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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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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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3대 황제 광종 열황제 | 光宗 烈皇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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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 광종(光宗) | |||
시호 | 통천무정평이막순도강사직선력탕경곤정열황제 (統天武正平夷幕順度康使直宣曆湯敬坤定烈皇帝) | |||
칸호 | ᠣᠩᠭᠣᠨ ᠠᠭᠤᠵᠢᠮ 온곤 우짐 | |||
출생 | 1849년 8월 13일 | |||
조선 한성부 창경궁 경춘전 | ||||
사망 | 1927년 12월 2일 (78세) | |||
대한국 한성부 창경궁 환경전 | ||||
능묘 | 건릉(乾陵) | |||
재위 | 대한국 황태자 | |||
1877년 2월 10일 ~ 1890년 2월 2일 | ||||
대한국 황제 | ||||
1890년 2월 3일 ~ 1920년 12월 31일 | ||||
대한국 태상황 | ||||
1921년 1월 1일 ~ 1927년 12월 2일 | ||||
연호 | 건안(建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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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원건성세 元建盛世 |
대한국 제3대 황제. 묘호는 광종(), 시호는 열황제().
뛰어난 통치력을 통해 선황의 유산을 잘 물려받아 한국을 팽창, 제국의 길로 이끌었다. 이 시기 한국은 청나라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통해 서구 열강들을 제치고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의 배타적 영향력을 확인하였으며 한러전쟁에서 승리하는 등 본격적인 열강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울러 인구와 자원, 새로 얻은 광활한 영토를 기반으로 국력을 크게 신장시키고 유능한 수상들을 발굴하는 등 번영의 시기를 열었다.
하지만 통치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점점 쌓여가는 국민들의 불만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을 탄압하고 억제하는 정치를 편 폭군의 일면도 있었으며 1910년대 후반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음에도 권력을 내려놓는 것에 대해 명시하지 않아 태자와 수상간의 미묘한 권력 다툼이 일어나는 등국가 운영 체계가 조금씩 망가져가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이렇게 쌓인 국가적 모순은 12.10 운동으로 폭발해 한국의 존망이 걸린 사건으로 비화하였으며 황제 자신은 사건에 대해 전혀 통제하지 못한채 무방비한 상태로 있다가 뒤늦게 태자에게 양위하고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