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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태자비 임씨와 혼인할때 이미 두명의 애인 사이에서 자식은 3명을 두었고 혼인 후에도 애인들과 유랑을 다니며 지냈다.<br>
1899년 태자비 임씨와 혼인할때 이미 두명의 애인 사이에서 자식은 3명을 두었고 혼인 후에도 애인들과 유랑을 다니며 지냈다.<br>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뒤 한성부로 개선하면서 창덕궁에서 연호를 연강에서 정화로 바꾸는 칙령을 내렸다. 일세일원제는 명청대부터 이어져온 것이라 신료들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끝까지 밀어붙였다.

2021년 2월 2일 (화) 12:00 판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대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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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4대 황제
무종 장황제 | 武宗 莊皇帝
묘호 무종(武宗)
시호 순명경흥전의효광리정의영사충상무신위흠렬청헌용장황제
(純明景興專毅孝光理定義榮思忠商武神魏欽烈淸憲勇莊皇帝)
칸호 ᠠᠭᠤᠤ ᠵᠣᠷᠢᠭᠲᠠᠢ ᠲᠡᠮᠦᠷ ᠬᠠᠭᠠᠨ
아구우 조리그투 토모르 칸
출생 1870년 1월 3일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
사망 1961년 3월 9일 (91세)
천도부 평안궁 명정전
능묘 유릉(柳陵)
재위 대한국 태자 겸 조선왕
1890년 2월 10일 ~ 1924년 5월 10일
대한국 황제
1924년 5월 10일 ~ 1961년 3월 9일
연호 연강(延康) (1924~1946)
정화(征和) (1946~1961)
이(李)
정(晸 → 正)
부모 부황: 양종 열황제, 모후: 성신태황후
부인 소정황후
자녀 선종 강황제외 5남 8녀

개요

대한국 제4대 황제.

상당히 늦은 나이에 즉위했으며(54세),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정력적인 활동을 펼친것,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의 승리를 이끌어내었고 여러 후일담 때문에 현대에 들어와 가장 많이 언급되며 많은 존경을 받는 황제이기도 하다.

생애

난봉꾼 태자

섭정기

치세

승하

성격 및 일화

태자로 책봉된 뒤에 상당히 난잡한 생활을 이어가 부황 양종의 속을 썩였고 태자를 폐하자는 논의까지 이어졌으나 양종은 그것을 모두 물리쳤다.

1899년 태자비 임씨와 혼인할때 이미 두명의 애인 사이에서 자식은 3명을 두었고 혼인 후에도 애인들과 유랑을 다니며 지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뒤 한성부로 개선하면서 창덕궁에서 연호를 연강에서 정화로 바꾸는 칙령을 내렸다. 일세일원제는 명청대부터 이어져온 것이라 신료들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끝까지 밀어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