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훈 (해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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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3월 3일 출생했으며 1952년 [[해루 혁명전쟁|해루 내전]]이 발생하자 [[해루공산당 인민혁명군]]에 자원입대하여 해루 내전에 참전하였다. 제2적군에 소속되어 거듭된 전공으로 1년만인 1953년 상병 계급에서 하사로 진급했으며 초급장교의 높은 소모율로 장교의 수요가 폭발하자 제2적군의 사령관 [[박철호]]의 추천으로 소위로 현지임관하여 해루가 적화된 이후로도 군생활을 지속하여 [[해루 육군]] 상급대장으로 진급하였다.
1934년 3월 3일 출생했으며 1952년 [[해루 혁명전쟁|해루 내전]]이 발생하자 [[해루공산당 인민혁명군]]에 자원입대하여 해루 내전에 참전하였다. 제2적군에 소속되어 거듭된 전공으로 1년만인 1953년 상병 계급에서 하사로 진급했으며 초급장교의 높은 소모율로 장교의 수요가 폭발하자 제2적군의 사령관 [[박철호]]의 추천으로 소위로 현지임관하여 해루가 적화된 이후로도 군생활을 지속하여 [[해루 육군]] 상급대장으로 진급하였다.


국가부주석을 역임하던 중 [[2000년 해루정치위기]] 당시 국가원수인 [[박유성]] 국가주석의 사전승인 없이 8월 29일 인민중앙광장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지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국가부주석을 역임하던 중 [[2000년 해루정치위기]] 당시 국가원수인 [[박유성]] 국가주석의 사전승인 없이 8월 29일 [[인민중앙광장]]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지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2000년말 [[10개조 선언]]이 선포된 직후 박유성 국가주석이 [[8.29 사태]]의 책임자들을 처벌하겠다고 언급하자 [[적경특별도 보안군]] 사령관인 [[주봉석]], 부사령관 [[조도균]](趙圖筠) 등과 함께 쿠데타를 모의하였으나 해루 [[국가보안부 (해루)|국가보안부]] 요원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2000년말 [[10개조 선언]]이 선포된 직후 박유성 국가주석이 [[8.29 사태]]의 책임자들을 처벌하겠다고 언급하자 [[적경특별도 보안군]] 사령관인 [[주봉석]], 부사령관 [[조도균]](趙圖筠) 등과 함께 쿠데타를 모의하였으나 해루 [[국가보안부 (해루)|국가보안부]] 요원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2023년 12월 27일 (수) 23:29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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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明勳 / Im Myunghoon

개요

폭도들에게 굴복하면 우리가 그렇게 꿈꿔오던 사회주의 지상낙원은 끝입니다. 강제로 진압해야 합니다.
2000년 해루정치위기 당시 박유성 국가주석에게 발포를 요청하면서

해루의 관료이자 군인, 정치인.

생애

1934년 3월 3일 출생했으며 1952년 해루 내전이 발생하자 해루공산당 인민혁명군에 자원입대하여 해루 내전에 참전하였다. 제2적군에 소속되어 거듭된 전공으로 1년만인 1953년 상병 계급에서 하사로 진급했으며 초급장교의 높은 소모율로 장교의 수요가 폭발하자 제2적군의 사령관 박철호의 추천으로 소위로 현지임관하여 해루가 적화된 이후로도 군생활을 지속하여 해루 육군 상급대장으로 진급하였다.

국가부주석을 역임하던 중 2000년 해루정치위기 당시 국가원수인 박유성 국가주석의 사전승인 없이 8월 29일 인민중앙광장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지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2000년말 10개조 선언이 선포된 직후 박유성 국가주석이 8.29 사태의 책임자들을 처벌하겠다고 언급하자 적경특별도 보안군 사령관인 주봉석, 부사령관 조도균(趙圖筠) 등과 함께 쿠데타를 모의하였으나 해루 국가보안부 요원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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