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철통같은 믿음으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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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지인계운응천조통광훈영명 성문신무정의광덕고황제(太祖 至仁啓運應天肇統廣勳永命 聖文神武正義光德高皇帝)'''
'''태조 지인계운응천조통광훈영명 성문신무정의광덕고황제(太祖 至仁啓運應天肇統廣勳永命 聖文神武正義光德高皇帝)'''


이성계는 고려 말기의 명장이자 조선을 건국한 조선왕조의 창업군주이다.  
이성계는 고려 말기의 명장이자 조선을 건국한 조선왕조의 창업군주이다. 한민족 출신의 영속자이며, 현재 드러나있는 영속자 중 인류 역사상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존재이다. 또한 한민족의 조상 그 자체로, 대부분의 현대 한민족은 그의 핏줄을 물려받아 원거리 무기 사용에 어느정도의 이점을 가지고 있다.


== 생애 ==
== 생애 ==
=== 고려시대 ===
==== 장막 속에서 ====
고려의 무신이자 조선의 초대 국왕인 이성계는 태생부터 비범하였다. 고대 환 제국 한씨 황실의 직계 남계 후예인 전주 이씨 가문, 그 중에서도 금나라에게 귀부한 이안사의 고손자로 출생하였다. 어릴 적, 그는 우연하게 온 세상이 보랏빛으로 가득 차 있는, 흔히 장막 너머라고 알려져있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괴이한 경험을 겪었고, 수상한 힘을 얻어서 나왔다.


=== 고려시대 ===
그 이후로 이성계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보여서는 안 될 것이 보였고, 느껴져서는 안 될 것이 느껴지게 되었다. 운동으로 단련하며 마음을 다스리던 이성계는 홀린 듯이 가문의 가보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활을 꺼내들었고, 아버지 이자춘에게 활을 양도받은 후 운명을 깨닫고 무력을 수양, 고려의 장수로 출사하기로 결정하였다.
고려의 무신이자 조선의 초대 국왕인 이성계는 태생부터 비범하였다. 고대 환 제국 한씨 황실의 직계 남계 후예인 전주 이씨 가문, 그 중에서도 금나라에게 귀부한 이안사의 고손자로 출생하였다. 어릴 적, 그는 우연하게 온 세상이 보랏빛으로 가득 차 있는, 흔히 장막 너머라고 알려져있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괴이한 경험을 겪었고, 수상한 힘을 얻어서 나왔다. 그 이후로 이성계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보여서는 안 될 것이 보였고, 느껴져서는 안 될 것이 느껴지게 되었다.  
 
고려의 장수로 출사한 후, 당시 국왕이던 공민왕의 명을 받아 이성계는 위로는 홍건적, 나하추, 여진족, 원나라와 맞붙었고, 아래로는 왜구와 수적들과 싸우면서 위엄을 떨쳤다. 공민왕의 요동정벌계획에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심양 땅을 밟은 적도 있으니, 그는 백전불태의 명장이었다. 내정은 신돈이 보좌하고, 반도는 최영이 지키며, 외적은 이성계가 무찌르니 고려는 다시금 부흥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 고려를 멸망시킬 자 ====
 
그러나, 공민왕이 총애하던 신돈이 고대 조선을 멸망시킨 어둠의 일족, 기자였다. 그는 공민왕의 육신을 빼앗아 성녀 반야와의 사이에서 '우왕'이라는 존재를 낳고 그 몸으로 혼을 옮겨 가짜 국왕 행세를 하며 완전생물로 진화하기 위해 한반도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최영을 지배시킨 후 이성계를 제거시키기 위해 '2차 요동정벌'을 실시하게금 하자, 사해용왕 왕건의 적통 중 한 명이자 사돈, 친구 왕요와 함께 구국의 결단인 우왕을 몰아내고 임시로 '우왕'의 분신체를 '창왕'으로 옹립하였고, 시간이 지난 후에 왕요를 고려의 국왕으로 옹립시켰다. 이 과정에서 기자에게 참살당한 공민왕의 제사를 지내주고, 강제로 기자에게 임신당한 성녀 반야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운동으로 단련하며 마음을 다스리던 이성계는 홀린 듯이 가문의 가보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활을 꺼내들었고, 아버지 이자춘에게 활을 양도받은 후 운명을 깨닫고 무력을 수양, 고려의 장수로
허나 이성계에게 닥친 시련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친우 왕요가 권력을 잡은 후, 왕씨 집안에서 왕권을 잡으면 간혈적으로 나타난다는 광증을 보이며<ref>이 광증은 현대 과학기술로 분석한 결과, 용혈은 광증과 강한 힘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용혈이 근친으로 누적된 왕씨는 특히 더 광증이 나올 확률이 높은 것 때문이라 밝혀졌다.</ref> 측근과 태자까지 죽이려하자 결국 이성계는 왕요를 제압하고, 대신에게 추대를 받아 왕으로 즉위한다. 이 과정에서 왕씨 일가의 훗날 처분에 대해 갑론을박을 나누었고, 끝내 신진사대부의 강경파(급진사대부)들은 온건파(온건사대부)들이 왕씨의 피를 잇고 있다 생각하여 온건파를 대학살하는 '선죽교 학살 사건'<ref>태종 이방원의 주도로 일어난 사건이며, 이성계는 이러한 학살에 매우 부정적이여서 후계자로 이방석을 임명했다. 후대에 DNA 분석 결과, 상당수의 온건사대부들이 왕씨의 핏줄을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ref>이 일어나게 되며 조선의 기틀이 다져지게 되었다.


=== 조선시대 ===
=== 조선시대 ===
==== 무인정사 ====
1392년, 환 제국의 적통 겸 단군조선의 뒤를 이어 국호를 대조선국으로 해 국왕으로 즉위한 이성계는 정도전과 여러 신하들을 이용하여 고려, 이제는 조선으로 불리울 나라를 개혁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최우선으로 국방을 튼튼하게 하였으며, 고려 말 있었던 수 많은 폐단을 없애기 시작하였다. 정도전과 정안공(태종) 이방원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된 개혁은 신생 조선에 대한 지지를 높여주는데 일조하였고, 이씨 왕조는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성계의 후계자를 정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성계의 이방원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하였고,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이방석에 대한 총애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자신이 계속 조선을 통치하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혹시나 대비하려는 부분에서 이방석을 태자로 삼았다. 이방원은 분하였으나, 자신보다 젊고 강한 아버지의 뜻에 반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1398년 이방원이 형 영안공(정종)을 방문하러 가는 길목에, 우연히 동생 이방석의 처소를 지나치게 되었다. 이방석의 처소에서 은밀하게 소리가 나고 있었기에, 그곳을 몰래 엿보았고, 이방원은 곧 이방석이 이성계를 '''영원불멸할 조선의 통치자로 만들겠으나, 소위 '황금옥좌'라고 불리우는 곳에 앉혀만 두고, 이방석이 태자로서 대리청정을 하는 섭정체제'''를 정도전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음을 듣게 되었다.
결국 이방원은 효심과 애국심으로, 그리하여 만들어질 체제는 언젠가 붕괴할 수 밖에 없음을 알아, 사병을 꾸려 이방석과 정도전 일파를 급습, 곧 그들을 처치하였다. 이성계는 이에 크게 노하여 이방원에게 호통을 쳤으나, 이방석이 준비한 계획과 자신의 생각을 이성계에게 피력하고, 이성계의 불멸통치는 궁극적으로 조선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을 논파하였다. 이성계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아 살아있던 차남 영안공에게 양위하여 고향인 회령으로 돌아갔다.
회령으로 돌아간 후 이성계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나, 자신의 충신이었던 조사의가 이성계의 뜻을 지레짐작하여 조정을 공격하는 조사의의 난을 일으키나, 이성계는 이를 직접 저지하였다. 이후 함흥에 머물면서 자신을 복귀시키러 찾아오는 차사들에게 친히 술을 대접하고 그냥 돌려보내는, 소위 말하는 '함흥차사'라는 고사를 직접 만들었다.
고뇌를 하던 끝에 이방원은 자신이 조선에서 살아있으면 아들 이방원이 말하였던 것처럼 추종자들에게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토록 혐오하던 불교의 폐단처럼 굴러갈지도 모른다는 악몽을 꾸게 되었고, 결국 1408년 정종과 태종에게 자신의 미래 향방을 알려주고는, 홀연히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향하였다. 공식적으로 이 시기에 이성계는 사망했다 처리되었고, 국장도 성대하게 치뤄졌다. 물론 안에는 시신이 들어있지 않고, 이성계가 입던 옷가지와 아버지 이자춘의 모피만이 들어있었다.


=== 유럽 ===
=== 여정 ===
==== 중국 ====
조선에서 나온 이성계는 중국 북경으로 향하였다.
==== 유럽 ====


=== 근대 ===
=== 근대 ===

2022년 11월 20일 (일) 01:2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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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고황제 이단
太祖 高皇帝 李旦

본명
이성계(李成)
종족
인류 사피엔스 계열
국적
대한제국
일본국
성별
남성
가족관계
태종 이방원 (5남)
세종 이도 (손자)
광무황제 이환 (후손)
융희황제 이척 (후손)
황태자 이강 (후손)
영친왕 이영 (후손)
금친왕 이휼 (후손)
이승만 (후손)
그 외 모든 한국인
생년월일
1335년 11월 4일
출생지
원 쌍성총관부 화령 준원전
직위
대한-일본 이중제국 특수
소속
대한-일본 이중제국 황실
특이사항
영속자.
상태
생존


개요

태조 지인계운응천조통광훈영명 성문신무정의광덕고황제(太祖 至仁啓運應天肇統廣勳永命 聖文神武正義光德高皇帝)

이성계는 고려 말기의 명장이자 조선을 건국한 조선왕조의 창업군주이다. 한민족 출신의 영속자이며, 현재 드러나있는 영속자 중 인류 역사상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존재이다. 또한 한민족의 조상 그 자체로, 대부분의 현대 한민족은 그의 핏줄을 물려받아 원거리 무기 사용에 어느정도의 이점을 가지고 있다.

생애

고려시대

장막 속에서

고려의 무신이자 조선의 초대 국왕인 이성계는 태생부터 비범하였다. 고대 환 제국 한씨 황실의 직계 남계 후예인 전주 이씨 가문, 그 중에서도 금나라에게 귀부한 이안사의 고손자로 출생하였다. 어릴 적, 그는 우연하게 온 세상이 보랏빛으로 가득 차 있는, 흔히 장막 너머라고 알려져있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괴이한 경험을 겪었고, 수상한 힘을 얻어서 나왔다.

그 이후로 이성계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보여서는 안 될 것이 보였고, 느껴져서는 안 될 것이 느껴지게 되었다. 운동으로 단련하며 마음을 다스리던 이성계는 홀린 듯이 가문의 가보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활을 꺼내들었고, 아버지 이자춘에게 활을 양도받은 후 운명을 깨닫고 무력을 수양, 고려의 장수로 출사하기로 결정하였다.

고려의 장수로 출사한 후, 당시 국왕이던 공민왕의 명을 받아 이성계는 위로는 홍건적, 나하추, 여진족, 원나라와 맞붙었고, 아래로는 왜구와 수적들과 싸우면서 위엄을 떨쳤다. 공민왕의 요동정벌계획에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심양 땅을 밟은 적도 있으니, 그는 백전불태의 명장이었다. 내정은 신돈이 보좌하고, 반도는 최영이 지키며, 외적은 이성계가 무찌르니 고려는 다시금 부흥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고려를 멸망시킬 자

그러나, 공민왕이 총애하던 신돈이 고대 조선을 멸망시킨 어둠의 일족, 기자였다. 그는 공민왕의 육신을 빼앗아 성녀 반야와의 사이에서 '우왕'이라는 존재를 낳고 그 몸으로 혼을 옮겨 가짜 국왕 행세를 하며 완전생물로 진화하기 위해 한반도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최영을 지배시킨 후 이성계를 제거시키기 위해 '2차 요동정벌'을 실시하게금 하자, 사해용왕 왕건의 적통 중 한 명이자 사돈, 친구 왕요와 함께 구국의 결단인 우왕을 몰아내고 임시로 '우왕'의 분신체를 '창왕'으로 옹립하였고, 시간이 지난 후에 왕요를 고려의 국왕으로 옹립시켰다. 이 과정에서 기자에게 참살당한 공민왕의 제사를 지내주고, 강제로 기자에게 임신당한 성녀 반야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허나 이성계에게 닥친 시련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친우 왕요가 권력을 잡은 후, 왕씨 집안에서 왕권을 잡으면 간혈적으로 나타난다는 광증을 보이며[1] 측근과 태자까지 죽이려하자 결국 이성계는 왕요를 제압하고, 대신에게 추대를 받아 왕으로 즉위한다. 이 과정에서 왕씨 일가의 훗날 처분에 대해 갑론을박을 나누었고, 끝내 신진사대부의 강경파(급진사대부)들은 온건파(온건사대부)들이 왕씨의 피를 잇고 있다 생각하여 온건파를 대학살하는 '선죽교 학살 사건'[2]이 일어나게 되며 조선의 기틀이 다져지게 되었다.

조선시대

무인정사

1392년, 환 제국의 적통 겸 단군조선의 뒤를 이어 국호를 대조선국으로 해 국왕으로 즉위한 이성계는 정도전과 여러 신하들을 이용하여 고려, 이제는 조선으로 불리울 나라를 개혁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최우선으로 국방을 튼튼하게 하였으며, 고려 말 있었던 수 많은 폐단을 없애기 시작하였다. 정도전과 정안공(태종) 이방원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된 개혁은 신생 조선에 대한 지지를 높여주는데 일조하였고, 이씨 왕조는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성계의 후계자를 정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성계의 이방원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하였고,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이방석에 대한 총애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자신이 계속 조선을 통치하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혹시나 대비하려는 부분에서 이방석을 태자로 삼았다. 이방원은 분하였으나, 자신보다 젊고 강한 아버지의 뜻에 반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1398년 이방원이 형 영안공(정종)을 방문하러 가는 길목에, 우연히 동생 이방석의 처소를 지나치게 되었다. 이방석의 처소에서 은밀하게 소리가 나고 있었기에, 그곳을 몰래 엿보았고, 이방원은 곧 이방석이 이성계를 영원불멸할 조선의 통치자로 만들겠으나, 소위 '황금옥좌'라고 불리우는 곳에 앉혀만 두고, 이방석이 태자로서 대리청정을 하는 섭정체제를 정도전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음을 듣게 되었다.

결국 이방원은 효심과 애국심으로, 그리하여 만들어질 체제는 언젠가 붕괴할 수 밖에 없음을 알아, 사병을 꾸려 이방석과 정도전 일파를 급습, 곧 그들을 처치하였다. 이성계는 이에 크게 노하여 이방원에게 호통을 쳤으나, 이방석이 준비한 계획과 자신의 생각을 이성계에게 피력하고, 이성계의 불멸통치는 궁극적으로 조선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을 논파하였다. 이성계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아 살아있던 차남 영안공에게 양위하여 고향인 회령으로 돌아갔다.

회령으로 돌아간 후 이성계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나, 자신의 충신이었던 조사의가 이성계의 뜻을 지레짐작하여 조정을 공격하는 조사의의 난을 일으키나, 이성계는 이를 직접 저지하였다. 이후 함흥에 머물면서 자신을 복귀시키러 찾아오는 차사들에게 친히 술을 대접하고 그냥 돌려보내는, 소위 말하는 '함흥차사'라는 고사를 직접 만들었다.

고뇌를 하던 끝에 이방원은 자신이 조선에서 살아있으면 아들 이방원이 말하였던 것처럼 추종자들에게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토록 혐오하던 불교의 폐단처럼 굴러갈지도 모른다는 악몽을 꾸게 되었고, 결국 1408년 정종과 태종에게 자신의 미래 향방을 알려주고는, 홀연히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향하였다. 공식적으로 이 시기에 이성계는 사망했다 처리되었고, 국장도 성대하게 치뤄졌다. 물론 안에는 시신이 들어있지 않고, 이성계가 입던 옷가지와 아버지 이자춘의 모피만이 들어있었다.

여정

중국

조선에서 나온 이성계는 중국 북경으로 향하였다.

유럽

근대

세계대전

현대

가족

이성계의 적통으로 할 것이라면, 그의 친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사실상 1952년까지 내려오면서 한국인 그 자체가 이성계의 가족이 되었다. 길 가던 아무나 잡아서 DNA 검사를 해도 하나 쯤은 이성계와 맞는다.

  1. 이 광증은 현대 과학기술로 분석한 결과, 용혈은 광증과 강한 힘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용혈이 근친으로 누적된 왕씨는 특히 더 광증이 나올 확률이 높은 것 때문이라 밝혀졌다.
  2. 태종 이방원의 주도로 일어난 사건이며, 이성계는 이러한 학살에 매우 부정적이여서 후계자로 이방석을 임명했다. 후대에 DNA 분석 결과, 상당수의 온건사대부들이 왕씨의 핏줄을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