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혼합경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소유권 절대의 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
GDP (명목)
총
$3,001,166,461,381(2022년 1월)
1인당
$30,701(2022년 1월)
신용 등급
무디스 A1 S&P A- Fitch A-
화폐
공식화폐
로마 노미스마(νόμισμα, 라틴어 표기는 nummum)
ISO4217
RON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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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우주력(공식적인 표준), 서력기원(비공식적인 제2의 표준)
시간대
UTC+3(로마 제국 표준시, 콘스탄티누폴리스)
도량형
SI 단위
ccTLD
.ro
국가 코드
ROM, RM, 300
전화 코드
+30
로마 제국(그리스어: Βασιλεία Ῥωμαίων 바실레아 로마이온[*],(라틴어: Imperium Romanum 임페리움 로마눔[*], 혹은 비잔티움 제국(그리스어: Βυζαντινή Αυτοκρατορία 뷔즈단티네: 아우토크라토리아[*]은 발칸 반도 남부,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일대에 위치한 입헌 군주정 국가이다. 유럽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로마 제국이 395년 분할된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혹은 (라틴어: Nova Roma 노바 로마[*]를 수도로 한 동방의 제국을 일컫기도 한다. 서부 유럽의 교황을 위시한 가톨릭 국가들은 과거 노바 로마의 이름이었던 비잔티움(그리스어: Βυζάντιον 뷔잔티온, 비잔티온[*], 라틴어: Byzantium 비잔티움[*])으로 하여금 서유럽 중심의 역사 사관을 위해 비잔티움 제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국은 서쪽으로 불가리아를, 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와 시리아를 접하고 있다.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의 서거 직후 로마 제국은 그의 두 아들에 의해 분열되었으며, 동방은 장남 이르카디우스가 물려받았다. 아르카디우스의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제국은 무너져가는 서방의 로마를 뒤로 하고 다시 한번 강건성세를 약속할 수 있었으며, 6세기경의 유스티니아누스 왕조의 제국은 유럽과 소아시아, 서 아라비아 일대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강대한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서방 재정복 활동 당시 제국의 부는 너무 많이 소비되었으며, 당대 발병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으로 인해 백여년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유스티니아누스 왕조의 야망은 실패하였다. 소비된 부는 사산 왕조와의 전쟁이나 신흥 강자인 이슬람 제국의 침략같은 연이은 혼란으로 인해 회복되지 못하면서 동방 제국의 국운은 기울어갔지만, 후대 황제 이라클리오스가 약화된 제국에 맞는 효율적 행정체계를 개편하고 국력의 약화를 막아 제국은 유지될 수 있었다.
11세기에 이르러 제국은 마케돈 왕조의 정복활동에 힘입어 제국은 7세기 이후 최대의 판도를 이룩하였지만 제국 내의 연이은 내란과 셀주크 제국의 침략으로 인해 한때 제국은 아나톨리아 전역에서의 지배력을 잃었지만, 11세기 말부터 12세기 중후반까지 군림한 콤니노스 왕조와 13-15세기의 앙겔로스 왕조 때 튀르크 부족들에 유화적인 외교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친로마 성향의 부족의 수장들을 국경의 군사 요직으로 임명함과 동시에 이들과 함께 모든 튀르크 귀족들을 제국에 복속시킨 뒤 로마인으로 동화시킴으로써, 점진적으로 아나톨리아 전역을 수복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15세기의 끝을 장식한 팔레올로고스 왕조는 콤니노스 왕조가 시행하였던 족벌화 정책을 해소하고 강한 황제권과 로마의 공화주의적 전통이 공존하는 체제를 형성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잦은 재난과 말대 황제의 부족한 자질로 인해 성립 68년만에 붕괴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반까지 군림한 마크렘볼리티스 왕조는 다시금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였고, 군림하였던 두 세기 동안 서유럽에 대한 의존을 대폭 감소시켰으며 아나톨리아 수복과 함께 더 커진 영토를 위한 적합한 행정 및 경제 개혁(테마 제도 복구 및 근대화)을 완성하여 제국의 위엄을 11세기 중후반의 "만지케르트 전투" 이전으로 되돌렸다. 또한 콤니노스 왕조의 족벌정책을 완전히 해소하여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미완되었던 목표를 달성했다. 근세 제국의 군사령관과 원로원의원, 아나톨리콘의 세습 통치자가 여럿 배출되었던 명문가, 카스토리오스 왕조는 팔레올로고스 왕조와 마크렘볼리티스 왕조의 황제들이 시행한 족벌화 해소 정책의 성과를 이어 받아 11세기 중후반 두카스 왕조 이후 처음으로 콤니노스 왕조의 피가 섞이지 않은 첫 왕조가 되었다. 1765년에는 카스토리오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앙겔로스 왕조 중기부터 그리스 지역의 토주와 둑스 출신 귀족가문 에네포스의 수장 요안니스가 후임 황제로 선포되었다. 에네포스 왕조의 황통은 현재까지 이어오며, 現 로마 황가 역시 에네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