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우휠 7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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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트 소장은 굉장히 나이가 많았고, 작은 안경을 쓴 마른 남성이었다. 기력이 쇄해보이는 그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강인한 사람이었고, 이 호소니 전장에서 자그마치 5년이나 있던 최고참이다. 5년 동안 3번이나 사령관이 바뀐 것에 반해, 레이먼트는 계속 그 자리를 지켰으므로 사실상 그는 실질적인 전장의 책임자였다.  
레이먼트 소장은 굉장히 나이가 많았고, 작은 안경을 쓴 마른 남성이었다. 기력이 쇄해보이는 그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강인한 사람이었고, 이 호소니 전장에서 자그마치 5년이나 있던 최고참이다. 5년 동안 3번이나 사령관이 바뀐 것에 반해, 레이먼트는 계속 그 자리를 지켰으므로 사실상 그는 실질적인 전장의 책임자였다.  
"1년만에 뵙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초면도 아니다. 아렌 자신도 '기본적으론' 호소니 전장의 후방참모이니.
"중장님이 되어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아렌 경"
소장은 나름 예의를 지켜가며 대화했지만 불편한 신경과 삭막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자신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다는 건 아렌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할 이야기가 많은데, 우선 안에서 이야기합시다."
"할 이야기가 많은데, 우선 안에서 이야기합시다."


"알겠습니다."
여러 사람의 뚜렷한 구두 소리가 작은 건물 안을 메운다. 호소니는 본국보다는 해양성 기후가 강했고, 조금 더 습했다.
"중장께서 이런 곳을 견디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장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소장님께서는 5년이나 견디셨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참..."<br>
소장이 고개를 반댓방향으로 돌려 한숨을 쉬었다.
인수인계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전실에 모인 이들은 지도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였고, 소장은 익숙하게 지휘대[2]으로 이리저리를 표시하며 현황을 알렸다. 덕분에 아렌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급망이 완전히 엉망인 것, 사기도 부족하다는 현실, 전쟁에 대한 의지 상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장교들도 알고있다는 점이다.
"이렇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소장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어깨를 까닥였다. 마치 '이 문제를 네가 풀 수 있을 것 같냐?' 라는 느낌의 표현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당장은 말이다. 은근히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도 그랬지만, 어차피 기싸움을 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
"각하께서 추가 병력을 파병해주시면 전황이 나아질 겁니다."
"아무렴, 그렇지 않겠습니까?"


됐다. 아렌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나머진 내일 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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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3일 (목) 21:3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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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로우휠 7편
허상

"누나!"

"왜?"

자그마한 아렌의 동생들은 마당을 뛰어다니다, 양우산 아래에서 쉬고있는 아렌에게 묻는다.

"누나는 왜 안놀아? 빨리 와!"

"그래! 같이 놀아!"

"됐어~ 힘들어~~"

아렌은 그렇게 말하며 책을 주섬주섬 만졌다. 그럼에도 그 동생들은 계속 아렌에게 같이 놀자고 졸랐다. 동생들은 누나를 일으키기 위해 간지럽히기도 하고, 신발을 뺏어가기도 하고 장난쳤다. 아렌은 간지럽힘을 당해서 마구 웃고, 들에서는 풀내음이 물씬 풍겼다. 주변에 있는 어른들은 자신들을 보며 흡족하게 웃고 있었고, 등지고 있는 저택은 크고 높고, 하얗고 아름다웠다.

그러다 한 동생이, 하늘을 바라보는 아렌에게 다가와 묻는다.

"근데 누나"

"응?"

"누나는 혼자 살아서 행복해?"

그리고 동생들은 어디선가 쏘는 총에 맞아 모두 쓰러지고, 자신은 움직이지도 못한 채 몸이 굳어,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렌은 선잠에서 깨어난다. 그다지 놀랄 필요도 없다. 그건 꿈이다. 오래 지난 과거고, 잊을 순 없지만 무뎌진 일이다. 오히려 너무 익숙하고 뻔하다며 헛웃음이 나온다. 꿈이 자신을 괴롭힌다라. 아렌은 세상에 귀신따위 없다고 생각했다. 다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그래 말하자면 상처같은 거다. 과거에 입은 상처가 덧나서, 계속 자신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가족은 가족인지, 그렇게 악몽을 꾼 자신보다는 혹시나 무슨 일은 없을지 동생인 워렛에게 더 걱정이 들었다.

"피곤하다고 하시더니, 고작 1시간 주무셨습니다."

먼발치의 의자에 반델이 앉아있었다.

"아. 안좋은 꿈을 꿔서, 그냥.."

아렌은 소파에서 일어나 군복의 옷맵시를 정돈했다.

"소령, 내가 감히 물어봐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뭘 말입니까?"
반델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령의 동생은 어떤 사람이었어?"

"...모르겠습니다. 너무 어릴 때라서"

"그런가. 그래."

"혹시 동생분이 걱정되십니까?"

"응? 아무래도 그렇지."

워렛이 그렇게 똑뿌러진 사람도 아니었고, 누나인 아렌이 보기에는 한참 못미더운 면도 있었다.

"그래도 호소니에서 승리하면 다시 본국으로...."

아렌은 호소니라는 말을 꺼내다, 불과 3시간 전 세그넌 영감탱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총통놈. 뭔가 계획하고있어. 나 뿐만이 아니야. 마법사들을 죄다 호소니로.."

마법사들을 왜? 죄다 그렇게 죽여놓고.. 이제와서 그들을?

왜?

"호소니에서 승리하면.. 세계는 많이 바뀌어있겠죠."

반델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한다.

"글쎄. 그건 나랑 좀 생각이 다른 걸"

"그렇습니까?"

아렌은 마지막으로 군모를 눌러쓰고 문 밖으로 나선다. 이곳은 비공정 착륙장 인근으로, 명목상 야전사령관인 아렌 중장의 거처였다. 비공정은 오전에 착륙한 후 지금도 쉼없이 물자를 정리하고 있고, 더 중요한 물자와 인력은 비공정이 아니라 약 이틀 후 거대한 선박으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그러니 비공정에서 그 한바탕을 벌인 뒤 그나마 쉬는 시간이 생겼다.

"중장님. 곧 세그먼트 소장님께서 도착하시면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세그먼트 소장님께서.. 임관식도 없는 주먹구구식 인사에 잔뜩 화가 나셨을 텐데"

"그건 아리따운 중장님의 사회생활에 달려있습니다."

"뭐 옆에서 템버린이라도 치라는거야?"

그렇게 말하며 다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그래. 필요하면 그래야지. 이 전쟁을 끝내야 하니까."

"제 생각에도 지원병력이 급파된 지금, 속전속결로 진행해야 맞다고 봅니다."

"옳지. 지휘는 반델이 해주면 되겠네"

"?"

반델이 처음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농담.. 참, 그럼 동생 소식은 어디서 접할 수 있지?"

"그건... 좀 번거롭더라도 전보[1]가 와야 알 수 있습니다."

아렌이 동생을 만나지 못한지도 어느새 나흘이다. 복잡한 일이 많았다지만 서로 이렇게 떨어지는 기회가 흔치는 않다.

"그럼 연락이 왔는지 확인 부탁해."

"알겠습니다."

곧 3대의 차량이 줄을 지어서 비공정 착륙장으로 들어왔고, 그곳에서 호소니 전선의 장교들과 그들의 대장 격인 '레이먼트 소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역시는 역시 심기 불편한 표정이었다.

"하나의 눈을 위하여, 레이먼트 소장님을 뵙습니다."

"천개의 창으로서, 아렌 중장님을 뵙니다."

레이먼트 소장은 굉장히 나이가 많았고, 작은 안경을 쓴 마른 남성이었다. 기력이 쇄해보이는 그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강인한 사람이었고, 이 호소니 전장에서 자그마치 5년이나 있던 최고참이다. 5년 동안 3번이나 사령관이 바뀐 것에 반해, 레이먼트는 계속 그 자리를 지켰으므로 사실상 그는 실질적인 전장의 책임자였다.

"1년만에 뵙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초면도 아니다. 아렌 자신도 '기본적으론' 호소니 전장의 후방참모이니.

"중장님이 되어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아렌 경"

소장은 나름 예의를 지켜가며 대화했지만 불편한 신경과 삭막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자신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다는 건 아렌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할 이야기가 많은데, 우선 안에서 이야기합시다."

"알겠습니다."

여러 사람의 뚜렷한 구두 소리가 작은 건물 안을 메운다. 호소니는 본국보다는 해양성 기후가 강했고, 조금 더 습했다.

"중장께서 이런 곳을 견디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장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소장님께서는 5년이나 견디셨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참..."
소장이 고개를 반댓방향으로 돌려 한숨을 쉬었다.

인수인계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전실에 모인 이들은 지도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였고, 소장은 익숙하게 지휘대[2]으로 이리저리를 표시하며 현황을 알렸다. 덕분에 아렌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급망이 완전히 엉망인 것, 사기도 부족하다는 현실, 전쟁에 대한 의지 상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장교들도 알고있다는 점이다.

"이렇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소장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어깨를 까닥였다. 마치 '이 문제를 네가 풀 수 있을 것 같냐?' 라는 느낌의 표현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당장은 말이다. 은근히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도 그랬지만, 어차피 기싸움을 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

"각하께서 추가 병력을 파병해주시면 전황이 나아질 겁니다."

"아무렴, 그렇지 않겠습니까?"

됐다. 아렌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나머진 내일 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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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류, 전파를 사용해 약속된 기호를 통해 정보를 보내는 통신체계를 가리키는 통신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