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공화국 임시정부 (영광이 다시 오길)

부계정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3월 16일 (수) 17:5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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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공화국 임시정부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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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공화국 임시정부
香港共和國臨時政府
국기 국장
Freedom and Sovereignty of Hong Kong
香港的自由和主權
홍콩의 자유와 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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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 2024년[1]/2025년[2]
임시정부 수립 이전 자치령 수립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영연방
홍콩 자치령
정식정부 수립 이후
홍콩공화국
상징
국가
영광이 다시 오길[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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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2019년 3월 15일 ~ 2024년 9월 15일
홍콩 공화국 임시정부 수립 2021년 12월 10일
홍콩 자치령 수립 2024년 9월 15일
홍콩 공화국 독립 2025년 12월 10일

인문환경
공용어
광둥어, 영어
정치
정치 체제
임시정부, 주석제, 민주공화제
임시정부 주석
우치와이 (2020년 ~ 2023년)[4]
클라우디아 모 (2023년 ~ 2024년)[5]
입법위원장
클라우디아 모 (2020년 ~ 2021년)[6]
앨빈 양 (2021년 ~ 2023년)
네이선 로 (2023년 ~ 2024년)[7]
경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통화
홍콩 달러[8]

개요

홍콩 공화국 임시정부(香港共和國臨時政府)는 2020년 홍콩 민주화운동 기간동안 홍콩 행정부를 대체하여 만들어진 홍콩의 정부이다.

역사

정부수립 과정과 수립

2020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물결이 더욱 거세져갈 무렵 중국에는 리커창 당시 국무원 총리[9]의 주도로 중국에 대규모 정치위기가 일어나고 중국 정부의 홍콩에 대한 통제력이 사실상 붕괴했다. 그동안 중국 정부에 반발심이 더욱더 커진 홍콩인들은 자신들의 중국의 일원임을 거부했고 기존의 홍콩 행정부를 대체할 새로운 자신들의 독립정부를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이 독립정부에는 기존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던 본토파 외에도 단순히 홍콩의 민주화를 지지하던 민주파들도 대거 합류했고 일부 노동운동가들과 기업인들까지도 참여했다.

그들은 '임시정부 수립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임시 규약과 정부조직도를 발표하며 정부 수립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11월 30일에는 구 입법회 의원들과 구의원들을 모아서 임시입법회를 소집, 임정 수립준비위 위원장으로 전 민주당 대표인 우치와이를 선출했다. 우치와이 위원장 체제하에서 임정 수립준비위는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각계의 인물들을 포섭하고 자금을 끌어모으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2021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72주년을 맞이하여 홍콩인들에 의한 최초의 독립정부인 홍콩 공화국 임시정부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활동과 성과

홍콩 임시정부는 기존 임정 수립준비위 위원장이였던 우치와이를 임시정부 주석으로 선거하였으며 홍콩 전역에 새로운 정부의 수립을 알렸다. 대다수의 홍콩인들은 이 새로운 정부에 기존 민주파, 본토파의 거물급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과 홍콩인들에 의한 최초의 독립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점에서 놀람과 감격을 잇지 못했고 이 정부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대부분의 제1세계 국가들이 임시정부의 수립을 지지하였으며[10] 대만의 경우에는 차이잉원 총통이 직접 지지를 표명하고 수교희망 의사를 밝혔다. 중국은 당연히 임시정부 수립을 반대하였으나 당시 몰아치던 중국 정치위기의 거센 바람으로 인해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였다.

임시정부는 2022년 1월 무렵 부터 홍콩을 점차 수복하기 시작했다. 우선 자경단을 조직하여 치안 공백을 틈타 불어난 삼합회와 친중 정치 깡패들을 몰아냈으며 장악한 지역에는 지역 행정위원회를 설립하여 행정공백을 최소화 시켰다. 그리고 2022년 5월 무렵에 홍콩 전체에 대한 수복이 완료되자 홍콩 임시정부는 7월 21일에 입법회 선거 실시를 선언하였다. 입법회 선거에서 진보파가 승리하여 우치와이 주석은 연임에 성공하였다. 제2기 우치와이 정부는 외교와 경제에 총력을 쏟아부었고 목표로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 국가와의 수교, 금융업의 재활성화, 자유 무역항으로써의 입지 재건등을 내걸었다.

그 결과 2022년 말무터 2023년 초까지 미국, 영국, 독일, 대한민국, 일본을 비롯한 수많은 제1세계 국가들이 홍콩과 수교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왔으나 안타깝게도 금융업의 재활성화와 자유 무역항으로써의 입지 재건에는 사실상 실패하였다. 그러나 어느정도의 성과는 거두어 2022년 중후반 부터는 일부 해외 무역선들이 다시금 홍콩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내수경제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홍콩의 생필품 부족이 거의 해소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2023년 입법회 선거에서는 입법회내 제1세력은 진보파(민주파)가 차지하였으나 진보파 42.5%, 기타 및 무소속 20.3%, 보수파(본토파) 36.2%의 득표율을 기록하였고 일부 무소속 의원들과 협력한 우파의 클라우디아 모가 제3대 주석으로 취임했다. 클라우디아 모 정부는 주로 외교와 국방에 힘을 쏟았는데 중국으로 부터 홍콩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경단을 보안대로 격상시켰으며 미국에서 수입한 무기로 무장을 시켰다. 또한 외교전을 통하여 제1세계 뿐만이 아니라 제2세계, 제3세계 국가들과도 외교관계를 갖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2024년 12월 기준 102개 국가들이 홍콩과 수교하였다.

홍콩 자치령으로의 계승(자진 해산)

당시 외교와 경제, 국방등 여러 부문에서 성과를 거두었던 홍콩 임시정부였지만 그들에게는 한가지 근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중국 정치위기가 점차 해소되어 간다는 사실이였다. 당시 중국은 리커창의 공청단과 왕양의 개혁파가 친 시진핑파를 몰아내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였고 만일 중국의 정치위기가 완전이 해소되어 홍콩에 다시금 영유권을 주장한다면, 혹여나 무력을 투입한다면 아무리 홍콩을 인정하는 국가들이 많고 군사력이 증대되었다 한들 합병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임시정부의 뒤를 봐주고 있었으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홍콩보다는 15억의 중국시장을 택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인 일이였기에 임시정부의 근심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던 와중 홍콩 정계에서는 영국과 영연방에 의한 신탁통치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이 주장이 민간에 까지 퍼지자 홍콩 임시정부는 해당 안건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며 신탁통치에 대한 지지율이 80% 이상이 나오자 영국 정부에 정식으로 신탁통치를 제안하는 청원서를 보냈다. 결국 영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2024년 9월 15일 홍콩 특구의 공식적인 해산과 함께 홍콩 자치령이 선포되었고 임시정부 또한 '공식적으로'는 자진해산 하였다.

물론 이후 홍콩 자치령의 행정부는 사실상 홍콩 임시정부를 계승하였고 대다수의 홍콩 임시정부 인원들이 자치령 정부에 합류하면서 실질적으로 임시정부 체제가 자치령때까지 이어졌으며 이후 홍콩공화국으로 계승되게 된다.

정치

범민주파 진영이 만든 정부인 만큼 구 홍콩 특구와는 달리 민주공화정을 표방하였으며 민의에 의해 선출 된 입법회에서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인 주석을 선출하였다. 주석에게는 외교권, 법안 발의권, 보안대에 대한 통수권등이 존재 했으나 이런 권한의 사용은 입법회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지방 행정구역의 행정은 행정위원회가 담당하였으며 행정위원장은 입법회에서 선출해 지방으로 파견하는 관선이였다.

의의

홍콩인에 의한 최초의 민주적 독립정부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확인 할 수 있으며 홍콩인들이 더 이상 중국에 귀속되는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세계 만방에 보여주었다.

여담

홍콩 내에서 해당 임시정부의 위상은 한국에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위상보다도 높으며 현재의 홍콩 공화국 정부는 이때의 홍콩 임시정부를 공식적으로 계승함을 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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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공화국 임시정부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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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콩 자치령 수립
  2. 홍콩 공화국 정부 수립
  3. 불굴행진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등의 시위곡들도 준 국가 수준의 대우를 받았다
  4. 초대
  5. 말대
  6. 초대 ~ 제2대
  7. 말대
  8. 미국 달러, 영국 파운드 등도 혼용
  9. 現 중국 국가주석
  10. 스페인의 경우에는 카탈루냐 문제로 인해 지지를 유보하였으나 12월 23일에 지지를 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