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펼치기 · 접기 ]
|
---|
프로젝트 디스코드 • ![]() |
Tooltip text

|
개요
2050년경, 재건 후 수도 분데스슈타트 |
아인하이츠(독일어: Einheits)는 중부유럽에 위치한 유사 정부 기구이다. 제3차 세계대전 이후 멸망한 독일의 민족성과 이념적 후신을 표방하고 있으며, 국가임을 주장하지 않기에 수교국, 나아가 교류 단체 또한 없는 가장 폐쇄적인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
성립
제3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제휴국의 승전국들에 의해 분활 점령되었으며 세계 각지에 뻗쳐진 국가판무관부와 점령지들은 해체 수순에 돌입했다. 독일 본토 동부 지역은 소비에트 정합국에 의해 동독일 인종자치판무구역이 설치되었고, 서부 지역은 스웨덴과 아일랜드의 주도로 서독일 군사통치령이 들어섰다. 이후 정합국은 동독일의 통치권을 독일 내전 중 제1 민주공화국을 조직했던 '국내 소비에트 전선'에게 이양하는 과정을 거쳐 공식적인 괴뢰국으로서 독일 민주공화국을 승인했고, 스웨덴과 노르웨이, 아일랜드 출신 등으로 구성된 '서독일 군사통치평의회'는 임명된 군정장관이 국가 행정의 전반을 감시하고 입법 권한을 점령군회의에 귀속하는 조건으로 서독일의 독일 연방공화국 수립을 비준했다.
그러나 2032년, 소비에트 정합국 내에서 알렉산드르 구바로파신이 기존 기성 정치인들과의 타협적인 연정으로 대대적인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면서 러시아 공화국 연방이 출범하게 되면서 기존 분활안과 구제휴국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입장이 변화하게 된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부르군트를 넘어 독일의 영토까지 진격해 승전국으로 합류한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팽창주의적 외교전과 서독 지역에 대해 점점 더 가혹하고 과격한 기준으로 수탈 정책으로 흡사 식민지를 운영하는 듯한 태도의 스웨덴은 신유럽 패권을 이루고자 하는 러시아에게 있어 큰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2035년, 독일 연방공화국에서는 점령군의 일방적이고 과격한 폭력을 더 이상 참지못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벌어졌고, 그 결과로 2036년 최초의 민주적 대중 선거가 시행되었다. 이때 득표율 71%로 당선된 알프레트 루덴도르프의 국민사회당은 점령군과 점령군회의의 철수 및 해산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스웨덴 공화국 정부와의 비공식적인 어떠한 거래가 체결되었다는 사실 이후로 철군과 군정장관의 해제가 실질적으로 이뤄졌다. 같은 시기 독일 민주공화국은 민족선전당의 무장 혁명으로인해 계엄령이 발령되고 소비에트 정합국군의 후신인 러시아 공화국 연방군의 개입이 공표되었다.
국민사회당과 민족선전당 양측 모두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이념적 후계를 자칭하며 패전의 결과를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외세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이 최고조에 달한 독일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구가했다.
동서독의 승전국 질서가 무너지고 있음을 목격한 러시아는 군사적 역량을 발휘해 억누르는 것보다는 국력을 최대한 보전하면서도 신흥 서, 북유럽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방도에 대한 기회가 실현의 코 앞에 다다랐음을 감지하고 독일 민주공화국에서의 모든 주둔 군사를 무르고 개입 계획의 철회를 발표했다. 그 결과로 기존 동독의 '국내 소비에트 전선' 정권이 무너지고 혁명 세력이 권력을 찬탈했으나, 실리 경제적인 여건으로 러시아와는 우호적, 혹은 적어도 중립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다.
러시아는 동서독 양측의 동시다발적이고 연계적인 정치 운동이 재통합을 바라보고 있음을 포착했었고, 새롭게 탄생할 일명 '통일 독일'을 러시아의 새로운 세력권으로 끌어들여 현재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급진적인 패권주의 움직임을 위협할 새로운 위협이자 바리케이드로 이용하고자 했다. 이에 프랑스국, 스웨덴 공화국, 아일랜드국에 더불어 미합중국 또한 "종전 조약을 위반한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한 판단."이라 언성을 높였지만, 2038년 12월. 동서독일 양측이 '비데르페라이니궁' 다른 말로 '재통합'을 선언하며 아인하이츠의 불안정한 출발을 알렸을때, 러시아 공화국 연방은 가장먼저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협력하고자하는 모습을 보였다.
뤼커에로버룽(독일어: Rückeroberung)
2040년 2월, 아인하이츠는 프랑스령 알자스-모젤-자르 속 독일민족의 민족자결권을 주장하며 국경분쟁에 돌입했다. 더불어 TDRCPESF 주데텐란트의 재주장도 이어졌는데, 이 경우에는 TDRCPESF가 국가 변경 지역에 군사를 배치하지 않았던터라 신속하게 점령되었다.
2040년 8월에는 오스트리아 독립공화국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시도가 실패에 그치자 군사를 동원한 강제 통합에 대한 최후통첩이 전달되었다. 11월에는 대대적인 침공이 개시되며 아인하이츠의 과도한 남하를 우려한 이탈리아 통합 연방의 지원이 가세해 알프스 산맥에서 고전이 치뤄졌다. 9월말 게잠트베어마흐트가 티롤까지 진격하자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4개의 군단을 배치하며 응수했고, 전면전의 양상으로 변질되기 시작하자, 아인하이츠는 결국 2042년 11월 23일, 얀테 조약을 체결하며 티롤과 잘츠부르크을 할양 받는 것을 조건으로 오스트리아의 주권을 인정하고 불가침을 맺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오이로패이셰 루프트파르트게젤샤프트 게르마니아 218편 납치 사건
2046년 9월 8일, 남아프리카 연방 요하네스버그에서 출발하여 아인하이츠 게르마니아로 향하던 Europäische Luftfahrtgesellschaft Germania(ELG) 소속 218편 항공기가 이륙 1시간 후 나미비아 상공에서 IS 소속 무자헤딘 4명에 의해 하이재킹되었다. 템펠호프 국제공항에 착륙한 뒤, 9시간에 걸친 아인하이츠 내무근위군(IDA)과의 대치 끝에 기내에서 폭발물이 기폭되며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