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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37년, 대한제국 해군은 차세대 전함 전력 강화를 위해 광효대왕급 전함의 건조를 공식 발주하였다. 광효대왕급은 박효상 전함의 실험적 구상을 계승하면서도 현실적 운용성과 건조 효율을 중시한 고전함으로 설계되었으며, 건조성과 성능의 균형을 갖춘 대함대용 실용 주력함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1938년 초, 일본 구레(吳) 해군기지 인근 지역에서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인근 조선소에서 정체불명의 거대한 구조물이 세워지고 있으며, 일반 전함이 아닌 무언가 거대한 물체가 덮개 아래 은폐돼 있다'는 민간인 증언들이 파편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제국 정보부는 이를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비공식적인 정찰과 정보 수집에 착수했다.
정보부는 이후 수개월에 걸친 공작을 통해, 해당 구조물이 일본 해군이 극비리에 건조 중인 초대형 전함이라는 단서를 확보하게 된다. 선체 길이와 함수 구조를 분석한 결과, 기존 전함급과는 다른 차원의 크기와 형상이 확인되었으며, 주포는 최소 410mm, 경우에 따라 최대 450mm급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 대한제국 정보부는 이 전함을 실명 없이 「하야시 코드」(林案)라는 명칭의 가칭 코드네임으로 지정하고 분석을 지속했다.
이 보고는 해군 수뇌부에 상당한 충격과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기존 전력 계획만으로는 일본이 추진 중인 초대형 전함 ― ‘하야시 코드’로 명명된 ―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이에 따라 해군은 전력 계획의 일부 수정 및 장기적 대응안 마련에 돌입하게 된다.
먼저, 이미 진수 준비에 들어간 광효대왕급 전함 1번함과 2번함은 예정대로 건조를 강행하기로 결정되었다. 해군은 이 함급이 여전히 실용적인 전력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단기적 해역 통제력 확보에는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3번함 이후의 광효급 증산 계획은 전면 중단되었으며, 그 대신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대응 전함, 즉 “하야시 코드 전함”에 대적 가능한 초중전함(試製案)개발이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이러한 대응 전력 개발 사업은 당초의 전함 개념을 넘어서는 압도적 화력과 방호력을 핵심으로 하여 추진되었으며, 훗날 「충무공 이순신」급 전함으로 구체화되어 대한제국 해군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화력투사 플랫폼으로 완성되게 된다.
전후
1945년 9월 2일, 일본 제국은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해군 전함 USS 미주리 함상에서 공식적인 항복 문서에 서명하며 제2차 세계대전은 종식된다. 그러나 대한제국 정부는 이와 별개로, 일본 제국이 자국 해군과 자국 주권을 상대로도 독립적인 항복 절차를 밟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며, 미국 측에 “우리도 한 번 해줘”라는 식의 요청을 비공식 외교 루트를 통해 전달한다.
당시 미국 국무부는 실무적으로는 굳이 필요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동아시아 해역에서 실질적인 제해권을 행사했던 충무공 이순신 전함의 상징성, 그리고 야마토·무사시를 침몰시킨 함정이라는 사실상 전과 공인을 고려해 전례 없는 2차 항복 서명식을 승인하게 된다.
결국, 1945년 9월 7일, 제주 남방 해역에 정박 중이던 충무공 이순신 전함의 상갑판에서는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이 다시 한 번 항복문서에 서명하게 된다.
실전
1.최후의 함대결전으로 불리는 동중국해 결전에서 야마토와 무사시를 격침한다.
2. 레바논 내전 개입 (1983~1984)
3. 1986년 대리비아 공습 작전 지원 (Operation Attain Document)
4. 걸프전 직전 — Operation Earnest Will (1987~1988)
5. NATO 해상 훈련 및 위협 시위 (1980년대 말)
6. 1991년 걸프전 (Operation Desert Storm)
7. 1990년대 소말리아 내전 (Operation Restore Hope, 1992)
8. 2003년 이라크 침공 (Operation Iraqi Freedom)
9. 2000년대 남중국해 긴장 상황 (중국 견제)
10.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가상 개입
차세대 무장 테스트
2025년, 충무공 이순신 전함의 2번 주포곽에 400mm급 전자레일건 LPL/TRG-01 'Thunderbolt'가 시험 장착되어 테스트가 진행되었으며, 현재 추가 탑재 및 실용성, 양산 적용 여부를 두고 검토 중인 상태이다.
여담
「충무공 이순신」의 함장은 대한제국 해군 내에서 모든 지휘관들의 선망이자 동시에 공포의 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전함의 이름이 이름인 만큼, 이 전함을 맡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휘 이상의 국가 상징과 명예를 어깨에 짊어지는 일이었으며, 실전에서 이순신을 침몰시키기라도 한다면 3대가 멸족될 수 있다 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이 돌 정도였다.[3]
대한제국 해군은 이에 따라 함장 선발에 있어 파벌이나 연공서열이 아닌 철저한 실력 위주로 인사를 단행했으며, 충무공 이순신의 함장으로 발탁된다는 것 자체가 해군 최고 수준의 전술적 판단력, 기량, 통솔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만큼 중압감도 막대했으며, 실전 배치 전후에는 함교 참모들과 장교들 사이에서 위장 질환과 스트레스성 탈모가 급증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으며, 실제 함내 의무일지에도 “전방 배치 이후 소화불량 및 수면장애 증세 환자 증가”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제로 초대 함장으로 발탁된 류성하 제독(柳成河, Admiral Ryu Seong-ha)은 취임 1년 만에 심각한 스트레스성 탈모를 겪어, 함내에서 '광휘의 대머리(Glorious Bald)'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류 제독은 나중에 회고록에서 “그 배는 움직이는 신사(神祠)였고, 나는 하루하루 제사장이 된 기분이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