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사탕의 작품 메모리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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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24년, 또 다른 한국의 새로운 해가 밝았습니다.
갈림길에서의 다른 선택, 새로운 이야기와 강산의 풍경.
전란에서 거머쥔 승리와 질서가 붕괴되며 닥쳐온 혼란, 이방인과의 만남과 불가능을 가능케 한 확장.
축적으로 기원되는 번영과 검은 음모에서 뻗쳐나온 음영, 병인년의 거대한 이변과 신미년의 대경장.
꿈만같던 영화와 강병의 광기, 그 모든 것을 끝낸 화마와 쓰디쓴 말로.
그를 뒤로하며, 진실로 상제의 광명이 사방에 내리는 천지가 되기까지.
이 모든 것들을 지나, 장장 600년의 사직을 닫지 아니하되 새로히 한 동방의 어느 나라와 주변 만국의 정사를 써낸 세계관, 아침해의 원유관의 단장을 개막합니다.
갈림길에서의 다른 선택, 새로운 이야기와 강산의 풍경.
전란에서 거머쥔 승리와 질서가 붕괴되며 닥쳐온 혼란, 이방인과의 만남과 불가능을 가능케 한 확장.
축적으로 기원되는 번영과 검은 음모에서 뻗쳐나온 음영, 병인년의 거대한 이변과 신미년의 대경장.
꿈만같던 영화와 강병의 광기, 그 모든 것을 끝낸 화마와 쓰디쓴 말로.
그를 뒤로하며, 진실로 상제의 광명이 사방에 내리는 천지가 되기까지.
이 모든 것들을 지나, 장장 600년의 사직을 닫지 아니하되 새로히 한 동방의 어느 나라와 주변 만국의 정사를 써낸 세계관, 아침해의 원유관의 단장을 개막합니다.
아침해의 원유관(The crown of the morning sun)은 커피와 사탕의 장편 세계관이자 데뷔작으로, '만약 한국과 일본이 모두 부국강병에 성공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원균이 20살이 되던 해 세균 감염으로 요절하면서 크게 변화하게 된 임진왜란의 전개를 분기로 시대에 따른 동아시아의 변화를 다루하는 대체역사 세계관이다.
크게 근세부터 현대까지의 넓은 시기를 다루고 있으며, 각 시기별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도록 여러가지 설정과 문서들을 구비하였다. 묘하게 예스럽지만 근대적인 디자인 또한 이러한 세계관의 정체성을 반영하기 위해서 고안된 양식이다.
ㅡ대한국 우정총국 발행ㅡ
시
작은 갓 스무살이 된 원균이 폭풍우가 치던 날 불의의 사고로 인해 세균감염으로 죽음을 맞게 된 분기점이다. 이로 인해 조선 수군의 경상우수사직에 원균이 임명되는 일은 없어졌으며, 대신 최호가 경상우수사직에 발탁, 이후 부산에서 일본군과의 장렬한 항쟁 끝에 산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산에서 시간이 끌린 결과 봉원군의 봉화가 제때 불을 피워 조선 조정에 파병의사를 제때 전달하였고, 덕분에 부산진과 대구에서 일본군의 진격이 막히면서 명나라와 조선 모두 임진왜란으로 인한 파멸적인 국력의 소모는 피했다. 이로 인해 선조는 중흥군주로서의 입지를 후대에도 지킬 수 있었고, 한편 본래 역사보다 더 큰 손해를 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나고야의 변으로 인해 영주들에게 살해당하는 최후를 맞았으며, 이후 더 빠르지만 더 혼란스러운 난세가 일본에 닥쳐왔다.
이 사태로 국운이 흔들린 나라는 조선, 명 일본뿐만이 아니였다. 기력이 남은 명으로 인해 산해관으로의 입성이 불가능해질수도 있다고 판단한 누르하치는 4년 이른 출병을 감행해 북경을 장악하고자 하였고, 결과는 흥룡강성에 명나라의 군기가, 길림과 요동에 조선의 군기가 휘날리는 최후였다. 살아남은 아이신기오로 일족은 이내 만주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 훗날을 도모하였고, 혼란 속에서 명이 내란을 진압하러 간 사이, 건주여진과 명군의 영향력이 모두 사라진 요동은 아무도 모르는 새에 손 쉽게 조선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1630년은 주원장의 집권 이래 만들어졌던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질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해였다. 산해관의 오삼계와 비밀리에 밀약을 거친 이자성의 대군은 끝내 이민족들까지 규합하여 모은 대군을 이끌고 북경에 완벽하게 입성했고, 새 주인을 맞은 자금성에서는 명나라의 피가 흘렀다.[3] 그러나 그 참상을 전해들은 조선의 인조는 '천조의 주인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이 건국의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나라'인 순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어서 태조 이자성이 전보다 월등히 늘어난 궁녀, 공출과 내시를 조공할 것을 명령하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도 없는 폐주를 감히 따를수는 없다' 라며 조공을 바치는 것을 거부했다. 이에 연이은 성공에 심취했고, 군대의 무력을 신임하던 이자성은 무력으로 조선을 정벌하면 조공 문제와 내부 문제를 일거양득의 방식으로 해결할수 있을 것이라 보았고, 그리하여 자신이 포섭한 지방 세력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선 정벌을 위한 토목공사와 군비 증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북경에서의 참사로 충격을 받은 데다 연이어 막대한 세금으로 고통받기 시작한 중국의 백성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세력이 위협받는 것을 경계했던 다른 군벌 세력가들이 이자성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불안감이 고조되던 중 1633년, 향년 26세로 독이 든 차를 마시고 쓰러졌다.뒤이어 즉위한 순 영성제는 아직 어린 나이였던 탓에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전무했고, 사실상 용상의 부재는 끝내 1634년, 티베트의 중국 서북 지역에 대한 침공이 개시됨과 동시에 중국의 분열기가 도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시기 동안에는 중국 동남해와 발해만에서 슬그머니 몰려들어온 일본 해적들의 활동이 중국의 중앙정부가 부재한 관계로 공공연하게 이루어질 정도로[4] 대륙 세력의 영향력이 사실상 무의미했고, 지도자를 잃어 다시 왕관과 가한직을 놓고 다투던 만주도 예외는 아니였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대륙에서 부상한 것은 갓 효종이 즉위한 조선이였다. 그간 목룡성세로 만들어놓은 안정적인 국력을 비록하여 대륙의 전초기지와 하멜, 1650년 설탕 무역을 시작으로 받아들인 화란인들과의 교역, 그리고 병력 양성 등으로 준비를 끝마친 효종은 차후 정세가 역변하더라도 조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4군 6진을 계승한 북진 사업을 시행, 황해의 해적 소탕 중 마주쳐 총기 기술 개발을 위해 부산으로 끌어들인 네덜란드발 화기들까지 동원해, 효종대에 이르러 중국이 서서히 그 분열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오늘날 연변 일대와 요하강 아래의 요동 지방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리하여 몇백년에 결쳐 수많은 격변들을 동아시아는, 송나라와 순나라 2 왕조의 대륙 재패라는 규율이 자리잡은 후 19세기에 들어 기존 역사와 상당히 차이가 나는 근현대 시기의 막을 열었다. 각종 변화들이 있었던 이 근현대 시기를 집중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침해의 원유관에서 다루는 이야기이다.기
본적으로, 아침해의 원유관은 큰 틀에서는 대체역사 세계관을 탄생시켜 대체역사적 변화가 주는 '대상이 가진 이미지의 변화' 를 다루고자 했다. 적당했던 유교가 근대화의 원동으로 여겨지는 한국, 러시아와 별개로 여겨지는 소련, 원만한 것을 넘어 긴밀한 수준의 한일관계, 비슷한 듯 다른 중국의 역사들이 그 예시다.
이 외에도, 문화에 대한 묘사를 비교적 중심적으로 다루어 대체역사의 묘미인 '변화된 역사'를 탐미주의적인 방향, 다시 말하여 일종의 낭만주의적인 감정을 담아 표현해보고자 했다. 이처럼 아침해의 원유관은 대체역사로서 미학적인 부분을 최대한 살려보고자 노력한 결과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근대 시기 로망으로 미화됐던 제국주의, 극단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이미지의 변화를 반영해서 작중에 드러냈다. 이는 해당 세계관의 한국의 역사적 행적에서 묘사되는데, 근대화 및 자주독립, 부국강병에 성공한 한국의 행적은 근대를 휩쓸던 광기 속에서, 결코 선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국자적 이미지가 변화하였듯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변화 또한 함께 일어났다고 보면 되겠다.
현실성과 아이러니, 그리고 바뀐 이미지의 뒷편에는, 한편으로 근대시기 로망으로 미화됐던 제국주의, 극단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담겨있다. 이는 해당 세계관의 한국의 역사적 행적에서 묘사되는데, 근대화 및 자주독립, 부국강병에 성공한 한국의 행적은 근대를 휩쓸던 광기 속에서, 결코 선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국자적 이미지가 변화하였듯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변화 또한 함께 일어났다고 보면 되겠다.
현대의 대한제국에 대한 소식은 주로 주요 국제적 사건 몇가지와, 나비효과로 대략 3,4년 정도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일어나면서 더욱 촉발된 기술.[5]과 문화의 발전들, 신민당 정국 속 일부 정치인들의 아이러니에 대해서 다룬다. 추후 필자의 위키력이 더 발달한다면 문서의 질 상승과 다양한 틀 제작, 각 대한국과 대한제국의 분기들을 한 문서안에 정리하여, 일종의 대체역사 시스템까지 구비하는것을 연재 종료의 최종목표로 삼고 있다.2월말 부터 소설이라는 요소를 도입하여, 각 시대의 생활상을 약간씩이나마 보여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비하였다. 본
래 커피와 설탕은 양국의 부국강병이 모두 성공한 세계관 자체는 이전부터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절엔 그저 구상일 뿐이였고, 그러던 중, 제이위키를 접하고 본격적인 구체와 작업을 시작했다.
처
음에는 주인공 격 국가인 대한국과 일본의 서사에 주로 집중하고자 했다. 그러나 세계관을 확장시켜가면서 자연스럽게 주변국들과 다른 설정들에 대해서도 집필하게 되었고, 현재는 유라시아 및 극동아시아의 나라들 전반 또한 다루게 되었다.
소
소한 이야기로, 응답하라 시리즈는 이 세계관에서 기존의 배경들을 포함해 19세기 광무 시대, 20세기 초중반인 융희 시대, 성덕 시대까지 다룬 대작으로 거듭났다.
최
초로 아침해의 원유관 팀의 결성을 만들게 된 계기인 세계관이기도 하다. 2024년 10월 24일 기준 3명의 팀원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대부분 초기 시절부터 원유관에 흥미를 가졌던 사람들이다.- ↑ 틀:에른스트, 설정보조:Kelifonium,고증자문:_burgertank
- ↑ 작가의 개인 사정으로 휴재.
- ↑ 원 역사에서도 순나라는 북경 입성 후 군대의 기강이 헤이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도륙했다.
- ↑ 이 시기를 오늘날 일본에서는 '대륙 사략업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중국에 서서히 해안가들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거대 정부들이 다시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사략선을 통한 이득이 급격하게 감소, 끝내 발해만 방면 아래까지 축소했다.
- ↑ 예시로 스마트폰 기술의 경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경제 대호황이 더 커지면서 PDF 장치의 조기개발과 조기출시가 이루어졌고, 스마트폰 또한 호황이였던 시장에 실험용으로 빨리 투하되면서 현실보다 8년정도 더 빠르게 발전했다. 비유하자면, 소위 벽돌폰을 사용하는 시대에 스마트폰이 같이 있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