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만옹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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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만주왕
회선왕 | 懷宣王
출생 1908년 10월 3일
청나라 직예성 베이징 자금성 내전
사망 1939년 11월 6일 (31세)
대연국 당산시
능묘 후평릉 (厚平陵)
재위 만주왕
1930년 10월 28일 ~ 1939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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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제2대 대한국 만왕으로, 시호는 회선왕(懷宣王). 청의 말대 황제인 공종 경황제 성고왕의 장남이며, 정식으로 책봉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인 청의 마지막 황태자였다.

아버지가 한국에 의해 강제로 퇴위한 것에 대해 나중에서야 깊은 반감을 갖고 있었으며 중국 본토의 복벽세력 군벌들과 접촉하여 청 황제로서의 복위를 꿈꾸었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왕이기도 하다.

생애

회선왕 탄생 직후에 청은 이미 멸망 직전이었다. 청 조정을 통해서 중국 대륙 전체를 간접통치 하겠다는 목표는 물리적 한계로 인해 철회되었고 한국은 청 황실과 민간의 괴리를 크게 만들어 직예성 일대를 비롯해 이미 한국이 차지한 영토들(몽골과 만주지역)을 점유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는 전략으로 전환되었다. 결국 이러한 한국의 압박에 1909년 광서제는 광종에게 양위하였고 회선왕을 비롯한 그의 일가는 납치되듯이 자금성에서 심양에 있는 인경궁으로 이주했다.

한국의 우대로 어린시절에는 평안하게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측 경호로 위장한 감시역은 어떻게든 만왕실 일가를 철저히 감시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지만 회선왕의 초년기인 1910년에서 1918년 사이의 관련 기록들은 소실되어 다른 기록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아낼 수밖에 없는데, 어릴적부터 활쏘기에 능하고 영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12.10 운동 시기에는 아버지 광서제에게 북경으로 돌아가자고 며칠동안 칭얼거렸다고 한다.

1920년, 12살의 나이에 만왕세자로 봉해졌으며 광종실록에는 자라날수록 더욱 진중해지고 기품이 날로 더해가 제왕의 풍모를 갖추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미 이때부터 황제 복위를 꿈꾸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릴적부터 속을 감추는데 능했던 것인지 관련된 발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는 대한한림원 중등부에 입학하였는데 영어와 독일어에 대단한 재능을 보였고 수학과 스포츠에도 능한 만능이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모든 과목에서 상당한 성적을 받았다.


누가 회선왕을 시해했나?

회선왕 시해 배후에는 크게 한국정부설, 반복벽파설, 일본설이 대두되고 있으나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반복벽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