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덴부르크-마운트리기온 가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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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문장은 위쪽의 밝은 태양을 상징하는 금색 배경의 방패와 땅과 굳은 뜻을 상징하는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검은 선, 그 아래의 숙고하며 인내함을 상징하는 푸른 방패가 있으며 금색 방패배경엔 가문의 조상봉지인 몬테리조니 성이, 가장 아래의 파란색 배경 방패엔 상업을 업으로 삼던 가문이었던 흔적으로 수레바퀴 3개가 있다. 수레바퀴 3개는 피렌체, 피아렌차, 밀라노로 도망다녀야 했던 역사를 상징한다.
오른쪽 문장은 위쪽의 밝은 태양을 상징하는 금색 배경의 방패와 땅과 굳은 뜻을 상징하는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검은 선, 그 아래의 숙고하며 인내함을 상징하는 푸른 방패가 있으며 금색 방패배경엔 가문의 조상봉지인 몬테리조니 성이, 가장 아래의 파란색 배경 방패엔 상업을 업으로 삼던 가문이었던 흔적으로 수레바퀴 3개가 있다. 수레바퀴 3개는 피렌체, 피아렌차, 밀라노로 도망다녀야 했던 역사를 상징한다.
== 역사 ==
이탈리아의 도시인 피렌체의 외각에서 대장장이를 생업으로 삼았던 집안인 리조니(Rigioni) 가문이 본가이다. 리조니 가문은 시조인 발데마로 리조니(Valdemaro Rigioni)를 시조로 한다. 발데마로 리조니는 대장장이 길드의 장이었고 재산을 아들 둘에게 나누어 줬는데, 첫째에 대한 기록은 없다. 둘쨰인 중시조 파비오 리조니(Fabio Rigioni)는 갑옷공장을 밑천으로 금융업 가문으로 성장시켰다.
이후 르네상스의 꽃인 시기에 활동한 안드레아 리조니(Andrea Rigioni) 등이 있다. 안드레아 리조니 대엔 엄연한 도시귀족이 되었고 같은 도시귀족인 파치가문의 음모와 몰락, 그리고 메디치 가문의 몰락 이후 마지막 피렌체 공화정의 시뇨리아 체제를 향유하며 몬테리조니를 소유하는 등, 17세기 최전성기를 즐긴 가문이 되었다.
몬테리조니 가문은 안드레아 리조니의 증손인 아드리아노 리조니의 아들 파브리지오 리조니의 둘째 아들 페데리코 몬테리조니 대에 분가하는데, 이때 리조니 가문의 봉지였던 피렌체 근교의 언덕 위에 있는 요새이자 작은 마을인 몬테리조니를 1480년경 상속했고 이때 분가하여 몬테리조니(Monterizzoni)가 되었다.
1498년 피렌체 공화국 정부가 전복되고, 몬테리조니 성을 다시 도시정부로 귀속하고자 음모를 꾸려, 이단혐의로 교회법정에서 이단이라 선언되었고, 공격당하였고 결국 알렉산데르 6세에 의해 파문되어 몬테리조니의 당주였던 페데리코 리조니의 첫째 아들 세르지오 몬테리조니는 1950년 교수형 후 화형당하였고 둘째 아들인 알프레도 몬테리조니는 생존하여 피아렌차로 추방되었다. 셋째 아들인 니콜라스 리조니는 무역에 종사해 도시귀족으로 남아있었으나 생매장 당하여 무덤을 찾을 수 없다.
피아렌차로 피렌체 공화국 정부에 의해 추방된 알프레도 몬테리조니는 계속해서 밀라노까지 전전하다가 열병으로 죽었고, 그의 장자인 살바토레 몬테리조니는 본가였던 리조니 가문의 적선으로 여비를 받아 독일로 넘어간다. 뮌헨에서 한자동맹에 참여하며 중심지로 부상한 울덴부르크로 금융업에 뛰어들고자 이사하였고 그곳에서 처음엔 도시정부에 기용되어 세리로 일했고, 이후 금융업에 참여하며 도시에 기반을 둘 수 있었다. 이후 몬테리조니 가문은 정략결혼을 통해 올덴부르크 대공국의 본가였던 올덴부르크 가문의 4번째 딸과 결혼해 이름값을 올렸다. 다만 울덴부르크 대공국의 통치가문은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이었기에 유효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도시의회에서 자기이름정돈 올릴 정도가 된 것이다.


이후 북독일 연방에 가담하는데 찬성표를 던지며 정부의 환심을 샀고, 북독일 연방을 추진하는데 동조하고 투기하며, 독일제국이 세워질때 몬테리조니의 땅이 봉지라는 어거지 주장이 먹혀서 남작작위를 받아냈다. 당시 독일정부는 작위를 좀 뿌리며 재정을 채우고자 하였기 때문에 이에 편승했다고 볼 수 있다.1914년 제1차 세계대전때 징병을 피하기 위해 뇌물을 썻고, 군수산업에 뛰어들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패전할거같다는 정보가 극비로 돌았고, 재산을 처분하며 현금화해 스위스에 보내놓은 융커계급의 마르첼로 리조니는 제1차 세계대전이 패배하자 가족을 데리고 독일을 버린채 스위스로 피신한다. 이후 제2차세계대전동안 스위스에 징병되는 일도 있었으나, 큰 문제 없이 전쟁을 마칠 수 있었다. 오히려 영국의 전쟁채권으로 나름의 배팅에 성공한 편이었다. 마르첼로 몬테리조니는 2남 1녀를 두었고 장남이었던 세르오지오 몬테리조니는 외동 테오필리스를 낳았다.
== 역대 국왕 ==
== 역대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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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이탈리아의 도시인 피렌체의 외각에서 대장장이를 생업으로 삼았던 집안인 리조니(Rigioni) 가문이 본가이다. 리조니 가문은 시조인 발데마로 리조니(Valdemaro Rigioni)를 시조로 한다. 발데마로 리조니는 대장장이 길드의 장이었고 재산을 아들 둘에게 나누어 줬는데, 첫째에 대한 기록은 없다. 둘쨰인 중시조 파비오 리조니(Fabio Rigioni)는 갑옷공장을 밑천으로 금융업 가문으로 성장시켰다.
이후 르네상스의 꽃인 시기에 활동한 안드레아 리조니(Andrea Rigioni) 등이 있다. 안드레아 리조니 대엔 엄연한 도시귀족이 되었고 같은 도시귀족인 파치가문의 음모와 몰락, 그리고 메디치 가문의 몰락 이후 마지막 피렌체 공화정의 시뇨리아 체제를 향유하며 몬테리조니를 소유하는 등, 17세기 최전성기를 즐긴 가문이 되었다.
몬테리조니 가문은 안드레아 리조니의 증손인 아드리아노 리조니의 아들 파브리지오 리조니의 둘째 아들 페데리코 몬테리조니 대에 분가하는데, 이때 리조니 가문의 봉지였던 피렌체 근교의 언덕 위에 있는 요새이자 작은 마을인 몬테리조니를 1480년경 상속했고 이때 분가하여 몬테리조니(Monterizzoni)가 되었다.
1498년 피렌체 공화국 정부가 전복되고, 몬테리조니 성을 다시 도시정부로 귀속하고자 음모를 꾸려, 이단혐의로 교회법정에서 이단이라 선언되었고, 공격당하였고 결국 알렉산데르 6세에 의해 파문되어 몬테리조니의 당주였던 페데리코 리조니의 첫째 아들 세르지오 몬테리조니는 1950년 교수형 후 화형당하였고 둘째 아들인 알프레도 몬테리조니는 생존하여 피아렌차로 추방되었다. 셋째 아들인 니콜라스 리조니는 무역에 종사해 도시귀족으로 남아있었으나 생매장 당하여 무덤을 찾을 수 없다.
피아렌차로 피렌체 공화국 정부에 의해 추방된 알프레도 몬테리조니는 계속해서 밀라노까지 전전하다가 열병으로 죽었고, 그의 장자인 살바토레 몬테리조니는 본가였던 리조니 가문의 적선으로 여비를 받아 독일로 넘어간다. 뮌헨에서 한자동맹에 참여하며 중심지로 부상한 울덴부르크로 금융업에 뛰어들고자 이사하였고 그곳에서 처음엔 도시정부에 기용되어 세리로 일했고, 이후 금융업에 참여하며 도시에 기반을 둘 수 있었다. 이후 몬테리조니 가문은 정략결혼을 통해 올덴부르크 대공국의 본가였던 올덴부르크 가문의 4번째 딸과 결혼해 이름값을 올렸다. 다만 울덴부르크 대공국의 통치가문은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이었기에 유효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도시의회에서 자기이름정돈 올릴 정도가 된 것이다.
이후 북독일 연방에 가담하는데 찬성표를 던지며 정부의 환심을 샀고, 북독일 연방을 추진하는데 동조하고 투기하며, 독일제국이 세워질때 몬테리조니의 땅이 봉지라는 어거지 주장이 먹혀서 남작작위를 받아냈다. 당시 독일정부는 작위를 좀 뿌리며 재정을 채우고자 하였기 때문에 이에 편승했다고 볼 수 있다.1914년 제1차 세계대전때 징병을 피하기 위해 뇌물을 썻고, 군수산업에 뛰어들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패전할거같다는 정보가 극비로 돌았고, 재산을 처분하며 현금화해 스위스에 보내놓은 융커계급의 마르첼로 리조니는 제1차 세계대전이 패배하자 가족을 데리고 독일을 버린채 스위스로 피신한다. 이후 제2차세계대전동안 스위스에 징병되는 일도 있었으나, 큰 문제 없이 전쟁을 마칠 수 있었다. 오히려 영국의 전쟁채권으로 나름의 배팅에 성공한 편이었다. 마르첼로 몬테리조니는 2남 1녀를 두었고 장남이었던 세르오지오 몬테리조니는 외동 테오필리스를 낳았다.


== 각주 ==
== 각주 ==

2025년 3월 14일 (금) 01:3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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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덴부르크-몬테리조니 가문
Familien Oldenburg-Monterizzoni
Familjen Oldenburg-Monterizzoni
국가 노르웨이 왕국, 스웨덴 대공국
창립 1562년
창립자 살바토레 울덴부르크-몬테리조니
당주 테오필리스 울덴부르크-몬테리조니
통치자 테오필리스 연합왕국의 왕
작위 노르웨이인의 왕
노르웨이인의 여왕
스웨덴인의 왕
스웨덴인의 여왕
어원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시에나 몬테리조니 성
본가 몬테리조니 가문 (멸문)


연합왕국의 왕 문장
노르웨이의 왕 문장 스웨덴의 왕 문장

개요

몬테리조니-울덴부르크 가문은(노르웨이어:Familien Oldenburg-Monterizzoni, 스웨덴어:Familjen Oldenburg-Monterizzoni )는 노르웨이스웨덴의 연합왕국인 연합왕국 왕실의 왕실 가문이다. 노르웨이의 왕실의 가문으로는 글뤽스부르크 왕조, 울덴부르크 왕조에 이은 세번째 가문이다.

울덴부르크 가문의 방계 가문으로, 왕실추밀원의 선출에 의해 왕위를 계승하였으며, 스웨덴 왕위를 얻어 첫번째 연합왕국 왕실의 가문이 되었다.

문장

왼쪽의 울덴부르크 가문의 문장과 오른쪽 몬테리조니 가문의 문장이 합쳐진 문장을 쓰며, 주문장은 오른쪽의 몬테리조니 가문의 문장이다.

오른쪽 문장은 위쪽의 밝은 태양을 상징하는 금색 배경의 방패와 땅과 굳은 뜻을 상징하는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검은 선, 그 아래의 숙고하며 인내함을 상징하는 푸른 방패가 있으며 금색 방패배경엔 가문의 조상봉지인 몬테리조니 성이, 가장 아래의 파란색 배경 방패엔 상업을 업으로 삼던 가문이었던 흔적으로 수레바퀴 3개가 있다. 수레바퀴 3개는 피렌체, 피아렌차, 밀라노로 도망다녀야 했던 역사를 상징한다.

역사

이탈리아의 도시인 피렌체의 외각에서 대장장이를 생업으로 삼았던 집안인 리조니(Rigioni) 가문이 본가이다. 리조니 가문은 시조인 발데마로 리조니(Valdemaro Rigioni)를 시조로 한다. 발데마로 리조니는 대장장이 길드의 장이었고 재산을 아들 둘에게 나누어 줬는데, 첫째에 대한 기록은 없다. 둘쨰인 중시조 파비오 리조니(Fabio Rigioni)는 갑옷공장을 밑천으로 금융업 가문으로 성장시켰다.

이후 르네상스의 꽃인 시기에 활동한 안드레아 리조니(Andrea Rigioni) 등이 있다. 안드레아 리조니 대엔 엄연한 도시귀족이 되었고 같은 도시귀족인 파치가문의 음모와 몰락, 그리고 메디치 가문의 몰락 이후 마지막 피렌체 공화정의 시뇨리아 체제를 향유하며 몬테리조니를 소유하는 등, 17세기 최전성기를 즐긴 가문이 되었다.

몬테리조니 가문은 안드레아 리조니의 증손인 아드리아노 리조니의 아들 파브리지오 리조니의 둘째 아들 페데리코 몬테리조니 대에 분가하는데, 이때 리조니 가문의 봉지였던 피렌체 근교의 언덕 위에 있는 요새이자 작은 마을인 몬테리조니를 1480년경 상속했고 이때 분가하여 몬테리조니(Monterizzoni)가 되었다.

1498년 피렌체 공화국 정부가 전복되고, 몬테리조니 성을 다시 도시정부로 귀속하고자 음모를 꾸려, 이단혐의로 교회법정에서 이단이라 선언되었고, 공격당하였고 결국 알렉산데르 6세에 의해 파문되어 몬테리조니의 당주였던 페데리코 리조니의 첫째 아들 세르지오 몬테리조니는 1950년 교수형 후 화형당하였고 둘째 아들인 알프레도 몬테리조니는 생존하여 피아렌차로 추방되었다. 셋째 아들인 니콜라스 리조니는 무역에 종사해 도시귀족으로 남아있었으나 생매장 당하여 무덤을 찾을 수 없다.

피아렌차로 피렌체 공화국 정부에 의해 추방된 알프레도 몬테리조니는 계속해서 밀라노까지 전전하다가 열병으로 죽었고, 그의 장자인 살바토레 몬테리조니는 본가였던 리조니 가문의 적선으로 여비를 받아 독일로 넘어간다. 뮌헨에서 한자동맹에 참여하며 중심지로 부상한 울덴부르크로 금융업에 뛰어들고자 이사하였고 그곳에서 처음엔 도시정부에 기용되어 세리로 일했고, 이후 금융업에 참여하며 도시에 기반을 둘 수 있었다. 이후 몬테리조니 가문은 정략결혼을 통해 올덴부르크 대공국의 본가였던 올덴부르크 가문의 4번째 딸과 결혼해 이름값을 올렸다. 다만 울덴부르크 대공국의 통치가문은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이었기에 유효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도시의회에서 자기이름정돈 올릴 정도가 된 것이다.

이후 북독일 연방에 가담하는데 찬성표를 던지며 정부의 환심을 샀고, 북독일 연방을 추진하는데 동조하고 투기하며, 독일제국이 세워질때 몬테리조니의 땅이 봉지라는 어거지 주장이 먹혀서 남작작위를 받아냈다. 당시 독일정부는 작위를 좀 뿌리며 재정을 채우고자 하였기 때문에 이에 편승했다고 볼 수 있다.1914년 제1차 세계대전때 징병을 피하기 위해 뇌물을 썻고, 군수산업에 뛰어들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패전할거같다는 정보가 극비로 돌았고, 재산을 처분하며 현금화해 스위스에 보내놓은 융커계급의 마르첼로 리조니는 제1차 세계대전이 패배하자 가족을 데리고 독일을 버린채 스위스로 피신한다. 이후 제2차세계대전동안 스위스에 징병되는 일도 있었으나, 큰 문제 없이 전쟁을 마칠 수 있었다. 오히려 영국의 전쟁채권으로 나름의 배팅에 성공한 편이었다. 마르첼로 몬테리조니는 2남 1녀를 두었고 장남이었던 세르오지오 몬테리조니는 외동 테오필리스를 낳았다.

역대 국왕


연합왕국 왕실
이름 재위 기간 권리 비고
초대
테오필리스
Theophilis | Teofilis
ink=이희철}1000px
2025년 1월 22일 ~ 현재 노르웨이와 스웨덴 양국의 추대
노르웨이 왕국 법률 제136호
[1]

각주

  1. 노르웨이 제13대 국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