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급 전함 (푸른 오얏꽃2)


제2차 세계 대전의 대한조선국 왕립해군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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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조선군해군 군함
초계함 백령급
해방함/호위함 제주급, 울릉급, 진도급
구축함 인천급, 동래급, 평양급, 명량 계획 구축함, 서울급, 가3 계획 구축함, 함흥급, 대구급A, 광주급A, 라5 계획 구축함
순양구축함 회덕급, 덕원급, 청주급, 강계급, 마4 계획 순양구축함
잠수함 천 1호·2호·3호·4호, 지 1호·2호·3호·4호·5호·6호·7호·8호, 현 1호·2호·3호·4호·5호·6호, 황 1호·2호·3호
경순양함 양선급B, 강산급B, 한강급, 낙동강급, 명량 계획 이등순양함, 압록강급, 대동강급A
중순양함 백두산급, 지리산급, 명량 계획 일등순양함, 한라산급, 5-1 일등순양함, 5-2 일등순양함, 관모봉급A
대형순양함 1002 대형순양함, 충무공 김시민,
순양전함 안동급B, 명량 계획 순양전함
전함 세종급, 광개토대왕급, 명량 계획 전함, 한산도급, 광효대왕급
초중전함 충무공 이순신급, 고종 태황제급
경/호위항공모함 연암급, 명량 계획 항공모함
정규항공모함 충정급A, 하12 계획 항공모함, 폭풍사업
수상기모함 만호급
어뢰정 12식 어뢰정, 14식 어뢰정, 16식 어뢰정, 19식 어뢰정
병원선 해누리함
노획함 김충선함(아가노급 경순양함)
연습함 해사함, 새천함
취소선: 계획만 되거나 건조 중 취소, 윗첨자A: 전후 완공, 윗첨자B: 1차 대전 시기 개장 함선
HKMS 충무공 이순신
1948년 모습
함명 유래 충무공 이순신
함종 초중전함
제작 연일 해군 공창, 현대중공
운용 대한조선국 왕립해군
발주 1938년 3월 9일
기공 1939년 10월 28일
진수 1943년 11월 15일
취역 1944년 12월 1일
실전배치 1945년 3월 5일
퇴역 1955년 8월 7일, ~ 2999년(미정)[1]
제원
함급 충무공 이순신급
배수량 65,540톤(기준)
66,500톤(만재)
1984년 개장
68,500톤(기준)
69,500톤(만재)
전장 265.5m
265.3m(1984년 개장)
선폭 39m
터빈 백운형 증기터빈 6축
출력 155,000 마력
1984년 개장
290,000마력[2]
속력 28Kn
1984년 개장
32Kn
항속거리 15Kn로 15,000 해리
승조원 3,100명
1984년 개장
1,900~2,100명
무장 470mm 56식 3연장 주포탑 4기(총 8문)
155mm 19식 양용포 2기
127mm(5인치) Mk.16 2연장 대공포 10기
40mm 4연장 대공포 16기 (총 64문)
1955년 개장
127mm Mk.16 대공포(철거) -> 127mm(5인치) Mk.42 2연장 대공포 10기
1984년 개장
470mm 56식 3연장 주포탑 4기(총 8문)
155mm 19식 양용포 2기
127mm(5인치) Mk.42 2연장 대공포 10기
BGM-109 Tomahawk
RGM-84 Harpoon
Phalanx CIWS
AN/SLQ-32(V)3 전자전 장비
SRBOC (Mk 36 Super Rapid Bloom Offboard Chaff)
장갑 현측 주장갑: 430mm
주포탑:660mm
함교: 400mm
상부 갑판: 60mm
갑판 주장갑: 190mm
레이더 20호 레이더
1984년 개장
AN/SPS-49(V)4
AN/SPS-55
AN/SPG-60 or Mk.95
신광-1형
태성-40형
백령-17형
함재기 10식 수상정찰기 2기


개요

1937년, 대한제국 해군은 차세대 전함 전력 강화를 위해 광효대왕급 전함의 건조를 공식 발주하였다. 광효대왕급박효상 전함의 실험적 구상을 계승하면서도 현실적 운용성과 건조 효율을 중시한 고전함으로 설계되었으며, 건조성과 성능의 균형을 갖춘 대함대용 실용 주력함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1938년 초, 일본 구레(吳) 해군기지 인근 지역에서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인근 조선소에서 정체불명의 거대한 구조물이 세워지고 있으며, 일반 전함이 아닌 무언가 거대한 물체가 덮개 아래 은폐돼 있다'는 민간인 증언들이 파편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제국 정보부는 이를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비공식적인 정찰과 정보 수집에 착수했다.

정보부는 이후 수개월에 걸친 공작을 통해, 해당 구조물이 일본 해군이 극비리에 건조 중인 초대형 전함이라는 단서를 확보하게 된다. 선체 길이와 함수 구조를 분석한 결과, 기존 전함급과는 다른 차원의 크기와 형상이 확인되었으며, 주포는 최소 410mm, 경우에 따라 최대 450mm급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 대한제국 정보부는 이 전함을 실명 없이 「하야시 코드」(林案)라는 명칭의 가칭 코드네임으로 지정하고 분석을 지속했다.

이 보고는 해군 수뇌부에 상당한 충격과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기존 전력 계획만으로는 일본이 추진 중인 초대형 전함 ― ‘하야시 코드’로 명명된 ―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이에 따라 해군은 전력 계획의 일부 수정 및 장기적 대응안 마련에 돌입하게 된다.

먼저, 이미 진수 준비에 들어간 광효대왕급 전함 1번함과 2번함은 예정대로 건조를 강행하기로 결정되었다. 해군은 이 함급이 여전히 실용적인 전력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단기적 해역 통제력 확보에는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3번함 이후의 광효급 증산 계획은 전면 중단되었으며, 그 대신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대응 전함, 즉 “하야시 코드 전함”에 대적 가능한 초중전함(試製案)개발이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이러한 대응 전력 개발 사업은 당초의 전함 개념을 넘어서는 압도적 화력과 방호력을 핵심으로 하여 추진되었으며, 훗날 「충무공 이순신」급 전함으로 구체화되어 대한제국 해군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화력투사 플랫폼으로 완성되게 된다.

전후

1945년 9월 2일, 일본 제국은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해군 전함 USS 미주리 함상에서 공식적인 항복 문서에 서명하며 제2차 세계대전은 종식된다. 그러나 대한제국 정부는 이와 별개로, 일본 제국이 자국 해군과 자국 주권을 상대로도 독립적인 항복 절차를 밟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며, 미국 측에 “우리도 한 번 해줘”라는 식의 요청을 비공식 외교 루트를 통해 전달한다.

당시 미국 국무부는 실무적으로는 굳이 필요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동아시아 해역에서 실질적인 제해권을 행사했던 충무공 이순신 전함의 상징성, 그리고 야마토·무사시를 침몰시킨 함정이라는 사실상 전과 공인을 고려해 전례 없는 2차 항복 서명식을 승인하게 된다.

결국, 1945년 9월 7일, 제주 남방 해역에 정박 중이던 충무공 이순신 전함의 상갑판에서는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이 다시 한 번 항복문서에 서명하게 된다.

실전

1.최후의 함대결전으로 불리는 동중국해 결전에서 야마토와 무사시를 격침한다.

2. 레바논 내전 개입 (1983~1984)
3. 1986년 대리비아 공습 작전 지원 (Operation Attain Document)
4. 걸프전 직전 — Operation Earnest Will (1987~1988)
5. NATO 해상 훈련 및 위협 시위 (1980년대 말)
6. 1991년 걸프전 (Operation Desert Storm)
7. 1990년대 소말리아 내전 (Operation Restore Hope, 1992)
8. 2003년 이라크 침공 (Operation Iraqi Freedom)
9. 2000년대 남중국해 긴장 상황 (중국 견제)
10.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가상 개입

차세대 무장 테스트

2025년, 충무공 이순신 전함의 2번 주포곽에 400mm급 전자레일건 LPL/TRG-01 'Thunderbolt'가 시험 장착되어 테스트가 진행되었으며, 현재 추가 탑재 및 실용성, 양산 적용 여부를 두고 검토 중인 상태이다.

여담

「충무공 이순신」의 함장은 대한제국 해군 내에서 모든 지휘관들의 선망이자 동시에 공포의 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전함의 이름이 이름인 만큼, 이 전함을 맡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휘 이상의 국가 상징과 명예를 어깨에 짊어지는 일이었으며, 실전에서 이순신을 침몰시키기라도 한다면 3대가 멸족될 수 있다 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이 돌 정도였다.[3]

대한제국 해군은 이에 따라 함장 선발에 있어 파벌이나 연공서열이 아닌 철저한 실력 위주로 인사를 단행했으며, 충무공 이순신의 함장으로 발탁된다는 것 자체가 해군 최고 수준의 전술적 판단력, 기량, 통솔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만큼 중압감도 막대했으며, 실전 배치 전후에는 함교 참모들과 장교들 사이에서 위장 질환과 스트레스성 탈모가 급증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으며, 실제 함내 의무일지에도 “전방 배치 이후 소화불량 및 수면장애 증세 환자 증가”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제로 초대 함장으로 발탁된 류성하 제독(柳成河, Admiral Ryu Seong-ha)은 취임 1년 만에 심각한 스트레스성 탈모를 겪어, 함내에서 '광휘의 대머리(Glorious Bald)'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류 제독은 나중에 회고록에서 “그 배는 움직이는 신사(神祠)였고, 나는 하루하루 제사장이 된 기분이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매체에서의 등장

  1. 1984년 4월 28일 재취역 이후 아직 현역으로 활동중이다.
  2. 원자력 발전기를 채용해 출력이 극단적으로 상승했다
  3. 적어도 누구에게 암살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