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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광양 태종(北廣陽 太宗)''', 통칭 '''육군덕'''는 [[원고 세종|원고국 세종]] 치세 말기에 활약한 반란군 수장이자 [[북광양]]의 15대 국왕, 그리고 북광양 국왕 중 묘호를 수여받은 최초의 국왕이다. | |||
[[시난마사 다론|장자고]]와 함께 광양인들의 반란을 주도하였으며 북광양 영토의 북부에 해당하는 녹주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이후 명주 전투에서 사망한 다론의 세력을 흡수하여 북광양 최초의 독립 정권을 수립하고 왕으로 즉위했다. | |||
== 생애 == | |||
=== 내항부의 도망자 === | |||
육군덕수는 광양을 본관으로 둔 중산층 집안 육군씨의 장남으로, 그의 아버지 육군순(六君順)은 국가 공무원으로써 세무원을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 공무원은 원고국에서 꽤 알아주는 직업이었고, 그 덕분에 육군덕수의 유년은 꽤나 풍족했으나, [[원고 세조|세조]]가 즉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
[[원고 세종|세종]] 대부터 시작되었던 원고국의 제 2차 전성기는 [[원고 효종|효종]] 치세의 무리한 대외 무력 활동으로 인한 재정 악화가 시작되면서 끝나버렸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조는 특세책을 선포하여 기존보다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문제는, 광양인에 대한 증세율이 본토인에 비해 지나치게 높았단 것이었다. 당시 특세령을 적용했을 때 본토인에 대한 증세율은 30%였던 반면 광양인에 대한 증세율은 이보다 70%나 더한 100%였다. 이는 선원고국의 쇠퇴가 |
2023년 9월 15일 (금) 18:23 판
廣陽 북광양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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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광양 제15대 군주 太宗 태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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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 태종 (太宗) | |||
시호 | 대무장정선문대왕(大武莊正宣文大王) | |||
연호 | 데자오(大光) | |||
생몰 | 1746년 7월 5일 ~ 1805년 2월 17일 (58세) | |||
성 | 미치마루(六君) | |||
이름 | 멜라지니(德帥) | |||
재위 | 북광양 국왕 | |||
1778년 10월 25일 ~ 1805년 2월 17일 (26년) |
개요
북광양 태종(北廣陽 太宗), 통칭 육군덕는 원고국 세종 치세 말기에 활약한 반란군 수장이자 북광양의 15대 국왕, 그리고 북광양 국왕 중 묘호를 수여받은 최초의 국왕이다.
장자고와 함께 광양인들의 반란을 주도하였으며 북광양 영토의 북부에 해당하는 녹주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이후 명주 전투에서 사망한 다론의 세력을 흡수하여 북광양 최초의 독립 정권을 수립하고 왕으로 즉위했다.
생애
내항부의 도망자
육군덕수는 광양을 본관으로 둔 중산층 집안 육군씨의 장남으로, 그의 아버지 육군순(六君順)은 국가 공무원으로써 세무원을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 공무원은 원고국에서 꽤 알아주는 직업이었고, 그 덕분에 육군덕수의 유년은 꽤나 풍족했으나, 세조가 즉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세종 대부터 시작되었던 원고국의 제 2차 전성기는 효종 치세의 무리한 대외 무력 활동으로 인한 재정 악화가 시작되면서 끝나버렸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조는 특세책을 선포하여 기존보다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문제는, 광양인에 대한 증세율이 본토인에 비해 지나치게 높았단 것이었다. 당시 특세령을 적용했을 때 본토인에 대한 증세율은 30%였던 반면 광양인에 대한 증세율은 이보다 70%나 더한 100%였다. 이는 선원고국의 쇠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