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대한 국민 정부 (넓은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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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대한 국민 정부
嶺南 大韓 國民 政府
Yeongnam Korean People's Government
국기 국장
大韓奉守 爲民俱贊
대한봉수 위민구찬[1]
상징
국가 조국의찬가
국조
원앙
국화
할미꽃
국수
천마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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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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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국 1945년 8월 15일
  • 영남 평의회 정부수립 1947년 1월 7일
    • 공민내전 1947년 11월 2일 ~ 1948년 11월 1일
  • 달구의 난 1948년 12월 3일
  • 대한 국민 정부 수립 1950년 1월 1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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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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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13,998,967명
밀도
144.24명/km2명/km2
민족 구성
대한인 99%, 기타 1%
출산율
2.8명 (2020년)
기대 수명
72세 (2020년)
공용어
영남향어(嶺南鄕語)
공용 문자
한글,한자
종교
국교
법률상 없음
분포
불교 97%, 기타3%
군대
향토 수위대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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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도읍관(首京都邑官)
1개 도시[2]
광역도관(廣域道官)
3개 도시[3]
유민소지(類民所止)
44개 도시, 513개 휘하지방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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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정(명목상),공화정(실질),민주정(실질), 의원내각제
민주주의 지수
7.03점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 원수 (국왕(國王)
삼한왕 전하 원문진양왕
(聖帝明王 殿下 元文進洋王)
정부
요인
국무경(國務卿)
국무경 각하 리순(李順)
상임관료회 의결장
(常任官僚會 議決長)
상원의장 남궁유석(南宮儒釋)
관민공동회 의결장
(官民共同會 議決長)
하원의장 박얼자(朴臬子)
여당
근왕사회회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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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수정자본주의, 일부 시장경제
GDP
(PPP)
전체 GDP
$
1인당 GDP
$
GDP
(명목)
전체 GDP
$
1인당 GDP
$
신용 등급
무디스 ---
S&P ---
Fitch ---
화폐
공식 화폐
영남 만민통보(萬民通寶)
ISO 4217
YKG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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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대연기원력, 태양력
시간대
GMT + 09:00
도량형
SI 단위
ccTLD
.yk
국가 코드
YK, YKG
전화 코드
+07
영남의 자랑거리
지리산 천왕봉, 낙동강 경천대, 양산 통도사, 밀양 촉석루, 월성 첨성대

개요

영남 대한 국민 정부(한자:嶺南 大韓 國民 政府) (영어:Yeongnam Korean People's Government)는 한반도의 영남지역에 위치한 국가로, 대한국가연방의 구성국이다.

국가상징

국기•국장

나라깃발(국기) 나라도장(국장)

국가


국가
조국의찬가(祖國之歌)

역사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이 패망하고 광복함에 따라서 영남에 미군이 들이닥쳤다. 당시 영남은 사상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우리민족을 중심으로 뭉친 근왕당은 대연국의 왕을 우리도 추대하여 전통질서에 편입되고자 하였고 이에 반하는 민족의식을 벗어나 세계적인 공산•사회주의 질서에 편입되고자 한 공산당은 광복 초반부터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1947년 1월 7일, 영남 평의회 정부가 수립되어 근왕당과 공산당은 연정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강원과 호남 지역에서 여러 한인정부가 세워지는것을 본 영남인들은 일단 건국준비를 서둘렀고, 건국의 목표를 달성한 후 공민내전발발 1947년 11월 2일 까지 10개월동안의 연정동안 거의 매일 평의회에서 회의가 열렸지만 10개월동안 통과된 법안은 20개가 되지 못하였고, 행정명령도 50개정도에 그쳤다.

공민내전

영남 평의회 정부의 초대 국무경 정용호의 암살사건 (정용호 암살사건) 이후, 국가는 영남의 공산당과 근왕당은 각각 당군을 조직하여 내전을 시작하는데,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당은 당시 수도였던 부산포를 빠르게 점령하고, 소련의 지원과 함께 도착한 의용군의 합류로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공민내전 초반의 청도 범곡에서 일어났던 청도읍성 전투는 공산군이 지원받은 T-34 전차와 구형 자주포를 통한 공성전으로 근왕당이 궤멸적 피해를 입었고, 임시수도였던 월성에서 상주(現낙양)으로 천도하였을 정도였다. 이후 울산 옥동산 전투에서 패하여 울산의 북쪽 강동과 북농소 지역에서 저항하여 경주진입을 막아내었고, 최초의 승리라 평가되는 영천호 전투를 통하여 월성의 전차진입을 차단하는것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달구 6.8후퇴 사건을 통하여 달구 지역을 내주게 되었고 거창합천에서의 유민연합(儒民聯合)은 공산군에 저항하였으나 민병대에 불과한 유민연합은 패배하고 거창 8.13학살 사건을 통하여 확인된 유민연합 128여명이 총살되었다. 영남의 남경상도 지역[4]은 호남지방의 지원으로 버티고 있었던 산청,하동,진주,고성,거제,마산 지역은 공산군에게 조직적 저항을 통하여 방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산군의 칠곡 11.23 대공세는 군위지역 전체를, 구미 북쪽지역 일부를 제외하고선 전부 공산군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으며, 대연국의 지원과 증원이 도착한 1948년 1월 30일, 2개의 군앙서(軍央署)[5]그리고 현재의 향토 수위대의 전신은 상비군에 해당하는 국위앙서(國衛央署)의 3개 군단급 편제를 통해서 2.8 군위 소보반격의 준비를 시작하였다.

2.8 군위 소보반격은 늦은 밤인 2월 7일 오후 12시의 특작을 위한 별동대를 통해 기습으로 시작되었으며, 다음날 2월 8일의 대대적 공세를 통해 군위와 구미를 수복하고 영천에 주둔중인 군대와 합류하여 달구 탈환작전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이튿 후인 2월 10일에 후방에 해당하는 영덕 공산군 상륙작전은 반공 성향이 강한 강원도가 경계선 침범을 구실삼아 상륙군 대부분을 해전을 통해 섬멸한 축산항 해전으로 상륙은 저지되었고, 다음 주인 2월 18일, 2.18 달구 공수작전[6]을 통해 달구을 탈환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이후, 월성에서의 최초로 조직된 해군인 이사부 함대는 공산군을 지원하는 수송선을 저격하며 해상봉쇄를 시작하였고, 그해 8월, 점점 밀린 공산군은 마침내 양산에서의 8.14 양산 주몰연진 전투에서 공산군은 85mm 병형 대전차포에 T-34 전차가 무력화 당하며 대패하여 결국 부산포로 몰리게 되었다.

10월 28일, 공산군 최후의 저항이라 할 수 있는 대광암아릉 지역에서의 빨치산 활동과 10.29고국터 전투에서 패배하자 결국 부산포의 자성대, 부산진왜성의 금루관 영남 사회주의 소비에트 총통부 청사[7]에서 11월 1일 동래성 조약(1948년 11월 1일)을 통해 공식적으로 종전되었다.

공화정의 폐지

근왕파의 승리 후, 리언평이 국무경으로 취임하자, 공화정 폐지 및 국가원수로서의 통령직은 영남 대한 국민 정부 국무경 명령 제11호에 의하여 폐지되었고, 공화정의 폐지 찬반에 대해서 당시 의회인 국정대평의[8]에 안건이 올라왔고, 당시 입안 날짜인 1949년 10월 12일로부터 시작해 1949년 12월 1일에 본회의를 통해 표결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당시의 좌익정당이자 현재도 존재하는 공화노동연맹은 결사 반대에 나섰으나, 리언평은 1949년 10월 15일 국가보안상비회의를 창설하여 정치탄압을 벌였다. 이때 월성 신라 종묘 테러 미수사건이라 알려진 속칭 30인 사건은 보안회의 자작극으로 터지지 않고 연기만 피어오르는 사제폭탄을 설치하여 종묘 폭탄 테러로 꾸미고 공화노동연맹의 당원을 용의자로 몰아 공화노동연맹을 탄압하였던 사건이다.

이때, 의원들을 중심적으로 배후로 적발하여 현직의원 18인, 이외 고위간부 12인을 체포하여 연행해 공화노동연맹은 발족수를 채우지 못해 결국 정치적 영향력이 와해되었고, 공화주의 성향의 당들과 연합을 꾸려 이를 방어해보고자 하였으나 1949년 11월 30일, 근왕인민회의 의원들은 비밀스럽게 개회하였고 12월 1일이 되는 오전 1시에 표결하여 12.1 날치기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로서 법률상 공화정의 폐지가 선포되었고, 계엄군이 동원되어 진압에 나서게 된다.

달구의 난

1949년 12월 24일, 달구에서 공화노동연맹의 전직 의원들과 공화주의자 동맹 단체들이 모여 도심지에서 조직적인 항의시위를 계획해 실행에 옮기었다.

계엄군의 진압보다도 이를 지하언론(혁명신보,해돋이 신문)을 통해 전국에 유포하며 시위를 전파하였고, 달구은 거의 진압된 듯 하였으나 1945년 12월 25일엔 동래진의 동래구 천주교회에서 성탄절 기념 행사를 명목삼아 시위자들을 숨기고,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사건인 성탄절 구호 사건을 알아챈 계엄군은 천주교회를 무력으로 점거하였고

1945년 12월 30일엔 양산의 통도사에서 시위단체를 숨겨주고 주민들이 이들에게 음식을 절에 기부해 의식주를 제공한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한 사건은 절간 시주 사건이라 하여 잔혹히 진압되었다. 당시의 명목상의 거국내각에선 리언평을 군사권과 정계유착을 벌이고 이던 "군관 김성주"에 의해 사실상의 군관 통치시기였다.

민심이 동나자 결국 거국내각의 수장이었던 리언평은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하였으며, 이후 김성주에게 정권을 이양하지 않고 유군자당[9]으로 이양하려 하였고 김성주에게 협박을 통해 이양하였으며 이후 총살되었다.

달구의 난은 1945년 1월 5일에 전국적인 대탄압이 있었으나 2~4월까지 소강에 이을었는데 이 이유는 당시 조직적 항전을 위한 조직 형성이었고 1945년 5월 28일, 월성과 낙양에서 일어난 5.28 만세혁명을 통해 군관 김성주는 내각 총사퇴, 그리고 강원도로 도망가려 하였으나 결국 잡혔고 낙양에서 인민재판을 통해 돌을 맞아 죽었으며 이후 돌이 쌓여 돌무덤이 형성되었고, 돌무덤 위에 현재 공화만세비가 세워지며 영남 대한 국민 정부가 확립되었고 이후 근왕파와의 대합의인 6.1합의를 통해 현재의 국가형태가 확립되었고 이때 결정된 법이 6.1 합의 국제이다.

만민공동회 개최

대한 국민 헌정 정부 수립

지리

행정구역

영남 대한 국민 정부 행정구역
지도 기호 명칭 중앙서
수경도읍관 낙양
首京都邑官 洛陽
낙양
洛陽
웅도거읍 월성
雄都巨邑 月城
월성
月城
국진울포 동뫼
國津珍浦 東山
동뫼
東山
산중호걸 달구
山中豪傑 達句
달구
達句
유민소지[10]
維民所止[11]
1 문경서 2 예천서 3 영주서
4 봉화서 5 안동서 6 영양서
7 의성서 8 청송서 9 영덕서
10 구미서 11 군위서 12 영천서
13 통양서 14 김천서 15 성주서
16 칠곡서 17 경산서 18 거창서 19 합천서
20 고령서 21 창녕서 22 청도서 23 밀양서
24 울산서 25 함양서 26 산청서 27 진주서
28 의령서 29 함안서 30 북창서 31 김해서
32 밀양서 33 기장서 34 하동서 35 사천서
36 고성서 37 서창서 38 동창서 39 남해서
40 거제서 41 통영서 42 우릉서 43 석도서
44 장기서 45 대마서[12]

사회•문화

정치

상원 상임관료회

상임관료회 국무경


영남 대한 국민 정부 상임관료회 국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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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代 2代 3~5代 6代
정용호 리언평 리희순 박을류
7代 8代 9~10代 11代
룡현일 임진목 황보일 송민욱
12~14代 15代 16代 17代
유길빈 선우공석 한명 리순

상임관료회 의석

하원 관민공동회


관민공동회 원내정당

現 제13대 관민공동회
당명 및 당수 이념 스펙트럼 의석 기타
이밀호(李謐浩) 근왕주의, 사회민주주의, 사회보수주의 중도 우익 ~ 우익 71석 여당, 달구-근인회 연정
근왕인민회의
강총(剛聰) 민주사회주의, 민중민주주의, 입헌군주주의, 민권주의 좌익~극좌 41석 제1 야당
공화노동연맹
대주스님 안임서
(大柱僧 安恁書)
불교우선주의, 호국불교, 일심사상 보수 11석 공동 제2야당
금강산화공덕회
언수 공석주(言倕 孔石晝) 이기일원론, 자유보수주의, 애국주의 보수 11석 공동 제2야당
율곡유군자당
박진(朴眞) 생태주의, 환경정의, 평등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중도~진보 7석 제3 야당
강호지락단
파일:달구자유당 당로고.png 흠진태(欠疹台) 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반공주의, 민주주의 중도~보수 3석 제4 야당, 달구-근인회 연정
달구자유당
장산국(萇山局) 지역주의, 자유시장추구 중도~보수 1석 기타 지역정당
동래권익협의회

근왕파

영남 대한 국민 정부는 대연국의 국왕을 수호하려는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제2당에 해당하는 공화로동련맹도 좌익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지만 "작은 왕, 큰 공화정부" 를 주장하며 국왕의 존재를 인정하는 주장을 당론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공산당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불법으로 간주되지만 국왕의 존립 인정여부에 따라서 국가보안위협의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1. 대한을 받들어 지키고 모든 백성을 위해 찬양하라
  2. 수경도읍관 낙양(首京都邑官 洛陽)
  3. 국진울포 동래(國津珍浦 東萊),웅도거읍 월성(雄都巨邑 月城),산중호걸 달구(山中豪傑 達句伐)
  4. 현재는 남주(南州)라 지칭한다.
  5. 남상군앙서(南尙軍央署),북문군앙서(北聞軍央署) 편제
  6. 민간에서는 작전암호였던 "참매작전"으로도 알려져있다.
  7. 현재의 금루관 만공대이다.
  8. (國政代平議)
  9. 현재의 율곡유군자당의 전신이다.
  10. 유민소지의 모든 일반 도시는 서(署)란 명칭을 사용한다.
  11. 백성이 머물러 사는 곳 이라는 뜻이다.
  12.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서 행정구역에 명목상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