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와르샤와)

WARSAW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9월 25일 (일) 17:51 판 (새 문서: {{와르샤와 단편 프로젝트}} <div style="max-width: 700px; border: 0px solid none; background: #EF426F;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border-radius:8px"> <div style="...)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A WARSAW FICTIONAL PROJECT / 2024
모든 설정들은 제작자 본인이 제작한 것으로, 퍼블릭 도메인과 제작 인증의 적용을 받습니다.
이 문서는 공사 중입니다
해당 문서가 완성될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탈리아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Repubblica Sociale Italiana
국기
국장
Avanti, Fratelli d'Italia!
전진하라, 이탈리아의 형제들이여!
국가 조비네차
국화 데이지
역사
  이탈리아 통일 1870년 10월 2일
  베니토 무솔리니 집권 1922년 10월 31일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수립 1943년 9월 23일
  공화국 전환 국민투표 1946년 6월 2일
  이탈리아 공화국 헌법 시행 1948년 1월 1일
  이탈리아 공화국 폐지 2025년 1월 1일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재수립 2025년 1월 2일
지리
수도 겸
최대 도시
로마
면적 301,340㎢
접경국 바티칸, 산마리노,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인문 환경
인구 전체
57,403,681명명(2026년)
비율
(민족)
이탈리아인 97.7%
외국인 2.3%(2026년)
밀도 190.4명/㎢(2026년)
출산율 1.33명(2026년)
언어 공용어 이탈리아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종교 국교 로마 가톨릭교회
비율 가톨릭 82.1%
개신교 2.1%
무종교 14.1%
이슬람 0.6%
기타 1.1%(2026년)
행정 구역
레조네 20개
프로빈차 107개
코무네 7,960개
정치 및 체제
정치 체제 명목상:
공화국, 의원내각제, 양원제, 다당제

사실상:
일당 우위 정당제, 전체주의, 권위주의, 파시즘[1][2]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01위(2026년) 혼합적인 체제
국가 원수
(일 카포)
시모네 디 스테파노
정부 수반
(총리)
지안루카 이안노네
원내 여당 사회공화당
야당 민주당, 오성운동, 전진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에 반대하는 연합
군사
자국군 이탈리아군
세부 군대 육군 이탈리아 육군
해군 이탈리아 해군
공군 이탈리아 공군
충원방식 징병제(전시 징병제, 예비군 포함)
통수권자 시모네 디 스테파노(일 카포)
경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전시 계획 경제)
명목 GDP 전체 $2조 2,386억 2,875만 1,638 / 세계 6위
1인당 38,998 달러 / 세계 30위
GDP PPP 전체 $2조 9,135억 2,382만 9,155 / 세계 11위
1인당 50,755 달러 / 세계 31위
무역 수입 $3,793억 4,504만(2026년)
수출 $5,411억 1,695만(2026년)
외환보유고 $1,109억 3,765만
신용 등급 Moody's BBB-
S&P Baa3
Fitch BBB+
공식 화폐 리라(₤, ITL)
외교
국제 연합 1955년
기타 및 단위
도메인 .it
국가 코드 380, ITA, IT
전화 코드 +39
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01:00
도량형 SI 단위

개요

이탈리아 사회공화국(Repubblica Sociale Italiana), 약칭 이탈리아(Italia)남유럽지중해의 반도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장화와 똑같이 생긴 모양의 반도를 지배하고 있으며 지중해, 아드리아해와 접한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로마로, 한 때 로마 제국의 중심지로서 고대 유럽 문화의 핵심이자 라틴 문자의 발상지로 불린다. 프랑스, 모나코,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와 육지상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고, 반도 안에서는 바티칸산마리노와 접해 있다.

G20G7 참가국이자 유엔 가입국이다. 명목 GDP 기준 세계 7위, PPP 기준으로 세계 11위이며 국방비 기준 세계 9위이다.

상징

국호

언어별 명칭
이탈리아어 Repubblica Sociale Italiana
Italia
그리스어 Ιταλική Κοινωνική Δημοκρατία
Ιταλία
독일어 Italienische Sozialrepublik
Italien
라틴어 Res Publica Socialis Italica
Italia
러시아어 Итальянская Социальная Республика
Ита́лия
롬바르드어 Republega Sociala Italiana
Itàlia
베네토어 Repiovega Sociałe Itałiana
Itałia
사르데냐어 Repùblica Sotziale Italiana
Itàlia
영어 Italian Social Republic
Italy
프랑스어 République sociale italienne
Italie
일본어 イタリア社会共和国
イタリア
한국어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이탈리아
중국어 義大利社會共和國 혹은 意大利社会共和国
義大利 또는 意大利
한자 음차 伊太利(이태리)

공식 국호는 이탈리아 사회공화국(Repubblica Sociale Italiana)이다. 이탈리아란 어원은 기원전 5세기 경 시라쿠사의 안티오코스에 따르면 본래 이탈리 사람들이 살던 칼라브리아 지방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과거 신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가 도망친 소를 찾으러 시칠리아를 거쳐 칼라브리아 남부까지 왔다가, 이 곳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만의 언어로 소를 비툴루스라 불렀기에 비툴루스라고 불렀다는 유래가 있다. 이 외에도 이탈루스 왕자의 이름에서 따왔다거나 칼라브리아 지방의 사람들이 수소에 대한 토테미즘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로마 제국 시기에는 이탈리아라는 의미가 알파인 지역으로 확장되었고, 기원전 1세기 무렵 사비네족과 같은 이탈리아 반도 내 여러 부족들을 이탈리아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이탈리아는 지리적 의미로 쓰였다가 리소르지멘토를 계기로 민족적인 함의를 지니게 되었으며 1861년 통일 국가의 이름을 이탈리아 왕국으로 지었다.

현 국호인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은 1943년 나치 독일 시기 이탈리아 북부에 세워진 동명의 괴뢰국에서 사용된 바가 있다. 그런 이유로 이탈리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파시즘과 연관이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정식 국호가 된 것은 2024년 10월 국민투표를 통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1943년에 수립된 이탈리아 사회공화국과 혼동하지 않도록 명칭을 살로 공화국이라 칭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국호 변경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기

일 트리콜로레
Il Tricolore
width=100%
[ 국기 정보 ]
지위 공식 국기
제정 시기 1848년
1948년(이탈리아 공화국)
제작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국기 비율 2:3

이탈리아의 공식 국기는 일 트리콜로레(Il Tricolore)로, 각각 초록, 하양, 빨강이 세로로 배치된 삼색기로 구성되어 있다. 1848년 제정되었고, 1948년부터 현재까지 이탈리아의 공식 국기로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와 비슷한 자유, 평등, 우애나 각각 이탈리아의 삼림과 국토, 알프스의 눈과 평화, 애국과 열혈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탈리아가 통일을 시작할 당시에는 삼색기에 사보이아가의 문장을 삽입한 것을 군기로 채택했다가 1861년 국기로 채택되었고, 1946년에는 군주제가 폐지되면서 기존의 사보이아가 문장을 삭제한 현재의 국기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국기는 1796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탈리아를 정복할 당시, 이탈리아 반도를 프랑스의 종속국으로 삼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프랑스의 종속국인 치살피나 공화국의 국기로 사용되었으며, 초록은 밀라노 민병대, 하양과 빨강은 밀라노 공국의 국기에서 따온 것이다.

국가

조비네차 / 젊음
Giovinezza

[ 국기 정보 ]
지위 관습상 국가(國歌), 이탈리아의 형제들의 당가(비공식)
제정 시기 1924년 - 1944년(국가 파시스트당의 당가)
1943년 - 1945년(살로 공화국의 국가)
2025년 - 현재(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의 국가)
미상(이탈리아의 형제들의 비공식 당가)
작사가 살바토르 고타

이탈리아의 공식 국가는 조비네차(Giovinezza)로, 이탈리아어로 젊음, 혹은 청춘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1946년 제정된 마멜리 찬가(Inno di Mameli)를 79년 동안 사용하고 있었으나, 사회공화국 체제가 들어선 후 다시 조비네차를 공식 국가로 지정하게 되었다. 대신 마멜리 찬가는 이탈리아의 준국가로 취급한다.

조비네차는 1924년 창당한 국가 파시스트당의 당가로서 사용되고 있었으며, 1943년부터는 살로 공화국의 공식 국가로 지정되었다.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를 당가로 사용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치하의 독일과는 달리, 이미 왕정의 국가인 왕의 행진곡(Marcia Reale)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로 승격되진 않았으나, 국왕을 대표하는 곡이 군사 퍼레이드 외에는 사용되지 않게 됨으로서 사실상의 국가로 취급받는다.

그 전의 국가인 마멜리 찬가는 리소르지멘토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널리 보급되었던 노래이고 왕정이 들어선 후에도 일종의 애국가로서 불려졌었으며, 주세페 베르디는 1862년 개최된 런던 국제 박람회를 위해 칸타타인 여러 민족의 찬가(Inno delle Nazioni)에 이 곡의 선율이 사용되었다. 마멜리 찬가의 또 다른 이름인 이탈리아의 형제들(Fratelli d'Italia)은 훗날 집권 여당이 되는 동명의 이름이 된 상태이다.

이 외에도 국내에서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 부르는 날아라, 생각아(Va, pensiero)라는 준국가 지위의 노래가 있지만, 사회공화국 전후로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역사

이탈리아의 역사
Storia D'Italia
[ 펼치기 · 접기 ]
~ 962년 에트루리아 고대 그리스
삼니움
페니키아
로마 왕국 고대 카르타고
로마 공화국
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
오도아케르 왕국
동고트 왕국
동로마 제국
랑고바르드 왕국
프랑크 왕국 베네벤토 공국
이탈리아 왕국 아말피 공화국
신성 로마 제국
962년 ~ 1861년 중세 이탈리아 왕국 구성국
사보이아 백국 · 밀라노 공국 · 파르마 공국 · 모데나 공국 · 피사 공화국 · 시에나 공화국 · 피렌
체 공화국 · 토스카나 대공국 · 제노바 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외 주요 세력
베네치아 공화국 · 교황령
시칠리아 왕국
나폴리 왕국
프랑스 왕국
스페인 왕국
사보이아 공국
사르데냐 왕국
스페인 왕국
합스부르크 제국 프랑스령 로마 공화국
치살피나 공화국 양시칠리아 왕국
프랑스 제국
리구레 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
로마 공화국
1861년 ~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제국
연합군 점령하 이탈리아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공화국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역사' 문단 해설

고대 Antica


이탈리아는 지금으로부터 85만 년 전부터 지중해성 기후와 비옥한 땅을 바탕으로 성장해갔으며, 포강을 중심으로 여러 부족들이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 중에서 최초의 패권을 잡은 문명이 에트루리아인데, 포강을 북쪽으로 하여 로마가 있는 라티움까지 영역을 확장시켜 지배를 계속했다. 남부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나폴리, 폼페이, 시칠리아가 위치해있었다.

에트루리아는 카르타고와 연합해 그리스를 견제했다가 로마의 반란으로 무너져, 곧 도시 국가들 간의 동맹 체제로 변하게 되었다. 이후 이 지역을 로마가 차지함에 따라, 유럽 전체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중심지이자 발상지가 되었다.

476년 서로마 제국이 붕괴되고 이탈리아는 북부, 중부, 남부로 갈라졌는데, 후에 독자적인 지역 문화를 구축해 갔다. 그 와중에도 고트족과 랑고바르드족 같은 이민족들이 이탈리아를 공격해왔으며, 특히 북부 이탈리아는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아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낸다. 그나마 중부와 남부는 로마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 1세 휘하의 명장이었던 벨리사리우스와 나르세스의 활약으로 안정을 되찾았지만 북이탈리아는 프랑크 왕국의 세력 확장을 보낸 시기에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한편 이탈리아를 장악한 랑고바르드족은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워 이탈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랑고바르드 왕국은 이후에도 로마를 장악하려다 교황인 하드리아누스 1세의 요청으로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항복을 받으며 몰락했다. 게르만족의 일부였던 랑고바르드는 훗날 롬바르디아(Lombardy)가 된다.

중세 Mediovo


프랑크 왕국이 셋으로 분열된 이후에는 중프랑크 제국이 로타링기아를 서·동프랑크로 넘겨준 뒤 이탈리아 왕국이 되었다가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된다. 그 중 베네치아 공화국은 지중해의 지배자라 불릴 만큼 제노바 공화국과 함께 무역을 지배했으며, 북부 이탈리아에 위치한 다른 나라들도 막대한 부와 국력을 가지며 성장하게 된다. 로마 제국의 중심지다 보니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문예 부흥 운동인 르네상스(Renaissance)가 이루어지며 예술과 문화 전반에 걸쳐 고대 로마와 고대 그리스의 재인식, 재수용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세력을 확장해나간 주변 강대국들과는 달리, 이탈리아 반도는 수많은 도시 국가를 가지고도 통합적인 세력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한계에 부딪치며 영향력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또 게르만족들이 이탈리아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도시 간의 극심한 문화 갈등이 일어난데다가 교황과 황제 간의 다툼도 계속되었기 때문에 통합을 할 수 없었던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후에 합스부르크가의 카를 5세에 의해 대부분의 도시 국가들이 합스부르크에 복속되었고, 나머지 지역들도 프랑스나 스페인 등의 강대국에게 지배를 받는 등 독자적인 영향권이 상실되었다. 30년 전쟁 시기에는 더욱 극심해졌는데, 개신교와 기독교 간의 전쟁이 이탈리아에도 번지면서 사실상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근대 Contemporanea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는 합스부르크의 영향력을 받은 이탈리아를 정복하게 되고, 이 시기 북부에서는 치살피나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이 세워지며 프랑스와 함께 합스부르크와 대립했다. 1802년에는 이탈리아 공화국이 되어버리더니 1805년에는 이탈리아 왕국으로 국호를 바꾸며 자신을 이탈리아의 왕으로 칭하게 된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 후 점차 프랑스까지 밀려났고, 이탈리아도 곧 대프랑스 동맹의 도움으로 해방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이탈리아는 사보이아가의 사르데냐, 보르본가의 파르마와 양시칠리아, 합스부르크 방계의 토스카나와 모데나, 그리고 오스트리아 직할의 롬바르디아-베네치아로 재편되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세력 균형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발생한 자유주의 운동이 전 유럽에 퍼지면서 혁명 이전으로 되돌아가자는 빈 체제에 항거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1848년 1월 시칠리아의 독립으로 촉발된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가 기다리고 있었다.

1859년 프랑스와의 연합을 이룬 사르데냐의 주도로 오스트리아를 격파해 롬바르디아 지역과 토스카니 등 여러 도시 국가를 차지하기 시작하고, 이후 주세페 가리발디의 도움으로 양시칠리아 왕국을 합병했다. 사르데냐 왕국은 티롤 남부, 베네토, 교황령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을 통일시키고 1861년 3월 17일 이탈리아 왕국(Regno d'Italia)이라는 통일 왕국을 건설했고, 이후 베네토와 교황령까지 흭득하며 리소르지멘토를 마무리한다.

세계 대전 시기 Guerra Mondiale


통일 이후 이탈리아는 리비아, 소말리아를 합병하고 에티오피아를 공격하는 등 식민지 확장에 힘을 기울였으며 20세기 초에는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함께 삼국 동맹(Triple Alliance)를 결성하여 영국-프랑스-러시아 주도의 삼국 협상(Triple Entente)에 대항하였다. 두 세력 간의 갈등은 곧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지만, 이탈리아는 초반 중립을 지켰다가 1915년이 되어서야 삼국 동맹을 나간 후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제1차 세계 대전이 협상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이탈리아도 자연스레 승전국이 되었는데, 보상은 고작 배상금 일부와 남부 티롤(훗날 트렌티노알토아디제가 됨), 이스트리아 반도를 얻은 게 전부였다. 이어 전후 자유주의 세력은 급속도로 약화되어 좌파의 이탈리아 사회당과 이탈리아 공산당, 그리고 우파의 이탈리아 인민당이 대형 정당이 되었다.

심지어 전시 체제로 크게 폭등하던 공업력과 고용력도 전쟁이 끝나자 유지할 수 없어 국민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전투 파쇼를 이끌어내며 로마 진군을 통해 일명 파시스트 이탈리아(Italia fascista)를 수립하였다. 무솔리니는 국가 파시스트당을 이끌고 일당 독재를 시작해 스파치오 비탈레(Spazio vitale)라는 이름 하에 팽창 정책을 추진했다.

1933년부터는 아돌프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과 우호적인 관계를 진전시키게 되었는데, 이는 1936년 방공 협정과 1939년 5월 체결된 강철 조약을 거쳐 추축국(Axis Powers)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추축국의 등장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촉발시켜 다시 한번 전 세계를 전쟁의 포화 속으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이탈리아는 1940년부터 추축국 대열에 합류하였는데, 아프리카 전역에서 선전하는 것을 빼면 그다지 활약하지 못하였고 곧 연합군의 반격으로 위기를 맞는다. 1943년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한 직후로 무솔리니가 실각하고 바돌리오가 이끄는 신임 내각이 연합국과의 항복을 받아내자, 독일은 북이탈리아에 살로 공화국(Repubblica di Salò)이라는 괴뢰국을 만들어 항전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끈질긴 공세로 독일이 항복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은 그렇게 끝이 난다.

전쟁 이후 이탈리아는 이스트리아 지역과 식민지들을 잃어버렸으며 1946년에 이루어진 공화제 전환 국민투표의 결과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수립된다.

현대 Moderna


냉전 시기인 1949년에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에 가입했고, 마셜 플랜(Marshall Plan)의 도움과 원조를 통해 1960년대 후반까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1957년에는 유럽 경제 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고, 훗날 유럽 연합(European Union)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한편 68운동(Protest of 1968)으로 촉발된 범세계적 사회, 민권 운동의 여파로 반민주적, 폭력적 방식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세력이 늘게 되자, 파시즘을 이어받은 네오파시즘(Neofascism) 계열의 극우파와 마르크스-레닌주의(Marxism-Leninism) 계열의 극좌파 세력이 주도하여 테러리즘을 자행했고, 이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납의 시대(Anni di piombo)로 불리었다. 이 시기 극좌파는 기독교민주당 소속 총리인 알도 모로를 납치해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극우파들은 볼로냐에서 대학살을 자행하여 그 정점을 찍었다.

베티노 크락시 재임 시기에는 이탈리아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산업 국가로 진입할 정도로 경제적인 회복을 누렸고, 일명 '지중해 좌파'의 선두주자로 평가받았으나 1992년 마니 풀리테(Mani pulite)라는 부정부패 척결 작업의 인물로 지목되어 튀니지로 망명을 가게 되었고, 이는 정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대표 정당이던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당은 몰락했고, 이탈리아 공산당은 좌파민주당으로 개편되면서 정계개편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주도로 전진 이탈리아라는 정당을 만들어 정계에 뛰어든다. 이후 이탈리아의 정계는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중도우파 연합(Coalizione di centro-destra)과 로마노 프로디가 이끄는 중도좌파 연합(Coalizione di centro-sinistra)으로 나뉘어지며 지금에 이르게 된다.

2008년 대침체의 여파로 베를루스코니 내각에 큰 타격을 입었고, 각종 사건사고들과 여러 악재들로 인해 2011년 사임한다. 정국의 주도권은 다시 민주당 주도의 중도좌파 연합으로 넘어갔으며, 2013년 총선 직후 좌파, 우파를 모두 아우르는 대연정 정부를 출범시켰다. 신임 당대표인 마테오 렌치는 2014년부터 상원 폐지와 개헌 등의 조치를 내걸었고 국민투표에도 부치기도 하였으나 2016년 12월 4일 부결되어 좌절하고 만다.

그리고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난민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극우 세력의 득세와 난민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불러오게 된다. 당시 북부 지역주의 정당에 가까웠던 북부동맹은 2018년 총선을 앞두고 마테오 살비니를 앞세워 전국정당으로의 개편을 단행했고, 포퓰리즘 성향의 오성운동도 2013년 총선을 기점으로 기성 정치의 대안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두 정당은 2018년 총선에서 크게 약진한 끝에 연정에 합의하여 이탈리아 사상 최초로 극우정당이 집권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이탈리아를 덮치면서 위기를 맞는다. 2020년 주세페 콘테 총리는 3월부터 5월 간 격리 정책을 추진하여 전파 속도를 늦추려 하였으나, 인권 침해라는 비판과 더불어 약 3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기록해 불명예를 안겼고 심지어 경제적인 타격을 입는 침체기를 겪게 되었다.

2021년 마리오 드라기는 거국내각으로 총리에 취임해 코로나19 대응, 경제 회복에 주력했으나, 2022년 발생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우크라이나로의 군사적 지원과 난민을 수용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오성운동의 주세페 콘테와 갈등하면서 끝내 총리 불신임 의사를 보이며 거국내각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2022년 7월 15일 드라기 총리는 사임을 결정하게 되었다.

사회공화국 성립 이전 Prima della costituzione di RSI


2022년 9월 25일 치러진 총선에서는 조르자 멜로니가 이끄는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의 형제들이 원내 1당을 가져갔고, 뒤이어 민주당이 2당을 가져가면서 사실상 중도우파 연합의 승리가 확실시되었다. 이에 국민들은 극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제4당으로 추락한 살비니의 동맹과 연정 협상을 가지게 되었고, 전진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도 대서양 동맹 노선을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연정 참여를 선언했다.

멜로니는 범중도·좌파 세력[3]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리로 선출되었으며, 마테오 살비니는 부총리 겸 내무부장관에 앉히게 되었다. 이어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사임을 표명하자, 그 뒤를 이어 지난 대선 후보였던 카를로 노르디오가 조기 대선을 거쳐 선출되었다. 이렇게 형제당, 동맹당, 전진 이탈리아 주도의 보수 내각이 출범하게 되었다.

역사상 두 번째로 극우 정당이 집권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제 사회는 만약 이탈리아가 친러로 돌아서거나 최악의 경우 EU, NATO 탈퇴까지 고려한다면 타격이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었으나 멜로니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인도적 지원을 강화하고, 무관용 원칙으로 합법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동맹당, 전진 이탈리아와의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시켜 우크라이나 지원에 주력하였다.

전쟁 이후에는 본색을 드러내며 난민 캠프를 강제 해산시키거나 이슬람,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오지 못하도록 국경 통제를 더욱 강화시키고, 낙태법과 시민결합제도의 폐지를 추진하는 등 대대적인 사회 개편에 나섰으며, 백신 접종 전면 중단, 마스크 사용 제한 해제와 같은 방역 완화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중도우파 연합을 이끌었던 전진 이탈리아와 갈등하게 되었고, 2023년 7월 연정을 탈퇴하였다.

2024년 7월 2일, 멜로니는 이탈리아를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로 위대한 이탈리아를 위한 계획(Un progetto per una grande Italia)을 발표하였다. 주요 골자는 헌법 개정유럽 연합 탈퇴인데, 동맹당에서는 "더 이상 EU의 노예로 살 수 없다"라고 밝히며 EU와 유로존 탈퇴를 약속했고, 형제당에서도 "이탈리아와 유럽의 단결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EU와 손을 놓아야 한다"며 EU 탈퇴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범좌파·온건보수 세력은 국민투표 반대를 외쳤으나 전진 이탈리아에서는 국민투표를 놓고 비주류인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고, 오성운동 역시 유럽 연합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찬성하지만 헌법 개정을 통해 민주주의가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며 중립을 지키고 있다. 국민투표를 앞두고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는 초반 반대 여론이 50%를 넘겼다가, 극우층의 결집으로 찬성 여론이 오차범위 내에서 추격하고 있으며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찬성 여론이 반대 여론을 앞지르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야당들이 잠시 동안 동맹을 맺고 국민투표 반대에 주력하였지만 최종적으로 51.48%로 이탈리아의 EU·유로존 탈퇴와 헌법 개정은 더욱 앞당겨졌다. 다음 날 이탈리아는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안을 EU에 전달했고, 끝내 이탈리아와 탈퇴 협상을 가지기로 하였다. 그 사이 토스카나와 로마에서는 EU 탈퇴 반대 시위가 열렸고, 의회에서는 이탈렉시트(Italexit)를 막기 위해 야권 3당[4]의 주도로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였다. 집권 여당에서도 멜로니의 유로존 탈퇴 행보를 두고 온건파들과의 갈등도 극심해지고 있다.

12월 3일 유럽 연합과 이탈리아 측에서 협상이 타결돼 최종적으로 유로존 탈퇴에 서명함으로써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유럽 연합을 탈퇴한 나라가 되었다. 탈퇴 이후 전국 곳곳에선 멜로니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크리스마스에서는 약 130만 명이 참여하며 역대 최다 규모를 기록했다. 그러나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유명인을 포함해 6만 명의 사상자와 4만 명 이상의 체포자가 나왔다.

2024년 12월 30일, 카를로 노르디오 대통령은 신헌법 채택과 국호 변경에 대한 선포식의 준비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으며, 총리 관저인 키지궁(Palazzo Chigi)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였다. 공식 발표 직후 키지궁과 퀴리날레궁에서는 카라비니에리(Carabinieri) 산하 근위기병대가 주둔하면서 경비가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를 두고 국민들은 선포식을 비판하며 반대 운동에 나서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예 이민을 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항만 시설과 항공 시설이 잠시 동안 마비되기도 했다.

사회공화국 성립 이후 Dopo la costituzione di RSI


2025년 1월 2일, 멜로니 총리는 키지궁에서 열린 선포식에서 마침내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의 재수립을 선포했다.

당시 2~30만 명의 지지자가 모여있던 포폴로 광장에서는 멜로니 총리의 연설에서 환호하는 분위기로 채워졌으며 이는 미디어 매체와 SNS 등지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를 떠나는 이민자 수는 약 30만 명 이상으로, 사회공화국 수립 후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에서 이탈리아인 이민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선포식 이후 노르디오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국가원수의 직함은 '일 카포'로 명명되었으며 멜로니는 그대로 총리직을 수행한 후 선거를 통해 후임 총리를 선출하겠다고 밝혔다. 마테오 살비니는 부총리직을 계속 유지했다가 2025년 2월 8일 부총리직을 사퇴했다. 더불어 이탈리아 국가와 국장, 그리고 모토가 전면 수정되어 기존의 국가였던 '마멜리 찬가'는 '조비네차'로 국가가 교체되었다.

다만 유로존 탈퇴로 인해 발생한 경제 타격은 물론, 사회공화국에 대한 찬반 여론, 시민 자유 제도의 퇴보화,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등 멜로니 내각에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던 탓에 국정을 운영하기 힘들어지자 결국 멜로니 총리는 2025년 3월 17일 내각 총사퇴를 선언, 4월까지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려던 야권 3당은 극우 내각의 총사퇴로 향후 국정 운영을 주도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멜로니 후임으로 취임한 지안루카 이안노네 대표의 공격적인 선거 유세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내 위기를 모면하였다. 한편 민주당에서는 엔리코 레타의 뇌물 수수 의혹, 오성운동과 전진 이탈리아에서는 각각 마테오 렌치의 각종 망언과 소속 의원들의 성추문 파문으로 몰락할 가능성이 커졌고, 여론조사에서도 형제당은 물론 동맹당에게 밀리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9월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형제당-동맹당 연립이 과반을 얻어, 민주당과 전진 이탈리아, 오성운동은 과반을 넘지 못해 패배하였다.

총선 다음 날 전임 일 카포인 노르디오가 사임을 표명하면서 일 카포 선거가 이어서 치러졌고, 선거 결과 시모네 디 스테파노가 과반수를 넘어 제2대 일 카포로 선출되었다.

지리

지리적으로는 지중해로 뻗어진 장화 모양의 반도와 알프스 이남 평야, 시칠리아와 사르데냐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탈리아 반도는 주변 발칸 반도 사이에 위치한 아드리아해, 시칠리아와 알바니아, 그리스 사이에 있는 이오니아해,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사이에 있는 티레니아해, 북부 코르시카·이탈리아 북서부 사이에 위치한 리구리아해와 접하며 약 8,000km를 넘는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반도에는 아펜니노산맥이라는 긴 산맥이 놓여져 있고, 북서쪽에서 알프스산맥과 맞닿아 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포-베네치아라는 충적 평원이 있어 포강과 여러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지류로 흘려보낸다. 포강 외에도 테베레강, 아디제강, 아르노강 등 다른 강들이 존재하고,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가르다호같은 빙하호가 형성되어 있다.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 중에서도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의 경계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아펜니노산맥,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지진이 활발히 일어난다.

인문 환경

민족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인(Gio italiani)라는 라틴계 민족 다수가 거주하고 있는데 2026년 추산으로 약 5,500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이민자들이나 타국의 이탈리아인을 모두 포함하면 1억 4,500만 명이 넘는다. 다만 이탈리아 내에서는 각각의 지역 색이 강하기 때문에 이탈리아인의 정체성이 크게 강조되지 않으며, 스스로를 지역인으로 부른다.

외모 역시 남북의 차이에 따라 다르다. 북부의 경우 갈색머리에 밝은 갈색 눈이 많고, 남부는 그리스인의 영향으로 북부보다 단신이거나 암갈색 눈, 검은 머리가 많다. 살렌토에서는 노르만족의 영향으로 금발이 많지만, 갈색에 가까운 어두운 머리를 가진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유럽 국가들 중에서 높은 출산율과 결혼율을 가졌으나 그 후부터 출산율이 급락하여 인구대체선을 밑돌기 시작, 2010년대부터는 출산율이 1.3명까지 떨어지며 매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 감소를 이유로 최근에는 북아프리카 출신 아랍인들이나 중남미 출신들의 이민 인구를 받아들이며 인구를 최대한 유지하고 있다.

소수 민족으로는 슬로베니아인, 프랑스인, 오스트리아인이 주로 나타나고, 유대인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언어

이탈리아는 공식적으로 이탈리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현대의 표준 이탈리아어는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 방언을 기초로 두며, 2026년 추산으로 원어민 약 7,000만 명이 주로 사용한다. 다만 이탈리아어 외에도 지역마다 다른 방언을 사용하는데, 여러 방언들은 현대 이탈리아어와 함께 속라틴어(Vulgar Latin)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표준 이탈리아어와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방언들도 많다.

시칠리아, 사르데냐 지역에서는 사르데냐어나 시칠리아어가 사용되며, 볼차노(쥐트티롤) 지역은 역사적으로 영향을 받아 독일어가 다수를 차지한다. 발레다오스타에서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둘 다 사용하는 이중언어의 비율이 높다. 이 외에도 세르비아어, 슬로베니아어, 크로아티아어, 알바니아어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종교

2026년 기준 이탈리아의 국민 80% 이상이 가톨릭을 믿고 있으며 14%는 아무런 종교를 믿고 있지 않는다.

당장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이 로마 시내에 위치할 정도로 매우 독실한 나라 중 하나이다. 따라서 가톨릭에 따라 보수적인 면을 가지고 있고, 지방이 분권화되어 있어 다양한 종교 관습이 남아 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보통 교회에서 치러지며, 로마 가톨릭에서 이혼이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법에 따라 이혼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가톨릭은 1929년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에 의해 국교로 지정되었다. 국교로 지정될 당시 국가에서는 종교 교육을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종교 기관에 대해 국가적인 재정 지원을 받았기도 했는데, 1978년부터 국교 지위가 상실되어 2026년까지 이어졌다. 2027년 11월 8일 이탈리아 정부는 가톨릭교회가 다시 국교로 지정되었다고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국교 지위를 회복하였고, 이와 함께 종교 교육과 예배를 의무적으로 실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때문에 무종교인들과 기타 종교인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된다고 말하면서 이들에 대한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교통

이탈리아 지형 특성상 꽤 긴 육지를 가진 반도국가이다 보니, 당연히 철도와 도로가 발달되어 있다.

최초의 교통은 1839년 양시칠리아 왕국 시절 나폴리와 포르티치를 이루는 총 7.25km의 긴 노선을 자랑하는 철도가 그 시초이며, 리소르지멘토 후에는 1905년 국유철도인 페로비에 델로 스타토(Ferrovie dello Stato Italiane)가 설립되어 지금의 트렌이탈리아(Trenitalia), 레테 페로비아리아 이탈리아나(Rete Ferroviaria Italiana)를 소유한 지주회사로 거듭난다. 1958년부터 이탈리아 정부의 전용도로의 건설을 추진함으로써 1970년대 말까지 각 도로망이 건설되었는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 지대를 연결하는 몽블랑 터널(Traforo del Monte Bianco)도 이 때 만들어졌다.

해안에서의 교통은 지중해 무역으로 유명한데, 베네치아가 가장 대표적이다.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에 위치해 있지만 해상 무역에 유리하였기에 9세기부터 12세기 동안 유럽 무역의 중심지이자 해상 제국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나폴리, 트리에스테, 제노바 등 여러 항구 도시들이 존재하여 해안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항공 교통에서 이탈리아에는 총 네 개의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고, 국영 항공사인 ITA 항공이 자리잡고 있다.

행정 구역

이탈리아는 레조네(Regione), 프로빈차(Provincia)·치타 메트로폴리타나(Città Metropolitana), 코무네(comune)로 구성되어 있다.

광역 행정구역인 레조네는 20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 트렌티노알토아디제, 발레다오스타, 사르데냐, 시칠리아는 자치 레조네(regione autonoma)에 해당한다. 자치 레조네는 1948년 특별법으로 도입된 것으로 일반 레조네보다 더 많은 자치권을 가진다. 레조네는 다섯 그룹으로 묶이게 되는데, 각각 북서부, 북동부, 중부, 남부, 도서 지역으로 나뉘게 된다. 이는 통계의 목적을 위해 나눈 것으로, 유럽 연합이 고안한 통계학적, 거시경제학적인 지역 표준인 통계지역단위명명법(Nomenclature of Territorial Units for Statistics)을 따른다.

레조네는 총 107개의 프로빈차로 나뉘어진다. 93개는 일반 프로빈차로 분류되는데, 나머지 14개는 1990년에 도입된 《이탈리아 지방자치법》에 따라 치타 메트로폴리타나이며, 따라서 수도인 로마는 치타 메트로폴리타나로 분류된다. 여기서 프로빈차는 8,132개의 코무네로 나뉘는데 시에 해당한다.

정치

이탈리아는 명목상으로 의원내각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공화국이지만, 사실상 권위주의, 전체주의적인 면모가 강하다.

경제

사회

문화

군사

각주

  1.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제한된 권위주의 국가에 가깝기에 이를 단순 파시스트 국가로 보기에는 어렵다. 다만 전문가들은 사회공화국이 베니토 무솔리니의 정치적 신념을 최대한 수정하여 민주적으로 이행했지만 이를 통치의 기반으로 삼지는 않았다고 하여 유사 파시즘 국가로 보기도 한다.
  2. 서방 언론에서는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의 재수립을 두고 '파시즘의 부활'이라고 칭하였으며, 서방 세계에 우호적인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이탈리아의 체제 전환 소식에서 이를 인용하기도 했다. 허나 멜로니 총리는 서방 세계가 이탈리아를 '파시즘'으로 취급하는 것을 싫어했고, "우리는 이탈리아가 예전의 어두운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말한 바가 있다.
  3. 민주당(중도좌파), 오성운동(중도좌파), 아치오네 + 생동하는 이탈리아(독립파), 우리와 온건파(중도우파)
  4. 민주당, 전진 이탈리아, 오성운동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