廣陽
북광양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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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국 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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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국 제19대 완디
景宗
경종
출생 1833년 3월 4일
남경부 학암방 삼선동 회명군 사저
즉위 1854년 7월 29일
남경부 강덕궁 중문
사망 1907년 9월 12일 오후 2시경 (향년 74세)
키비경 자칸디우구 도명궁 세광전
능묘 원릉(元陵)
재위 원고국 완디
1854년 7월 29일 ~ 1882년 5월 11일 (28년)
원고국 상황
1882년 5월 11일 ~ 1907년 9월 12일 (25년)
연호 테타쿠룬(琢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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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타시옥(棕星)
마우파시(墨防)
부모 친부: 회명군
친모: ???
형제자매 2남 1녀 중 1남
배우자 효의황후
자녀 1남 3녀
종교 불교
해욱(海昱)
왕호 신의대왕(信義大王)
묘호 경종
(景宗)

개요

원고 경종(元高 景宗)은 원고국 제25대 군주이자 제19대 완디이다.

사촌인 중종이 폐위당하고 예카파에 의해 강제로 즉위했으며, 이후 예카파가 죽고 숨마가 집권했을 때 그의 포용적인 성격 덕분에 중종보다는 훨씬 편안한 삶을 누렸다.

꼭두각시 황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신관파 정권의 제도 개혁에 큰 관심을 보이고 숨마의 허용으로 자잘한 정무에는 참여했으며, 지방에게 부여했던 사법권한을 정부에 예속시키는 정책을 기획하여 국가적 사법기관인 호티제가 설치되는 데 기여를 하였다. 여러모로 원고국식 삼권분립 형성에 큰 지분을 차지한 셈. 또한 예카파 집권기부터 시작된 본속회통전 집필이 이때 숨마와 경종의 협력으로 빨리 끝나기도 했다.

이렇듯 숨마 시대엔 오히려 약간의 실권을 가지고 정무에 여러모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숨마가 죽고 나이네가 집권하면서 다시 가라로 전락했다. 숨마가 죽자마자 황궁이 신관파 병사들에 의해 포위되고 그날부터 경종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살았으며, 그시각에 나이네는 본속회통전에 황궁총령과 불가해령을 추가하였다. 이것으로 황제의 권한은 법률을 통해 제한되고 그 법률은 불가해령에 의해 불변의 규범이 되었으니,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최초의 입헌군주제가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이 입헌군주제지, 국가적 상황은 선대 신관파 집권기보다 더욱 심해졌다. 나이네는 불가해령 발표 전에 본속회통전을 아예 갈아엎어 기본 세금을 일반인 소득의 3배로 올리고, 세금을 내지 못하면 최소 10년형 최대 사형의 형벌을 내렸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세조때의 특세령 때도 본토인은 1.3배, 광양인은 2배로 나이네 시대보다 적어도 1배는 덜 부과했다. 즉 광양인 정도면 반란을 일으킬 만한 규모보다 더 큰 세금을, 그것도 모든 국민에게 부과했다는 것이다!

결국 농민들은 대폭 오른 세금을 부과할 형편이 안되자 산에 숨어들어 도적이 되거나, 오히려 농기구를 무기 삼아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풍주 농민 봉기.결국 전국 각지에서 봉기가 터지는 것을 보다 못한 포디반이 쿠데타를 일으켜, 나이네를 처단하고 경종의 권력을 회복시키며 길고 긴 신관파 정권 또한 막을 내렸다.

쿠데타 이후 포디반은 자발적으로 권력 전반에서 물러났으나 그가 원했든 아니든 정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었다. 결국 경종은 이대로 가면 신변에 위협이 갈 거라 판단해 포디반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 상황이 되었다.

상황이 된 후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황제 때는 신경쓸 수 없었던 서민들의 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신문물로 인해 서민들 사이에 소설이 유행하자 경종 자신도 수많은 소설을 쓰며 여생을 보냈으며 그러다가 상황으로 물러난 지 25년만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생애

예카파 시대

숨마 시대

본속회통전 집필에 기여하다

호티제가 설치되다

나이네 시대

최초의 입헌군주제?

고조반정

상황이 되다

소설 집필

평가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