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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공영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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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해의 원유관 국가 투명문서 틀이 사용되었음을 고지하며, 양해를 구합니다.
중화민국 中華民國 | Republic of Chin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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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1] | 국장 | |||||||||||||||||||||||||||||||
화평건국 동아우호 和平建國 東亞友好 | ||||||||||||||||||||||||||||||||
1940년 ~ 1989년 | ||||||||||||||||||||||||||||||||
지나사변 이전 | 아시아 혁명 이후 | |||||||||||||||||||||||||||||||
국민당 정권 | 중화민국 중화국 | |||||||||||||||||||||||||||||||
상징 | ||||||||||||||||||||||||||||||||
삼민주의가 | ||||||||||||||||||||||||||||||||
매화, 까치 | ||||||||||||||||||||||||||||||||
중화민국 국휘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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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 ||||||||||||||||||||||||||||||||
난징(南京) | ||||||||||||||||||||||||||||||||
난징(南京) | ||||||||||||||||||||||||||||||||
약 5,750,000km²1987년 | ||||||||||||||||||||||||||||||||
중국 대륙 | ||||||||||||||||||||||||||||||||
대일본제국[2], 몽강연합국, 대만주제국, 동투르키스탄 | ||||||||||||||||||||||||||||||||
인문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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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및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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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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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난징 정권 (南京政権)은 지나사변 중반인 1940년에 일본이 당시 반 장개석 파였던 왕징웨이(왕정위)를 내세워 난징에 세운 정부이다. 1947년 충칭 전투를 끝으로 지나사변(중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마무리 지어진 뒤로 이 시점부터 1989년까지 냉전 중국의 정부로 기능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칭다오, 웨이하이웨이와 광동의 식민지화를 수용하고 경제적 정치적으로 일본에 종속된 괴뢰국에 가까웠으며, 현재의 남중국에선 이 시기를 일제강점기라 칭한다.
상세
1937년 지나사변이 시작되고 장제스가 이끌던 국민당 정권은 상하이와 난징, 1938년 10월 우한까지 단기간에 함락당하고 충칭까지 쫓겨났다. 그러나 일본은 국민당 정권의 항일전쟁이 계속되고 마땅히 단기간 내에 중국 대륙을 쳐낼 방도가 없자 내부 분열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때 일본에 선택된 것이 바로 반장파의 거두 왕징웨이였다.
1940년 난징에서 환도식을 거행하고 왕징웨이가 주석에 오르면서 이 정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국민당 정권과 다수 중국인에 의해 괴뢰정권 취급을 받았고, 1941년 대동아전쟁(태평양 전쟁)이 개전하자 1942년 중국 대표 자격으로 미영에 대한 선전포고까지 감행했다.
1947년 충칭 전투를 끝으로 국민정부가 멸망, 대륙 전역이 일본군에 점령되자 사실상 국민당 정권을 완전히 대체한 중국의 신정부가 됐다. 이보다 앞선 1945년 10월 도쿄 조약을 맺어 광동성과 산동성 할양, 운남성과 광서성 독립 등을 비롯해 21개조의 조항을 수용하고 대동아공영권에 가맹하였다. 이때부터 중국은 명목상 독립국이지만 사실상 일본에 의해 장악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의 공업화에 발맞춰 공영권의 곡창지대로 불릴 정도로 농업육성이 이루어졌고, 1950년대에 강력한 농업국가로서 성장해 일본을 오히려 중국 농산물에 의존하게 하기도 했다. 1960년대 가오쭝우의 주도로 오대개혁운동을 실시해 현대화를 노리나 일본의 방해와 1970년 가오쭝우 급사로 좌절되었다.
현대화 실패 이후 중국은 계속 농업국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인에게 경제 지배를 당하는 채로 남았으며 중국 정부와 일본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다. 1973년 3차 중국 대기근 이후 이 형국엔 쐐기를 박았다.
이후 1980년대 말 중국 각지에서 벌어진 일본에 대한 혁명으로 인해 무력하게 붕괴했다. 군대를 동원했음에도 군조차 난징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주석 츠하오톈이 일본으로 도피하면서 1989년 사실상 완전히 멸망해 49년간의 역사를 종료했다. 이후엔 강남에는 호국군 정권이, 화북에는 군벌정권이 들어서 중국 내전을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