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dwig Einhaldt
루트비히 아인할트
세르바온 공화국 3대 국무총감
재임기간
2851년 6월 5일 ~ 2851년 10월 9일
전임: 바샤르 모디(제2대)
후임: 엘네틀 라디흐(제4대)
세르바온 공화국군 총사령관 겸 원수
재임기간
2851년 1월 13일 ~ 2854년 9월 2일
제5대 평화운동 총사령관
재임기간
2854년 4월 7일 ~ 2854년 9월 2일
전임: 엘네틀 라디흐(대행)
후임: 엘네틀 라디흐(제6대)
신상 정보
국적
세르바온 자치령평화운동세르바온 공화국
출생일
2821년 4월 5일
출생지
세르바온 공화국 세르바온 성계 델타-9
사망일
2854년 9월 2일 (33세)
사망지
셰인 정부 아인롱 성계
가족관계
배우자: 루시아 카이한 슬하 1녀 1남
장녀: 메러디스 루시아 아인할트, 장남 루카 아인할트

개요

루트비히 아인할트는 세르바온 공화국평화운동의 군인, 정치가이다.

생애

유년기

세르바온 자치령 델타-9 출신으로 농부 출신 부모님의 외동아들으로 태어났다.
4살때 염색공 아버지를 따라 염색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7살때에는 자신이 직접 개발한 방법으로 염색을 하기도 했다.
10살이 되던해 루트비히가 사는 마을의 노교수였던 린화롱는 루트비히의 재능을 알아보고 델타나인 최고의 중등 교육기관인 메이어스 김나지움에 추천서를 써 입학시켰다.
16살, 루트비히는 김나지움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메이어스 대학 화학공학과에 진학해 재학했다.

제2차 인류 내전 참전과 평화운동 가담

18살이던 2839년 징집된다.
하지만 세르바온 군은 알파원 전투에서 대패 했고 루트비히는 극적으로 함선을 탈출해 7개월간 탈출선을 타고 우주 공간을 표류한다. 이후 사망처리 되었다.
표류하다 도착한곳은 평화운동 총사령관 마틴(2792~2849)의 기지였고 이후 마틴에게 협력하며 병법, 우주선 수리 기술등을 배워 마틴 함대의 선장으로 활동한다.

세르바온 공화국으로 생환

인류 통일을 향한 야심을 드러내다

군의 전권을 쥐다

최후

평가

긍정적 평가

이타적이고 유순한 성격

인류 내전과 셰인 정부엘 토로 공화국의 압제를 지켜봐오면서 루트비히는 마르틴 피르카스의 압제로부터의 해방 사상과 평화를 위한 노력, 자신의 통일을 향한 열망을 결합하였고 행성연합의 부활을 외치며 대통일전쟁을 일으켰다. 정확하게는 셰인 정부의 침공에 세르바온 공화국이 반격하는 과정에서 발발한 전쟁이기에 실질적인 원인은 군국주의 국가 셰인 정부가 제공했다고 봐야한다.

그의 목적은 인류에게 평화와 자유, 안정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행성연합 같은 통일된 정부가 필요하며 자신은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자신 개인의 욕망보다는 대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으로서 이런 태도는 이후 자신의 딸 메러디스 루시아 아인할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뛰어난 군사적 능력

권력에 무심했던 태도

2850년 9월, 레프테노어에서 셰인 정부군을 격파했을때 세르바온 공화국에서 그의 인기는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이에 몇몇 국민들 사이에서 혼란한 공화정부 대신 루트비히에게 정치권력까지 넘겨주어 어려운 시국을 헤쳐나가보자는 의견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루트비히는 국민들의 지지를 업고 2851년 의회의원, 그해 6월에는 국무총감직에까지 추대되었으나 그는 과로와 군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자신이 신임하는 정치인 엘네틀 라디흐에게 그 직을 넘겼다.

호사가들은 뛰어난 협상 능력등 이후 여러차례 정치적인 수완을 발휘해온 루트비히가 정치에서의 중요 직책을 맡았더라도 잘 수행해냈을 것이라고 단언하곤 한다.

부정적 평가

군의 무능화

루트비히가 권위주의적인 사령관은 아니었고 오히려 하급 장교 또는 장병들에게 잘 대해주는 온화한 성품의 사령관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그의 뛰어난 군사적 능력으로 인해 감히 그에게 이의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공화국군 내에서 형성되었다. 이것은 결국 그의 사후 군 전체가 급격하게 와해되어 대망명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듣곤한다. 한마디로, 그를 제외하면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갖춘 사령관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루트비히는 작전회의실에서 부하들에게 세세한 작전 수행방법까지 설명하곤 했다. 이런 이유로 그를 제외하면 절대적인 무능이 군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물론 세르바온 공화국의 혼란한 상황이 우수 장교 육성을 가로막아왔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지만 루트비히에게만 의존하는 군사 체계가 결국 대망명을 초래했으며 세르바온 공화국이 셰인 정부에게 패해 그들의 지배하에 떨어졌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