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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해의 원유관}} | {{아침해의 원유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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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관련 문서}} | {{대한국 관련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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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개요= | ||
'''환향민(還鄕民)'''은 1870년대의 [[임신개혁 (아침해의 원유관)|임신개혁]] 이후 1945년 대한 제국의 패망까지 [[대한제국 (아침해의 원유관)|한국]]의 식민지였던 [[만주한치시기 (아침해의 원유관)|만주]], [[연해주 자치령 (아침해의 원유관)|연해주]], [[몽고한치시기 (아침해의 원유관)|몽골]] 등에서 거주했다가 귀국한 한국인을 이르는 표현이다. 이들 중의 일부분은 해당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녀들이다. | '''환향민(還鄕民)'''은 1870년대의 [[임신개혁 (아침해의 원유관)|임신개혁]] 이후 1945년 대한 제국의 패망까지 [[대한제국 (아침해의 원유관)|한국]]의 식민지였던 [[만주한치시기 (아침해의 원유관)|만주]], [[연해주 자치령 (아침해의 원유관)|연해주]], [[몽고한치시기 (아침해의 원유관)|몽골]] 등에서 거주했다가 귀국한 한국인을 이르는 표현이다. 이들 중의 일부분은 해당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녀들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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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에 주로 농사를 지을 토지를 찾거나, 아니면 식민지에서 인생에 변화를 줄 기회를 찾으러 갔다가 그곳에 눌러앉게 된 사람들이 보통 환향자가 되었고, 한국군의 경우 재향군인으로서 따로 분류되는 케이스가 많았다. 그리고 대한제국군 소속으로 참전한 한국인 남성이 현지의 한국계 이주민 여성이나 비한인(주로 식민지 토착민) 여성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이가 대한 제국 항복 후 아버지와 함께 한국으로 간 경우에는, 아버지와 달리 환향자로 분류된다. [[대한제국군 (아침해의 원유관)|대한제국군]]으로 참전했다가 돌아온 이들 중에서도 출신지가 한국 본토인 11도가 아니라 러시아 차르국, 예케 몽골 울루스를 비롯한 대한 제국의 괴뢰국, 혹은 만주같은 식민지였을 경우 환향자로서 분류된다. | 당대에 주로 농사를 지을 토지를 찾거나, 아니면 식민지에서 인생에 변화를 줄 기회를 찾으러 갔다가 그곳에 눌러앉게 된 사람들이 보통 환향자가 되었고, 한국군의 경우 재향군인으로서 따로 분류되는 케이스가 많았다. 그리고 대한제국군 소속으로 참전한 한국인 남성이 현지의 한국계 이주민 여성이나 비한인(주로 식민지 토착민) 여성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이가 대한 제국 항복 후 아버지와 함께 한국으로 간 경우에는, 아버지와 달리 환향자로 분류된다. [[대한제국군 (아침해의 원유관)|대한제국군]]으로 참전했다가 돌아온 이들 중에서도 출신지가 한국 본토인 11도가 아니라 러시아 차르국, 예케 몽골 울루스를 비롯한 대한 제국의 괴뢰국, 혹은 만주같은 식민지였을 경우 환향자로서 분류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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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01);"> | ||
=숫자= | =숫자= | ||
[[임신개혁 (아침해의 원유관)|임신개혁]] 이래 [[대한제국 (아침해의 원유관)|대한제국]]은 부국강병을 위한 서구화와, 그에 따른 사회 변화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이에 따른 인구의 차출지가 필요해지면서, 자연스레 여느 제국주의 열강들이 그렇듯 만주, 연해주, 몽골 등으로 확장하였다. 빈곤과 토지부족,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몇 한국인들이 식민지로 이민을 갔으며,이렇게 넘어간 이들의 수는 항복 당시인 1944년에서 1945년을 기준으로 약 280만명에 이르렀으며, 이는 군인을 제외한 숫자이다. 패전 당시 한국이 주권을 상실하는 지역 기준으로 동몽골, 예케 몽골 울루스와 중국에 약 80만 명, 만주에 약 120만 명, 간도에 약 70만 명, 연해주에 약 10만 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참고로 당시 대한제국 본토의 경우, 전체 인구가 1945년 즈음 약 5,500만 명 정도였다. | [[임신개혁 (아침해의 원유관)|임신개혁]] 이래 [[대한제국 (아침해의 원유관)|대한제국]]은 부국강병을 위한 서구화와, 그에 따른 사회 변화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이에 따른 인구의 차출지가 필요해지면서, 자연스레 여느 제국주의 열강들이 그렇듯 만주, 연해주, 몽골 등으로 확장하였다. 빈곤과 토지부족,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몇 한국인들이 식민지로 이민을 갔으며,이렇게 넘어간 이들의 수는 항복 당시인 1944년에서 1945년을 기준으로 약 280만명에 이르렀으며, 이는 군인을 제외한 숫자이다. 패전 당시 한국이 주권을 상실하는 지역 기준으로 동몽골, 예케 몽골 울루스와 중국에 약 80만 명, 만주에 약 120만 명, 간도에 약 70만 명, 연해주에 약 10만 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참고로 당시 대한제국 본토의 경우, 전체 인구가 1945년 즈음 약 5,500만 명 정도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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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01);"> | ||
=어떻게 등장하였는가= | =어떻게 등장하였는가= | ||
근본적으로는 대한제국 정부가 점령지에서 살던 거주민들의 반발심을 아예 제거하여 후환을 방지하는 것으로, 따라서 독립운동가, 레지스탕스 및 의병 등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제거하고, 대신 자국민들을 더 이주시켜서 정착시키는 식으로 점령지의 충성심을 확보하는게 목적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먼 타지로 오게 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상기한 대로 더욱 '한민족끼리'를 강요하는 사고관이 정착한 것. 그리고 이는 만주와 같은 외지, 혹은 괴뢰국 같은 해외<ref>심지어 괴뢰국이 아닌 주권국 해외에서도 그대로였던지라, 동맹 일본의 태평양 전쟁 개전 이후 공작을 위해 본토에서 온 제국익문사가 캐나다에 채류중인 한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한동안 검거되지 못한 적도 있었다.</ref>에서도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규율이었다. | 근본적으로는 대한제국 정부가 점령지에서 살던 거주민들의 반발심을 아예 제거하여 후환을 방지하는 것으로, 따라서 독립운동가, 레지스탕스 및 의병 등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제거하고, 대신 자국민들을 더 이주시켜서 정착시키는 식으로 점령지의 충성심을 확보하는게 목적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먼 타지로 오게 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상기한 대로 더욱 '한민족끼리'를 강요하는 사고관이 정착한 것. 그리고 이는 만주와 같은 외지, 혹은 괴뢰국 같은 해외<ref>심지어 괴뢰국이 아닌 주권국 해외에서도 그대로였던지라, 동맹 일본의 태평양 전쟁 개전 이후 공작을 위해 본토에서 온 제국익문사가 캐나다에 채류중인 한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한동안 검거되지 못한 적도 있었다.</ref>에서도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규율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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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부 환향자 여성들의 경우, 당시 전후였던 관계로 재정이 빡빡했던 한국에서 그닥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이들 중 일부는 돈을 벌기 위해 매춘업에 뛰어들기도 했었는데, 이 여성들을 뜻하던 멸칭인 '환향녀'가 변형되면서 탄생한 것이 '화냥년'이라는 추측이 꽤나 신빈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 그리고 일부 환향자 여성들의 경우, 당시 전후였던 관계로 재정이 빡빡했던 한국에서 그닥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이들 중 일부는 돈을 벌기 위해 매춘업에 뛰어들기도 했었는데, 이 여성들을 뜻하던 멸칭인 '환향녀'가 변형되면서 탄생한 것이 '화냥년'이라는 추측이 꽤나 신빈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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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01);"> | ||
=구성 계층= | =구성 계층= | ||
환향자들은 주로 농민, 빈민, 혹은 본토인 한반도에서 당시 제국주의에 협조하던 한국 대기업들의 회사원이나 그 가족들로 구성되었고, 군인의 가족으로 넘어온 한국인들도 많았다. | 환향자들은 주로 농민, 빈민, 혹은 본토인 한반도에서 당시 제국주의에 협조하던 한국 대기업들의 회사원이나 그 가족들로 구성되었고, 군인의 가족으로 넘어온 한국인들도 많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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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적으로 이곳에 일직이 정착한 이들은 대지주, 대상인, 거물 기업가 혹은 광산주가 되어 막대한 부를 벌 수 있었으나, 1930년대 중반으로 가면 경쟁이 심해지고 입지가 좁아진지라 이후에 온 이주민들은 이들만큼 부유해지지는 못했다. 대신, 이들은 주로 소작농이나 소상공인, 혹은 노동자가 되어 한국인이 주로 모인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경향을 보였다. | 공통적으로 이곳에 일직이 정착한 이들은 대지주, 대상인, 거물 기업가 혹은 광산주가 되어 막대한 부를 벌 수 있었으나, 1930년대 중반으로 가면 경쟁이 심해지고 입지가 좁아진지라 이후에 온 이주민들은 이들만큼 부유해지지는 못했다. 대신, 이들은 주로 소작농이나 소상공인, 혹은 노동자가 되어 한국인이 주로 모인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경향을 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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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01);"> | ||
=유형= | =유형= | ||
==만주의 환향자== | ==만주의 환향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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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의 환향자== | ==간도의 환향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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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01);"> | ||
=유사사례= | =유사사례= | ||
환향자와 유사한 사회 문제는 20세기 전반까지 제국주의 정책을 펼쳤던 식민제국 대다수가 탈식민주의의 대두로 인해 겪은 문제였으며, 꼭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었더라도 20세기 내내 지속된 국경의 변화에 따라 주민들이 추방되는 일들은 빈번했다. | 환향자와 유사한 사회 문제는 20세기 전반까지 제국주의 정책을 펼쳤던 식민제국 대다수가 탈식민주의의 대두로 인해 겪은 문제였으며, 꼭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었더라도 20세기 내내 지속된 국경의 변화에 따라 주민들이 추방되는 일들은 빈번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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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같은 추축국 출신인 독일에서도 동방 영토 및 동유럽에서 독일인들이 대거 추방당한 사례가 있다. 다만 이 경우는, 오랜 기간 독일의 영토였거나 독일계의 영향권이었고, 인구도 독일인이 절대다수였던 지역에서 주민들이 추방당했다는 차이가 존재하며 규모 역시 훨씬 방대했다. 상술했듯 현재는 만주의 영토인 간도·내만주 출신의 환향자가 그나마 이들과 비슷하나,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 한국과 같은 추축국 출신인 독일에서도 동방 영토 및 동유럽에서 독일인들이 대거 추방당한 사례가 있다. 다만 이 경우는, 오랜 기간 독일의 영토였거나 독일계의 영향권이었고, 인구도 독일인이 절대다수였던 지역에서 주민들이 추방당했다는 차이가 존재하며 규모 역시 훨씬 방대했다. 상술했듯 현재는 만주의 영토인 간도·내만주 출신의 환향자가 그나마 이들과 비슷하나,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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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01);"> | ||
=관련어록= | =관련어록= | ||
{{인용문1|내지의 입이라고 하던 도시 대련을 거쳐, 학교에서 내지 중의 내지라 배워온 팔도에 환향한 나는 그곳에서 단지 이방인이었다. 본토의 풍속을 모르고, 살아야 할 집도, 경작해야 할 땅도 없는 우리들은 내지(한국)에 고립되어 있었다. <화냥년의 자식>이라 불리며 조소의 대상이 될 때마다 나는 만주를, 마음에 근심 하나 없었던 그곳의 넓었던 평야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곳은 이미 우리를 거부하고 떠나간 땅이었으니까.|이명박 著, 저서 <인생의 시간들> 中}} | {{인용문1|내지의 입이라고 하던 도시 대련을 거쳐, 학교에서 내지 중의 내지라 배워온 팔도에 환향한 나는 그곳에서 단지 이방인이었다. 본토의 풍속을 모르고, 살아야 할 집도, 경작해야 할 땅도 없는 우리들은 내지(한국)에 고립되어 있었다. <화냥년의 자식>이라 불리며 조소의 대상이 될 때마다 나는 만주를, 마음에 근심 하나 없었던 그곳의 넓었던 평야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곳은 이미 우리를 거부하고 떠나간 땅이었으니까.|이명박 著, 저서 <인생의 시간들> 中}} | ||
{{인용문1|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떳떳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일전의 치명적인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과거 식민제국이었던 내 조국의 총리로서 솔선수범 한다는 각오 아래 우리의 과오가 담긴 서원 일부를 철폐하고, 국민들에게 우리가 식민지를 만들어서 무슨 폐를 끼쳤는지 알리고자 했다.|김영삼 전 총리대신 著, 환향자 문제 및 역사에 대한 강연 中}} | {{인용문1|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떳떳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일전의 치명적인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과거 식민제국이었던 내 조국의 총리로서 솔선수범 한다는 각오 아래 우리의 과오가 담긴 서원 일부를 철폐하고, 국민들에게 우리가 식민지를 만들어서 무슨 폐를 끼쳤는지 알리고자 했다.|김영삼 전 총리대신 著, 환향자 문제 및 역사에 대한 강연 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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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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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아침해의 원유관]] | [[분류:아침해의 원유관]] |
2024년 3월 27일 (수) 18:3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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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 군사 ]
[ 역사 ]
[ 사회 · 경제 ]
[ 문화 및 사상 ]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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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지어 괴뢰국이 아닌 주권국 해외에서도 그대로였던지라, 동맹 일본의 태평양 전쟁 개전 이후 공작을 위해 본토에서 온 제국익문사가 캐나다에 채류중인 한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한동안 검거되지 못한 적도 있었다.
- ↑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제국 정부가 산업화로 인한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을 달래고 기득권층인 지주들의 심기를 지나치게 건드리지 않게 만주로 간 농민들에게 대량의 토지를 공짜로 나누어주었기 때문. 이 과정에서 엄연히 주거지인 게르나 유목민촌을 주거지 조성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불태우고 농지, 혹은 주거용으로 사용될 땅을 배급한지라, 만주족의 대한제국에 대한 인식이 그 어떤 식민지 피지배민족보다도 최악이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 ↑ 당시 여느 제국주의 열강들이 그러했듯, 한국인들은 보통 만주 내의 한인 구역에서 몰아서 자랐기 때문에 만주인을 볼 일이 의외로 잘 없었다고 한다. 세부적인 것들을 제외하면 한국 본토랑 언어, 문화적인 면에서 다를 바가 없는 수준이었던 셈.
- ↑ 엄밀히 말하면, 이미 비교적 개방되어 있던 한국 식민지들 중 일부 지역에는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유행한 일식이 들어온 상태기는 했다. 양국간의 우호관계가 굉장히 좋은 편이기도 했고, 앞서 언급한 부산의 일식 유입까지 합쳐지면서 위상이 높아진 셈.