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우휠 7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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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라이프니츠의 공기와는 사뭇 달랐다. 그게 실제로 차이가 있는건지는 몰라도 아렌에게는 분명히 다르게 느껴진다.
"누나!"


눈을 살며시 감고 지난 일을 기억해보라면, 아렌에게는 편한 선택지가 없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라는 독재자의 명령과, 전쟁을 해선 안된다고 말하는 늙은 사령관의 상반된 주장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 뿐이다.
"왜?"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자그마한 아렌의 동생들은 마당을 뛰어다니다, 양우산 아래에서 쉬고있는 아렌에게 묻는다.


반델의 목소리였다. 반델은 군복이 아니라 편한 셔츠 차림으로 나와있었다. 아렌은 자연스레 헤어젤을 바르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에 눈이 갔다.
"누나는 왜 안놀아? 빨리 와!"


"그냥 산책이지. 이런 모습은 또 처음보네"
"그래! 같이 놀아!"


"방금 막 일어났습니다. 나와보니 방에 안계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됐어~ 힘들어~~"


이제보면 아렌이 어딜가든 정말 꼭 달라붙어있다.
아렌은 그렇게 말하며 책을 주섬주섬 만졌다. 그럼에도 그 동생들은 계속 아렌에게 같이 놀자고 졸랐다. 동생들은 누나를 일으키기 위해 간지럽히기도 하고, 신발을 뺏어가기도 하고 장난쳤다. 아렌은 간지럽힘을 당해서 마구 웃고, 들에서는 풀내음이 물씬 풍겼다. 주변에 있는 어른들은 자신들을 보며 흡족하게 웃고 있었고, 등지고 있는 저택은 크고 높고, 하얗고 아름다웠다.


"근무시간이 정해져있긴 한거야?"
그러다 한 동생이, 하늘을 바라보는 아렌에게 다가와 묻는다.


아렌은 슬슬 떨어지질 않는 반델이 질릴 지경이다.
"근데 누나"


"그럼 3일 차에 휴가라도 가야겠습니까. 저도 지금 쉬고있는 겁니다."
"응?"


반델은 그렇게 말하고는 옆구리에 낀 외투를 입고 슬며시 시계를 보았다.
"누나는 혼자 살아서 행복해?"


"참 오늘 10시에는 맥거만 중사에게 다녀와야 합니다. 장비도 받아야하고, 그리고..."
그리고 동생들은 어디선가 쏘는 총에 맞아 모두 쓰러지고, 자신은 움직이지도 못한 채 몸이 굳어,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 하는 거 맞구만..' 아렌은 속으로 생각했다.
----
아렌은 선잠에서 깨어난다. 그다지 놀랄 필요도 없다. 그건 꿈이다. 오래 지난 과거고, 잊을 순 없지만 무뎌진 일이다. 오히려 너무 익숙하고 뻔하다며 헛웃음이 나온다. 꿈이 자신을 괴롭힌다라. 아렌은 세상에 귀신따위 없다고 생각했다. 다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그래 말하자면 상처같은 거다. 과거에 입은 상처가 덧나서, 계속 자신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가족은 가족인지, 그렇게 악몽을 꾼 자신보다는 혹시나 무슨 일은 없을지 동생인 워렛에게 더 걱정이 들었다.
 
"피곤하다고 하시더니, 고작 1시간 주무셨습니다."
 
먼발치의 의자에 반델이 앉아있었다.
 
"아. 안좋은 꿈을 꿔서, 그냥.."
 
아렌은 소파에서 일어나 군복의 옷맵시를 정돈했다.
 
"소령, 내가 감히 물어봐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뭘 말입니까?"<br> 반델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령의 동생은 어떤 사람이었어?"
 
"...모르겠습니다. 너무 어릴 때라서"
 
"그런가. 그래."
 
"혹시 동생분이 걱정되십니까?"
 
"응? 아무래도 그렇지."
 
워렛이 그렇게 똑뿌러진 사람도 아니었고, 누나인 아렌이 보기에는 한참 못미더운 면도 있었다.
 
"그래도 [[호소니]]에서 승리하면 다시 본국으로...."
 
아렌은 호소니라는 말을 꺼내다, 불과 3시간 전 [[세그넌]] 영감탱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총통놈. 뭔가 계획하고있어. 나 뿐만이 아니야. 마법사들을 죄다 호소니로.."''
 
마법사들을 왜? 죄다 그렇게 죽여놓고.. 이제와서 그들을?
 
왜?
 
"호소니에서 승리하면.. 세계는 많이 바뀌어있겠죠."
 
반델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한다.
 
"글쎄. 그건 나랑 좀 생각이 다른 걸"
 
"그렇습니까?"
 
아렌은 마지막으로 군모를 눌러쓰고 문 밖으로 나선다. 이곳은 비공정 착륙장 인근으로, 명목상 야전사령관인 아렌 중장의 거처였다. 비공정은 오전에 착륙한 후 지금도 쉼없이 물자를 정리하고 있고, 더 중요한 물자와 인력은 비공정이 아니라 약 이틀 후 거대한 선박으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그러니 비공정에서 그 한바탕을 벌인 뒤 그나마 쉬는 시간이 생겼다.
 
"중장님. 곧 세그먼트 소장님께서 도착하시면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세그먼트 소장님께서.. 임관식도 없는 주먹구구식 인사에 잔뜩 화가 나셨을 텐데"
 
"그건 아리따운 중장님의 사회생활에 달려있습니다."
 
"뭐 옆에서 템버린이라도 치라는거야?"


"미리 말씀은 안드렸지만 오늘 동생분이 정기선을 타고 오실 예정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다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워렛이?"
"그래. 필요하면 그래야지. 이 전쟁을 끝내야 하니까."


아렌은 고작 이틀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동생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제 생각에도 지원병력이 급파된 지금, 속전속결로 진행해야 맞다고 봅니다."


"잘됐네. 할 얘기가 많은데"
"옳지. 지휘는 반델이 해주면 되겠네"


정말, 정말 너무 많았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할지 모를 정도로.
"?"


"그럼 준비하고 나오겠습니다."
반델이 처음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
"농담.. 참, 그럼 동생 소식은 어디서 접할 수 있지?"
 
"그건... 좀 번거롭더라도 전보<ref>전류, 전파를 사용해 약속된 기호를 통해 정보를 보내는 통신체계를 가리키는 통신용어</ref>가 와야 알 수 있습니다."
 
아렌이 동생을 만나지 못한지도 어느새 나흘이다. 복잡한 일이 많았다지만 서로 이렇게 떨어지는 기회가 흔치는 않다.
 
"그럼 연락이 왔는지 확인 부탁해."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반델이 자리를 떠났다.
 
아렌은 혼자 무기박스 위에 앉아서 하늘을 보았다.
 
"그냥 이렇게 평화로워도 좋을 텐데."
 
곧 3대의 차량이 줄을 지어서 비공정 착륙장으로 들어왔고, 그곳에서 호소니 전선의 장교들과 그들의 대장 격인 '레이먼트 소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역시는 역시 심기 불편한 표정이었다.
 
"하나의 눈을 위하여, 레이먼트 소장님을 뵙습니다."
 
"천개의 창으로서, 아렌 중장님을 뵙니다."
 
레이먼트 소장은 굉장히 나이가 많았고, 작은 안경을 쓴 마른 남성이었다. 기력이 쇄해보이는 그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강인한 사람이었고, 이 호소니 전장에서 자그마치 5년이나 있던 최고참이다. 5년 동안 3번이나 사령관이 바뀐 것에 반해, 레이먼트는 계속 그 자리를 지켰으므로 사실상 그는 실질적인 전장의 책임자였다.
 
"1년만에 뵙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초면도 아니다. 아렌 자신도 '기본적으론' 호소니 전장의 후방참모이니.
 
"중장님이 되어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아렌 경"
 
소장은 나름 예의를 지켜가며 대화했지만 불편한 신경과 삭막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자신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다는 건 아렌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할 이야기가 많은데, 우선 안에서 이야기합시다."
 
"알겠습니다."
 
여러 사람의 뚜렷한 구두 소리가 작은 건물 안을 메운다. 호소니는 본국보다는 해양성 기후가 강했고, 조금 더 습했다.
 
"중장께서 이런 곳을 견디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장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소장님께서는 5년이나 견디셨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참..."<br>
소장이 고개를 반댓방향으로 돌려 한숨을 쉬었다.


''ㅡ 그로부터 사흘 전, ''
인수인계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전실에 모인 이들은 지도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였고, 소장은 익숙하게 지휘대<ref>지도를 표시하도록 가르키는 기다란 봉</ref>으로 이리저리를 표시하며 현황을 알렸다. 덕분에 아렌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급망이 완전히 엉망인 것, 사기도 부족하다는 현실, 전쟁에 대한 의지 상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장교들도 알고있다는 점이다.


열차는 어둠 속을 달렸다. 그리고 워렛은 요동치는 기차 안에서 생각의 미로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렇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나를 불사로 만들어주게'
소장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어깨를 까닥였다. 마치 '이 문제를 네가 풀 수 있을 것 같냐?' 라는 느낌의 표현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당장은 말이다. 은근히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도 그랬지만, 어차피 기싸움을 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


총통은 자신의 생명줄을 거머쥐고 있다. 단지 자신뿐만 아니라, 누나와, 자신을 돕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나 그를 불사로 만든다면 그에 비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감히 자신이 함부로 선택할 수 있을까. 내가 살기 위해서 남들을 희생시킬 수 있을까. 둘 중 하나다. 희생이냐, 희생시키냐.
"각하께서 추가 병력을 파병해주시면 전황이 나아질 겁니다."


고작 내 자신이 뭘 할 수 있을까.
"아무렴,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느새 새벽열차는 동부 끝자락의 도시에 도착했고, 워렛은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한 짐을 챙기고 나와 승강장에 도착했다. 그래 우선, 당장의 일을 해야했다.
됐다. 아렌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워렛 경. 여깁니다."
"나머진 내일 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워렛에게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청아한 목소리의 소유자는 워렛의 오랜 동료, [[그로우휠/시안|시안]]이다. 그녀는 일찍이 남매의 직속 행정직원이었다. 두 사람은 익숙한 눈인사를 마치고 함께 역을 빠져나와 사무실로 함께 걸어갔다.  
레이먼트 자신도 수통에서 물을 한 잔 마시고는 회의장에서 빠져나갈 채비를 한다. 그렇지만 아렌은 보내줄 생각이 없다.


"타스베냐<ref>이 도시의 이름</ref>에는 오랜만에 오셨네요."
"레이먼트 소장님. 뭔가 저에게 불찰이 있습니까?"


"음 뭐. 요르문<ref>워렛이 방금 전까지 타고온 수도 로베니움을 왕복하는 열차</ref>을 타도 오래 걸리니까."
그녀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단도직입적이었다. 총통의 앞에서 감히 그의 주장에 제동을 걸었듯. 아까부터 무언가 찜찜한 소장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당장 그것을 알아내고자 했다.


"특별한 소식을 받았는데, 아렌 경이 호소니의 야전사령관이 되셨다던데요."
"이야기해도 이해 못하실 겁니다. 중장."


"... <small>사고지</small>"
"뭘 말입니까?"


워렛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들어가시죠."
마치 이제서야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하려는 생각같았다. 왜? 굳이 다른 장교들도 전부 자리를 비웠는데.


시안과 워렛은 시내에 있는 어느 건물로 들어갔다. 경비원과 눈인사를 한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고, 어느 방에서 한 번 더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그러자 비밀공간처럼 보이는 벽면 문을 밀어, 그들의 본거지에 도착했다. 좀 부실해보이지만 지하 공간에는 제법 전등도 잘 들어왔고, 벽면도 콘크리트도 잘 마감되어 있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중장은 현지 상황을 전혀 모릅니다."


이곳은 [[라이프니츠]]가 제국일 시절부터 있던 이레프 가문의 공간이자, 이제는 마지막 남은 왕실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보금자리였다.
"저도 제가 모른다. 무지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녔고, 모두들 워렛을 알아보고는 인사했다.
"그런 알고 모르는 지식의 개념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해입니다."


"아까부터 반응도 그렇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거에요? 갑자기 사령관이라니?"
"이해?"


온아하고 단정하게 행동하던 시안은 내부에 들어오자 행동을 바꿔 과격하게 말했다.
"당신은 총통의 사람입니까?"


"일단 이해가 되게 설명 좀 해주시죠. 무슨 일인지. 예?"
"무슨 의미입니까?"


"..."
"..."


이런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밖에서 했다가는, 아마도 이곳의 모두가 혼란에 빠질 게 분명했다.
아렌은 문제의 여지가 있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아렌 경. 이 전쟁은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경청했다.


"우선 진정하고, 둘이서 먼저 이야기합시다. 시안님."
"아렌 경의 말처럼, 호소니에서 무려 5년."


둘은 꽤 긴 복도를 지나서 워렛의 방에 도착한다.
레이먼트가 손바닥을 활짝 핀다.


"정말, 정말로. 진정하고 들어줬으면 좋겠어."
"5년이란 시간동안 이곳에 있었습니다."


"전혀요. 얼마 전에 세반<ref>동료 이름</ref>이 잡혀간 이야기만큼 충격적인가요? 마음의 준비 할테니까.. 좋아. 해봐요."
소장은 굉장히 중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까처럼 적대감은 없었다.


"총통이 모든 알고있어. 우리 정체를 전부 다."
"5년의 세월동안, 이곳의 장병들은 지쳤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 그들이 이 전쟁이 정당하지 않다는 깨닫고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책임자인 저마저 말입니다. 장병들은 어느새 타국의 장병들과 소통하거나, 현지 주민들과 협조하고 있습니다. 질타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많은 처벌이 있었고, 사고에 대한 응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생명입니다 중장. 내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하는 것은 결코 옳은 건 아니겠지만...."


"."
아렌은 소장의 말뜻을 이해했다. 아까부터 적대적으로 대한 행동은 오히려 자신의 진의를 숨기려는 모습이었던 걸까.


워렛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우리 머리 뒤로 누군가 총구를 겨누고 있다는 이야기랑 별반 다르지 않다. 당장 죽을 수도 있고,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확실한 건 죽을 운명이다.
"만약 중장께서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면, 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은 그 모든 관계를 부숴야만이 가능할겁니다."


곧 소장의 시선은 책상 위의 지도 너머 아렌의 눈빛에 도착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은 너무나도 군인답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는 완전히 총통과는 정 반대의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소장님. 그 말씀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저는 민간인들을 학살할 생각도, 전쟁을 더 흐지부지하게 할 생각도 없습니다."


아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히려.. 제가 하려는 일은 호소니에 대한 해방입니다. 이 진절머리 나는 전쟁의 끝이죠."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아렌 자신은 확고했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쟁을 끝내겠습니다. 저한테 힘을 실어주십시오."
그리고서 그녀는 소장에게 악수를 건낸다. 소장은 고개를 내리고 무언가 생각하더니, 살짝 미소를 띄며 악수를 받아준다.
"너무 겉모습으로 오해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강단이 있으십니다. 전 사령관께서 너무 호전적인 분이었던지라.. 됐습니다. 이제 일어나셔도 됩니다."
레이먼트의 누그러진 태도는 아렌의 긴장 역시 풀리게 만들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자신의 의도가 잘 전달된 듯 싶었다.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최대한 민간인 피해가 없도록, 사령관님께 부탁드립니다."
"사령관.."
아렌은 이제서 조금이나마 자신이 사령관이란 직함을 달았다는 사실이 실감됐다.
<big>''-끼이이익''</big>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반델이 가쁘게 호흡을 내쉬며 말했다.
"저, 중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보가 도착했는데.."
"어, 소령. 마침 회의도 끝나서..."
"중장님. 그..."
아렌은 반델이 급한 모습에 의아했지만, 곧 전보로 넘어온 서류를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온 단어는 '부고(訃告)'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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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라이프닛-문호1.jpg|300px|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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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6월 26일 (일) 21:27 기준 최신판


정렬하여 보기

A

그로우휠 7편
허상

"누나!"

"왜?"

자그마한 아렌의 동생들은 마당을 뛰어다니다, 양우산 아래에서 쉬고있는 아렌에게 묻는다.

"누나는 왜 안놀아? 빨리 와!"

"그래! 같이 놀아!"

"됐어~ 힘들어~~"

아렌은 그렇게 말하며 책을 주섬주섬 만졌다. 그럼에도 그 동생들은 계속 아렌에게 같이 놀자고 졸랐다. 동생들은 누나를 일으키기 위해 간지럽히기도 하고, 신발을 뺏어가기도 하고 장난쳤다. 아렌은 간지럽힘을 당해서 마구 웃고, 들에서는 풀내음이 물씬 풍겼다. 주변에 있는 어른들은 자신들을 보며 흡족하게 웃고 있었고, 등지고 있는 저택은 크고 높고, 하얗고 아름다웠다.

그러다 한 동생이, 하늘을 바라보는 아렌에게 다가와 묻는다.

"근데 누나"

"응?"

"누나는 혼자 살아서 행복해?"

그리고 동생들은 어디선가 쏘는 총에 맞아 모두 쓰러지고, 자신은 움직이지도 못한 채 몸이 굳어,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렌은 선잠에서 깨어난다. 그다지 놀랄 필요도 없다. 그건 꿈이다. 오래 지난 과거고, 잊을 순 없지만 무뎌진 일이다. 오히려 너무 익숙하고 뻔하다며 헛웃음이 나온다. 꿈이 자신을 괴롭힌다라. 아렌은 세상에 귀신따위 없다고 생각했다. 다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그래 말하자면 상처같은 거다. 과거에 입은 상처가 덧나서, 계속 자신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가족은 가족인지, 그렇게 악몽을 꾼 자신보다는 혹시나 무슨 일은 없을지 동생인 워렛에게 더 걱정이 들었다.

"피곤하다고 하시더니, 고작 1시간 주무셨습니다."

먼발치의 의자에 반델이 앉아있었다.

"아. 안좋은 꿈을 꿔서, 그냥.."

아렌은 소파에서 일어나 군복의 옷맵시를 정돈했다.

"소령, 내가 감히 물어봐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뭘 말입니까?"
반델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령의 동생은 어떤 사람이었어?"

"...모르겠습니다. 너무 어릴 때라서"

"그런가. 그래."

"혹시 동생분이 걱정되십니까?"

"응? 아무래도 그렇지."

워렛이 그렇게 똑뿌러진 사람도 아니었고, 누나인 아렌이 보기에는 한참 못미더운 면도 있었다.

"그래도 호소니에서 승리하면 다시 본국으로...."

아렌은 호소니라는 말을 꺼내다, 불과 3시간 전 세그넌 영감탱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총통놈. 뭔가 계획하고있어. 나 뿐만이 아니야. 마법사들을 죄다 호소니로.."

마법사들을 왜? 죄다 그렇게 죽여놓고.. 이제와서 그들을?

왜?

"호소니에서 승리하면.. 세계는 많이 바뀌어있겠죠."

반델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한다.

"글쎄. 그건 나랑 좀 생각이 다른 걸"

"그렇습니까?"

아렌은 마지막으로 군모를 눌러쓰고 문 밖으로 나선다. 이곳은 비공정 착륙장 인근으로, 명목상 야전사령관인 아렌 중장의 거처였다. 비공정은 오전에 착륙한 후 지금도 쉼없이 물자를 정리하고 있고, 더 중요한 물자와 인력은 비공정이 아니라 약 이틀 후 거대한 선박으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그러니 비공정에서 그 한바탕을 벌인 뒤 그나마 쉬는 시간이 생겼다.

"중장님. 곧 세그먼트 소장님께서 도착하시면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세그먼트 소장님께서.. 임관식도 없는 주먹구구식 인사에 잔뜩 화가 나셨을 텐데"

"그건 아리따운 중장님의 사회생활에 달려있습니다."

"뭐 옆에서 템버린이라도 치라는거야?"

그렇게 말하며 다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그래. 필요하면 그래야지. 이 전쟁을 끝내야 하니까."

"제 생각에도 지원병력이 급파된 지금, 속전속결로 진행해야 맞다고 봅니다."

"옳지. 지휘는 반델이 해주면 되겠네"

"?"

반델이 처음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농담.. 참, 그럼 동생 소식은 어디서 접할 수 있지?"

"그건... 좀 번거롭더라도 전보[1]가 와야 알 수 있습니다."

아렌이 동생을 만나지 못한지도 어느새 나흘이다. 복잡한 일이 많았다지만 서로 이렇게 떨어지는 기회가 흔치는 않다.

"그럼 연락이 왔는지 확인 부탁해."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반델이 자리를 떠났다.

아렌은 혼자 무기박스 위에 앉아서 하늘을 보았다.

"그냥 이렇게 평화로워도 좋을 텐데."

곧 3대의 차량이 줄을 지어서 비공정 착륙장으로 들어왔고, 그곳에서 호소니 전선의 장교들과 그들의 대장 격인 '레이먼트 소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역시는 역시 심기 불편한 표정이었다.

"하나의 눈을 위하여, 레이먼트 소장님을 뵙습니다."

"천개의 창으로서, 아렌 중장님을 뵙니다."

레이먼트 소장은 굉장히 나이가 많았고, 작은 안경을 쓴 마른 남성이었다. 기력이 쇄해보이는 그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강인한 사람이었고, 이 호소니 전장에서 자그마치 5년이나 있던 최고참이다. 5년 동안 3번이나 사령관이 바뀐 것에 반해, 레이먼트는 계속 그 자리를 지켰으므로 사실상 그는 실질적인 전장의 책임자였다.

"1년만에 뵙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초면도 아니다. 아렌 자신도 '기본적으론' 호소니 전장의 후방참모이니.

"중장님이 되어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아렌 경"

소장은 나름 예의를 지켜가며 대화했지만 불편한 신경과 삭막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자신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다는 건 아렌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할 이야기가 많은데, 우선 안에서 이야기합시다."

"알겠습니다."

여러 사람의 뚜렷한 구두 소리가 작은 건물 안을 메운다. 호소니는 본국보다는 해양성 기후가 강했고, 조금 더 습했다.

"중장께서 이런 곳을 견디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장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소장님께서는 5년이나 견디셨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참..."
소장이 고개를 반댓방향으로 돌려 한숨을 쉬었다.

인수인계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전실에 모인 이들은 지도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였고, 소장은 익숙하게 지휘대[2]으로 이리저리를 표시하며 현황을 알렸다. 덕분에 아렌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급망이 완전히 엉망인 것, 사기도 부족하다는 현실, 전쟁에 대한 의지 상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장교들도 알고있다는 점이다.

"이렇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소장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어깨를 까닥였다. 마치 '이 문제를 네가 풀 수 있을 것 같냐?' 라는 느낌의 표현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당장은 말이다. 은근히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도 그랬지만, 어차피 기싸움을 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

"각하께서 추가 병력을 파병해주시면 전황이 나아질 겁니다."

"아무렴, 그렇지 않겠습니까?"

됐다. 아렌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나머진 내일 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레이먼트 자신도 수통에서 물을 한 잔 마시고는 회의장에서 빠져나갈 채비를 한다. 그렇지만 아렌은 보내줄 생각이 없다.

"레이먼트 소장님. 뭔가 저에게 불찰이 있습니까?"

그녀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단도직입적이었다. 총통의 앞에서 감히 그의 주장에 제동을 걸었듯. 아까부터 무언가 찜찜한 소장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당장 그것을 알아내고자 했다.

"이야기해도 이해 못하실 겁니다. 중장."

"뭘 말입니까?"

"...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마치 이제서야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하려는 생각같았다. 왜? 굳이 다른 장교들도 전부 자리를 비웠는데.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중장은 현지 상황을 전혀 모릅니다."

"저도 제가 모른다. 무지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 알고 모르는 지식의 개념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해입니다."

"이해?"

"당신은 총통의 사람입니까?"

"무슨 의미입니까?"

"..."

아렌은 문제의 여지가 있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아렌 경. 이 전쟁은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경청했다.

"아렌 경의 말처럼, 호소니에서 무려 5년."

레이먼트가 손바닥을 활짝 핀다.

"5년이란 시간동안 이곳에 있었습니다."

소장은 굉장히 중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까처럼 적대감은 없었다.

"5년의 세월동안, 이곳의 장병들은 지쳤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 그들이 이 전쟁이 정당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책임자인 저마저 말입니다. 장병들은 어느새 타국의 장병들과 소통하거나, 현지 주민들과 협조하고 있습니다. 질타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많은 처벌이 있었고, 사고에 대한 응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생명입니다 중장. 내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하는 것은 결코 옳은 건 아니겠지만...."

아렌은 소장의 말뜻을 이해했다. 아까부터 적대적으로 대한 행동은 오히려 자신의 진의를 숨기려는 모습이었던 걸까.

"만약 중장께서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면, 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은 그 모든 관계를 부숴야만이 가능할겁니다."

곧 소장의 시선은 책상 위의 지도 너머 아렌의 눈빛에 도착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은 너무나도 군인답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는 완전히 총통과는 정 반대의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소장님. 그 말씀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저는 민간인들을 학살할 생각도, 전쟁을 더 흐지부지하게 할 생각도 없습니다."

아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히려.. 제가 하려는 일은 호소니에 대한 해방입니다. 이 진절머리 나는 전쟁의 끝이죠."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아렌 자신은 확고했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쟁을 끝내겠습니다. 저한테 힘을 실어주십시오."

그리고서 그녀는 소장에게 악수를 건낸다. 소장은 고개를 내리고 무언가 생각하더니, 살짝 미소를 띄며 악수를 받아준다.

"너무 겉모습으로 오해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강단이 있으십니다. 전 사령관께서 너무 호전적인 분이었던지라.. 됐습니다. 이제 일어나셔도 됩니다."

레이먼트의 누그러진 태도는 아렌의 긴장 역시 풀리게 만들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자신의 의도가 잘 전달된 듯 싶었다.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최대한 민간인 피해가 없도록, 사령관님께 부탁드립니다."

"사령관.."

아렌은 이제서 조금이나마 자신이 사령관이란 직함을 달았다는 사실이 실감됐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반델이 가쁘게 호흡을 내쉬며 말했다.

"저, 중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보가 도착했는데.."

"어, 소령. 마침 회의도 끝나서..."

"중장님. 그..."

아렌은 반델이 급한 모습에 의아했지만, 곧 전보로 넘어온 서류를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온 단어는 '부고(訃告)'였다.



(7)
  1. 전류, 전파를 사용해 약속된 기호를 통해 정보를 보내는 통신체계를 가리키는 통신용어
  2. 지도를 표시하도록 가르키는 기다란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