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피르카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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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첸 계의 랑왕이라는 소도시 출신이다. 부모와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12세에 가족과 함께 세르바온으로 이주했고 어린 나이부터 소행성 기지의 광부일을 했으며 16살인 2677년 4월 경(세르바온 기준시)에는 귀환 추진체가 고장나면서 33세의 동료 광부인 세빌로 타베인(Sevillo Tabein)과 함께 광산에 고립되었다가 159일만에 구출되었다. 타베인의 증언에 따르면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기계들을 손봤고 복잡한 물리학 및 수학 계산을 척척해내면서 귀환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고 한다. 아무튼 수학과 물리학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2678년 공국 정부에 의해 세르바온공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83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피르카스는 이렇게 정부가 자신의 처우를 높여준 것을 선전으로 규정하며 자신을 통해 광산에서 죽어간 수많은 소년노동자들의 문제를 희석시키려는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그는 87년 공국 정부 기술제도국 공무원으로 일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하고 세르바온에 남아 광산 관련 엔지니어이자 기술 고문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 시기 그는 귀환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봐 사고율을 낮추고 노동자들의 사망율을 이전 대비 80% 가까이 줄이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첸 계의 랑왕이라는 소도시 출신이다. 부모와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12세에 가족과 함께 세르바온으로 이주했고 어린 나이부터 소행성 기지의 광부일을 했으며 16살인 2677년 4월 경(세르바온 기준시)에는 귀환 추진체가 고장나면서 33세의 동료 광부인 세빌로 타베인(Sevillo Tabein)과 함께 광산에 고립되었다가 159일만에 구출되었다. 타베인의 증언에 따르면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기계들을 손봤고 복잡한 물리학 및 수학 계산을 척척해내면서 귀환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고 한다. 아무튼 수학과 물리학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2678년 공국 정부에 의해 세르바온공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83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피르카스는 이렇게 정부가 자신의 처우를 높여준 것을 선전으로 규정하며 자신을 통해 광산에서 죽어간 수많은 소년노동자들의 문제를 희석시키려는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그는 87년 공국 정부 기술제도국 공무원으로 일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하고 세르바온에 남아 광산 관련 엔지니어이자 기술 고문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 시기 그는 귀환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봐 사고율을 낮추고 노동자들의 사망율을 이전 대비 80% 가까이 줄이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던 2690년 급작스레 반역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수개월간 옥고를 치르다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정부측에서는 자신들의 요구를 잘들어주지 않고 노동자 친화적 고위 엔지니어인 그에게 겁을 주며 길을 들이려는 속셈이었지만 석방된 뒤 그는 본격적으로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평생 느껴볼 두려움은 소행성에 고립되었을 때 다 느꼈다며 카타드 공국 정부를 조롱했다.
그러던 2690년 급작스레 반역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수개월간 옥고를 치르다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정부측에서는 자신들의 요구를 잘들어주지 않고 노동자 친화적 고위 엔지니어인 그에게 겁을 주며 길을 들이려는 속셈이었지만 석방된 뒤 그는 본격적으로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평생 느껴볼 두려움은 소행성에 고립되었을 때 다 느꼈다며 카타드 공국 정부를 조롱했다. 석방된 직후 그는 세르바온에 있던 [[지구 원로원령]]의 정보원과 접촉, 원로원령의 지원을 받아 2691년 1월 4일 ‘세르바온 노동자협회’를 조직하였으며 카타드 공국의 다른 성계들에 파업에 동참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이튿날 세르바온의 노동자들은 노동착취, 수익분배에 있어 불공정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며 대규모 파업을 전개했다.

2022년 12월 4일 (일) 02:47 판

별빛 속으로

세르바온 집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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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바온 자치령 초대 집정관
Martin Pircas
마르틴 피르카스
본명 마르틴 앙헬 피르카스 모리예 세첸
Martin Angel Pircas Morille Sechen
출생 2661년 2월 6일
카타드 공국 세첸 랑왕
사망 2713년 5월 1일 (52세)
세르바온 자치령 아르노-피아나 체리노
재임 초대 집정관
2698년 10월 17일 ~ 2705년 5월 4일
배우자 수지 몰리나 델로이
원래 현실은 이상주의자들에게 가혹한 법이었고, 그건 훗날을 살아갈 모든 이에게 자신의 편린을 아로새긴 대영웅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르틴 피르카스편 중에서

개요

카타드 공국세르바온 자치령의 혁명가, 정치인. 세르바온 자치령의 초대 집정관을 역임했다.

광산 노동자 출신으로 카타드 공국 정부를 상대로 혁명을 주도하여 세르바온 자치령을 성립시켰다. 이후 초대 총리에 취임하였으나 자치령 내의 정치적 내분으로 인해 사임했으며 훗날 반대파에게 암살당했다.

세르바온 공화국에서는 국부, 그것을 넘어 대영웅으로 추앙받았으며 그런 평가가 사실상 소멸한 현재도 인류 역사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생애

세첸 계의 랑왕이라는 소도시 출신이다. 부모와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12세에 가족과 함께 세르바온으로 이주했고 어린 나이부터 소행성 기지의 광부일을 했으며 16살인 2677년 4월 경(세르바온 기준시)에는 귀환 추진체가 고장나면서 33세의 동료 광부인 세빌로 타베인(Sevillo Tabein)과 함께 광산에 고립되었다가 159일만에 구출되었다. 타베인의 증언에 따르면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기계들을 손봤고 복잡한 물리학 및 수학 계산을 척척해내면서 귀환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고 한다. 아무튼 수학과 물리학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2678년 공국 정부에 의해 세르바온공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83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피르카스는 이렇게 정부가 자신의 처우를 높여준 것을 선전으로 규정하며 자신을 통해 광산에서 죽어간 수많은 소년노동자들의 문제를 희석시키려는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그는 87년 공국 정부 기술제도국 공무원으로 일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하고 세르바온에 남아 광산 관련 엔지니어이자 기술 고문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 시기 그는 귀환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봐 사고율을 낮추고 노동자들의 사망율을 이전 대비 80% 가까이 줄이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던 2690년 급작스레 반역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수개월간 옥고를 치르다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정부측에서는 자신들의 요구를 잘들어주지 않고 노동자 친화적 고위 엔지니어인 그에게 겁을 주며 길을 들이려는 속셈이었지만 석방된 뒤 그는 본격적으로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평생 느껴볼 두려움은 소행성에 고립되었을 때 다 느꼈다며 카타드 공국 정부를 조롱했다. 석방된 직후 그는 세르바온에 있던 지구 원로원령의 정보원과 접촉, 원로원령의 지원을 받아 2691년 1월 4일 ‘세르바온 노동자협회’를 조직하였으며 카타드 공국의 다른 성계들에 파업에 동참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이튿날 세르바온의 노동자들은 노동착취, 수익분배에 있어 불공정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며 대규모 파업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