병제 부활까지 간다고 할 정도로 군국주의 분위기가 심화되었던 시기보다는 여러모로 온건하게 누그러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의 2049년까지의 건조계획을 세우도록 승인하고[1], 공군의 6세대 전투기 도입에 박차를 가하며 미국과의 해상패권 싸움에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드러냈다.

이전부터 강화되고 있었으나 서방을 의식해 신중하게 조정하던 독일이나 이탈리아와의 관계를 동맹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2022년 프랑스 침공에서 이를 암묵적 지지했으며 2024년 5월의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방일에서는 2025년 일독이 3국을 비롯한 제2세계 국가들의 반서방 통합기구 창설을 논의하면서 박차를 가했다.

경제적으로는 실패했다는 평을 받는다. 2019년 일미 무역전쟁은 기시다가 턴을 넘겨받았을때 이미 일본의 타격이 더욱 컸기 때문에 사실상 패배를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으로 내수시장 활성화와 그를 통한 대미 도전을 위하여 엔저정책을 단행했지만 국민의 후생이 아베 시절보다 전반적으로 나빠지늠 결과를 낳게 되면서 결정적으로 지지율이 폭락했다.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일본자유당 1994 - 1997 정계 입문
1997 - 현재 합당
  1. 미국의 건함계획도 2049년을 종착점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에 맞불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